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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묻다
시와서 | 부모님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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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시와서 산문선 시리즈 첫 번째 선집. 일본의 저명한 근대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을 역자가 직접 선별하고 번역한 산문선이다. 근대 작가들의 글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슴에 와닿는 소중한 글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선집을 기획했다.

이번 첫 선집에는 크게 '추억', '인생', '그리움'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총 30편의 작품을 실었다. 가족, 친구, 스승 등 그리운 이들에 대한 작가들의 추억과 아련한 옛 기억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진솔하게 돌아보는 작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된다.

  출판사 리뷰

일본 유명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 선집

시와서 산문선 시리즈 첫 번째 선집


수많은 글이 넘치는 시대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좋은 글들 또한 많이 있다. <꽃을 묻다>는 그중에서도 일본의 저명한 근대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을 역자가 직접 선별하고 번역한 산문선이다. 근대 작가들의 글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슴에 와닿는 소중한 글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선집을 기획했다.

이번 첫 선집에는 크게 ‘추억’, ‘인생’, ‘그리움’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총 30편의 작품을 실었다. 가족, 친구, 스승 등 그리운 이들에 대한 작가들의 추억과 아련한 옛 기억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진솔하게 돌아보는 작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된다.

수필은 소설과는 달리 흥미진진하거나 드라마틱하지는 않더라도 진솔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글이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서 뜻밖의 재미를 느낀다. 겹겹의 세월과 함께 쌓인 삶의 경험에서 배움을 얻는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겪고 느낀 것들은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한 수필은 주로 문장의 힘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인 만큼, 작가의 진정한 문장력이 드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본 근대 작가들의 소설은 많이 소개되었지만 수필은 비교적 덜 알려진 것이 아쉬웠던 참에, 좋은 수필들을 모아 선집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글들을 모은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글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선별하여 번역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이름난 문호들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까지 수많은 작품을 어디서부터 어떤 기준으로 골라 읽어야 할지,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선집의 테마를 몇 가지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작품을 골라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그 작가의 또 다른 글들을 찾아서 읽었고, 가지치기하듯 작품을 고르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추억’, ‘인생’, ‘그리움’이라는 세 가지의 테마를 중심으로 총 30편의 작품을 골라 선집을 엮게 되었다. 각 작품 말미에는 작가 소개와 함께,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으면 간단하게 덧붙였다.

글을 읽다보면, 작가들의 가슴속에 아련하게 남은 아름다운 기억들,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단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작가들의 옛 추억과 지나온 삶이 담긴 글들을 읽으면서, 문장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문학적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놀이에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 요즘 아이들도 아직 그런 놀이를 할까.

나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면, 등불 아래에 쓰루가 감춘 꽃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았다. 그곳에 달려가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의 희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_ 니이미 난키치 <꽃을 묻다> 중에서

나는 바보와 거지가 세상에서 가장 싫고 창피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학교에 가서 쓰게 될 글자가 아무래도 써지지 않는다. 글자를 못 쓰는 건 분명 바보일 거야. 나도 그런 바보였어, 그런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_ 미야모토 유리코 <운모편암>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나쓰메 소세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작가.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학자와 작가로서 존경받았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본의 노벨문학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칭송받는다. ‘일본의 근대 격동기’인 메이지 시대(1868~1912)와 거의 생애가 겹쳐서, 그의 사상을 곧 ‘메이지 정신’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즉, 메이지 시대는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전통적 가치(윤리,정의,공동체)가 서구의 가치(돈,성공,개인주의)에 무너지며 혼란했는데, 소세키는 영문학자로서 ‘내가 열심일수록 사회가 정의롭지 않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와 고민이 깊었고, 결국 그로 인한 지병(위궤양과 신경쇠약)에 평생 시달리다가 49세(1916)에 내출혈로 사망했다.1867년 2월 9일 도쿄에서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 ‘소세키’라는 필명은 22세(1889)에 친구 마사오카 시키의 한시 문집에 평을 쓰면서 처음 사용했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33세(1900)에 국비유학생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영문학 하는 일본인으로서 서구 문화를 사랑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신경쇠약이 심해져서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 후에도 생계를 위해 영문학을 강의해야 했기에 신경증이 악화되었는데, 다카하마 교시가 ‘기분 전환 삼아 소설을 써보라’ 권유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를 썼다. 이것이 뜻밖에 큰 호응을 얻자 38세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1906), 《태풍》(1907) 등을 연이어 발표, 40세(1907)에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소설 쓰는 전속작가로 입사해서 《산시로》(1908), 《그 후》(1909), 《마음》(1914) 등을 썼다.

