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현대시세계 시인선 78권. 한상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번 시집의 시들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빽빽한 마음을 풀어주는 여백의 언어들로 쓰였으며, 또 아득하니 벌어진 세상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스며들어 있다"고 박문구 소설가는 호평했다.
시는 성찰을 넘어서서 인간과 이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희망하는 언어이다. 시는 인간이 기억하는, 혹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의 층위를 탐사함으로써 인간이 본능적으로 희구하는 깨달음의 언저리를 슬며시 쳐다볼 수 있는 언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개인의 기억은 발화자의 개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식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우리는 누구나 한 개인의 기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의 기억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상철의 시는 이런 차원에서 의미있는 흔적들을 탐사하고 있다. 삶이라는 시간의 뭉텅이를 놓고 지금껏 경험해온 지혜의 문답들을 시 속에 살근살근 올려놓고 있다. 시인이 지각하는 인간의 삶은 '떨어질 동안만 완전한 물방울'처럼 찰나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짧은 시간의 감각은 하나의 비유이다.
출판사 리뷰
빽빽한 마음을 풀어주는 여백의 언어로 쓴 수채화 풍의 시편들
한상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늘어진 시간』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빽빽한 마음을 풀어주는 여백의 언어들로 쓰였으며, 또 아득하니 벌어진 세상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스며들어 있다”고 박문구 소설가는 호평했다.
시는 성찰을 넘어서서 인간과 이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희망하는 언어이다. 시는 인간이 기억하는, 혹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의 층위를 탐사함으로써 인간이 본능적으로 희구하는 깨달음의 언저리를 슬며시 쳐다볼 수 있는 언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개인의 기억은 발화자의 개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식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우리는 누구나 한 개인의 기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의 기억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상철의 시는 이런 차원에서 의미있는 흔적들을 탐사하고 있다. 삶이라는 시간의 뭉텅이를 놓고 지금껏 경험해온 지혜의 문답들을 시 속에 살근살근 올려놓고 있다. 시인이 지각하는 인간의 삶은 ‘떨어질 동안만 완전한 물방울’(「생」)처럼 찰나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짧은 시간의 감각은 하나의 비유이다.
한상철이 마련한 유한한 삶의 비유는 과거 공동체의 기억과 사물과 인간이 맞닿은 기억, 원초적 세계로의 여행, 그리고 신산(辛酸)한 삶의 순간을 되짚어보는 양상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상철에게 맞닥뜨려진 생은 “울며/ 깨진 사금파리 조각이나 찾아 헤매”(「생」)는 사소하고 무능하게 보이는 시간이다. 찾아 헤매는 대상은 겨우 흩어진 조각들에 불과하다. 우리의 삶은 이렇듯 한낱 조각난 편린들을 울며 찾아 헤매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한상철 시집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특징은 ‘부모와 형제에 대한 절박한 그리움’이다. 시 「생각」에서 “어제도 걸었는데 오늘도 걷는다/ 그만 걸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부모님 생각이 나 그냥 걷는다”고 한다. 시인은 무심히 걷다보면 어느새 부모님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먼저 간 형을 생각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꿈에 본 그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이 자주 그리워하는 이유는 세속의 관계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이 땅에서 함께 호흡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은 그리워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길’은 우리 삶을 되짚어보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는 시 「길」에서 길은 현실의 길일 뿐만 아니라 우주와 별까지도 이어져 있는 길일 것이다.
지금
저녁 노을빛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서다
붉은 빛 내린
참나무 밑둥의 깊게 패인 구멍과
오리나무 검은 수피의 울퉁불퉁한 혹들은
내 몸 어느 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검붉은 혹들과의 유사종
이제는 비무장으로도
나무 속에 섞이면 구분되지 않는
낡아버린 나이여
목구멍 깊숙이 들어온 붉은 빛을
꾸역꾸역 삼키면
온몸에 퍼지는 붉은 신열
툭하고 건들면 떨어질 것 같은
살짝만 밀어도 엎어질 것 같은
가늘어진 시간
번지 없는 주막
슬플 때면 그곳에서
어머니는 나를 향해 팔을 뻗었잖아요
그날은
나뭇가지 휘어지듯 팔을 뻗어
내 가슴을 안아왔지요
형이 왔구나 형이 왔구나 음력 사월 초이튿날
네 형이 일찍도 왔구나
어머니
형이 차마 뒤도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리로 갔어요
애들도 악기도 그냥 두고
‘눈이 내리네’ 악보는 악보대에 펼쳐둔 채로
오늘 보니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풀이 모두 말랐네요
그러지 마셔요 그러지 마셔요
아버지 좋아하시던 ‘번지 없는 주막’을 들려주고 싶어서
형이 급하게 그리로 갔을 거예요
오늘 밤 우리 별 하나 정해요
그곳에서 형에게 ‘번지 없는 주막’을 멋지게 불게 해요
악보 없어도 아버지 흥얼거리시던 걸
형이 다 외우고 있을 거예요
‘눈이 내리네’도 불게 해요
저도 그 노래가 꼭 듣고 싶어요
그럼 우리 오늘 밤 그 별에서 만나요
사는 법
남 욕하고 눈알 부라리며 살거나
동네 슈퍼 의자에서 밤낮없이 졸고 있거나
술에 절어 살거나
인생 절반 감방에 앉아 있거나
매일 돈 세며 살거나
하루 종일 둘이 부둥켜안고 뒹굴고 있거나
공사장에서 벽돌 쌓고 있거나
밭에서 풀 뽑으며 살거나
구원해달라고 몸부림치고 있거나
사이비 교주 노릇하거나
파고다 공원에서 박카스 팔거나
길거리 장기판 펼쳐놓고 남 등치고 있거나
사는 게 다 고만고만 하겠지?
혼자 있을 때 가끔 눈물도 흘리겠지?
갈 때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 많이 나겠지?
작가 소개
저자 : 한상철
대전 출생으로 25년째 강원도 치악산 아래 산다. 시집으로 『묻지말아요』, 『가난한 습성』 등이 있다.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다.
목차
제1부
지금·13
생·14
시(詩)·15
신세계 교향곡·16
독음(讀音)·18
꽃에 대하여·19
검은 기억·20
간격·22
뇌는 꿈꾼다·23
기차를 삼키다·24
외면·26
깊이 비치다·28
웃고 있네·29
그래서 어쩌라구·30
정선 아리랑·32
마음의 색·33
한밤중에·34
눈물·36
생 2·37
램브란트의 해부학 강의·38
코스모스·40
명태·41
제2부
어느 날·45
번지 없는 주막·46
생은·48
귀뚜라미·49
늙은 여인·50
강·51
봉선화 꽃 1·52
봉선화 꽃 2·53
사라지다·54
동굴·55
무당벌레·56
소나타·57
안개·58
봄비·60
정찰일지 6·61
정찰일지 7·62
정찰일지 8·64
정찰일지 9·65
정찰일지 10·66
기도의 필요성·68
원 위를 돌다가·70
슬픈 노래·72
제3부
말하자면·75
책상·76
어머니·77
나무의 부음·78
길·79
헛짓·80
사는 법·81
연플·82
실제 상황·83
프리즈터스 연구·84
수사의 방향·85
냇길·86
11월·87
패랭이·88
생각·89
그리운 이·90
형·91
기왓장 풀·92
훌륭한 국가·93
해설 가늘어진 시간과 인간에 대한 통찰/ 이재훈·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