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천황 암살을 시도한 혐의로 박열과 함께 구속된 가네코 후미코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쓴 옥중 수기. 사후 5년 되던 해인 1931년에 출간된 이 수기에는 가난과 학대 속에서 보낸 혹독한 어린 시절은 물론, 박열을 만나기까지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삶의 궤적을 담고 있으며, 무엇이 그녀를 아나키스트로 이끌었고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죽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 속에서 고통받던 그녀의 삶은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참혹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도쿄로 가서 신문팔이,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다.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사상적 기틀을 형성하게 되고, 고통받는 자신의 삶은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서 시작된 거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출판사 리뷰
영화 〈박열〉의 모티브가 된 감동 실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폭력적 이데올로기에 맞선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영화 〈박열〉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 한가운데로 들어온 가네코 후미코는 우리에게 그리 낯익은 이름은 아니었다. 그녀는 영화를 통해 독립운동가 박열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아나키스트로 재조명을 받았고, 그녀의 이름 앞에는 ‘조선을 사랑한 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 박열의 연인’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이런 수식어만으로는 치열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은 천황 암살을 시도한 혐의로 박열과 함께 구속된 가네코 후미코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쓴 옥중 수기이다. 사후 5년 되던 해인 1931년에 출간된 이 수기에는 가난과 학대 속에서 보낸 혹독한 어린 시절은 물론, 박열을 만나기까지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삶의 궤적을 담고 있으며, 무엇이 그녀를 아나키스트로 이끌었고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죽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전 생애를 풀어놓은 이 옥중 수기를 이런 글과 함께 지인에게 넘겼다.
“나 자신의 거짓 없는 삶의 고백이며, 어떤 면에서는 내 삶의 폭로이자 말살이다. 저주받은 내 삶 최후의 기록이고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걸작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나의 유일한 선물로서 이것을 드린다.”
그녀의 말처럼 이 옥중 수기는 거짓 없는 삶의 최후의 기록이자 고백이며 유일한 선물이다. 그리고 억압과 고난의 연속이던 삶에 굴복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정면으로 맞선 여성 혁명가의 저항이자 투쟁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조선에서의 7년이 널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래서 깨어 있는 거다.”
영화 〈박열〉에 나오는 대사처럼 조선에서 보낸 7년은 이후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옥중 수기에도 조선에서 보낸 7년의 생활이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양녀로 알고 간 조선의 고모 집에서 친할머니와 고모의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서러운 시절을 보냈고, 혹독한 삶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10대 시절을 보낸 조선에서 핍박받는 조선인들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했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은 훗날 사회의 모순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품는 계기가 되었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 속에서 고통받던 그녀의 삶은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참혹했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도쿄로 가서 신문팔이,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다.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을 만나 사상적 기틀을 형성하게 되고, 고통받는 자신의 삶은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서 시작된 거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작가 소개
저자 : 가네코 후미코
1903년 일본 야마나시 현 요코하마 시에서 태어난다. 부모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여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한 가네코 후미코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12년부터 7년 동안 충북 청원 부강리의 고모 집에서 온갖 학대 속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부강고등소학교를 졸업한다.1919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가네코 후미코는 1920년에 도쿄로 나와 신문팔이, 가루비누 행상,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며 고학을 한다. 그 사이에 조선 유학생과 일본인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 등과 교류하며 사회주의에 눈을 뜬다. 그리고 여러 사상을 공부하고, 특히 슈티르너, 니체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연히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1922년 초부터 박열과 교제를 한다. 박열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1922년 봄부터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흑도회의 기관지 『흑도』(1, 2호)를 발간하고, 아나키스 단체 흑우회를 결성하며, 또한 『후데이센징』(1~4호)을 발간하고, 대중 단체 불령사를 조직하는 등 아나키스트 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간토대지진 발생으로 1923년 9월 3일 검속된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은 10월 20일 불령사 동인 16명과 함께 기소된다. 그후 폭탄 입수 계획이 드러나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대심원으로 넘겨져, 1926년 3월 25일 사형선고를 받는다. 열흘 뒤 '은사'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가네코 후미코는 7월 23일 옥중에서 죽는다. 1926년 11월 5일 가네코 후미코의 유골은 박열의 선영에 안장되고, 2003년 11월 가네코 후미코의 묘를 박열의 생가 뒤편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 옆으로 이장한다.가네코 후미코 여사는 현재 그의 영원한 동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었던 박열을 기념하는 박열의사기념관 옆의 양지바른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목차
서문_잊을 수 없는 모습
편집에 대한 나의 바람
수기의 첫머리에
아버지
어머니
고바야시의 고향
어머니의 친정
새로운 집
부강
이와시타 집안
조선에서의 내 생활
마을로 돌아오다
호랑이 굴로
성의 소용돌이
아버지여, 안녕
도쿄로!
작은외할아버지 집
신문팔이
노점상인
식모살이
거리의 방랑자
일! 나 자신의 일!
수기를 쓴 후에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