지은이 : 니이미 난키치
1913년 아이치현 한다시에서 태어났다. 4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8살 때 외가에 양자로 들어갔다. 한다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문학에 흥미를 갖고 동화나 시를 문학잡지 등에 투고하는 한편 이와나메에서 임시교사를 하면서 창작을 계속했다. 1931년에는 문예동화잡지 《붉은 새》에 동요 ‘창’이 실리는 것을 계기로 잇달아 작품이 채택되었다. 그 후 도쿄외국어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고향의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결핵이 악화되어 1943년 29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금빛여우>로 대표되는 110여 편의 동화와 60편의 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하이쿠와 시를 남겼다. 그가 짧은 생애 속에서 실존을 걸고 추구했던 ‘생명체들 사이의, 그러나 차원을 달리한 영혼들의 소통과 공명’이라는 문제의식은 생태계 파괴와 일상적인 폭력을 초래하는 현대인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은이 :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북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 1936년 창작집 《만년》으로 문단에 등장하여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사양》은 전후 사상적 공허함에 빠진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1948년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인간 실격》을 완성하고, 그해 서른아홉의 나이에 연인과 함께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영화화되는 등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은이 : 시마자키 도손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나가노현(長野縣) 신슈(信州)의 기소(木曾)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에도(江戶)와 교토(京都)를 잇는 교통 요충지 기소에서 대대로 숙박업과 도매업을 운영하는 그 지역 유지이자 촌장을 지낸 유서 깊은 집안이다. 국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효경≫이나 ≪논어≫ 등을 읽어 한학적 소양이 잡혔다. 집안은 메이지유신 직후 몰락하고, 열 살이 되던 1881년 봄, 문명의 도시 도쿄로 상경한 도손은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한 메이지학원은 기독교 학교로 교사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나 바이런, 워즈워스 등 서양 문학에 심취하는 한편,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나 사이교(西行) 등 일본 문학도 섭렵하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졸업하던 해에 메이지여학교 교사가 됐다. 이듬해, 시인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와 함께 잡지≪문학계≫를 창간해 동인으로 극시와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가로 나섰다. 도코쿠의 자살 그리고 여학교 제자이자 첫사랑 사토 스케코(佐藤輔子)의 병사(病死)에 충격을 받은 도손은 1896년 도쿄를 떠나 센다이 도호쿠학원 교사가 됐다. 센다이의 자연을 벗 삼아 시 창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와카(和歌)나 하이쿠(徘句) 외에 일본어로 새로운 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신체시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경멸 대상이었던 까닭에 도손은 숨어서 ≪새싹집≫을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싹집≫은 근대인의 감정과 사고를 대변하는 일본 근대시의 모태가 됐다. 이후 ≪일엽편주≫, ≪여름풀≫을 잇달아 발표해 메이지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1897년 도쿄로 돌아온 도손은 일본어 시의 한계와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1899년 신슈 고모로의숙 교사가 됐다. 고모로에서 하타 후유코와 결혼해 딸 셋을 키우며 산촌 지방의 낯섦과 현실적 생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1901년 마지막 시집 ≪낙매집≫을 끝으로 ‘시에서 산문’으로 전향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학 양식의 탐색은 외국의 단편 작가, 극작가, 국내외 인상파 화가로 집중된다.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이나 다윈의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자연과학적 관찰을 배양하는 한편,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에서 회화를 보는 듯한 신비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화가와 친밀했던 체호프나 모파상의 작품에 나타난 인상의 ‘청신함’과 ‘단순함’을 통해 인간의 심리 해부에 주목하게 된다. 시대 분위기 역시 문학과 회화, 즉 글과 삽화, 장정의 접목이 활발했고 일본 예술계에서 인상주의 영향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조류에 발맞춰 도손은 같은 시기에 부임한 미술 교사이자 시슬레에게 사사한 수채화가 미야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생(寫生)을 배워 사생문을 성공시킨 것이 ≪지쿠마 강 스케치≫다. 훗날 자신의 산문은 ‘이 스케치로부터 출발했다’[≪선집(選集)≫ 상권 서(序)]고 말한 바 있다. 고모로에서 7년 남짓 생활하는 동안, 러일전쟁을 비롯해 딸 셋이 죽고 부인마저 야맹증에 걸리는 등 가혹한 시련을 겪으며 죽을 각오로 쓴 작품이 장편 소설 ≪파계≫(1906)다. 일본 문단을 새롭게 장식한 이 작품을 계기로 도손은 자연주의 소설가로 인정받게 됐다. 곧바로 장편 소설 ≪봄≫(1908)과 ≪집≫(1910)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후 ≪신생≫(1918)은 넷째 류코(柳子)의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조카딸 고마코와의 불륜을 소재로 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만년의 ≪동트기 전≫(1932)은 1853년부터 1886년까지의 사회 변천사를 그린 작품으로, 교토와 에도를 잇는 기소 가도(街道)를 중심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역사 소설이다. 그리고 1936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한 여행기 ≪순례≫(1940)가 있다. 마지막으로 1943년 8월 22일 미완성 작품 ≪동방의 문≫을 쓰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시원한 바람이구나”라는 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말년에 살았던 오이소(大磯) 해변의 지후쿠사(地福寺)에 안치되었고 유해 일부는 고향 마고메(馬こ) 에이쇼사(永昌寺)에 있는 가족 묘지에 분장되었다. 도손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시대적으로는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를 거치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겪어 낸 굴곡 많은 삶이었던 만큼, 도손은 시와 수필, 소설, 동화 등 장르를 초월해 진정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일본 근대 문학가다.

