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하로산또와 미륵신이 들려주는 제주 신화 테마 기행
제주 신화 이야기꾼인 동갑내기 벗 둘과 사진 작가 한 명이,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색다른 테마로 둘러보며 제주의 신을 만나는 일탈을 감행했다. 『제주, 당신을 만나다』에서 이들은 한적한 한라산 길과 탁 트인 해안가를 걷는 여정을 신화 시대로 걸어가는 숲길, 바닷길로 가득 채웠다. 제주의 ‘당’을 찾아가고 제주의 ‘신’을 만나는 인문 답사기이다.
제주의 한라산 자락에는 하로산또가, 바닷길에는 미륵신이 좌정하고 있다. 한라산의 하로산또는 한라산에서 솟아나 바람신으로 사냥신으로, 산신백관 풍수신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였다. 그리고 미륵신은 먼 바다 물길을 따라 제주섬으로 넘어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주며 바닷가 해안길에 좌정하였다.
따라서 바닷가 마을에 좌정하고 있는 ‘미륵신’ 이야기와 한라산에서 솟아난 ‘하로산또’ 이야기를 아우르면 제주 신화의 전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50대 두 벗이 자신의 삶을 본풀이하듯 풀어놓은 읽기 쉬운 에세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에게는 신당을 통해 제주의 또 다른 참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길라잡이이며 제주 신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유용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다.
저자들은 한라산 기슭에서, 마을마다 있는 신당에서, 그리고 제주의 돌과 나무와 바다에서 ‘제주의 신들’과 만났다. 두 벗은 함께 걸으면서 ‘심방’이 되어갔다. 신당을 찾는 순례길 그 자체가 한판 ‘굿’이다. 『제주, 당신을 만나다』는 걸으면서 심방이 되어가는 두 벗이 한라산과 제주 바다에서 만난 신의 이야기를 다시 인간에게 들려주는 ‘영게울림’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소미’들의 ‘연물 장단’이 들리고, 푸른 대나무에 장식한 ‘기메’처럼 사진이 펼쳐진다. 그리고 두 여인의 ‘영게울림’을 들으면서 우리 자신도 제주의 마을이 되고, 삶의 역사가 되고, 마침내 하로산또가 되어간다.
제주신화연구소에서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두고 오랫동안 신당 답사를 해온 저자들의 소박한 바람은,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신들의 성소인 신당을 보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앞으로도 당신화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더욱 필요하다.
이 글은 선인들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한 제주 신화와 문화유산인 신당이 잘 제대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나간 발걸음의 기록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주 신화 테마길을 열었다. 그리하여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성숲을 걸으며 앞서 걸어간 선인들의 삶을 생각해 보길 바라는 소박한 염원을 담았다.
동갑내기 저자인 여연과 홍죽희는 국어 교사로, 영어 교사로 재직한 경험에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 신화에 관한 관심에 있어서 닮은 점이 많다. 여연의 이전 책은 각각 출판산업진흥도서(『제주의 파랑새』, 2016)와 세종도서(『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 2017)에 선정된 바 있다.
사진 작가 김일영 역시 제주도 중산간 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제주의 성숲 당올레』(2020)를 펴내고, 사진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신당을 찾는 순례길, 제주 바다와 산에서 만난,
당堂과 신神들의 소소한 이야기
이 책은, 바닷가 미륵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홍죽희의 글(1부)과 한라산에서 솟아난 신 하로산또를 기록한 여연의 글(2부),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한 김일영의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주로 바닷가 마을에 좌정하고 있는 미륵신 이야기이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미륵돌을 모시고 나서 부자가 되었다는 윤동지영감당 이야기, 잠수(해녀)와 어부들의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의 삶을 어떻게 미륵신앙으로 극복했는지 생각해 보는 신촌 일뤠당과 함덕 서물당, 토속적이고 해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화천사 오석불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한라산 자락으로 가서 산신미륵을 만나고 나서, 한라산에서 산신이 내려와 거대한 암반을 신체로 삼은 하가리 큰신머들 새당도 둘러보았다.
2부는 한라산에서 솟아난 신 하로산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산신이 좌정하고 있는 신당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사냥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부인으로부터 쫓겨나는 소천국 이야기와 강풍이 휘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신의 노여움을 떠올리게 하는 광양당신 이야기를 앞에 두었다.
