출판사 리뷰
생애 첫 항해의 여정: 소년, 태평양을 마주하다
1981년 10월27일
연한 어둠이 깔린 부두. 싸늘한 바닷바람이 나의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코끝에 와닿는 항구 특유의 비릿한 짠 내. 그것은 이제 바다 나그네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비정한 신호였다.
10월의 끝자락, 낙엽조차 거리를 다 덮지 못한 가을 저녁이었다. 나는 말없이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멀리 외항에는 저녁노을을 배경 삼아 대형 선박들이 띄엄띄엄 정박해 있었고, 그들이 내뿜는 정박 등의 여광이 바다 위로 송곳처럼 깊게 꽂혀 있었다.
그때, 중형급 여객선 한 척이 트랩을 내리며 부두로 다가왔다. 무더기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여객선 터미널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보따리를 이고 총총이 걸음을 옮기는 아낙네, 지팡이에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여인, 구석에서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그들은 모두 돌아갈 집이 있고, 마중 나올 사람이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를 기다려 줄 사람도, 내가 찾아가야 할 목적지도 뭍에는 없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사랑하는 ‘희’가 숨 쉬는 이 땅을 떠나야 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다.
훌훌 털어버리고 나가면 다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은 바다와 뭍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긴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사코 뱃길을 말리시던 어머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한숨 섞인 목소리로 끝내 고개를 돌리시던 아버지, 그리고 “오빠, 꼭 배를 타야 하는 이유가 뭐야…”라며 울먹이던 내 두 여동생들의 얼굴이 차례로 눈앞을 스쳤다.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망치듯 항구로 온 나의 머릿속은 지난 몇 년의 기억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단순히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다. 땅 위에서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내가 믿었던 세상… 그 모든 것이 나를 배신하고 저 뭍에 남아 있었다. 차라리 다 잊고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싶은 갈증이 어린 나의 가슴 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다만이 나를 받아줄 유일한 무덤이자 탈출구였다. 나는 눈을 감고 짧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이제 바다로 간다.”
출항, 그리고 지옥의 멀미
출항이다. 이제 가는 거다. 파도를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뒹굴며 아무 소리나 질러보는 거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보는 거다.
짙은 어둠이 깔린 인천항을 벗어나며 배는 천천히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불빛들, 점이 되어 사라지는 사람들. 이제부터는 강제로 잊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나를 반겨줄 것은 오직 허연 파도와 고독뿐일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소리쳐 울어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 이 해방감이 차라리 달콤했다.
하지만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천항을 벗어난 지 불과 몇 시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겨울 바다의 색깔은 잿빛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잿빛으로 뒤엉켜 배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덤벼들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속이 뒤집어졌다. 말로만 듣던 ‘멀미’라는 괴물이 나의 멱살을 잡았다.
파도는 매섭게 선체를 때렸고, 3만 톤에 육박한 배는 나룻배처럼 삐걱거리며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기울었다. 선실 안에서는 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고, 창밖으로는 거대한 포말이 선실 창을 깨부술 듯 때려댔다. 배는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첫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멀미가 이렇게 악랄한 지옥일 줄은.
위내시경을 하는 것도 아닌데, 노란 쓸개즙까지 몽땅 토해냈다. 그런데도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바다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망망대해 태평양이었다. 빙글빙글, 세상이 뒤집히고 있었다.
갑판장과 선임들은 초보를 훈련시킨다며 멀미로 죽어가는 나에게 이것저것 일을 시켰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는 차라리 “마음대로 하시라”는 심정으로 바닥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옥 속에서 기어다니다 보니, 몸은 신기하게도 그 절망적인 흔들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금문교, 눈물의 입항
이제 파도 소리도, 배가 좌우로 요동치는 리듬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밤은 여전히 공포였다. 칠흑 같은 바다, 그 끝없는 어둠이 주는 압박감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등불 하나 없는 바다 위에서 하늘과 바다가 어디서 맞닿는지 알 수 없는 그 막막한 공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고독’의 실체를 만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나의 심장 박동 같기도 했다.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도 그 어둠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보름간의 처절한 항해 끝에, 마침내 아침 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벽의 바다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그 너머로 붉은빛 실루엣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토록 잔인했던 태평양을 건너, 이 거대한 다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차오르며 가슴이 터질 듯 벅찼다.
긴 항해 동안 구토와 추위, 두려움과 고독 속에 떨었던 그 시간들이 한순간에 눈물로 변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 이 붉은 다리의 풍경이 나의 평생에 가장 뚜렷한 낙인으로 남게 될 것임을.
