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모두 한꺼번에 이해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김병호 시인의 혼문집(混文集) <초능력 시인>이 2018년 2월 28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김병호 시인은 1967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 <포이톨로기> <밍글맹글>이 있고, 과학에세이집으로 <과학인문학>이, 장편소설로 <폴픽 Polar Fix Project>가 있다. 이 소설로 2017년 SF 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했다.
<초능력 시인>은 재밌다. 정말이지 책을 읽는 한나절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다. 분명 표지를 만지작거릴 때는 나른한 점심 무렵이었는데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단 한 가지다. 조금 더 길었으면 싶다는 것! 그런데 다행히도 이 책은 저녁을 먹고 좀 뒹굴다 보면 괜히 다시 뒤적거리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하나는 이 책의 정체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다. 아니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다. 아니 실은 소설이 아닌 듯도 하고 에세이가 아닌 듯도 하다. 분명 인물도 있고 내러티브도 있고 사건도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나’와 ‘초능력 시인’은 저자인 김병호 시인과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이거나 회고담인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풀어쓴 글도 아니다. 더구나 이 책에는 틈틈이 시와 소설 그리고 (과학)동화가 끼여 있는데, 그 시와 소설과 동화는 진짜 시이고 소설이고 동화다(저자는 이 책 속의 시를 모두 자신이 실제로 펴낸 시집 속에 싣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 책을 두고 ‘혼종적’이라고 말하는 일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렇게 명명한다고 해서 이 책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뭐랄까, 다만 혼문(混文)이다. 혼문인 <초능력 시인>은 오롯이 ‘초능력 시인’과 ‘시’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시인 혹은 시에 대해서보다 물리학이나 수학, 천문학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분명 ‘시인’과 ‘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인데 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초끈 이론은 우주에 11개의 차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 3차원까지는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배경이고 4번째 차원도 알고는 있지. 물론 수학적인 전개이지만 우리 앞에 놓인 1들은 더 높은 차원에서 움직이는 복합체들이 우리 차원으로 드리운 그림자야. 중력처럼. 중력이 다른 힘에 비해 그렇게 약한 이유는 다른 차원의 복잡한 힘이 낮은 차원으로 드리운 그림자이기 때문이야. 차원이 낮아지면서 단순화되는 거야. 수학은 추상이지? 추상은 뭔가 상징하는 거야. 우리가 제대로 된 적분 기계를 가지고 있다면, 아, 수학에서 말하는 그 적분 맞아. 미분 반대 적분! 그래서 1을 적분 기계로 차원을 넘어 적분한다면 다른 차원에서 가진 본체를 확인할 수 있어. 너를 너로 나눈 1과 우주를 우주로 나누어 나온 1은 다르다는 거지.” 이것은 <초능력 시인>에 실린 저자 김병호 시인의 실제 시 ?불륜의 아침?의 보완이면서 동시에 ‘1’에 대한 수학적 질문이며 또한 실존과 존재에 관한 물리학적 접근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모든 이야기들은 “존재의 그림자가 지나간 흔들림”을 직파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가 자란다. 이것이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만드는 두 번째 이유다. 요컨대 이 책은 시인과 시를 말하되 시인과 시에 대해 말하지 않고 물리학과 수학과 천문학을 말한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불현듯 시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리송한 채로. 마치 시가 그러하듯이.
이 책에 대한 진솔한 독후감은 이미 책 속에 쓰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한 형상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처럼 움직이면서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형상들은 여럿이었다. 아주 많았다. 그런데 모두 한꺼번에 이해되었다. 누군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주 빠르기도 하고 영원처럼 느리기도 했다.”

“비밀이라고 해서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은 아니야. 평행 우주라고 알지?”
이건 또 무슨 자다 일어나 삼겹살 굽는 소리인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말이야. 페이스트리 빵 안에 있는 겹들처럼 여러 겹이야. 아니 수많은 세계가 겹겹으로 존재하지.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겹 속에 살고 있는 거야.”
“내가 종이처럼 얇다고? 자네 인품이 얇은 게 아니고?”
“은유야.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 시공간을 생각하기 쉽게 2차원 평면이라고 가정하는 은유야. 하여간 우리는 이런 세계 사이를 옮겨 다닐 수 있어. 초능력이지.”
비밀 어쩌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얘기를 듣던 주인아주머니는 뭔 시답잖은 소리냐는 듯 파리채를 휘두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세계에 가는 능력, 이 초능력은 나만 가진 건 아니야. 그 중요한 동력은 바로 예술이야. 예술은 그 자체로 다른 우주를 다녀올 수 있는 티켓이야.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어떤 그림에 푹 빠질 때, 어떤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쥐고 흔들 때. 우리는 단순히 감동하는 게 아니야. 그 예술과 진동수가 맞아 공명하는 거야. 폭염이 쏟아지는 늦여름의 공간에서 첫 번째 가을바람을 알아보는 일과 비슷해. 그 멍한 순간 바로 다른 우주,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거야.”
맛있는 벌레를 잡아먹은 개구리가 눈을 끔벅이며 입안 이리저리로 혀를 굴려 뒷맛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그랬다.
“기억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첫사랑의 대문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지? 죽은 고모의 손을 잡고 익숙한 골목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경험은? 어느 행성인지 모를 곳에서 핏물처럼 고이는 노을을 혼자 온전히 감당했던 적 있지? 아니면 말고.”
뭐라고 따지기 힘들었다. 현대 우주론을 빌려와 만든 개똥철학 같지만 일일이 따지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아니 부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예술에 푹 빠져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우리는 정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거야. 생각해 봐. 고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층에 내릴 수 있잖아. 예술은 엘리베이터 같은 거야. 다른 세계에 내릴 수 있는, 이곳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세계 말이야.”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집중하려 노력했다. 취중에 듣기에 뭔가 있는 얘기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음악이 가장 강력해. 소리는 공격적이잖아. 시각예술은 눈을 뜨면 보이기는 해도 집중이 필요하고, 활자는 더욱이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음악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바로 압도해 들어오거든. 눈을 감고 베토벤을 들어 봐. 그리고 다른 세계에 가 봐.”
더 생각해 보니 하나의 현상을 그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좋아. 그렇다 치고, 그럼 네가 가 보았던 세계들이 단지 감동으로 느끼는 환상이 아니라 진짜 세계인지 어떻게 증명하지?”
“진짜? 진짜 세계가 뭐지? 네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진짜인가? 모두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자극이라는 신호를 받고 해석해서 뇌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패턴들일 뿐이야. 이 소주병은 진짜라고 확신해? 활성 상태의 뉴런들이 그리는 패턴이 같으면 같은 거야. 네가 소주병을 만질 때 발생하는 패턴과 똑같은 패턴만 만든다면 소주병 없이도 너는 똑같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되지. 그러면 같은 거야. 지금 우리 바깥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 현실이 뭐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이 뭐지? 모두 뇌 속에 그려지는 그림, 그러니까 패턴들 이상도 이하도 아냐. 우리는 진짜라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실재하는 세계라고 말하기 전에 그냥 세계라고 불러야지. 비밀로 치면 어마어마한 비밀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