지은이 : 하기와라 사쿠타로
1886년 11월에 군마 현 마에바시 시에서 태어났다. 마에바시 중학교 때부터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인 ≪명성(明星)≫에 단가(短歌)를 투고하는 등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을 떠나 타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몇 번의 낙제를 거듭한 후 귀향해 1913년경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개시했다. 그 후로 수도 도쿄(東京)와 고향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시작에 전념해 1917년, 처녀 시집 ≪달 보고 짖는다≫를 간행했다. 이 시집에서 근대인들의 고독감과 신경 쇠약, 우울증을 구어체(口語體)로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와 함께 ‘일본 근대 시의 완성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1923년에 두 번째 시집 ≪우울한 고양이≫를 출판한다. 이 시집에서는 우울함과 무료함, 권태로움을 ‘우울한 고양이 스타일’이라 불리는 독특한 시 형식으로 표현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염세적 허무 의식과 관능적이며 퇴폐적인 시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발간한 ≪순정 소곡집≫은 단가에서 시로 옮길 때의 작품인 ‘애련(愛憐) 시편’과 3...0대 후반에 발표한 ‘향토망경(鄕土望景)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에는 소년 시절의 순수한 감상과 영탄이, 후자에는 도쿄에서 바라본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과 비속한 인생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있다. 1934년에 출판된 마지막 시집 ≪얼음 섬≫에서는 고향을 상실한 영원한 방랑자로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적요(寂寥)와 격정’을 담은 ‘절규’를 비분강개의 한문 번역 투의 문어체로 표현했다. 그 밖에 아포리즘을 모은 책 ≪새로운 욕망≫(1922), 시론집 ≪시의 원리≫(1928), 수필집 ≪일본으로 회귀≫(1938), 산문시집 ≪숙명≫(1939) 등이 있다. 1942년 3월 사망.

지은이 : 사토 하루오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 와카야마(和歌山) 현 출신. 1910년 게이오의숙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 1911년 대역사건에 연루된 오이시 세노스케(大石誠之助)를 노래한 시 『우자의 죽음』 (1911)을 시작으로 서정시 『한숨』 (1913)을 발표하는 등, 시재(詩才)에 재능을 발휘했다. 1913년 퇴학 후 메르헨풍의 환상적인 단편소설 『스페인개의 집』,전원생활의 심상풍경을 예리한 신경과 청춘의 불안으로 묘사한 『병든 장미』 (『전원의 우울』 제1고) 등으로 신진작가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처녀시집 『순정시집』,소설 『도시의 우울』, 『여계선기담』,평론.수필집 『따분한 읽을 거리』 등 다채로운 영역에서 활약했다. 1948년 예술원회원, 1960년 문화훈장을 받았고 1964년 5월 자택에서 방송용 자서전 녹음 도중 사망하였다. 20세기 전반 일본의 전통적 ·고전적 서정시의 제1인자로 평가된다.