40여 년 후의 추신
안개 너머로 붉은 금문교가 나타났을 때 내가 흘린 눈물은 감동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웠다. “살아남았구나”라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
그 붉은 다리는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무덤을 건너온 나에게 세상이 건넨 첫 번째 악수였다. 그 순간의 낙인은 40년도 훌쩍 지난 지금도 내 가슴속에 선명한 붉은색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금문교의 벅찬 감동은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다. 붉은 다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구불구불한 새크라멘토 내륙 수로를 따라 십여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바다를 떠나 육지 깊숙이 파고드는 낯선 항해. 그 길목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수로 양편으로 드넓은 황무지 위에서 위아래로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기계들이었다. 마치 거대한 메뚜기 떼가 다리를 까딱이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신기한 풍경이라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허허, 사람 하나 없는 빈 땅에서 우리나라에선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원유를 또박또박 쉬지 않고 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메뚜기 다리들은 ‘펌프 잭(Pump jack)’이라는 원유 채굴기란다.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구나.‘
그 축복받은 땅, 새크라멘토 항구에 닿아 우리가 만선으로 실었던 것은 2만5천 톤의 쌀이었다. 화주가 우리나라 조달청이라는 것까지만 알았고, 쌀 시장도 개방되지 않았는데 왜 쌀을 수입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엄청난 쌀을 싣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부산항에 하역할 때, 부두에는 묘하게 삼엄한 기운이 감돌았고 우리에겐 철저한 함구령이 떨어졌다. “쌀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
나는 그 살벌한 입단속에, 그저 비밀스러운 군사 작전에 쓰일 군량미인 줄로만 철석같이 믿었다. 그렇게 40여 년을 살아왔다. 이제야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보니 그날의 진실이 비로소 드러났다.
그 쌀은 군량미가 아니었다. 1980년 초 대한민국을 덮친 끔찍한 냉해로 벼농사가 대흉작을 맞아 온 국민이 굶주릴 위기에 처하자, 당시 군부 정권이 민심의 동요를 막고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비밀리에 들여온 엄청나게 많은 쌀은 생존의 식량이었다는 걸 알았다. 정작 쌀 시장 개방은 그 후로도 10년이 훌쩍 넘은 1995년에야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뚫고, 금문교를 지나, 그 긴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 퍼 담아온 내 스무 살의 무거운 화물이 사실은 굶주린 시대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절박한 밥알들이었다는 것을, 내가 비밀스럽게 쌀 수입에 동원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독한 멀미로 시작해 군부 독재의 치부를 가릴 쌀을 몰래 실어 나르는 데 동원되는 것으로, 그렇게 나의 처녀 항차는 끝이 났다.
[성장의 열병]
금문교의 붉은 위용에 감동하던 소년은 어느덧 바다의 생리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몸이 적응할수록 마음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세상을 향한 반항심과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뒤엉킨 채, 스무 살의 마도로스는 캄캄한 밤바다 위에서 자신만의 등불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펜을 들었다. 1983년, 가장 치열했던 내면의 기록이다.
허얀 등불의 시대
(1983년 3월, 이십 대 초반 항해 일기 중에서)
세상사가 어둡고 한심하여 백주대로에 등불을 들고 다녔다는 어느 철학자의 심기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 온갖 사회의 병폐 속에 추악한 인간상을 보노라면 그 역시 캄캄한 어둠을 본 것이리라.
들려오는 소음 속에서 악을 쓰며 대화를 주고받는 그 틈바구니를, 나는 한 마리 벌레처럼 어기적거리며 삐져나오려 애써 본다. 하지만 남는 건 고통과 실의의 잔재뿐이다. 뒤돌아보면 찬란하고 앞을 보면 가시밭길인 것이 인생이라지만, 내 청춘의 앞길은 유독 막막하다.
빈손으로 태어났어도 부귀영화로 세상을 휘어잡고 싶은 욕망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세상일은 베틀에 짜인 옷감처럼 순리대로만 되지 않는다. 어둠과 설움이 동반된 길, 가다 보면 좌절의 웅덩이도 만나고 고난의 바윗덩이도 만나겠지. 그래도 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실현 가능한 작은 꿈을 설계하며, 정다운 여인과 달콤한 사랑을 꽃피우고 싶다.
(하루 지나 다시 쓴다)
청춘을 바람에 흘리며 외로이 살아가는 젊은 위인이 또 얼마나 될까. ‘꿈을 먹는 젊은이’라니, 그건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위선자들 속에는 불신과 탐욕, 배신만이 꿈틀거린다.
구제할 수 없는 세상의 병폐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의 등불을 들고 서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데, 지금의 나는 그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었을까.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지만, 나의 떡잎은 썩어가는 잎일까
아니면 이미 병이 든 가지일까. 하지만 병충해를 견디며 자란 나무가 더 단단해지는 법이니, 나 역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맞서 본다.
