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역사
허균의 편지  이미지

허균의 편지
글로는 말을,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네
교유서가 | 부모님 | 2026.06.15
  • 정가
  • 22,000원
  • 판매가
  • 19,800원 (10% 할인)
  • S포인트
  • 660P (3% 적립)
  • 상세정보
  • 14.8x21 | 0.504Kg | 388p
  • ISBN
  • 9791124128862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품절된 상품입니다.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조선 최고의 이단아이자 ‘역적 괴수’로 역사에 박제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남긴 편지를 완역한 책이다. 오랜 기간 허균을 연구해 온 울산대 노경희 교수의 치밀한 고증을 거쳐, 1596년부터 1613년까지의 편지를 읽으며 격동적이었던 허균의 삶과 사유를 독자가 함께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편지 속에서 허균은 거침없는 혁명가의 모습이 아닌, 사랑하는 여인과 마음을 준 벗을 향한 그리움을 숨김없이 토로하고, 주위의 시선에 전전긍긍하기도 세속의 출세와 이익에 초탈하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진솔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역적 괴수인가, 미식가 도련님인가
편지로 처음 만나는 인간 허균

『홍길동전』의 저자, 조선 최고의 이단아,
그리고 술과 게를 사랑한 미식가 도련님,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허균을 처음 만나는 책이다.

* 조선 최고의 ‘문제적 인간’ 허균의 편지글 완역 출간
* 고관대작부터 서얼, 승려, 기생 등 신분과 남녀를 초월한 진솔한 우정
* 21세기 AI 시대에 400년 전 천재지식인이 남긴 ‘날것의 목소리’ 복원
* 고전문학자이자 문헌학자인 노경희 교수의 고증과 생생한 번역

천지간의 한 괴물,
허균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다

이 책은 조선 최고의 이단아이자 ‘역적 괴수’로 역사에 박제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남긴 편지를 완역한 책이다. 오랜 기간 허균을 연구해 온 울산대 노경희 교수의 치밀한 고증을 거쳐, 1596년부터 1613년까지의 편지를 읽으며 격동적이었던 허균의 삶과 사유를 독자가 함께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편지 속에서 허균은 거침없는 혁명가의 모습이 아닌, 사랑하는 여인과 마음을 준 벗을 향한 그리움을 숨김없이 토로하고, 주위의 시선에 전전긍긍하기도 세속의 출세와 이익에 초탈하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진솔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명필 한석봉을 유혹한 안주, 기생 이매창과의 정신적 교감,
유배지에서도 멈출 수 없었던 ‘미식가 도련님’의 까다로운 입맛

우리가 미처 몰랐던 허균의 사생활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지극히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그는 류성룡, 이항복 등 지체 높은 재상부터 최립, 권필 등 문단을 주도한 문인에 이르기까지 17세기 조선의 명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펼쳤다. 그에 더해 당대 최고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한석봉(한호) 또한 허균의 둘도 없는 술친구였다. 허균은 한석봉에게 편지를 보내 “잘 익은 술과 잉어회, 죽순, 자라를 장만해 두었으니 어서 빨리 오라”며 떼를 쓰듯 손짓한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 앞에서는 체면을 던져 버리던 천진난만한 지식인의 실루엣이 편지 곳곳에서 묻어난다.
또한 당대 최고의 명기(名妓)이자 시인이었던 이매창과의 친밀한 관계도 눈길을 끈다. 유교 국가 조선에서 허균은 이매창과 남녀의 사랑을 넘어선 정신적 교감, 즉 ‘지기(知己)’로서의 교류를 나눴다. 매창의 재능과 예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을 터놓았던 허균의 편지는,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는지를 증명한다.
허균의 ‘맛에 대한 집착’은 절망적인 유배지에서조차 꺾이지 않았다. 관직에서 쫓겨나 귀양을 간 상황에서도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현지의 음식 맛을 혹평하는 예민한 미식가의 면모를 보였다.