지은이 : 김사량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 <빛 속에>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수상식에 참석한 김사량은 조선의 작가로서 민족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민족의 현실을 진솔하게 써 나가겠다고 다짐한다.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답답한 것이었고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노마만리≫를 보면 망명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에게 ‘노마만리’는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여 창작의 자율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항일 투쟁에 동참하는 길이었다.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 본부 선발대로 귀국한 그는 북한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펼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전선에 나섰다.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김사량은 남북한의 문학사에서 그리고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작가다.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는 그가 아쿠타가와상 후보 작가에 오르면서 재일 조선인 작가로서 명망을 얻은 만큼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남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식민지 말기 이중언어의 글쓰기, 또는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 논의되었다. 북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1950년대 초반 연안파의 숙청과 함께 그 이름이 사라졌다가 1987년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그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활약한 양심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지은이 : 마사오카 시키
1867년 음력 9월 17일 마쓰야마(松山)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네노리(常規)였으며, 술을 많이 마셨던 아버지를 다섯 살 되던 해 여의고 세 살 아래인 여동생 리쓰(律)와 함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헤이지 모노가타리(平治物語)≫, ≪삼국지≫ 등 전쟁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시키는 사춘기에 들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유 민권 운동에 귀를 기울이며, 15세 때는 교내뿐만 아니라 청년 연설회에서 ‘자유’에 대해 연설하기도 한다. 정치열에 들떠 공부도 등한히 하게 된 시키는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에 도쿄의 외무성에서 근무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그 허락으로 16세에는 꿈에 그리던 도쿄로 올라온다. 그 이듬해 1884년부터 옛 번주(藩主)의 육영 단체인 도키와카이(常盤會)의 급비생이 되어 공부하면서 도쿄대학 예비문에 합격, 이해에 수필 <붓 가는 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도쿄대학 예비문은 2년 후 1886년에 제일고등중학교로 재편되었는데 이곳에서 시키는 동갑내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만난다. 1889년 2월, 시키가 각종 문예 형식으로 집필한 7편을 ≪칠초집(七草集)≫ 한 권으로 묶어 비평을 부탁했을 때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는 크게 칭찬하며 ‘소세키(漱石)’라는 필명으로 서명했고, 마사오카 쓰네노리(正岡常規)는 9월에 소세키의 기행·한시문집 ≪목설록(木屑錄)≫을 비평해 주었을 때 ‘시키(子規)’라는 필명을 쓴다. 시키는 이해 5월에 일주일 정도 객혈을 계속한 후, 이제부터 울며 피를 토한다는 두견새[子規]를 필명으로 하자고 결심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듬해 9월 시키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에, 소세키는 같은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시키는 다시 철학과에서 국문과로 전과해 하이카이(俳諧) 분류에 착수한다. 1892년 25세 되던 해 11월, 어머니와 여동생을 도쿄로 불러 함께 지내며 12월 1일부터 일본신문사에 입사해 하이쿠 시평(俳句時評)을 담당한다. 대학은 그 이듬해 3월 정식으로 그만둔다. 시키의 네기시 전셋집은 ‘시키암(子規庵)’ ‘네기시암(根岸庵)’이라 불리며 하이쿠와 단카 제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문예를 담론하던 ‘문학 살롱’ 구실을 했다. 시키는 ≪일본≫이 폐간되고 발간한 ≪소일본(小日本)≫의 삽화가로 일하게 된 나카무라 후세쓰(中村不折)와 만나 자연의 실경(實景)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예술적 지향이 된 ‘사생(寫生)’에 눈을 뜨게 된다. 27세 가을 무렵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 유능한 신문기자는 모두 종군 기사를 써서 인기를 떨치고 있을 때 시키도 간절히 원했던 종군이 허락되어 1895년 3월 중국으로 떠나 요동반도의 서쪽 금주(金州)·여순(旅順) 등에서 1개월 정도 머문다. 그때 육군 군의 부장으로 종군하고 있던 모리 오가이(森鷗外)를 매일같이 방문하기도 한다. 전쟁은 곧 끝나고 5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지병인 폐결핵이 재발해 고베(神戶)에 도착하자 병원에 입원한다. 8월 고향 마쓰야마에 돌아가 마쓰야마중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소세키의 하숙에서 동거하다가 11월에 도쿄로 돌아온다. 1896년 29세부터는 결핵균이 척추로 옮아가 보행이 불편해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하이쿠 혁신이 문단에서도 인정받아 이해 1월 3일, 시키암(子規庵)에서 열린 하이쿠 짓기 모임에는 오가이와 소세키도 교시(虛子), 헤키고토(碧梧桐) 등과 함께 참석한다. 4월부터 12월에 걸쳐 수필 <송라옥액(松蘿玉液)>을 신문 ≪일본(日本)≫에 연재한다. 병세가 악화하는데도 시키는 해를 거듭하며 <하이진 부손(俳人蕪村)>을 비롯해 <가인에게 보내는 글(歌よみに?ふる書)>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단카 혁신에도 힘을 쏟는다. 1898년 3월에는 최초의 단카 모임인 가회(歌會)를 시키암에서 개최했으며, 하이쿠 전문 잡지인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 두견새)≫를 도쿄에서 발간, 시키의 주재(主宰)로 교시가 편집을 담당하도록 한다. 이해까지는 인력거를 타고 수차례 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병세는 더욱 악화해 누워 지내는 나날 속에 1899년 3월에는 ‘네기시 단카회’가 정식으로 발족한다. 이해 가을부터 시키는 나카무라 후세쓰가 쓰던 그림물감을 건네받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시키는 자신의 생존 기간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1901년 1월부터 7월에 걸쳐서는 <묵즙일적(墨汁一滴)>을 연재하고 9월부터는 병상 일지와 다름없는 <앙와만록>을 쓰기 시작한다. 1902년 1월부터는 병세가 더욱 급격히 악화해 문하생들이 교대로 간호하며, 원고는 구술로 집필된다. 5월 5일 <병상육척(病牀六尺)>을 연재하기 시작해 9월 17일 127회로 이승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계속한다. 그사이 6월 27일부터 8월 6일에 걸쳐서는 갖가지 과실을 그린 ≪과일첩≫을, 8월 1일부터 8월 20일 <나팔꽃>을 마지막으로 그린 ≪화초첩≫도 완성하고 있다.9월 18일 오전, 어머니는 의사를 부르러 가고, 구가 가쓰난 부부, 헤키고토, 여동생 리쓰가 둘러앉아 머리맡을 지키는 가운데 마지막 힘을 다해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절필 3구(句)를 쓰고 나서는 곧 혼수상태에 들어간 채로 이튿날 9월 19일 새벽 1시에 영원히 숨을 거둔다. 만 35년의 생애였다.

