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고故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가 걷는사람 복간본 시리즈 '다;시'를 통해 발간되었다. 2018년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은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의 근간이 되는 것은 '훼손된 몸'에 대한 인식이다. 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죽음'의 상상력은 마멸되어 가는 '몸'에 대한 치열한 자의식의 산물이다. 존재의 유한성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의지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 박서영 시인의 시편들이다.
시인은 자아와 세계, 삶과 죽음, 몸과 정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통해 훼손된 몸이 가야 할 길을 찾는다. 그래서 결국 닿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시인은 죽음을 막연한 관념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인 몸의 문제로 재현한다.
출판사 리뷰
고故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가 걷는사람 복간본 시리즈 ‘다;시’를 통해 발간되었다. 2018년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은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의 근간이 되는 것은 ‘훼손된 몸’에 대한 인식이다. 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죽음'의 상상력은 마멸되어 가는 '몸'에 대한 치열한 자의식의 산물이다. 존재의 유한성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의지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 박서영 시인의 시편들이다.
시인은 자아와 세계, 삶과 죽음, 몸과 정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통해 훼손된 몸이 가야 할 길을 찾는다. 그래서 결국 닿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시인은 죽음을 막연한 관념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인 몸의 문제로 재현한다. '무덤 박물관에서'라는 부제를 단 연작시편들에서는 죽음이야말로 삶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인식의 귀착점이라고 믿는 시인의 의식의 엿볼 수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까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 「무덤 박물관 가는 길」 부분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에 시인은 “플러그”를 “점화”한다.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땅의 배꼽”은 화자에게 환한 무덤의 내부를 보여준다. 육체의 죽음은 새로운 재생의 몸으로 환원된다. 즉 폐허의 육체는 죽음을 낳고, 다시금 죽은 육체는 환한 기억으로 재생된다. 죽음을 통해 생성된 기억은 그 어떤 생의 순간보다도 환하게 빛난다. 이는 죽음이 폐쇄되고 고립된 세계가 아니라 환한 ‘열림’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강경희 문학평론가)
오전 여덟 시 상가를 지나친다
동네 입구의 전봇대에는 하얀 종이에
반듯하게 씌어진 상가喪家→가 붙어 있다
이 길로 가면 상가로 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문상 가는 중이 아니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이 표식을 따라왔다
울면서도 왔고 졸면서도 왔다
사랑하면서도 왔고 아프면서도 왔다
와보니 또 가야 하고 하염없이 가야 하고
문상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문상 간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삶이 무덤 속에 누워
꺼억꺼억 운다
- 「죽음의 강습소」 부분
박서영 시인에게 삶은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문상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문상 간다”라는 문장처럼 삶은 가는 줄도 모르는 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시인의 선택과 무관하지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이다.
강경희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박서영은 자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죽음’의 문제에 몰입한다.”면서 “그런데 때로는 이 죽음이 너무 환하다. 삶보다 밝은 죽음에 경도하는 시인의 눈이 죽음의 빛에 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시인은 너무 일찍 죽음의 빛에 눈이 멀어버린 것 같다. 새롭게 발간되는 고故 박서영 시인의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를 통해 그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서영
199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이 있다.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 2월 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목차
1부
숫눈
빈집
새 발자국 화석
경첩에 관하여
점자책
알전구 속의 풀밭
견인차에 시계가 매달려 있다
물탱크 청소
식물의 눈동자
해변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비누
피아노 주치의를 위한 시詩
왜가리
폭우 속에서
슬리퍼 한 짝
저녁밥 생각
마라토너
귀
어디든 간다
죽음의 강습소
뿔 위의 모자
중이염
어머니의 틀니
부부夫婦
송이버섯
숯
2부
무덤 박물관 가는 길
문상
숨 쉬는 집
밤
광인
구산동 고분군 가는 길
그대의 유품
지도
무덤 밖의 지도
토우
봄의 환幻
혼자서는 무덤도 두려운 내부다
풀을 베다
새
네트워크는 어디든 있다
바람 궁전
노출 전시관에서
너에게 가는 길
무덤 속으로의 긴 산책에 대하여
수로왕릉 가는 길
월도月刀
파사석탑을 보며
가락국에서 쓰는 편지
3부
얼음 위의 맨발들
우물
허물
마음이라는 표범 한 마리
새의 부족
낯선 평화
모서리를 향해 걸어가는 삶이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왕따
밤길
봄,봄,봄
죽은 양羊에게
정승골 계곡에서 죽은 양羊을 위한 습작
양羊, 혹은
상실
해설
무덤 속에서 피어난 몸 / 강경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