그리고 아버지 소천국과는 달리 사냥신이면서도 또한 문장도 뛰어나고 늠름한 기상으로 마을을 지켜주는 하로산또 형제 이야기와 바람신이면서 바람을 제대로 피운 바람웃도에 대한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요즘 말로 거의 천재에 해당하는 재능을 보여주면서 도교의 신선을 떠올리게 하는 산신백관 하로산또들을 만나보고, 바다와 강남천자국을 평정한 영웅신 궤네기또 이야기도 음미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도두봉 허리에 자리잡은 오름허릿당의 존재감 없는 하로산또를 되살리고 나서 꼭대기에 올라 탁 트인 제주의 바다를 조망하였다.
이 글은 딱딱하고 거창한 학자의 담론이 아니다. 또한 무게 있는 신들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신들의 이야기를 씨실 삼고, 앞서 제주 땅에 뿌리 내렸던 선인들의 이야기와 그 삶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날실 삼아 스토리텔링을 시도해 보았다. 여기에 제주의 산과 들을 그야말로 귀신에 씐 듯 훑고 다니며 건져 올린 사진 작품들을 배경 무늬로 깔았다.
제주에서는 ‘신화’를 ‘본풀이’라고 한다. ‘본풀이’는 신의 본(本)을 풀어낸다는 의미의 제주 말이다. 제주 신화의 ‘본풀이’는 심방들이 굿을 통해 풀어내는 신들의 이야기여서, 이 구술된 자료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저자들이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는 신당 답사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일반인들이 공감하기 쉽게 풀어진데다, 자연스럽게 저자들의 개인사가 곁들여지게 되어 누구나 쉽게 이들의 이야기 산책에 동행할 수 있다. 발이 편한 신발, 물병 하나, 곧 사라질지 모르는 신당을 기록할 휴대폰 카메라만 있으면 말이다.
“돌 구들 위에서 나고, 산담 두른 작지왓(작은 돌이 깔려 있는 밭)에 묻힌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 말 속에는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가 나타나 있다. 제주 사람들이 평생 돌과 함께 거칠고 팍팍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변하였지만, 제주 선조들이 사는 집은 돌로 시작해서 돌로 마무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타리, 올레, 울담, 산담, 밭담, 심지어 바닷가에 고기를 잡기 위해 둘러놓은 원담까지 모두 돌로 이루어졌다. 각종 살림 도구 역시 돌을 이용하여 의식주를 해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돌로 마을의 허한 기운을 채워주는 방사탑을 쌓기도 하고, 죽은 자들의 넋을 지켜주는 동자석을 빚기도 했다.
임철우의 소설 『돌담에 속삭이는』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돌담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제주 섬에 가면 부디 돌멩이 한 개라도 무심히 밟고 지나지 말라. 돌담의 돌멩이 한 개라도 무심히 빼내어 허물지 말라.”
제주의 돌은 제주인들의 한숨과 눈물의 상징이며, 세월의 무게를 함께 견디어 온 증거임을 전해 주는 말이다.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을 ‘하로영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했다. ‘하로영산’은 신령이 있는 한라산이란 의미이다. 사람들은 한라산을 신 자체로 관념하였고, 그에 따른 신화를 전승했다.
한라산, 혹은 한라산 자락에서 솟아난 신들과 그 후손들을 ‘하로산또’라고 부른다. ‘한라산’에 신을 의미하는 ‘~또(도)’를 붙인 것이다. 한라산신들은 때로 ‘비의 신’으로, 때로 ‘바람의 신’으로, 때로 ‘사냥신’으로서의 신격을 보인다. 평소 한라산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신의 권능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1만 8천 신들의 고향 제주에서 한라산신인 하로산또들은 중요한 신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은 『제주도 본향당 신앙과 본풀이』에서 ‘필자가 조사한 250개의 신당 중 하로산또를 모시는 산신당의 수는 61개로 전체의 24%를 차지하며 농경신계의 신당 수 다음으로 많다.’고 하였다.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처럼, 제주의 마을에는 신을 모시는 신당이 두세 개는 기본으로 있고, 어떤 마을에는 일고여덟 개가 넘게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신당에는 그곳에 좌정해 있는 신의 이야기, 즉 당본풀이가 전해진다. 물론 세월의 흐름과 변화 속에 이야기가 소실되어 이름만 남아 있는 신당도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당굿이 행해지고 있는 신당들은 거의 대부분 당신화를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