지은이 : 나카지마 아쓰시
소설가. 도쿄에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생 때 세 번이나 전학을 가야 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인해 두 명의 계모와 지냈다. 1920년 조선(당시 경성부)으로 이사하여용산소학교, 경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으로 귀국한 뒤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순사가 있는 풍경」 「호랑이 사냥」을 집필했다. 도쿄제국대학(현재 도쿄 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1934년부터 천식 발작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1941년 6월 팔라우 남양청에 부임했다. 이해에 그의 대표작인 「산월기」 「문자 사변」 「빛과 바람과 꿈」 등을 썼다. 1942년 3월 잠시 귀국했다가 천식이 악화되어그대로 도쿄에서 치료를 받는다. 7월에 그의 첫 소설집 『빛과 바람과 꿈』이 출판되고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른다. 이후 전업 작가로 살았지만 병이 악화되며 같은 해 12월, 34세의 젊은나이로 사망한다. 1948년 지쿠마쇼보에서 『나카지마 아쓰시 전집』(3권)이 간행되어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산월기」가 실렸다.

지은이 : 호리 다쓰오
일본의 소설가이자 시인. 1904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열아홉 살부터 폐결핵을 앓았다. 1925년 도쿄제국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해 나카노 시게하루와 동인지 〈로바〉를 창간했으며, 졸업 후 1930년 《성가족》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나가노 현 가루이자와의 요양소에서 약혼녀를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이 분다》를 집필하였다. 《바람이 분다》를 통해 순수한 사랑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며, 이후 《아름다운 마을》, 《하루살이의 일기》, 《나오코》 등의 대표 작품을 남겼다. 1953년, 폐결핵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도쿄(東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축산업을 했고 생후 7개월쯤 어머니가 정신 장애를 일으키자 어머니의 친가인 외삼촌 부부에게 맡겨진다. 결국 어머니는 33세의 나이로 그가 10세 때에 죽는다.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중학생이 된 아쿠타가와는 동급생들과 회람잡지 ≪유성≫을 발간했고, 다년간 성적 우수자로 제일고등학교 문과에 무시험 입학한다. 수재형 모범생으로 보들레르, 스트린드베리, 아나톨 프랑스, 베르그송 등을 섭렵한다. 고등학교 동기인 구메 마사오, 기쿠치 간 등과 함께 제3차 ≪신사조≫를 간행하고 처녀작 <노년>(1914)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라쇼몬>(1915)과 <코>(1916), <마죽>(1916), <수건>(1916)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신진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작품 <코>는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았고, 도쿄대학 영문과를 차석으로 졸업한다. 이후 역사 소설로 역설적인 인생관을 나타내려는 이지적인 작풍을 나타내며, 작가 생활 10여 년간 150여 편의 작품을 남긴다. 복잡한 가정 사정과 병약한 체질은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 페미니스틱하고 회의적인 인생관을 갖게 된다. 결국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의와 초조, 불안에 휩싸여 심한 신경 쇠약으로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하고 만다. 문예춘추사의 사장이던 기쿠치 간이 죽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매년 2회, 1월과 7월 수여하는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다.

