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았으니까,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과 멀어지는 건 당연한 걸까?
덕업일치의 대가로 그 마음을 포기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링 위에 선 만화 편집자 김해인의 두번째 펀치만화가 좋아 만화 편집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2024) 이후, 김해인이 두번째 에세이 『펀치: 맞을수록 강해지는 만화 편집자 이야기』로 돌아왔다. 첫 책이 만화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만들고, 끝내 자신의 이야기로 써낸 사람의 벅찬 설렘과 열정을 담았다면, 이번 책은 처음의 흥분이 반복되는 일과 책임 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바뀌고, 성과와 숫자가 애정마저 재단하는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시간을 그린다.
좋아하는 마음에 맞고, 숫자에 맞고,
그래도 다시 만화 앞으로 간다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와 편집자로서 ‘좋은 만화’라고 판단해야 하는 작품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김해인은 일을 거듭할수록 그 간극을 선명하게 깨닫는다. 잘 팔리는 만화, 중쇄를 찍는 만화,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만화. 이런 기준 앞에서 편집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를 먼저 증명해야 한다.
“좋은 만화. 공미포(공백 미포함) 네 글자의 단어 조합이 빠따를 들고 나를 찾는다.
잘 팔리는 만화(한 대).
중쇄를 많이 찍는 만화(두 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만화(세 대).
그렇다면 좋은 편집자란 앞서 언급한 만화들을 많이 찾아내 출간하는 편집자일 것이다(네 대).
으~ 그러지 못해서 죄송흠느드(다섯 대)~”_본문에서
김해인은 이 무거운 질문을 비장하게 다루지 않는다. 빠른 호흡의 문장과 능청스러운 농담, 스스로를 아낌없이 웃음거리로 만드는 유머로 일의 피로와 압박을 밀고 나간다. 처맞고 씩씩거리다가도 다시 만화 앞으로 달려가는 특유의 문체가 고단한 일상마저 생생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바꾸어놓는다.
이번 책에서 ‘펀치’는 좋아하는 마음이 세상을 향해 날리는 일격만을 뜻하지 않는다. 숫자와 성과, 마감과 노동이 편집자에게 되돌려주는 타격이기도 하다. ‘맞을수록 강해진다’라는 말 역시 모든 타격을 견디고 성공한다는 선언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맞은 자리에서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다시 묻고, 달라진 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끝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의 강함에 가깝다.
오래 기다리고, 끝까지 매달리고, 기어이 사랑하는 일
이번 책에는 만화를 향한 애정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구체적인 노동이 담겨 있다. 김해인은 오랫동안 출간하고 싶었던 웹툰 <여자친구>가 책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들려준다(「『여자친구』 편집 후기」). 그는 첫 제안이 거절된 뒤 5년을 기다리고, 마침내 총 1,416페이지의 원고를 전 4권의 단행본으로 재구성한다. 웹툰의 호흡을 종이책에 맞게 나누고, 표지 색감 하나를 위해 샘플을 거듭 확인한 끝에 재인쇄까지 결정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처럼 오래 품은 마음을 수많은 판단과 책임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김해인이 생각하는 편집은 원고를 다듬고 책의 형태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작가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듣고, 그 사람이 자신만의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한다. 작가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도,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지도 않은 채 대화를 거듭하며 “내가 아니었으면 그려지지 않았을 만화”(「당신은 사람 말을 잘 듣는 편인가요?」)에 다가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그가 만화 편집자로서 끝내 놓치고 싶지 않은 태도다.
독립 출판 만화 행사 <칸새>에서는 ‘출장 편집부’가 되어 아직 책이 되지 않은 원고를 들고 온 창작자들을 만난다(「<칸새> 2: 동료는 ‘만화와 나 사이’에 끼어 있는 당신을 뜻하는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기까지 한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는 원고를 진지하게 읽고, 창작자가 무엇을 그리고 싶어하는지 들여다본다.
웹상에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작품을 종이책으로 옮기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만화의 곁에 앉는 일. 이 책은 편집자가 완성된 작품을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태어날 때까지 작가와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나는 만화가 지겨워질까봐,
아니 이미 충분히 지겨운데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지 겁이 났다.”
지치고 의심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이 책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시작한 지 5년 이상 되어 이제는 제법 능숙하지만, 가끔 너무 오래 일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여전히 이 일이 좋지만 앞으로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 두려운 사람. 성과와 숫자로 능력뿐 아니라 애정까지 평가받는 일에 지친 사람.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다음날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 들을 위한 책이다.
김해인은 좋아하는 마음을 처음처럼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래 일한 사람의 마음이 처음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피로와 권태, 의심과 애정을 모두 데리고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끈기와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슬쩍 모습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끝에는 만화가 주말과 란탄이 보내온 ‘축전 한 페이지 만화’가 수록되어, 만화 편집자의 두번째 이야기에 가장 만화다운 마침표를 찍는다. 만화가 지겨워질까 두려워하던 편집자의 곁에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버리는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들어가는 동안, 좋아하는 마음은 다른 이에게 건너가고 다시 돌아온다. 두 편의 만화는 그 마음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가장 만화다운 증명이다.

이 사람들은 그런 걸 만들고 싶어하는구나. 사람 마음에 영원히 남아버리는 것을. 나 역시 그런 걸 만나고 싶다. 어떤 작품이 완전히 내 것이 되는 순간. 무언가가 살이 되어 내 몸을 이루고 피가 되어 내 몸을 흐르는 순간. 만화라는 것이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된 사람과 상처주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면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만화를 좋아한다. (…) 나는 그 만화를 읽음으로써 그걸 만든 사람의 일면을 조금이라도 엿보게 되어, 다가가서, 결국엔 그 사람에게 닿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만화를 통해 사람을 좋아하고 싶은 것이다.(「좋은 만화 합숙」)
말을 들은 작가님, 안 들은 작가님. 두 분 모두 만화를 완성한 후 내게 남긴 말씀이 있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만화를 그려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끝내주게 유명한 만화나 엄청난 인기를 끈 작품의 편집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그려지지 않았을 만화들의 편집자가 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전자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당신은 사람 말을 잘 듣는 편인가요? 혹시 제 말 좀 들어보시겠어요.(「당신은 사람 말을 잘 듣는 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