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권.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총 책임자였던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배경이 상세히 적혀 있고 조정에서 있었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는 문장들이 쓰여 있다. 그는 후손들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징비록>을 남겼으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는 문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시리즈의 <징비록>은 번역의 기준을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번역하는 데 두었다. 또한 한글 번역문과 징비록 원문을 함께 실어 문장의 뜻을 음미하며 해석 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 원작!
이것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다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말이 있다.(시경_詩經)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드라마 ‘징비록’의 원작 《징비록》이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번째로 소개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총 책임자였던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배경이 상세히 적혀 있고 조정에서 있었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는 문장들이 쓰여 있다. 그는 후손들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징비록》을 남겼으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는 문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민족의 앞날과 백성을 염려했던 서애 유성룡의 쓰라린 고백과 성찰의 문장들을 만나 보자.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인심에 의해서이다.
비록 위태롭고 곤란한 시기라도 인심이 굳게 뭉치면 국가는 편안하며,
인심이 떨어지고 흩어지면 국가는 위태롭다.
《징비록》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역사적 사건 앞에서 유성룡이 쓴 기록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이 《징비록》은, 일본의 침략에 위태로운 조선을 걱정하며 탄식하는 유성룡의 고백들이 쓰여 있다. 전쟁 수행의 최고책임자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후회의 문장들을 통해 후대에 큰 교훈을 남겨주기 위한 그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이후로도 우리나라는 그에 못지않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치욕과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를 자처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부끄러운 과거를 반면 교사삼아 반성하고, 나라의 앞날에 경계와 충고를 해주려는 《징비록》과 같은 글을 남긴 사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유성룡의 《징비록》은 국가의 앞날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중대한 책임을 맡은 리더들에게 필히 일독을 권한다.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시리즈 중 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징비록은 번역의 기준을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번역하는 데 두었다. 또한 한글 번역문과 징비록 원문을 함께 실어 문장의 뜻을 음미하며 해석 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기록문학으로 평가 받는 《징비록》을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으로 만나보자.
작가 소개
저자 : 류성룡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서애집』『신종록』『영모록』『운암잡기』등이 전해진다.
목차
특별 부록: 그림으로 보는 징비록
서문
자서
제1권
제2권
녹후잡기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