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기후 위기와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 ‘숭고’를 다시 사유하는 우찬제의 일곱 번째 비평집 『숭고의 주름』은 문학과 미술, 생태를 가로지르며 동시대 비평의 새로운 언어를 모색한다. 인간과 지구의 고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재난적 숭고’라는 개념을 통해 오늘의 감각과 윤리를 다시 묻는다.
저자는 나스카 지상화에서 출발해 한강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과 담론을 횡단하며, 고통과 무력감, 책임이 얽힌 ‘숭고의 주름’을 읽어낸다. 비평을 텍스트 해설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고통을 받아 적는 행위로 확장하며, 문학과 미술, 음악과 철학을 넘나드는 횡단의 미학을 치밀하게 전개한다.
『숭고의 주름』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비평의 태도를 통해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연다. 절망의 시대 속에서도 감각을 재배치하고 윤리적 도약을 모색하는 기록으로서, 동시대 예술과 비평이 나아갈 방향을 깊이 있게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지구의 비명과 인간의 고통이 새긴 ‘재난적 숭고’의 비평적 기록”
나스카 지상화에서 한강의 소설까지, 문학·미술·생태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미학
기후 위기 시대, 비평이 다시 쓰는 숭고의 언어
소천이헌구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 우찬제의 일곱번째 비평집
숭고의 동시대성을 위해 나는 ‘숭고의 주름’이라는 관점을 주목했다. 나스카의 지상화의 그 숭고한 주름들을 가로지르며 고대 나스카인들의 정동과 욕망을 가늠해보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문학예술에 대한 횡단 미학 비평을 수행하고자 했다. 사막의 표면에 서로 다른 형상들이 중첩되며 하나의 거대한 지상화를 이룬 것처럼, 동시대의 문학과 미술, 음악과 영화 및 철학과 예술의 담론들도 그렇다.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미지들이 예기치 않은 횡단과 접속을 통해 감각을 재배치하고 정동의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나스카처럼 수많은 주름이 얽힌 복합 지평 속에서 우리의 감각 또한 새롭게 조율된다.
(「책머리에나스카의 숭고한 주름들, 그 횡단 미학의 풍경」, pp. 6~7)
비평이 세계의 고통을 읽는 방식, ‘숭고의 주름’
문학평론가 우찬제가 전작 『애도의 심연』 이후 치열하게 고민해온 ‘횡단 미학’의 사유를 집대성한 일곱번째 비평집 『숭고의 주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되었다. 문학의 경계 너머를 끊임없이 탐색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재난과 역사적 트라우마,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고통이 인간 내면에 새긴 ‘부정적 주름’들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칸트적인 초월적 숭고를 넘어, 인간이 초래한 엄청난 파국 앞에서 무력감과 윤리적 책임이 뒤얽히며 발생하는 ‘재난적 숭고’를 동시대 비평의 전면에 내세운다.
저자는 이번 비평집을 통해 비평이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지구와 상처 입은 존재들의 신음을 제 몸에 새기는 치열한 ‘고통의 받아쓰기’여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이야말로 사유의 시작이라고 했던 레비나스, 예술을 ‘고통의 언어’라 불렀던 아도르노의 사유를 경유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길임을 몸소 증명해 보인다. 비평은 텍스트라는 섬 안에 갇혀선 안 된다고, 미술과 음악, 생태와 역사, 영화와 철학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숭고의 주름』은 말한다.
장르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파노라마
『숭고의 주름』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 「횡단의 상상력」에서는 페루 나스카 지상화의 거대 기호에서부터 사유를 출발시킨다. 수천 년 전 대지에 새겨진 그 주름들이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이 접촉하는 사건의 표면”임을 통찰하며, 그 힘을 동시대 예술과 문학으로 이어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고대 석관의 시선을 현대 관람자의 시선과 맞세운 갈라포라스-김, 100여 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한인 디아스포라 서사를 백년초 이주 설화와 겹쳐 읽은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 그리고 이중 스파이라는 분열된 존재를 통해 식민과 탈식민, 가해와 피해의 이항대립을 해체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까지. 고통의 심연을 횡단해야만 비로소 열리는 상상력의 지평을 추적한다. 나아가 김승희, 장수진, 주민현의 시편을 경유하며 신자유주의의 건조한 현실 속에서 ‘말라가는 희망’을 진단하고, 한국전쟁의 노근리 학살과 광주의 5월로 이어지는 고통의 역사를 따라간다. 시대의 폭력과 역사적 참상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일, 저자는 그 서늘한 ‘고통의 향유’야말로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지점이라고 말한다.