관직의 등용과 파직이 반복되는 숨막히는 정쟁의 한가운데,
그가 진정 바란 것은 마음 맞는 벗들과의 ‘한가로운 삶’이었다

관직의 등용과 파직, 유배와 복직이 쉴새없이 벌어지던 17세기 파란만장한 정계 한가운데서, 그가 바란 것은 그저 마음 맞는 벗들과 마주 앉아 갓 잡은 생선회에 잘 익은 술을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편안한 삶이었음이 편지 곳곳에 드러난다.
이 책은 허균의 설렘과 불안, 주저함과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오랜 시간 허균의 글을 읽어온 한 연구자의 집념어린 번역을 통해 독자들은 400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허균이라는 인물의 진면목을 남김없이 살필 수 있다.
역모죄가 적힌 ‘결안’의 서명을 끝내 거부하며 ‘할 말이 있다’고 외쳤으나 형장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던 17세기 한 비극적 인물이, 수백 년 전 조선땅에서 다하지 못했던 말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허균의 편지를 읽었다’가 아니라, ‘허균을 만났다’는 특별한 경험을 할 것이다.

이제, 이 책을 통해 수백 년 전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세상에 전하는 허균의 목소리가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_「옮긴이 서문」에서

허균의 살아 숨쉬는 맛난 문장들
그 누구의 글도 아닌, 나는 ‘허균의 글’을 쓸 것이다

: AI 글쓰기가 넘치는 2026년의 세상에서, 400년 전 조선을 살아간 인물의 육성을 그대로 듣는다.

저는 저의 시가 당시나 송시와 비슷해질까 두려우며, 남들이 ‘허균의 시’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_「이달에게 보내다」(1609)

유배지에서도 반찬 투정을? 음식만 맛있으면 유배지도 천국, 고을 원님이 되려거든 기왕이면 맛있는 곳으로
: 먹을 것에 늘 진심인 사람, 단 하루라도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순 없다.

이달 15일에 유배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새우도 부안만 못하고, 게와 가재는 벽골제 것만 못합니다. 먹을 것을 탐하는 사람은 굶어 죽겠습니다. _「기윤헌에게 보내다」(1611)

부여는 바닷가에 있어 궁벽한 지역이기는 하나 생선과 게가 풍부하니 군수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공주목사도 같은 시기에 임명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은 번잡한 곳인데다가 게가 없으니, 부디 제 이름은 거론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_「최천건에게 보내다」(1607)

좋은 경치에 잘 익은 술, 맛있는 음식, 마음을 나눈 친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서얼이든 승려든 기생이든, 뜻이 통하면 모두가 친구다.

봄이 이미 지나 그윽한 꽃들이 그대를 기다리다 모두 가버렸습니다. 초록이 저리 무성하고 꾀꼬리 소리 진정 고우니, 봄빛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어찌 반드시 냇가 가득 핀 복숭아꽃만 있겠습니까? 섬돌에 난만한 붉은 꽃 또한 볼만하니, 보낸 것을 타고 서둘러 오시기 바랍니다. 수수로 빚은 술이 한창 익었기에 그물을 엮어 냇가에 나가 함께 잉어를 잡아 회를 치고자 합니다. 죽순과 자라도 안주로 장만하겠습니다. 저는 평생 입만 위하는 사람이기에 맛좋은 술과 안주로 초대하니, 부디 먹기만 탐한다고 비웃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_「한호를 맞이하다」(1605)

연못에 이제 물이 불어 넘쳐나고 버들 그림자가 한창 짙으며, 연꽃은 반쯤 붉은 꽃잎을 토해내고 푸른 나무가 새파란 연잎에 비칩니다. 때마침 동동주를 빚어 젖빛같이 하얀 술이 동이에 방울방울 떨어지니 빨리 와서 이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_「권필에게 보내다」(1610)

출세보다 소중한 것은 오직 그리운 친구일 뿐
: 벼슬보다는 한가함과 즐거움을 구하며, 오직 벗을 향한 그리움만 쌓이네.

벼슬할 뜻은 식은 재처럼 싸늘해지고, 세상맛은 씀바귀처럼 쓰며, 조용히 사는 즐거움이 벼슬살이보다 나으니, 어찌 제 편안함을 버리고 남을 위해 수고하겠습니까. 오직 벗을 그리워하는 정만이 제 마음속에 맺히지만 거리가 멀어 만나기 어려우니 회포를 다 풀 수가 없습니다. 가을 기운이 점점 짙어가니 부디 양친을 잘 모시고 효도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합니다. _「권필에게 보내다」(1603)

