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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인생
실천문학사 | 부모님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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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11년 「발견」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철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철경은 이번 시집에서 상처와 결핍의 원체험을 통해 역설적인 삶의 희망과 빛을 노래한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 시인은 "과거 기억의 시적 형상화를 현실에 빗대어 문학적 치유를 보여주고자" 하며, 그에게 시 쓰기는 곧 "상처받은 영혼, 슬픔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자아에 대한 성찰과 희망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몸짓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상처투성이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을 믿고, 문학의 힘을 믿는다. "저 중년의 사내,/삼십 분 전/의자 난간을 부여잡고/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저 꺾인 날개의 들썩임/전철도 부르르 떨면서/목 놓아 우는구나"('밤 열차')라는 구절은 '당신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감정을 전철의 떨림을 통해 형상화해내고 있으며, "이 세상에 신은 없는 듯하지만,/가끔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신의 분노')라는 인식을 통해 삶의 피폐함과 현실의 부조리에 저항하며 순례길과도 같은 인생을 걸어간다.

  출판사 리뷰

시인은 여섯 살의 나이에 북한강 근처의 고아원에 들어갔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유년기 체험이 담긴 시에 ‘폭력’ ‘허기’ ‘가난’ 등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싱글 대디」, 「부재」 같은 시편에서 짐작되듯 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철경은 자신의 상처에 갇히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부서뜨릴지언정 그는 단단한 사금파리처럼 스스로를 벼리며,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통과해 나아간다. 자신의 장애물을 넘어선 그는 자기와 닮은 타인들의 슬픔과 마주하고, 마침내 그 슬픔과 결탁하여 더 큰 장애물을 향해, 벽을 향해 몸을 던지며 나아간다. 해설을 쓴 이경호 평론가 역시 이 점을 강조한다. “주목할 점은 현실의 상처를 감당하는 주체가 개인이나 집단의 인간으로 한정되지 않고 자연과 어울리거나 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기의 고통이나 상처라는 원체험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소환되는 대상들은 이제 시인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넘어서 타자의 생은 물론이거니와 소외된 집단의 현실뿐만 아니라 자연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저 힘없이 고개 떨구던 꽃들은
참회의 눈물로 누군가는 서럽게 울다가
생을 놓는 일이 허다하다
제각기 변명을 바람 앞에 늘어놓으며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만,
처음 버려진 골목을 떠나지 못하는 유기견처럼
목련꽃 난자한 바닥에 깨진 달빛마저 처절하다
- 「제1구역 재개발 골목」 부분

한겨울 북한강은 날마다 얼고, 얼지 않은 날은 새벽마다 안개를 몰고 쳐들어왔다 저 강이 얼면 넘어가리라 다짐하지만, 끝내 강을 건너지 못한다 나룻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날은 이쪽 강변과 저쪽 너머에 새매처럼 감시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개 자욱한 날이면 또 누군가 강 건너 읍내로 가출을 하고, 일부는 밀항하듯 넘다가 다시 잡혀 오곤 했다
- 「세빙」 부분

추천사를 쓴 오민석 시인이 주목한 것처럼 이철경의 시는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하고 있다. “모든 이론과 철학의 최종적인 목표는, 대신 떠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서발턴들이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내도록 겸손히 돕는 것이다. 이철경은 제 발로 시인의 세계로 나간 주변인이다. 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계급과 계급을 지배하는 시스템에 대하여 외친다.” 그의 시들은 이제 “자신을 주변화시킨 체제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체제를 교란시키고 그 체제에 구멍을 낸다. 이철경의 시에서 우리는 그 어떤 위력에 의해서도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을 읽는다. 이철경의 시들은 말한다. 체제여, 다름 아닌 ‘인간’ 앞에서 그 오만한 가면을 내리고 무릎을 꿇어라.”

