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중국 고대의 학술과 사상의 발전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직하학은 매우 중요한 고리로서 전국 중후기 모든 주요 학파와 그 대표 인물들을 거의 망라하며, 또한 진한 이후 학술과 사상의 흐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직하학과 관련된 많은 문제와 분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없거나 매우 적었다. 이 책 <직하학 연구>는 직하학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이며 깊이 있는 연구서로서, 직하학궁에서 발생한 백가쟁명을 탐구한 역작이다.
이 책은 직하학궁의 번창에서 쇠퇴에 이르는 역사를 분석하며, 직하학궁에서 활약했던 각 학파의 학설을 탐구하고, 또한 그것들이 후대의 학술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특히 직하의 주류 학파가 황로학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또한 중국 전통 학술의 기본 범주들, 가령 심(心)· 성(性)· 기(氣)· 천(天)·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기원과 변천을 탐구하며, 직하학의 대표작인 <관자>의 도법결합(道法結合)· 이도론법(以道論法)· 예법병용(禮法竝用)의 이론을 연구하고, 이 이론들이 사실상 이후 2,000년 중국 정치의 모델, 즉 “밖으로는 유가를 표방하며 안으로 법가를 운영하는(外儒內法)” 모델의 효시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출판사 리뷰
직하학궁, 동양 최초의 씽크탱크
‘제자백가’나 ‘백가쟁명’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직하학(稷下學)’이나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얘기하면 대개는 고개를 갸우뚱하리라. 직하학이란 말이 낯설기는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실상 백가쟁명은 주로 직하학궁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니, 직하학궁이 없었다면 중국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백가쟁명도 없었을 것이다. 직하학궁은 다양한 학술을 포용하고 관대하며 자유로운 학술 분위기로 인해 전국 중후기 고대 중국 학술의 중심이자 창조적 사상을 생산하는 터전이 되었다. 중국 고대의 학술과 사상은 바로 여기에서 최고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그 황금시대를 경험했다.
‘직하학궁’이란 무엇인가? 기원전 4세기 중엽, 전국 중기로 접어들었을 때, 전씨 제나라는 대량의 물자를 투입하여 도성 임치(臨淄)의 직문(稷門) 아래 대규모 건물을 세우고, 널리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들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과 이론 활동을 하게 하였으며, 또한 정치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였다. 역사는 이것을 ‘직하학궁’이라 한다. 곧 직하학궁은 제자백가가 쟁명하고 논쟁하던 주된 장소였으며, 직하학은 제자백가 학술의 집약적인 표현이다. 직하학궁은 한 세기 반 동안(기원전 374~221년) 존속하다가 진시황이 제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부터 청나라 말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는 직하학궁의 전성기와 같은 백가쟁명이란 국면이 다시는 출현하지 않았다.
중국 고대의 학술과 사상의 발전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직하학은 매우 중요한 고리로서 전국 중후기 모든 주요 학파와 그 대표 인물들을 거의 망라하며, 또한 진한 이후 학술과 사상의 흐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직하학과 관련된 많은 문제와 분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없거나 매우 적었다. 이 책 <직하학 연구>는 직하학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이며 깊이 있는 연구서로서, 직하학궁에서 발생한 백가쟁명을 탐구한 역작이다.
이 책은 직하학궁의 번창에서 쇠퇴에 이르는 역사를 분석하며, 직하학궁에서 활약했던 각 학파의 학설을 탐구하고, 또한 그것들이 후대의 학술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특히 직하의 주류 학파가 황로학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또한 중국 전통 학술의 기본 범주들, 가령 심(心)· 성(性)· 기(氣)· 천(天)·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기원과 변천을 탐구하며, 직하학의 대표작인 <관자>의 도법결합(道法結合)· 이도론법(以道論法)· 예법병용(禮法竝用)의 이론을 연구하고, 이 이론들이 사실상 이후 2,000년 중국 정치의 모델, 즉 “밖으로는 유가를 표방하며 안으로 법가를 운영하는(外儒內法)” 모델의 효시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정치를 담당하지 않고 의론(議論)만 하다”
어떤 이들은 직하학궁을 전씨 제나라 정권의 ‘참의원’, ‘브레인 집단’, ‘사상의 보고’ 또는 중국 고대의 ‘RAND 연구소’라고 말한다.