허균 전문가의 독자 맞춤형 편집
* 편지를 시간 순서대로 배치한 구성: 독자들은 17세기 초반(1596~1613) 격동적인 허균의 생애를 따라가며 간접 체험할 수 있다.
* 허균의 목소리를 실감할 수 있는 번역: 어려운 한자어를 정확한 의미로 쉽게 옮기고, 편지의 맛을 살리는 표현들을 다양하게 고민했다.
* 편지 속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 수신자의 관직과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여 편지를 보낸 의도를 심층적으로 살필 수 있다.
* 문헌 자료의 실물 도판 수록: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의 다양한 판본과 그의 장서인, 작은형 허봉과 누이 허난설헌의 저술 등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문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이 허균이었다. 그렇게 허균의 글을 하나둘씩 따라 읽다가 어느 순간 박사논문의 절반을 허균의 글을 대상으로 쓰게 되었다. (…) 생의 국면에서 겪는 일들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무어라 말을 걸고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는지, 날것 그대로인 그의 목소리들은 아쉽게도 논문의 재료가 되기에는 너무나 여리고 섬세했다. 손을 뻗어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았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저 글들을 통해 허균의 내면에 더욱 깊이 다가가고 싶었다. _「옮긴이 서문」에서

옛날 명사들은 반드시 술을 실컷 마시고 『이소경離騷經』을 숙독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둘 다 전혀 갖추지 못했네. 백관 중에 어떠한 자리라도 정말 달게 받아들이려는데 그대는 나를 천 길 골짜기 밑에서 곧장 끌어올리려 하니, 그대에게 옛날의 천하장사 오획만한 힘이 있을지 모르겠네. 애만 쓰고 소득이 없을까 두렵다네. _「임수정에게 보내다」(1600)에서

