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오늘날 ‘예술’이라 하면 흔히 한 개인의 고독한 ‘창작’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시절 예술의 생산은 성격상 여러 기술자들 사이의 협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방에는 제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확립된 조직체계와 작업절차가 존재했다. 이 작업자 집단의 꼭대기에 장인이 있었고 그 아래로 조수나 제자가 고용되어 있었다. 물론 그 장인도 한때는 다른 장인의 조수 혹은 제자였을 것이다. 다빈치 같은 거장도 어린 시절에는 명장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조수로 일했다.
중세와 르네상스에는 이렇게 진품성authenticity의 개념이 친작성autographness과 일치하지 않았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듯이 당시에 ‘제작된’fatto이라는 말은 ‘스스로 만들다’fare 외에 ‘만들게 시키다’far fare라는 뜻도 갖고 있었다. 즉 장인이 조수에게 만들도록 시킨 작품도 “그[장인]의 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간주됐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작품이 일정한 품질을 갖추고 해당 장인의 양식을 반영하기만 한다면 누구의 손을 거쳤든 당시에는 장인의 진품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우리도 물건을 살 때 브랜드는 따져도 그것을 실제로 만든 이들의 이름은 굳이 묻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다.
친작의 관습은 이처럼 비교적 최근에 확립된 것이다. 그 관습이 관행으로 굳어지자 과거에도 당연히 그랬으리라 착각들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바사리와 같은 르네상스 저자들의 글을 읽으면 마치 그 시절에 이미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근대적 예술문화가 ‘완성태’로 존재한 듯 느껴진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저작이 보여주는 것은 르네상스의 ‘이상’일 뿐 그 시대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홀로 비계에 누워 그 모든 그림을 손수 그렸다는 미켈란젤로의 전설. 이 신화와 현실 사이에는 상상력만으로는 메꿀 수 없는 넓은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간극이 가끔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진중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올드미디어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뉴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라는 구상 아래 다양한 기획을 해왔으며 이와 연계된 교육·연구·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수, 문화비평가, 시사평론가, 시대의 부조리에 독설을 날리는 우리 시대의 대표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이지만 스스로는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감각의 역사》《이미지 인문학 1, 2》《미학 오디세이 1, 2, 3》《서양미술사 1, 2, 3, 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진중권의 생각의 지도》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크로스 1, 2》《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청갈색책》《컴퓨터 예술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