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목민심서>는 18년 간의 긴 유배 세월 동안 심신을 수련한 결과로써 세상에 내놓은 다산학의 걸작이자, 자신의 생각과 경륜을 다 바쳐 지은 것으로 다산학의 정점이며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목민심서>에서 오늘날에도 마음에 새겨야 할 다산의 생각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출판사 리뷰
《목민심서》는 목민관의 치민(治民)에 대한 도리를 말한 책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의 ‘목민(牧民)’이란 백성을 기른다는 뜻이요, ‘심서(心書)’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면서, 그는 이 책에서 제시한 개혁들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갈망하였다.
《목민심서》는 18년 간의 긴 유배 세월 동안 심신을 수련한 결과로써 세상에 내놓은 다산학의 걸작이자, 자신의 생각과 경륜을 다 바쳐 지은 것으로 다산학의 정점이며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목민심서》는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그의 학문적 실력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제도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권력자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윤리적 자격을 요구하면서도, 힘없이 권력에 희생되어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따뜻한 심정이 녹아 있는 책이다.
그리고 《목민심서》는 200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할 수신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룻밤에 읽는 목민심서》라 하였듯이 고르고 고른 글들만 모아 엮은 것이다.
《목민심서》는 다산이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8년이 넘게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경륜을 다 바쳐 지은 것으로, 귀양에서 풀려나는 해인 1818년(순조 18), 그의 나이 57세에 완성된 것이다. 이 책은 다산학의 정점이며 핵심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기간 동안 처음에는 유교의 경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 정치 경제 제도의 개혁과 같은 현실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가장 학문적으로 원숙한 시기에 이룩한 민생 관련 저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셈이다.
이 책은 목민관, 곧 지방 행정관인 수령(守令)이 지켜야 할 윤리적, 행정적 지침을 밝히면서, 아울러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것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의 자서(自序)에서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먼저 수령은 《대학》에서 가리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을 배우는 데 힘써서,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치민(治民)하여야 진정한 목민관(牧民官)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수신(修身)과 선정(善政)을 목민관의 필수 요건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목민관의 기본 덕목으로 청렴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청렴은 모든 덕행의 근본이요 선행의 원천이며,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이 절대로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목민심서》의 첫머리에서, “다른 관직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관직은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목민의 길이 어려움을 말하면서도, 엄격한 윤리적 자격을 갖춘 자이어야만 목민관이 될 수 있음을 에둘러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목민관은 이러한 윤리 도덕적인 덕목을 바탕으로 목민관으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비록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밝지 못하면 하지 못한다. 무릇 그런 능력이 없는 자가 목민관이 되면 백성들은 그 해(害)를 입어 곤궁하고 고통스럽게 된다.”
어질고 현명하며 능력이 있는 목민관을 만나면 백성들은 그의 선정과 덕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는 곳은 산림(山林)과 천석(泉石)까지도 모두 그 맑은 빛을 입게 된다.”고 하였을까! 다산은 북위(北魏)의 방표(房豹)가 낙릉군(樂陵郡)의 수령으로 있을 때 물맛이 짜던 우물이 단물로 변하였다가, 그가 떠나자 단맛이 도로 짜졌음을 그 일화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한번쯤 들어볼 만한 일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백성을 생각하면서, 백성의 편에 서지 않고 오직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는 목민관과 관리의 부정부패에 다산의 매서운 질책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사람으로서 두려워할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백성과 하늘과 자기의 마음이다.”
다산의 이 말을 어찌 오늘날의 위정자들만이 새겨들을 것인가! 《목민심서》는
작가 소개
저자 : 정약용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 1762(영조 38)년에 태어나 1836(헌종 2)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귀농(歸農),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탁옹(?翁), 태수(苔?), 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 당호(堂號)는 여유(與猶), 시호는 문도(文度)다. 조선 후기 근기 남인 명문가 출신으로, 정조(正祖)의 총애 속에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동부승지(同副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 곡산부사(谷山府使), 병조참지(兵曹參知), 부호군(副護軍),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을 역임하면서 정조의 개혁 정치에 적극 참여했으나, 1801년 발생한 천주교의 신유교난(辛酉敎難) 이후에는 장기, 강진 등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와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의 경세학을 포함해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목차
1. 부임 6조
1. 임명
2. 행장을 꾸림
3. 인사
4. 부임하는 길
5. 취임
6. 집무 시작
2. 율기 6조
1. 바른 몸가짐
2. 청렴한 마음
3. 집안을 다스림
4. 객(客)을 물리침
5. 절약
6. 기꺼이 베풂
3. 봉공 6조
1. 덕화를 폄
2. 법을 지킴
3. 예의로 교제함
4. 공문서
5. 세금
6. 출장
4. 애민 6조
1. 양로(養老)
2. 어린이를 보살핌
3. 가난한 자를 구제함
4. 상(喪)사를 슬퍼함
5. 병자를 돌봄
6. 재난을 구제함
5. 진황 6조
1. 물자를 마련함
2. 부자에게 베풀기를 권함
3. 합리적인 진휼
4. 진휼의 계획과 시행
5.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방안
6. 일을 마침
6. 해관 6조
1. 교대
2. 떠날 때의 행장
3. 백성들이 머물기를 원함
4. 백성들이 용서하기를 빎
5. 임지에서 죽음
6. 덕을 기리는 것
부록 : 목민심서 서(序)
엮은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