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젊은 시절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가니, 한 번의 즐거움이라면 족히 만종萬鍾의 녹봉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러한 즐거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꾸짖는 이들이 천 명이라 해도 어찌 나의 털구멍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반드시 의리를 해치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께서 음식을 드시다가 이것을 보시면 분명 웃음이 터져나와 밥상 가득 입 속의 밥알을 뿜고 말 것입니다. 다 갖추지 못합니다.
_「한준겸에게 보내다(1601)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허균
허균(許筠, 1569∼1618)은 어떤 사람인가? 흔히 허균은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또는 반역을 기도하다가 처형된 인물로 운위된다. 《홍길동전》에 나타나는 적서 차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이 허균의 평소 염원을 반영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의견은 허균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적대적 인물의 전언(傳言)에만 등장할 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허균이 반역을 도모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진위가 불분명하다. 조선 시대에 반역죄로 처형된 여타 인물의 경우와 달리, 허균에 대해서는 직접적 물증 없이 주변 인물들의 증언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기에 ‘훗날 반드시 이론(異論)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어 있기도 할 정도다.이처럼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음에도 위의 두 가지 사안은 학교 교육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일반 대중이 허균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허균에 관한 직접 경험이 아니라 허균에 대한 소문을 채록한 야사(野史) 계통의 자료에 의존한 현대의 전언들이 허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증폭시킨 면이 있다.하지만 신빙성 있는 1차 자료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허균의 면모는 그런 대중적인 인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풍미한 사상과 문화, 정치 제도에 순응한 점에 있어서는 동시대의 여느 관료 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례로 허균은 유가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경서(經書)나 사서(史書)에 대한 학습 및 내재화, 충효라는 덕목에 대한 숭상과 실천을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으로 인정한다. 본서에 수록한 〈엄처사전〉은 물론, 〈학산초담〉을 비롯한 초기작이나 허균의 나이 40대 초반에 쓴 〈학론(學論)〉(1610) 같은 글에서 일관되게 이 입장이 견지되고 있다. 흔히 허균이 당대 관료나 사대부 문인들과 구별되는 개성을 지녔다 해 운위되는 것이 불교 서적이나 도가 사상에 대한 애호라고들 한다. 하지만 도가적 어휘가 대거 등장하는 〈남궁선생전〉을 쓴 이후에도 〈학론〉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정치의 기본 원리로서 성리학의 기본적 사유 방식을 옹호한 점은 특기될 필요가 있다.또한 허균이 혁명 내지 사회 개혁을 도모한 인물로 거론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호민론〉이다. 〈호민론〉에 피력된 입장은 민(民)의 역량에 대한 호감과 긍정이 아니라, 민의 불만을 조기에 무마해야 기성 지배층의 안정적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라는 점이 최근 연구들에서 지적되어 왔다. 민에 대한 허균의 입장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이 점은 본서에 수록한 〈남궁선생전〉의 조회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허균은 지배층의 일원으로서 기성의 가치에 상당히 동조하는 가운데 주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던 인물이다. 40대 이후에 정계의 고위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꺼이 그에 응했던 사실은 허균의 본심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연마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상류층이기에 접근할 수 있었던 문화 자원을 적극 활용했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는 대부분 그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다양한 자원들에 힘입고 있다. 가령 허균의 척독과 같은 초단형(超斷形)의 편지 양식이나, 그의 산문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참조점이 된 《세설신어》 같은 책은 단지 허균이라는 한 개인의 기호에 의해 개발되거나 주목된 책이 아니다.선조?광해군 연간 조선 문단에서는 명대 문학, 특히 강남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서 애호된 문학 양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허균 역시 이러한 동향에 참여하고 있었다. 《세설신어》 역시 강남 사대부들 사이에서 16세기에 재발견되고 주목된 서적 중 하나다. 한 단락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의 일화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동원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품성을 간결하게 스케치하는 《세설신어》의 스타일은 위진 남북조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당시 명대 문학을 선도하고 있던 16세기 강남 문단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16세기 말 명대 문단을 주도했던 왕세정(王世貞, 1526∼1590)에 의해 1585년에 《세설신어보》가 출간되고, 이어서 《세설신어》를 모방한 각종 후속 작품이 대거 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명대 강남 사대부 문인 그룹 내에서 《세설신어》가 크게 유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당대 강남의 경제적 부흥에 힘입어 문화적 소양이 일천한 신흥 부유층이 부상했고, 이들의 도전에 응전하는 기성 사대부 계층은 자신들이야말로 선천적인 차원에서 우수한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는 입장을 정립해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지(李贄, 1527∼1602)나 원굉도(袁宏道, 1568∼1610)처럼 문학에 있어 개성 표현의 가치를 중시한 것도, 강남 지역의 그러한 문화적 동향의 한 단면으로, 기성 사대부들의 문화적 권위를 수성하려는 경향의 한 지류로 이해할 수 있다.이러한 배경을 시야에 넣고 다시 허균의 저 유명한 발언,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라는 개성 중시의 선언을 되짚어 보면, 일견 독창성을 중시하는 듯한 허균의 지향 역시 보다 넓은 문화적 흐름의 일부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실로 허균은 《세설신어》를 비롯해 왕세정으로 집약되는 강남 문인 사회의 문예적 동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허균은 그의 〈사우재기〉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세설체 저작의 저자이자 왕세정과 더불어 강남의 문예 담론을 주도했던 인물인 하량준(何良俊, 1506∼1573)의 글에 대해서도 열렬한 호감을 표했다. 특히 명 사신이자 강남 출신 문인인 주지번(朱之蕃, 1558∼1624)과 1606년에 직접 만난 이후로는, 강남의 문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회화, 서예, 미식 등 다채로운 문화적 활동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확장해 갔다. 작문에 있어서도 기성의 전범이나 관습을 답습하기보다 글쓴이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역시 주지번과의 만남 이후 뚜렷하게 정식화된다. 요컨대 동시대 조선 관료 문인과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허균의 개성도 좀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일정한 문화적 동향과의 동질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다.이상에서 짚어 본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허균은 당대 조선 사회 상류층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고급문화에 깊이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소양을 형성해 나갔으며, 결국 허균의 문학적 성취와 개성 강조의 문학론은 단순한 개인의 독창성의 발로라기보다는, 조선 중기 사대부 문화와 명대 강남 문인 문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목차

도판
옮긴이 서문

1596년 | 선조 29, 병신
9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1597년 | 선조 30, 정유
8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1599년 | 선조 32, 기해
5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6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1600년 | 선조 33, 경자
2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3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5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6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7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긴 편지 | 재상 이헌국에게 올리다上完城李相國書, 첫 번째
재상 이헌국에게 올리다上完城第二書, 두 번째

1601년 | 선조 34, 신축
2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3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8월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9월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1602년 | 선조 35, 임인
2월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3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4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5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1603년 | 선조 36, 계묘
8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미상 |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김확에게 보내다與金甥正卿書
권필에게 보내다與石洲書

1604년 | 선조 37, 갑진
2월 사명대사 유정에게 보내다與松雲大師 1
3월 한호에게 보내다與韓石峯
5월 이호민에게 올리다上李五峯
8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9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10월 한호에게 보내다與韓石峯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이조판서 허욱에게 올리다上許吏曹頊書