직하선생들은 학궁에서 비교적 충분한 언론의 자유를 누렸으므로 자유롭게 정치를 의론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정부와 군주를 비판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바로 정부와 군주가 격려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직하선생들 대부분은 대담하고 직설적으로 간하였으며, 국가의 안위와 치란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군주에게 영합하기 위해 아첨하는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고대 지식인들의 언론의 자유는 직하학궁에서 그 최대한도까지 발휘되었는데, 이는 이전에도 없었던 것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이후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2,000여 년의 중국 역사에서 이처럼 관대한 정치 풍토와 자유로운 학술 풍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풍족한 생활상의 처우와 충분한 언론의 자유라는 이중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에 직하학궁의 학술과 사상은 “정치를 담당하지 않고 의론만 하는” 방법을 통해 활기차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직하선생들은 직하학궁에서, 첫째 생계의 수단을 찾아 걱정하거나 분주하게 지낼 필요가
작가 소개
저자 : 바이시
1953년 베이징 출생으로 수도사범대학首都師範大學 철학과 교수이다. 현재 중국의 저명한 중견 학자로서 중국철학사, 특히 선진先秦철학 및 중국 전통 사상문화와 그 현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엉덩이에 못이 박히도록 연구한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문헌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방대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연구는 기존의 통설들을 반박하고 새로운 이해를 건립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제자백가 사상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군소 학자들과 문헌 자료를 연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자백가의 상호 교류와 영향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는 중국철학사를 그 근원부터 다시 연구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상적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先秦哲學?思錄>(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7), <老子評傳>(陳鼓應 공저, 南京大學出版社, 2001)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백가쟁명의 근원을 탐구한 역작 (리션즈李愼之)
머리말
제1장 직하학궁 출현의 문화적 배경
1. 정치 경제적 변혁과 사인 계층의 흥기
2. 현사를 예우하는 기풍과 평민 출신 경상의 출현
3. 제자백가 학설의 출현
제2장 직하학궁과 제나라
1. 제나라의 경제· 정치· 문화
2. 기타 열국에 대한 분석
제3장 직하학궁의 성쇠
1. 기원
2. 창립
3. 흥성
4. 쇠락과 중흥 그리고 종결
제4장 직하학궁의 성격과 기능
1. “정치를 담당하지 않고 의론만 하는” 곳
2. 정치적 기능
3. 학술 활동
제5장 직하학 총람
1. 학파, 문헌, 학자
2. 학술 특징
3. 발전 추세
4. 역사적 지위
제6장 직하학궁의 주류 황로학
1. 직하학궁에서 출현하고 성숙한 황로학
2. 직하 황로학파의 초석을 놓은 <황제사경>
3. 신도와 전병의 학술 비교
제7장 맹자와 직하학
1. 맹자는 직하선생이 아니다
2. 맹자는 <관자> 심기론의 영향을 받았다
제8장 ‘송윤학파’와 직하학
1. ‘송윤학파’ 질의
2. 묵학에 대한 송견의 계승과 발전
3. 명과 법을 강조한 윤문의 황로 사상
제9장 직하 제학의 대표작 <관자>
1. <관자>의 성서 연대와 작자
2. <관자>의 황로 사상
3. <관자>의 음양오행 사상
제10장 추연과 직하학
1. 추연의 사상적 전향과 그 학술의 연원
2. 추연 학설의 주요 내용
제11장 순자의 직하학 수용과 발전
1. 순자의 인성론과 직하학
2. 예와 법을 결합한 순자의 정치론과 직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