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안녕꽃>을 펴낸 정자선 시인의 에세이. 시인은 연탄불처럼 뜨겁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단정했지만 돌아보니 꺼진 연탄불이었다고. 눈물을 꾹 참으며 다시 일어나 걷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랑잎 몇 개만이 친구였다고 한다.
출판사 리뷰
책인가, 아닌가. 달랑 시 12편, 그림 12점… 여백이 너무 많다. 독자에게 글 좀 쓰시지 강요하는 건가, 그런 건가. 라면인 건가, 나 면인 건가.
"불량과자나 씹으며 마음 달래고 있어.//한때 여기도 꽃이 피긴 피었지./너무 일찍 져서 꽃잎을 추억하고 있어./바람에 흔들리던 그 꽃이 흰색이었나./엷은 분홍이었나. 시절 좋을 땐 나도/꽃놀이쯤은 다녀왔지./그때 길가의 그 풀꽃은 서로 엉켜 낄낄거렸던가./지나가던 바람은 넘어지고 일어서며 후끈했던가.//봄도 가고 느린 달팽이가 어디까지 가나 보고 있어."
아, 여기도 꽃이 피긴 피었구나. 꽃이 져서 온통 하얗구나. 너무 일찍 져서 꽃잎을 추억하고 있어, 나도… 힘들어, 힘들어하면서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시_정자선(50)의 시집인 건가, 아닌 건가. 독자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 책은 같은 내용에 판형은 네 가지다. 가격도 제각각, 제목도 없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장난한 건가, 작(作)란한 건가. 시가 많은 말을 할 순 없다. 그렇다고 이건 아니지. 섭섭해하며 넘긴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독자인 나를 오래 붙들어 둔다.
"사실 나도 지금 힘들지만/저 저 저 작은 걸음을 우습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한 번에 와르르 무너진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흔들리는 풀잎아./너 너 달팽이에게 마음 뺏긴 거 맞지."
"그는 비의 잔소리를 다 듣고 있다."
"정신 차려라./네 집 앞에 기회가 왔다가 갔다./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너는/몇 번인가 넘어지고도 일어났다./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기보다 네가 간절히 바라봤던/그 사람 눈빛을 잊지 마라./네 집 앞까지 몇 번인가 더 널 넘어뜨리려/폭풍이 왔다가 갔다."
시인은 연탄불처럼 뜨겁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단정했지만 돌아보니 꺼진 연탄불이었다고. 눈물을 꾹 참으며 다시 일어나 걷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랑잎 몇 개만이 친구였다고. 춥다. 이 책은 너무 춥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지 않아.//넘어지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허둥거리며 꽃이 진다고 외로워 마.//바지를 내리고 볼일 볼 뿐이야."
시가 짧다고 불평을 하기엔 인생이 있고 인생을 쥐어박기보다 술 한 잔 생각이 난다. 이 책이 시집이든 아니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시.
"쓰레기더미 속에서 싹이 났다. 쓸모 있는 놈."
"그러니까/빨리 와줄래, 봄."
작가 소개
저자 : 정자선
1963년 전남 해남에서 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1년 《세계의 문학》에 시 〈깡마른 남자〉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어느 날 시집 〈안녕꽃〉과 에세이집 〈일어나, 가야지〉를 냈다. 견디다 보니 상처가 아물었다. 이제는 더 단단히 살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