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고통이 삶에 안겨준 귀한 선물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에세이. 저자 박기량은 보통 사람과 같은 행복을 꿈꾸었지만 자신과 아이에게 찾아온 불행 때문에 사막처럼 고독한 삶을 살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제 마흔이 되어 주변의 꽃 하나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그동안 쓴 글을 모아 《가만히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란 책으로 엮었다. 거짓 위로나 화해 대신에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는 길을 보여준다.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엄마답게 살기 위해 껍질을 벗는 시간“매미가 유충이 벗고 여름을 향해 울부짖는 시간이었다. 엄마로, 엄마답게 살기 위해 껍질을 벗는 시간이었다. 씨앗을 뚫고 초록빛 의지의 싹이 나왔다. 도시의 생활을 접고, 고향 같은 숲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저자 박기량은 보통 사람과 같은 행복을 꿈꾸었지만 자신과 아이에게 찾아온 불행 때문에 사막처럼 고독한 삶을 살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제 마흔이 되어 주변의 꽃 하나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그동안 쓴 글을 모아 《가만히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란 책으로 엮었다.
누에고치가 되어 쓰기 시작한 글이 엄마로, 엄마답게 살기 위해 껍질을 벗는 시간을 지나, 이제 ‘완벽하지 않은 것이 가장 완벽한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으로 세상에 나왔다.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면의 꽃을 피우는 무화과“‘네가 쓰러졌을 때, 왜 저런가 싶었는데, 내가 쓰러지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두 아이 키우면서 힘들었지.’ 고통은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글을 쓰며, 세상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꽃이 아닌, 내면의 꽃을 피우는 무화과가 되겠다.”
흔히 열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꽃인 무화과처럼 화려하게 밖으로 피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피는 삶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화과처럼 내면의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품게 된 작가가 힘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까닭은, 고통이 삶에 안겨준 귀한 선물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어머니와의 일화처럼, 고통은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자는 글을 쓰며, 세상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꽃이 아닌, 내면의 꽃을 피우는 무화과가 되겠다는 결심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온 편지“남편이 말했다. ‘사고치고 다녀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 마.’ ‘순간, 결심했다. 열심히 사고 치기로.’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헬멧을 쓴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길을 올라왔다. 우체부 아저씨다. ‘무서운 데서 우편이 왔네요?’ ‘어딘데요?’ ‘청와대요.’”
아이가 수업 시간에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편지의 주인’에게 보내는 사고를 치는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푸념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만 진정한 반전은 청와대로부터 답장이 왔다는 것이다.
“엄마, 대통령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받은 아이는 많지 않겠죠?”라는 아이의 반응처럼 엄마의 엉뚱함이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생이라도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이 책에 담긴 여러 사연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살아온 날들이 서럽지 않다“책 한 권을 쓰고, 공책에 글을 썼다. ‘삶, 깃털이 되다.’ 어둠의 무게를 글로 풀었다. 그 후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생사고락은 반복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살아온 날들이 서럽지 않다.”
저자와 아이가 겪어온 간난신고의 삶은 동화책 속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기쁨과 슬픔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하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 있는 그대로 보고 안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살아온 날들이 서럽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가만히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는 거짓 위로나 화해 대신에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는 길을 보여준다. 내가 아닌 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뿐인 생애를 나로 살아가야 의미가 있다는 다짐이 은근히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인생도 자신에게서 의미를 찾아보자.

30평대 아파트의 공간에서 가장 힘든 건 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고통을 지켜보는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타인의 아픔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요한이가 가장 힘들었다. 4살, 남자아이는 솟구치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했다.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내버려뒀다. 감정이 폭발하면 쓰레기통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린이집을 거부한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미술학원 차에 내리자마자 주먹으로 배를 때렸다.
“엄마, 미워.”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울움을 토했다. 남들이 볼까 무서워 목덜미를 잡고 들어왔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문을 닫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모르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엄마랑 아이는 알았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집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비밀의 열쇠는 수평선 너머가 아닌, 엄마 마음에 있었다. 엄마는 할 수 있었다. 아픈 엄마도 엄마였다. 의지를 갖고 걸어가면 된다.
걷다가 지치면 잠시 쉬었다 가면 된다.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는다. 가슴팍에 돌을 찍어 내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으면 된다. 엄마의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다. 옛날의 어머니도 그랬고 지금의 어머니도 그렇다. 엄마의 인고는 열매가 된다.
만약 도심에 살았다면 학원을 보냈을 것이다. 좀 더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정보수집을 했을 것이다. 시골에 와서 아이는 자연 속에 유영한다. 교과서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자신의 주인이 된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이의 피부에 밴드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피가 나도 밴드를 붙이지 않는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햇빛과 상처가 마주한 자리에는 소나무껍질처럼 단단해졌다. 안나도 마찬가지다. 넘어지고, 다쳐도 다시 일어난다. 아이에게 밴드는 사치가 되었다. 집 뒤는 누군가의 산림 훼손으로 돌산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위험이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는 맨손으로 돌산을 기어오른다. 그 뒤를 안나가 기어오른다. 탄광의 아이처럼 치아만 빼고 까맣다. 마치, 희귀종이라 불렸던 엄마 모습과 같다. 구멍 난 옷은 아이들에게 자랑이며, 몸에 새겨진 상처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주말에 조카가 놀러 왔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놀다 하얀 다리에 상처가 났다. 반창고를 붙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휴대전화 볼래요.”
“그래, 그만 놀고 들어와.”
삼겹살을 굽고 있던 동생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색깔이 다른 고모가 말했다.
“밖에서 뛰어놀아. 햇살도 받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뛰어놀아. 그래야 튼튼해져.”
요한이와 안나가 달려와 조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옆에 기저귀를 차고 있던 조카도 따라 나갔다. 잔디 위에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카의 하얀 얼굴에 햇살이 쏟아진다. 손뼉 치며 웃었다. 요한이가 물풀을 헤치고 어망을 건져왔다. 양동이에 들어 있는 물고기를 보여준다.
“이건 버들치라는 물고기야. 1급수에서만 살아.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고 올게.”
성인의 팔뚝만 한 쏘가리를 낚시로 잡았을 때도 불룩한 배를 보고 말했다.
“아빠, 엄마 쏘가리인 것 같아요. 놔줘요.”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자연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아이의 스승은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