지은이 : 미야모토 유리코
소설가, 사회운동가. 도쿄의 명망 있는 건축가의 장녀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열여덟 살에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천재소녀로 주목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깨닫고 문학으로 민주주의 운동을 펼쳤으며 수차례 투옥 및 집필 금지처분을 받았다. 패전 후 피폐해진 사회상을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 「반슈평야」를 비롯해 「두 개의 정원」, 「도표」 등 역작을 남겼으며 집필, 강연,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지은이 : 오카모토 기도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에게서는 한시를, 숙부와 공사관 유학생들로부터는 영어를 배우게 된다. 도쿄일일신문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면서 소설 『다카마쓰성』을 발표했다. 1902년 『고가네 범고래 소문의 높은 파도(金??高浪)』가 가부키좌(歌舞伎座)에서 상연되고 이후 『유신전후(維新前後)』(1908), 『슈젠지 이야기(修?寺物語)』(1911) 등이 성공을 거두며 신가부키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된다. 1916년,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아 일본 최초의 체포물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세계괴담 명작집(世界怪談名作集)』, 『중국괴이 소설집(支那怪奇小?集)』을 편역했다. 후진 양성을 위해 월간지 『무대(舞台)』를 간행하고 계속 희곡을 집필했다. 연극계 최초의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지은이 : 데라다 도라히코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한다.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다음엔 이학부 교수로 취임한다. 「라우에의 회절 무늬 실험 방법 및 그 설명에 관한 연구」(1917)로 제국 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하고, 정부 및 군대로부터 각종 조사 활동과 연구를 위촉받는다. 과학 저술로는 『바다의 물리학』(1913), 『지구 물리학』(1915, 1933)이 있으며, 『후유히코슈』(1923), 『만화경』(1929), 『가키노타네』(1933) 등 수필집도 펴냈다. 1935년 전이성 골종양으로 세상을 떠난다.

지은이 : 사토 고세키

지은이 : 고이즈미 야구모

  목차

1장 - 마음속에 흐르는 쓸쓸함이 더더욱 쓸쓸해지고

꽃을 묻다 - 니이미 난키치
운모편암 - 미야모토 유리코
여름 모자 - 하기와라 사쿠타로
비와 아이 - 미야모토 유리코
소세키 산방의 겨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일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장의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목련꽃 호리 - 다쓰오
싸리꽃 - 호리 다쓰오
불에 쫓겨 - 오카모토 기도
술의 추억 - 다자이 오사무

제2부 -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을

좋아하는 친구 - 사토 하루오
아버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0년 - 나카지마 아쓰시
병상 생활에서 깨달은 발견 - 하기와라 사쿠타로
세 명의 방문객 - 시마자키 도손
사후 - 마사오카 시키
의무 - 다자이 오사무
달리지 않는 명마 - 다자이 오사무

제3부 - 은은한 향을 남기고 사라진 선향처럼

도토리 - 데라다 도라히코
유리문 안에서 (중에서) - 나쓰메 소세키
꽃을 든 여자 - 호리 다쓰오
어린 시절의 기억 - 이즈미 교카
풀종다리 - 고이즈미 야구모
시키의 그림 - 나쓰메 소세키
산잔 거사 - 나쓰메 소세키
화롯가 - 호리 다쓰오
아버지의 모습 - 사토 고세키
어머니의 냄새 - 사토 고세키
고향을 그리다 - 김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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