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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새로운 마디
청어 | 부모님 | 20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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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분의 봄날
희미한 달빛이 어둠을 가까스로 밝히고 있는 산. 팔순을 훌쩍 넘긴 순분이 힘겹게 산에 오르고 있다. 숨이 가빠지면서 턱턱 막히고 오래 동안 고생했던 무릎 통증이 밀려와 걷기 힘들었다. 야생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누군가 자신의 등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몸이 오싹 거리며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순분은 평소 즐겨 부르는 ‘봄날은 간다’ 노래를 웅얼거렸다. 낮에 봐두었던 산등성이 아래 있는 무덤을 찾았다. 낮에 봐두기는 했지만 어두운 가운데 잡목과 덤불이 우거져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었는지 무덤 위의 잔디는 거의 다 헤어져 있고 봉분의 형태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찾아내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웠다. 서너 번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무덤을 찾았다. 무덤 앞에서 가쁜 숨을 진정 시킨 순분은 가져온 호미로 무덤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 있지! 내가 꼭 찾고야 말거야. 찾아야 되고말고.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한참동안 땅을 파헤치자 호미 끝에서 무언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흙을 걷어냈더니 찾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분은 그것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낸 후 배낭 속에서 깨끗이 빨아 곱게 다려 온 헝겊을 꺼내어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쌌다. 이를 비닐 봉투에 다시 담아 가져온 배낭 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찾은 순분은 아픈 무릎 통증과 어둠의 산이 주는 두려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산을 내려오다가 동네 청년을 만났다. 동네 청년은 한 밤중에 등에 배낭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순분이 너무 수상했고 더욱이 등에 진 배낭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것에 갑자기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눈길을 순분에게 떼지 못하면서 물었다.
―할머니, 야심한 시간에 어디 다녀오세요? 이상하네, 근데 배낭에는 뭐가 있어요?
―별걸 다 물어보네. 내가 찾은 것이니까 내 거야. 상관 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봐!
하며 청년을 쏘아붙였다. 청년은 순분의 완강한 태도와 기세에 질려 가던 길을 갔다. 순분은 휴우 하며 바삐 집으로 들어가 마당에 허름하게 지어진 창고를 찾았다. 창고는 허름했지만 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순분은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여러 개 있었다. 순분은 그 중 한 항아리의 뚜껑을 연 후 무덤에서 가져온 것을 조심스럽게 넣고 조용히 닫았다.

아버지의 두 얼굴
퇴임을 앞두고 연구실 정리하느라고 정신없는데 경희 전화를 받았다. 경희는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살며 같은 학교까지 다니다 보니 숟가락 몇 개 있는 것조차도 아는 듯 우리 집안일을 훤히 꿰고 있는 친구다. 경희가 서재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물건을 치우다 우연히 우리 아버지 얘기가 쓰여 있는 수필집을 발견했는데 내가 꼭 봐야 될 것 같다며 만나자고 했다. 경희의 전화로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지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첫 자락은 언제나 ‘미운 아버지’였다. 그리고 왜 엄마는 이런 아버지와 이혼 안하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아버지는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그곳에 있다가는 평생 농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14살 때 가출해 원산으로 갔다. 낯선 곳에서 제대로 할 만한 일을 찾을 수 없어 가출 후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어느 미국 선교사집에서 허드레 일을 해주며 지냈다. 그 집에서 생활하던 중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기 값을 아끼느라 선교사가 저녁 일찍 전등을 꺼버리면 전기불이 켜있는 인근 공중화장실로 가서 그 불빛으로 새벽까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공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는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경성사범학교에 무난히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소홀이라도 할라 치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인데 왜 공부를 안 하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공부만 잘 했으면 뭐해. 돈도 못 버는데.”하며 무능력한 아버지를 무시하며 원망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탁월했던 학업에 대한 성취는 흥미가 없었고 재미있는 엄마와의 연애 얘기만 잊혀지지 않고 있다.

며느리의 비밀서랍
선영이 시계를 흘끗 보니 11시가 다 되어 간다. 빨리 서둘러 나가야 점심 약속에 늦지 않을 것 같다. 일본여행 갈 때 면세점에서 샀던 프라다 지갑과 폴로 티셔츠와 청바지를 쇼핑백에 챙겨 넣었다. 며느리 현지와 손자 상윤에게 줄 선물이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인데 식사 후 상윤을 봐주러 C시에 내려가야 한다. 외아들인 민호가 대학생일 때 남편과 사별 한 후 선영은 홀로 민호 뒷바라지를 했다. 민호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떠났는데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아 미국에 머물고 있다. 민호는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현지와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현지도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민호보다 먼저 공부를 마치게 된 현지는 C시에 있는 국책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두 살 된 상윤을 데리고 혼자 귀국했다. 선영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모두 털어 C시에 아파트를 사 주었다. 전세를 살게 되면 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2년 마다 이사를 가게 되어 번거롭고 힘들 것 같아서였다.
현지는 뒤늦게 얻은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유기농 식재료를 사서 손수 음식을 장만해주고 천연섬유로 된 명품 브랜드 옷을 사 입히고 교육에 좋다는 장난감과 책 사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상윤이 TV에 일찍 노출되어 빠지는 것을 염려해서 TV를 구석방에 놓기도 했다. 현지가 무엇보다도 고집하는 것은 기본 성격이 형성되는 만 6세까지 만이라도 아이는 가족이 돌봐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선영이 강의 요일을 조정해 C시를 오르내리며 상윤을 돌봐주었다. 선영이 3년여 가량 상윤을 돌보다가 갑자기 어깨 수술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집안일도 하면서 상윤을 돌 볼 도우미를 구해 몇 개월 동안 선영이 해왔던 일을 맡겼다. 어깨수술 부위가 거의 완치되자 일주일에 절반씩 선영과 도우미가 번갈아가며 상윤을 돌보기로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연숙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철학 박사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 및 교육대학원장, 고려대학교여교수회 회장,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장, 성북구건강가정지원센터장, 한국가정과교육학회 회장,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 회장, 한국가정과교육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역임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명예교수현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작가교수회 회원,작가포럼 운영이사<소설집>『인연의 새로운 마디』<저서>『가정과교육의 이론과 실제』『성인을 위한 가족생활 교육론』<공저>『가정관리학』 『가계재무관리의 이해』『인간과 생활환경』 『가족과 함께하는 자원봉사』『가족과 문화』 『다문화 사회의 이해』『중·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 및 교사용 지도서』 외 다수

  목차

작가의 말
작품 스케치

순분의 봄날
아버지의 두 얼굴
며느리의 비밀서랍
토탈커플
사랑의 미망
생선가시 발라 주는 남자
인연의 새로운 마디
한 시대의 자화상

해설
한 시대의 자화상_이덕화(작가포럼 대표,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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