2부 「숭고의 주름」은 인류세의 기후 재난을 다룬 예술 작품들을 횡단하며 동시대적 숭고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롱기누스와 칸트로부터 이어져온 숭고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숭고의 주름’이라는 관점으로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무력감과 윤리적 책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특히 파국 직전의 시간인 ‘11시 59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 묻는다. 동시에 물의 눈으로 바람의 노래를 듣는 생태적 감수성이 어떻게 새로운 시적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탐문한다.
3부 「횡단하는 소리풍경」에서는 동시대 한국 시를 ‘소리풍경’이라는 독창적 프리즘으로 읽어낸다. 시를 ‘공기 중에 날려버리’기를 꿈꾼 정현종의 시 세계를 두고, 만물과 시선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무한 바깥”을 향해 비상하는 시인의 몽상이 어떻게 시적 깨달음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광주 바깥에서 광주의 5월을 경험한 최하림의 시에서는 “심연으로 내려가는 바람의 노래”를, 이재무의 시에서는 ‘정겨운 유목민’의 ‘낙타의 소리풍경’을 읽어내며 각각의 시인이 도달한 서정의 깊이를 짚는다. 이승하의 ‘사람 사막’에서 비를 비는 시혼, 곽효환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하는 시선, 그리고 한경옥의 시집을 ‘아트라베시아모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독해까지. 저자는 시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횡단하며 도달한 ‘소리풍경’을 되살려낸다.
4부 「디아스포라 횡단」에서는 한국 문학이 분단과 역사, 권력과 상상의 문제를 어떻게 넘어섰는지를 해부한다. 분단 상황을 초극하기 위해 ‘문화형 문학’을 발명한 최인훈의 성취를 재조명하며, 이념과 체제의 벽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긴다. 홍성원의 『주말여행』에서는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김원일의 소설에서는 연처럼 새처럼 분단의 매트릭스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힘을 발견한다. 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을 통해서는 권력의 바깥에서 가능한 상상의 비상을, 함정임의 소설에서는 해운대와 영도라는 장소성이 품은 글쓰기의 힘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문학 세계를 향한 깊고도 뜨거운 헌사를 건넨다.
한강의 ‘고통의 법열’과 ‘깊은 주문’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문학 세계를 “고통의 법열(法悅)과 깊은 주문(呪文)”으로 정의한다. 2024년 10월 10일 저녁, 남도 여수의 병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한강의 첫 소설집이 바로 『여수의 사랑』이었음을 떠올리고, 그 공교로운 인연에 깊이 놀란다. “텅 빈 항아리 되어” 역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울리게 한 한강 문학의 비밀을 비평의 언어로 풀어낸다.
세계의 고통을 껴안는 가장 뜨겁고도 서늘한 기록
저자에게 비평이란 타자의 고통에 공명하고, 그 상처를 제 몸으로 앓으며 새로운 사유의 주름을 열어나가는 과정이다. 나스카의 주름이 수천 년을 지나 여전히 접히고 펼쳐지듯, 저자는 동시대의 문학예술 앞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새로운 비평의 주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숭고의 주름』은 넘쳐나는 가벼운 감상들 사이에서, 비평이 어떻게 세계의 고통을 껴안고 새로운 윤리적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뜨겁고도 서늘한 기록이다.
평론가 우찬제에게 독자란 이 시대를 함께 읽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동료들이다. 세계의 균열을 기꺼이 제 몸의 주름으로 받아내는 『숭고의 주름』의 문장들은, 절망의 시대를 견디며 새로운 숭고를 탐색하는 이들에게 묵직하고도 다정한 언어로 남을 것이다.
