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인간 몽테뉴를 만나볼 수 있는 내밀하고 사적인 여행 일기. 1770년 어느 날, 지역사와 관련해 자료를 조사하던 샹슬라드 사제가 몽테뉴성에서 200년 동안 숨겨졌던 원고를 발견한다. 《수상록Les Essais》의 저자로 알려진 몽테뉴의 여행 일기였다.
이 일기에는 1580년 6월 22일부터 이듬해 11월 30일까지 그 여정이 담겨 있다. 신장결석을 앓고 있던 몽테뉴는 치료를 위해 본인의 성을 떠나 파리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일대를 다녀온다. 아픈 와중에도 그는 현지의 풍습과 사람들을 자세히 바라보고 기록한다. 덕분에 우리는 최초의 근대인의 눈으로 16세기 유럽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출간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기에 이 책에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 몽테뉴의 사적이고 친근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에세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수상록》보다 더 에세이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이 책은 현대어 판이 아닌 18세기 케를롱 판본을 완역한 것으로, 400년이 넘는 시대 차를 넘어 몽테뉴를 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게 우리를 안내해 준다.
출판사 리뷰
제2의《수상록》이자 날것의 《수상록》, 진정한 의미의 ‘에세이’
《수상록》으로 에세이라는 글쓰기의 한 장르를 탄생시킨 몽테뉴가 쓴 16세기 유럽 여행 에세이,《몽테뉴 여행기》! 여행하는 몽테뉴는 16세기에서 온 코즈모폴리턴이다. 쉼 없이 국경을 가로질러 여행하고, 여행지에서 마주한 것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고 기록한다. 호기심은 그의 대표작인 《수상록》을 탄생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질문을 되새김질하며 어떻게 삶을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했던 몽테뉴는 방대한 분량의《수상록》에서 문학에서부터 영혼과 사랑은 물론 기분전환 같은 사소한 주제까지, 삶의 여러 문제들을 다룬다. 그러나 《수상록》에는 정작 몽테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데, 이는《수상록》의 원제가 Essais이지만, 몽테뉴 한 개인의 인생보다는 보편적인 삶에 대한 인생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아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꾸밈없이 써 내려 간 이 여행기야말로 제2의《수상록》이자 날것의 《수상록》, 진정한 의미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16세기 사상가의 각본 없는 현지 유럽 여행기
사상가 몽테뉴는 호기심 많고 편견 없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그는 여행지의 풍경과 풍습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여행지에서 들은 이야기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생생한 에피소드들로 펼쳐놓는다.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는 이탈리아 로레토의 작은 교회에서 비싼 값을 주고 가족들의 초상화를 제작해 벽에 걸며 가족의 평안을 빌기도 하고, 한 서점에서는 우연히 보카치오의 유언장을 발견하고 감명을 받기도 한다.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우연한 발견이 주는 감동을 보여준다. 여관 주인들이 잘 차려입거나 직접 말을 타고 마중 나와 자신이 운영하는 여관으로 오라고 호객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하인을 시켜 여러 여관을 돌며 흥정하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여관 주인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알뜰한 장기 여행자의 면모도 보인다. 또 한 수도원에서 장례식 의례를 누가 주도하느냐를 두고 육탄전이 벌어져, 결국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소문을 전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처럼 몽테뉴가 묘사하는 풍경들은 몇 세기 전의 일임에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가는 곳마다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며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몽테뉴의 일기는 단순한 관광으로는 감히 누릴 수 없는 직접적인 체험으로서의 자유로운 여행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몽테뉴가 그리는 미시사, 소소한 유럽의 뒷골목 풍경
몽테뉴는 여행지에서 본 모습들을 풍경화를 그리듯 기록한다. 온천 풍경을 예로 들어보자. 신장결석을 앓으며 아픈 몸으로 여행하는 몽테뉴의 여정에는 온천지도 포함이 되어 있다. 덕분에 우리는 16세기 유럽에서 사람들이 온천을 이용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에는 지역과 온천마다 전해지는 일종의 온천 이용 관습 있었는데, 몽테뉴가 특히 오래 머물렀던 빌라 온천에서는 보통 정수리 부분에 있는 머리카락을 밀고 그 위에 머리를 보호하는 작은 천 조각을 올려놓고 온천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몽테뉴는 민머리인 자신에게는 필요 없는 관습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의사의 처방전에 온천 이용 방법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는데, 의사마다 처방이 달라 몽테뉴가 본 스무 개의 처방전 중에 온천물을 마시는 법, 온천을 하는 법에 관해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본인이 내린 것과 다른 처방은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고. 물론 몽테뉴는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온천을 이용했다.