세상은 어둡고 인간은 한심하다. 들려오는 말들은 헛된 자랑뿐이고 진리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푸른 하늘을 보고 넓은 바다를 보련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깔끔히 파도에 씻어버리자. 그리고 날아보자.”
(며칠 후의 기록)
내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강직하던 마음은 내성적으로 움츠러들고 신의와 용기도 희미해졌다. 대화 속에서조차 나는 갈대처럼 흔들린다.
배운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가 싫다. 꼭 대학을 나와야만 사람 대접을 받는 사회, 그 틀 안에서만 인정받는 세상… 가방끈이 짧다고 멸시 받기 싫어서, 시골 출신이라 손가락질 받기 싫어서, 그들의 세상에서 도망치듯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바다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 이 끝없는 수평선 위에서 나에게 묻는다.
“나의 빙산은 과연 있긴 한 걸까? 이 바다 밑 어딘가에 아직도 얼어붙은 희망이 남아 있을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장수호
현 (現) 제주시 한림. 비양도 도항선 선장.1980~1990년대 국내외 선원.항해사 근무.2025년 11월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수상문학고을 수필 부문 등단 <제 80회 1차 공모 등단 당선>2026년 3월 문학고을 시 부문 등단<제83회 2차 공모 등단 당선>현) 문학고을 제주지부장
목차
4 서두에 두는 글 | 낡낡은 궤짝에서 꺼낸 청춘의 소금기
6 추천서 | 장수호 수필가의 “파도가 삼키지 못한 이름들”
에세이집 추천서
12 생애 첫 항해의 여정: 소년, 태평양을 마주하다
17 40여 년 후의 추신
23 허얀 등불의 시대에 대한 일등 항해사의 답글
28 [편지 1]. 희에게 - 대나무 숲이 흔들리는 시골집에서
31 [편지 2]. 희에게 - 봄기운이 서리는 마당에서
34 [편지 3]. 친구 태우에게 - 다시 오대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
37 [편지 4]. 경수에게 -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서
40 [편지 5]. 태우에게 - 뉴욕에서의 위태로운 생일 전야
44 [편지 6]. 태우에게 - 바다를 개척한 나라의 긍지, 리버풀에서
47 [편지 7]. 경수에게 - 비 내리는 리버풀 부두에서
51 [편지 8]. 태우에게 - 브라질 앙그라 도스로 가는 바다 위에서
54 [편지 9]. 태우에게 - 구릿빛 유혹, 쌈바의 밤
58 [편지 10]. 경수에게 - 브라질의 노을과 낯선 자유 속에서
61 [편지 11]. 태우에게 - 세상을 둥글게 보는 눈
65 [편지 12]. 경수에게 - 브라질을 떠나며, 터키를 향하여
68 [편지 13]. 태우에게 - 지중해의 새벽 커피
71 [편지 14]. 경수에게 - 아테네 도크에서 맞이한 뜻밖의 항로
74 [편지 15]. 경수에게 - 철의 장막, 오데사의 안개 속에서
79 [편지 16]. 태우에게 - 지중해의 관문에서 보낸 1주년의 단상
82 [편지 17]. 막내 미선이에게 - 지중해에서 띄우는 오빠의 진심
86 [편지 18]. 보이지 않는 공포, 지중해를 덮은 검은 그림자
89 [편지 19]. 봄이 없는 바다, 만리 타국에서의 꿈
92 [편지 20]. 희에게 - 지중해 끝에서 부르는 이름
96 [에피소드 1]. 오픈티켓, 닫힌 귀향길, 로마의 천사
102 [편지 21]. 태우에게 - 마지막 배의 예감과 일 원짜리 우정
106 [에피소드 2]. 코스타리카, 낯선 길 위의 공포
109 [에피소드 3]. 푼타레나스, 짧은 인연의 눈물
112 [편지 22]. 흑해, 새벽 당직의 무게
115 [편지 23]. 나에게 쓰는 편지 - 이스탄불, 부주의가 남긴 흉터
118 [편지 24]. 1987년, 흑해의 담배 연기는 유독 썼다
122 [편지 25]. 희에게 - 뉴욕, 무서운 미련과 마지막 약속
126 끝나지 않은 항해 - 더반의 여인, 디카다
143 [부록 1]. 태평양에서 만난 내 생의 최초의 기적
152 [부록 2]. 페르시아만의 메이데이: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 밤
158 [참고 기록] 사막에서 핀 황금빛 기적: 사우디의 밀 수출
159 [부록 3]. 유럽 항해 4부작
166 [편지 26.] 그리스 피레우스, 고국을 그리는 자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