나스카의 신비한 그림들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지만, 정작 시선이 닿지 못하는 잔여의 주름에 그 진실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발터 벤야민이 “일체의 미를 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던 숭고가,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며 그 미세한 진동 속에서 낯선 광휘로 다가오는 것처럼, 나스카의 풍경 또한 그러했다. 그 주름들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이 접촉하는 사건의 표면이었고, 이질적 층위들이 교차하며 새로운 사건을 생성하는 감응의 동력이었다. (「책머리에」)
고통이 바로 사유의 시작이라고 했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예술을 ‘고통의 언어’라고 불렀던 테오도르 루드비히 비젠그룬트 아도르노, 예술적 쾌락원칙의 역승화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 현실원칙의 강고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야기와 함께 경험되는 허구적 체험을 절망 속에서 하는 희망의 체험이라고 논의한 폴 리쾨르,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 나타나는 상처/고통과 신궁의 기예 사이의 역설에서 예술가의 존재론을 착안하여 상처와 고통을 통한 예술적 영광을 강조했던 미국의 평론가 에드먼드 윌슨 등등의 사유와 고민들이 「백년 여행기」에 동참하면서 예술 수용의 지평을 심화하게 해준다. 다른 자리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어쩌면 ‘고통의 향유’란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고귀한 예술적 과정이 아닐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응시하면서, 예술의 이름으로, 문학의 이름으로, 역설적으로 고통을 향유할 때, 예술이나 문학은 자연스럽게 치유의 지평을 알게 될 터이니 말이다. (「횡단의 상상력과 상상력의 횡단」)
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고통의 향유’라는 지점에서 그들은 넉넉하게 만나 교감했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는 고통의 심연에서 피어난 연꽃이었을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의 심장과 교감하며, 자기만의 스타일로 고통을 향유할 때 피어나는 서사적 리듬의 풍경이었을 터이다. 뛰어난 작가들은 대부분 역설적인 고통의 향유 방식을 통해 나름의 비극적 숭고미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고통의 심연을 비추는 노근리 북극성」)
작가 소개
지은이 : 우찬제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욕망의 시학』 『타자의 목소리』 『고독학 공생』 『프로테우스의 탈주』 『애도의 심연』, 문학 연구서 『텍스트의 수사학』 『불안의 수사학』 『나무의 수사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 『생태학적 상상력과 녹색 수사학』 등이 있다. 소천이헌구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나스카의 숭고한 주름들, 그 횡단 미학의 풍경
1부 횡단의 상상력
횡단의 상상력과 상상력의 횡단
말라가는 희망의 물방울, 마르지 않는 고통의 샘
고통의 심연을 비추는 노근리 북극성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 그 5월의 횡단
2부 숭고의 주름
숭고의 주름―횡단 미학 비평
11시 59분의 허세, 혹은 희망?―숭고의 주름·2
물의 눈으로 듣는 바람의 노래―숭고의 주름·3
별거 아닌 별거
‘질풍로또’ 시대의 교환 은유
3부 횡단하는 소리풍경
‘시·시·비·비’를 넘어서―정현종의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무적’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바람의 노래―최하림의 『우리들을 위하여』 다시 읽기
강원도 파우스트―김주연의 『강원도의 눈』
정겨운 유목민, 혹은 낙타의 소리풍경―이재무의 『정다운 무관심』
‘사람 사막’에서 비를 비는 시혼―이승하
사람-풍경의 고현학―곽효환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함께 횡단하는 아트라베시아모의 서정―한경옥의 『바람은 홀로 걷지 않는다』
4부 디아스포라 횡단
분단 상황의 초극을 위한 ‘문화형’ 문학의 발명─최인훈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홍성원의 『주말여행』 다시 읽기
연처럼, 새처럼―김원일의 소설 시대와 분단 문학의 매트릭스
권력의 바깥, 상상의 비상―이승우의 『미궁에 대한 추측』
해운대의 상상력, 혹은 영도의 글쓰기―함정임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
고통의 법열(法悅)과 깊은 주문(呪文)―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