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학의전당 시인선 262권. 등단 이후 자기만의 세계를 축조해온 진상록의 세 번째 시집. 고요함을 엿듣는 차분한 시인의 자세를 바탕으로 세계를 받아 적고 있는 담담하고 진솔한 어휘 구사와 구성에서 근래의 다른 시집에서 보기 어려웠던 서늘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란(作亂)’이란 어휘는 한국 현대시에서 매우 강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김수영의 ‘작란’은 김수영의 의미이고, 진상록의 ‘작란’은 진상록적인 의미를 함축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분노나 회한까지도 담담한 빛깔의 무늬로 재생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늘마저도 차갑지 않고, 햇살마저 뜨겁지 않다. 그렇게 시인만의 ‘소우주’를 빚어내게 된 것이다.
출판사 리뷰
담담하고 서늘한 온기로 다진 마음의 현장
‘작란作亂’의 재구성
2003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한 진상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담담하고 서늘한 온기로 다진 마음의 현장
등단 이후, 자기만의 세계를 축조해온 진상록 시인의 세 번째 시집에는 고요함을 엿듣는 차분한 시인의 자세를 바탕으로 세계를 받아 적고 있다.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읽어가는 장면 속에서 ‘서늘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근래의 다른 시집에서 보기 어려웠던 태도로 볼 수 있다. ‘작란(作亂)’이라는 단어에서 받아온 ‘착란’의 시간을 재구성하며 자라난 시인의 담담한 태도가 59편의 시편으로 엮인 셈이다.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을 간과하지 않고 섬세하게 다가서는 시인은 “자유로운 많은 것들은 허우적대는 삶을 감추고자/안으로/안으로 더/숨어들기 위해 아우성”(「거울」)인 것들을 채집하고, “가다 가다가 꼬깃꼬깃해진/마음 한 자락”(「길, 내가 가고자 하는」)을 힌트로 삼아 복잡한 마음의 터널을 건넌다. 이 여정을 함께 지켜보는 독자에게, 『내 마음속 작란』은 “오롯이 정박해도 좋을 섬 하나”(「조각배」)가 될 것이다.
진상록의 이번 시집『내 마음속 작란』은 ‘작란(作亂)’이라는 시어가 거느리고 있는 인식적 의미의 폭과 깊이가 주는 현대적 뉘앙스보다 그의 시작 태도로 의 담담함’, 즉 담담하고 진솔한 어휘 구사와 구성’이 보다 큰 특징으로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사실 모든 시는 선배, 즉 앞선 시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심지어는 의도하지 않은 구속(拘束)을 받게 마련이다. 표제가 들어 있는「집착에 대하여」만 봐도‘작란’이라는 어휘의 상징성 때문에 현대적 난해시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김수영의 초기시「孔子의 生活難」의 유명한 구절,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 때문에 ‘작란’이란 어휘는 한국 현대시에서 매우 강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강한 선배의 영향이란 뒤집어 말하면 후배 시인들에게 새로운 시어의 영역을 확장해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수영의 ‘작란’은 김수영의 의미이고, 진상록의 ‘작란’은 진상록적인 의미를 함축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또, 두 발 가지런히 모아 돌 건너다가는
물속에 내비친 그림자를
눈동자 안에 가둔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그림자 하나는
물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눈에서 일렁이고 있다
가야 할 길 서둘러 가는 물처럼
바삐 가는 세월 속에서
온몸 출렁 출렁이며
한 점에
나는 멈춰 서 있다
-「징검다리」부분
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지만, 일반화된 추상 개념으로서의 ‘생’이 아니라 구체적 실제로서 계기(繼起)로 작동하는 ‘생’을 비유하자면 ‘징검다리’만큼 적확한 어휘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용 작품은 전반부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는 방법을 기술하면서 시인이 건너왔던 과거의 형상이 아니라 자세를 암시하고 있다.
슬픈 일 보아도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검은 눈동자에
하얀 사막의 밭 넓혀 가는
-「자화상」부분
진상록 시인의 ‘담담함’이 서늘하게 빛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분노나 회한을 탈색(奪色)해 담담한 빛깔의 무늬로 재생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늘’마저도 차갑지 않고, 햇살마저 뜨겁지 않다. 그렇게 시인만의 ‘소우주’를 빚어내게 된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진상록
1971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2003년 《현대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흔들의자』 『삶, 그리고 모노그라피』가 있으며, 2004년 제2회 〈국제문학교류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제1부
억새풀 13 / 거울 14 / 풀잎의 상처는 아름다웠다 16 / 낙서 한 토막 17 / 길, 내가 가고자 하는 18 / 그루터기 20 / 맨가슴을 꼬집히다 22 / 곡예의 시간 24 / 집착에 대하여 26 / 열쇠 27 / 삶 28 / 바람에게 30 / 낡은 활자 32 / 넝쿨장미 34 / 시간을 지우는 지우개 36
제2부
자화상 39 / 무엇이 될 수 있을까 40 / 눈을 감고 42 / 소나기 46 / 불빛 48 / 징검다리 50 / 그림자 52 / 꽃망울 53 / 낙숫물 소리 54 / 빗방울이 마음을 노크하다 56 / 떨어진 마음을 밟고 길을 간다 58 / 햇살을 건져 올리다 60 / 익명인 62 / 조각배 64 / 폭우 내린 후 66
제3부
아름다운 슬픔 69 / 시간의 파피루스 70 / 밑줄 72 / 늦은 일기 74 / 눈물샘에 그리움이 찰랑거리다 76 / 만선 78 / 햇살을 수혈 받다 80 / 초록의 대화 82 /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84 / 나의 고독 86 / 그늘의 숨결 88 / 생을 그리는 동그라미 90 / 뽀드득, 뽀드득 92 / 눈 속의 샛강 94 / 고독의 잎사귀 96
제4부
빗방울 이야기 99 / 초록의 복병 100 / 눈부터 젖는다면 102 / 매미 103 / 편지 104 / 안부 106 / 바람의 편지 108 / 내 마음 안에서 110 / 아카시아 112 / 어떤 초대 114 / 詩가 돋는다 115 / 북소리 116 / 세월 118 / 하나의 낱말 120
해설 ‘담담함’의 서늘한 미학 121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