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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집
스타북스 | 부모님 |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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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의 초기본부터, 해방 이후 및 분단 이후에 쓴 시들을 시기별로 수록하여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접할 수 있게 정리하였다.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의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을 담고 있다.

또한 원시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한편, 3부의 남북 분단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고착화가 이루어진 이후 발표한 시들에서는 그 이전까지와 완전히 다른 백석 시를 접하고 당황스러움과 슬픔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출판사 리뷰

서울시인협회 회장 민윤기 시인 추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윤동주가 곁에 두고 읽었던 시의 향연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하자 직접 필사해 항상 곁에 두고 읽었다
가난하고 높고 외롭고 쓸쓸한 것들에 마음을 둔 시인의 분단 이전과 이후의 시들

- 감수성 짙은 시인으로 시대의 불행과 비극, 사랑의 열병과 꿈을 남기다


백석은 윤동주가 평생 소중히 여긴 시인으로, 당시 100부 한정으로 발간된 『사슴』을 구하지 못하자 윤동주는 도서관에 가 백석의 시를 하루 종일 정자로 필사하였다고 한다. 윤동주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백석의 시를 사랑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이나 그중에서도 다음의 이유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백석은 고유어를 다채롭게 발굴 사용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당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이자, 6개 국어에 능통한 특출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으로서 문학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 시집은 백석의 유일한 시집 『사슴』의 초기본부터, 해방 이후 및 분단 이후에 쓴 시들을 시기별로 수록하여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접할 수 있게 정리하였다. 『백석 ★ 시집』에는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의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을 담고 있다. 또한 원시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한편, 3부의 남북 분단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고착화가 이루어진 이후 발표한 시들에서는 그 이전까지와 완전히 다른 백석 시를 접하고 당황스러움과 슬픔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 6개 국어에 능통한 특출한 언어 감각으로 고유어를 다채롭게 발굴 사용하다

이 시집은 백석의 유일한 시집인 『사슴』의 초기본과 그 외의 시들을 시기별로 정리하여 작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며, 표기법은 원시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백석 시의 특징인 고어와 방언 및 토착어는 가능한 살리며 각주로 해설을 달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 놓았다.

백석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을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백석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 아닌 인간의 삶에 직접 와 닿는 시어들을 사용하였는데, 시어들을 보면 우리 전통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잘 드러난다.

백석은 당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로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려는 노력도 부단히 하였다. 백석은 6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니, 그의 언어 감각과 언어에 대한 통찰의 정도가 조금은 가늠이 될 것이다. 물론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은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도 여럿 남겼다.

- 재북 시인으로서 남북 분단과 사회주의 체제 고착화에 따른 비극을 알게 하다

백석은 해방되던 해 북의 고향을 선택하였고, 남북 분단 이후 체제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으로 극대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의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복권되기 시작해 현재는 온전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시집 3부의 「해방 이후의 시」 가운데, 백석이 사회주의 체제의 고착화 이후 발표한 시들은 동인한 인물의 창작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백석이 북한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와 같은 변화를 보였다는 사실에 분단의 아픔과 사상의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다. 해방 이후의 발표작에서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분단 이후에는 표기법 변화도 도드라진다. 하지만 사상에 구애받지 않던 시기 백석은 세속적 기준에 맞춘 딱딱함을 벗어난 자유로운 감성을 담은 시나 낙원 같은 따듯함을 꿈꾸고 바란 듯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고야(古夜)> <오리 망아지 토끼> 등의 시를 통해서는 사랑받고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이 상상되어 따듯한 미소가 지어지고, <하답(夏沓)>과 같은 시를 통해서는 그가 어린 시절 어떻게 놀며 자랐는지가 그려지고, <선우사>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안동> 등의 시를 통해서는 젊은 날 그가 바라던 삶과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시들에는 감수성 짙은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시인의 좌절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더욱 이후 북에서의 백석의 시와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고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어미)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망아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나무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얹혀) 나는 산(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오리 망아지 토끼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작가 소개

저자 :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목차

‥ 서문

▷ 1부 사슴
- 1장 얼룩소 새끼의 영각
· 가즈랑집
· 여우난골족(族)
· 고방
· 모닥불
· 고야(古夜)
· 오리 망아지 토끼

- 2장 돌덜구의 물
· 초동일(初冬日)
· 하답(夏畓)
· 주막(酒幕)
· 적경(寂境)
· 미명계(未明界)
· 성외(城外)
· 추일산조(秋日山朝)
· 광원(曠原)
· 흰밤

- 3장 노루
· 청시(靑枾)
· 산(山)비
· 쓸쓸한 길
· 자류(柘榴)
· 머루밤
· 여승(女僧)
· 수라(修羅)
· 비
· 노루

- 4장 국수당 넘어
· 절간의 소 이야기
· 통영(統營)
· 오금덩이라는 곳
· 시기(?崎)의 바다
· 정주성(定州城)
· 창의문외(彰義門外)
· 정문촌(旌門村)
· 여우난골
· 삼방(三防)

▷ 2부 그 외 해방 이전의 시
· 산지(山地)
· 나와 지렝이
· 통영(統營) · 남행시초(南行詩抄)
· 오리
· 연자
· 황일(黃日)
· 탕약(湯藥)
·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 창원도(昌原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1
· 통영(統營) · 남행시초(南行詩抄) 2
· 고성가도(固城街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3
· 삼천포(三千浦) · 남행시초 4
· 함주시초(咸州詩抄)
· 북관(北關) ┃ 노루 ┃ 고사(古寺) ┃ 선우사(膳友辭) ┃ 산곡(山谷)
· 바다
· 추야일경(秋夜一景)
· 산중음(山中吟)
· 산숙(山宿) ┃ 향악(饗樂) ┃ 야반(夜半) ┃ 백화(白樺)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석양(夕陽)
· 고향(故鄕)
· 절망(絶望)
· 외갓집
· 개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물닭의 소리
· 삼호(三湖) ┃ 물계리(物界里) ┃ 대산동(大山洞) ┃ 남향(南鄕) ┃ 야우소회(夜雨小懷) ┃ 꼴두기
· 가무래기의 낙(樂)
· 멧새소리
· 박각시 오는 저녁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동뇨부(童尿賦)
· 안동(安東)
· 함남도안(咸南道安)
· 구장로(球場路) · 서행시초(西行詩抄) 1
· 북신(北新) · 서행시초(西行詩抄) 2
· 팔원(八院) · 서행시초(西行詩抄) 3
· 월림(月林)장 · 서행시초(西行詩抄) 4
· 목구(木具)
· 수박씨, 호박씨
· 북방(北方)에서 - 정현웅(鄭玄雄)에게
· 허준(許俊)
· 『호박꽃 초롱』 서시(序詩)
· 귀농(歸農)
· 국수
· 흰 바람벽이 있어
· 촌에서 온 아이
· 조당(?塘)에서
·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 당나귀

▷ 3부 해방 이후의 시
· 산(山)
· 적막강산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칠월(七月)백중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감자
· 계월향 사당
· 등고지
· 제3인공위성
· 이른 봄
· 공무려인숙
· 갓나물
· 공동식당
· 축복
·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돈사의 불
· 눈
· 전별
· 탑이 서는 거리
· 손’벽을 침은
· 돌아온 사람
· 석탄이 하는 말
· 강철 장수
· 사회주의 바다
· 조국의 바다여

◆ 백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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