1605년 | 선조 38, 을사
2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심희수 정승에게 올리다上一松相
3월 이덕형 정승에게 올리다上漢陰相
이항복 정승에게 올리다上鼇城相
유근에게 올리다上柳西坰
4월 한호를 맞이하다邀景洪
7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이정에게 보내다與李懶翁
9월 유근에게 올리다上柳西坰
1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2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긴 편지 | 형님[허성]에게 답해 올리다奉答家兄書
허녕에게 답하다答許新昌書
이대린에게 답하다答錦溪正書

1606년 | 선조 39, 병오
1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사명대사 유정에게 보내다與松雲大師
2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이호민에게 올리다上李五峯
5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7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8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윤의립에게 보내다與尹止中
10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1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607년 | 선조 40, 정미
1월 이정에게 보내다與李懶翁
2월 아무개에게 보내다與○○
3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최립에게 보내다與崔簡易
최립에게 보내다與崔簡易
6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7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8월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아무개에게 보내다與○○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9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0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양경우에게 보내다與梁子漸
12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홍경신에게 보내다與洪鹿門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긴 편지 |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 첫번째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第二書, 두번째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第三書, 세번째
성준구에게 보내다與成德甫書
최천건에게 답하다答崔汾陰書

1608년 | 선조 41, 무신
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홍경신에게 보내다與洪鹿門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이덕형 정승에게 올리다上漢陰相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심열에게 보내다與沈學而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4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6월 조호에게 보내다與曺養吾
7월 심광세에게 보내다與沈扶安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8월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이이첨에게 답하다答李觀松
9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10월 승려 해안 경석에게 보내다與海眼庚釋
11월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12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민인길에게 보내다與閔叔正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긴 편지 | 임연에게 보내다與任子正書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書
큰조카에게 답하다答長姪書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書
가형[허성]에게 올리다奉上家兄書

1609년 | 광해 1, 기유
1월 이경전에게 답하다答李仲集
황신에게 보내다奉黃思叔
이매창에게 보내다與桂娘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4월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7월 윤오정에게 답하다答尹梧亭
8월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9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이이첨에게 보내다答李觀松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조희일에게 보내다與趙悟叔
홍중인에게 보내다與洪仲仁
양경우에게 보내다與梁子漸
이매창에게 보내다與桂娘
10월 이원형에게 보내다與李士常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윤훤에게 보내다與尹次野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12월 이수광에게 보내다與李芝峯
박엽에게 보내다與朴叔夜

1610년 | 광해 2, 경술
1월 윤훤에게 보내다與尹次野
남이공에게 보내다與南子安
2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3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4월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수광에게 보내다與李芝峯
홍서봉에게 보내다與洪輝世
5월 이항복 정승에게 올리다上鼇城相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6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7월 홍서봉에게 보내다與洪輝世
임숙영에게 보내다與任茂叔
9월 이정귀에게 보내다與李月沙
심액에게 보내다與沈重卿
조찬한에게 보내다與趙善述
10월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정협에게 보내다與鄭和伯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12월 김상준에게 답하다答金汝秀
윤수겸에게 답하다答尹鳴益
정응운에게 답하다答鄭時望
홍중인에게 보내다與洪仲仁

1611년 | 광해 3, 신해
1월 이정귀에게 보내다與李月沙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이이첨에게 보내다答李觀松
기윤헌에게 보내다寄奇獻甫
장유에게 답하다答張持國
조카 실에게 답하다答實姪
함산 수령 한회일에게 사례하다謝咸山倅
2월 송구에게 보내다與宋天翁
송구에게 보내다與宋天翁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남궁생에게 답하다復南宮生
3월 조카 실에게 답하다答實姪
용산 수령 이할에게 보내다與龍山倅
함산 수령 한회일에게 사례하다謝咸山倅
조카 채에게 답하다答寀姪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4월 윤오정에게 답하다答尹梧亭
9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대사간 정협에게 주다與鄭大諫書
유시어에게 보내다與柳侍御書
정생에게 답하는 글答鄭生書
이생에게 답하는 글答李生書

1613년 | 광해 5, 계축
정월 1일 금산 사또에게 보내다
2월 19일 아무개에게 보내다
4월 16일 금산군수 이안눌에게 보내다

수신인
허균 연보

옮긴이 해제 : 글로는 말을,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네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