도시 한복판 가장 비싼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한

자유라는 저 사내,

해가 들지 않는 지하보도 길옆에

하루 한 번씩

집을 짓고 부순다
- 「홈리스」 전문

막막한 어둠 속, 날카로운 칼끝이 막다른 문에 부딪히며 번득이는 찰나의 빛과 소리에 칼보다 작아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칼끝의 두려움에 놓여 있다. 소속 단체의 칼끝, 궁핍한 굴레로 되돌아갈 칼끝, 사회 안전망에서 비껴 있는 칼끝, 바이러스 창궐의 칼끝, 검사가 휘두르는 망나니 칼끝, 거짓 뉴스에 실린 칼끝, 거대 제국주의 칼끝, 우리는 모두 막다른 미닫이에 기대어 던지는 칼날을 피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사는 것이다. 미소를 띠며 던진 칼날에 심장이 찔려 피 흘리다 죽는 경우를 무수히 목격한다.
- 「칼끝」 전문

비 내리는 밤길 걷다가
불 켜진 버스 정류장에서
내 뒤를 따라오는
작은 아이를 보았지

잠시, 멈추어 서서
가로등 불빛에 난사되는
신기루 같은 아이에게
말, 걸어 보았네

그는 아무 말 않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홀로 걷는 내게 보폭을 맞추며

중년까지 따라올 기세네

- 「그림자」 전문

금관의 여왕이 머물던 왕년의 의자인가
빛나던 권좌에서 떨어진 그녀는
터를 뒤로한 채,
좌판의 구석진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는다
허리춤 깊숙이 숨겨 놓은
왕년의 꿈이 담긴 전대에서
궐련을 꺼내 말아 피운다
한 모금씩 필 때마다 쭈그러진 입에서
순백의 꿈들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회상 속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저기 잠시 권좌를 비운 사이,

붉은 대야 안, 가득 담긴 다슬기가 아우성이다
- 「시골 장터 좌판」 전문

도시 한복판 가장 비싼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한

자유라는 저 사내,

해가 들지 않는 지하보도 길옆에

하루 한 번씩

집을 짓고 부순다
- 「홈리스」 전문

막막한 어둠 속, 날카로운 칼끝이 막다른 문에 부딪히며 번득이는 찰나의 빛과 소리에 칼보다 작아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칼끝의 두려움에 놓여 있다. 소속 단체의 칼끝, 궁핍한 굴레로 되돌아갈 칼끝, 사회 안전망에서 비껴 있는 칼끝, 바이러스 창궐의 칼끝, 검사가 휘두르는 망나니 칼끝, 거짓 뉴스에 실린 칼끝, 거대 제국주의 칼끝, 우리는 모두 막다른 미닫이에 기대어 던지는 칼날을 피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사는 것이다. 미소를 띠며 던진 칼날에 심장이 찔려 피 흘리다 죽는 경우를 무수히 목격한다.
- 「칼끝」 전문

비 내리는 밤길 걷다가
불 켜진 버스 정류장에서
내 뒤를 따라오는
작은 아이를 보았지

잠시, 멈추어 서서
가로등 불빛에 난사되는
신기루 같은 아이에게
말, 걸어 보았네

그는 아무 말 않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홀로 걷는 내게 보폭을 맞추며

중년까지 따라올 기세네

- 「그림자」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철경
1966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하여 강원 화천에서 성장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전자공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문예창작 전공)을 졸업했다. 2011년 시 전문 계간지 『발견』에서 신인상 수상하며 시인으로, ‘목포문학상’ 평론 본상과 2012년 『포엠포엠』 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 『죽은 사회의 시인들』이 있다.

  목차

제1부
제1구역 재개발 골목
더없이 투명한 블랙
작은 꿈
일용할 양식
순례자의 길
싱글 대디
빈자의 시선
시인
경계선
칼끝
부재
인생의 무게
한정판 인생
허기에 대한 단상

제2부
밤 열차
생명의 전화
바람의 감각
판공초
장롱 속 아이
내 삶의 전부가 시
홈리스
행상
구비섬
내력
미스타페오
작은 아이
언 강
그림자

제3부
겨울 강가에 내리는 눈물
무진 동산
절체절명
사라진 길
상흔
기억의 투구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김지영에게
아빠 찬스
얼굴
중력
세빙
퇴역 장군
아비뇽의 여인들
호칭의 변천사
쳇바퀴

제4부
신의 분노
머나먼 길
푸른 연못
시골 장터 좌판
누 떼
기별
국민학교
짝사랑
하지정맥류
퇴근길
당신의 숲
남주
1984 속편

무서운 안부

해설 이경호 _ 허기와 기억의 숲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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