여행하며 여행지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던 몽테뉴는 빌라 온천에서는 마을의 관습에 따라 무도회를 열었는데, 시상식에 쓸 선물의 종류와 개수(모슬린 천으로 된 앞치마 두 장과 장식용 핀을 담는 상자 네 개, 펌프스 구두 네 켤레, 슬리퍼 한 켤레, 머리망 세 개와 머리카락을 땋을 때 필요한 도구 세 개 등), 가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시상식의 풍경을 그리듯 묘사해놓아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 정서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몽테뉴 여행기》는 기존 역사서에서 보기 어려운 16세기 유럽 현지의 풍속과 현지 사람들의 생활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그런 까닭에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에 집중했던 기존 역사관에서 벗어나 민중, 특히 여성과 노동자의 일상을 연구한 페르낭 브로델(《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저자)이 자신의 책에서 《몽테뉴 여행기》를 언급했을 것이다. 몽테뉴의 눈으로 세밀하게 기록한 16세기 유럽의 풍경은 자유로운 영혼을 따라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를 보여줌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고수한 아날학파의 관점을 공유하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몽테뉴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어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하기조차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 안에서도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된다. 몽테뉴는 몇몇 도시에 진입할 때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했고, 심지어 에피날에서는 전염병이 돌았던 지역을 지나왔다는 이유로 진입을 거부당하기도 한다. 자유로이 이동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 닮은 구석이다.
그럼에도 갑갑하고 암울한 이 시기에 《몽테뉴 여행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16세기 유럽 현지에 도착해 있는 자유로운 여행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책을 통한 여행’을 뜻하지 않는다. 이를 넘어 “여행하듯 살아간” 몽테뉴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바깥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볼 수 있는 여행의 의미를 띤다. 이 책을 통해 이전에는 쉽게 던지지 못했던 근본적인 인생의 질문들을 풀어가면서, 이 시기를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뜻깊은 시기’로 전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신장결석을 앓던 몽테뉴가 하루하루 마신 물의 양과 소변의 양을 계산하며, 소변에 섞여 나온 모래알과 돌멩이들의 양과 크기를 기록하며,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쓴 글이지만 새로운 사람과 풍속을 맘껏 받아들이는 그의 성격 덕에 그 어떤 여행기들보다 건강한 힘이 느껴진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로 활력을 잃은 독자의 내면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건강한 기운을 불러일으켜 주길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모럴리스트.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라 할 《수상록》을 남겼다.1533년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맡겨져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익혔고 6세 때 보르도 인근의 귀엔 학교에 입학해 중학 과정을 마쳤다. 16세 때부터 툴루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554년경 페리괴 조세법원의 법관에 이어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의 법관으로 일했다. 1559년 《자발적 복종》을 쓴 철학자이자 법률가 에티엔 드 라보에티를 만나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었으나 1563년 페스트로 인해 그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1568년 사망한 아버지 피에르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로서 영지를 상속받았고, 이듬해 스페인 신학자이자 철학자 레몽 드 스봉의 《자연신학 또는 피조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발간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남동생 아르노가 운동 경기 중에 입은 부상으로 요절한데다 몽테뉴 자신이 낙마 사고로 죽을 뻔했다. 1570년에는 첫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듯 죽음을 연이어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1562년 이래 종교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프랑스에서 살던 몽테뉴는 언제 어떤 위험에 처할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게 되었다.공직 생활에 부담과 환멸을 느껴 1570년 37세의 나이로 보르도 고등법원 법관직을 사임하고 몽테뉴 성의 서재에 은둔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1571년 집필을 시작한 《수상록》의 초판은 1580년 보르도에서 출간되었다. 그해 신장결석을 치료할 겸 여행길에 올라 스위스,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오래 머물다 1581년 말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오는데, 이 경험을 기록한 일기는 몽테뉴 사후에 발견되어 1774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어 일했으며 두 번째 임기에는 종교 전쟁과 페스트로 인해 피난을 떠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동안 가필과 수정을 거듭해온 《수상록》의 3권 107장에 이르는 신판을 1588년 간행했고, 1590년에는 관직을 맡아달라는 앙리 4세의 요청을 건강을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1592년 자택에서 중증 후두염으로 숨을 거두었다.
목차
추천사
옮긴이의 말
뷔퐁 백작님께
편집자 케를롱의 서문
1. 플롱비에르 온천으로 ┃ 1580년 9월 5일 ~ 9월 26일
2. 프랑스, 스위스를 지나 독일로 ┃ 1580년 9월 27일 ~ 10월 8일
3. 독일, 오스트리아를 지나 이탈리아로 ┃ 1580년 10월 9일 ~ 10월 28일
4.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길 ┃ 1580년 10월 29일 ~ 11월 30일
5. 이탈리아: 로마에서 ┃ 1580년 11월 30일 ~ 1581년 4월 19일
6. 이탈리아: 로마에서 루카로 ┃ 1581년 4월 19일 ~ 5월 6일
7. 이탈리아: 빌라 온천에서 I ┃ 1581년 5월 7일 ~ 6월 20일
8. 이탈리아: 피렌체와 피사, 다시 루카로 ┃ 1581년 6월 21일 ~ 8월 13일
9. 이탈리아: 빌라 온천에서 Ⅱ ┃ 1581년 8월 14일 ~ 9월 11일
10. 이탈리아: 다시 로마로 ┃ 1581년 9월 12일 ~ 10월 15일
11. 몽테뉴성으로 돌아가는 길 ┃ 1581년 10월 15일 ~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