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 조상들은 벽골제가 중국의 동정호처럼 큰 호수라는 환상을 품었다. 동정호를 경계로 중국의 호남과 호북이 생긴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호남과 호서가 생긴 것은 벽골제 때문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제 일대의 평야는 지표가 가장 낮은 곳이다. 이런 곳에 큰 호수가 조성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벽골제가 큰 호수라는 환상과 호수를 낀 지역 별칭까지 생겼다는 것은 우리의 실로 오래된 역사와 자연을 중국적으로 감각하고 해석해 온 우리의 정치사 및 정신사와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다. 현실을 무시한 환상,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 책은 김제 벽골제를 중국의 동정호처럼 착각하면서, 이 땅의 지배계층이 어떻게 중화사관을 내면화하고 거기에 뿌리깊이 예속되는지를 추적·탐구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호수를 낀 지역 별칭, 호서와 호남
호수는 어디에? 호수는 없었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자 기획된 환상의 나라 시리즈 1『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이은 두 번째 책으로 중국의 동정호를 이상향으로 한 벽골제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 시대의 우리 조상은 호남과 호서가 생긴 것은 김제의 벽골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 별칭이 공식화된 것은 17세기이다. 조선왕조는 각 도별로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고, 이에 따라 호서청이 설치되고 이어서 호남청, 영남청, 그리고 해서청이 설치되었다. 중앙정부에 호서청과 호남청이 생기자 충청도와 전라도는 호수의 고장으로 공식화된 것이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벽골제 환상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김제 일대의 평야는 바다와 강의 충적 작용으로 생겨난 한반도에서 지표가 가장 낮은 곳이다. 지금도 바닷물을 막는 갑문이나 방조제가 없다면 김제역 앞까지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올라올 곳이다. 그런 곳에 큰 호수가 조성될 수 없음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국왕, 관료, 선비들이 지어낸 초대형 호수의 환상은 거역할 수 없는 정치적 권위였다. 그들은 농업이 피폐한 원인을 수리 시설의 붕괴에서 찾고 허물어진 벽골제를 그 예로 들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복구공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조는 벽골제는 중국까지 널리 알려진 유명한 큰 호수로 그 크기가 김제와 주변 11개 군현에 걸쳤고, 허물어져 옛 모습을 잃었지만 복구하면 호남에는 다시 가뭄의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유생들은 벽골제를 복구하면 노령 이북은 중국의 소주·항주와 같은 풍요로운 지방으로 변할 것이라는 상소를 올리게 되었다.
중국의 동정호와 그 주변의 소상팔경은 자연의 아름답고 풍요로움에서만이 아니라 절세의 열녀와 충신이 순절한 고장이라는 도덕성에서 조선의 이상향이었다. 초대형 호수로 오해된 벽골제와 그 주변 지역이 국토 감각의 중국화를 이끈 촉매로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종교성에까지 중국적으로 변질하고 있었다.
환상은 냉엄한 현실 앞에서 절망이라는 호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런 면에서 환상과 절망은 밑바닥에서 통한다. 벽골제 환상은 조선왕조가 패망할 때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20세기 초 조선왕조의 패망과 더불어 중화사관 내지 소중화론의 역사관과 자연관은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그 역사적 유제나 유산은 21세기 초 오늘날에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벽골제가 큰 호수라고 생각하고, 그에 근거한 호서와 호남의 지역 별칭이 그 살아있는 증거이다.
호수를 낀 지역 별칭은 우리의 역사와 자연을 중국적으로 감각하고 해석해 온 우리의 실로 오래된 정치사 및 정신사와 궤를 같이하는 현상으로 그 역사는 청산되어야 하며, 그 환상은 깨어져야 한다.
이렇게 호남과 호서의 호수는 어디에 있는지, 하나인지 둘인지, 둘이라면 상호관계가 어떤지를 아무래도 잘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호수를 낀 지역 별칭은 15?16세기에 생겨났으며, 17?18세기에 일반화되었다. 거기엔 우리 조상이 보유한 세계관과 그에 상응하는 국토 감각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였다. 그 세계관과 국토 감각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환상이라 해도 좋을 그 무엇이 스며 있었다. 그것을 해명하고자 함이 이 책의 과제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그 별칭을 즐겨 사용하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조선 시대의 세계관과 국토 감각을 환상으로 계승하고 있단 말인가. 오늘날의 한국인은 아직도 중세적 환상에 젖어서 살고 있단 말인가. “호수는 어디에”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이 같은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여태껏 무심코 지나쳐온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가 잠복해 있다.
이후 고려왕조는 벽골제를 두 차례 수리하거나 증축하였다. 증축한 해는 1143년 인종 21년이다. 3년 후, 인종이 무당의 말을 듣고 내시 봉열을 보내 벽골지의 제방을 무너뜨렸다. 바로 그 전 해에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는데, 앞서 소개한 대로 벽골지의 제방 길이가 1,800보라고 하였다. 이처럼 두 기록이 ‘벽골지’라 했으니 12세기의 고려인들은 벽골제를 저수지로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환상은 성립해 있었다. 짐작컨대 그 환상에 입각하여 1143년 벽골제를 저수지로 복구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제방 안의 농지가 물에 잠기는 등 폐단이 심각하였다. 『고려사』는 인종이 무당의 말을 듣고 벽골제를 허물었다고 했지만 실은 엉터리 공사에 따른 문제점을 그렇게 호도하였을 뿐이다. 뒤이어 소개하듯이 이 같은 일은 300년 뒤에도 같은 양상으로 되풀이되었다.
기자조선의 설화는 기원전 1세기에 저술된 『사기』에서부터 전하고 있다. 이 조선과 기원전 4세기부터 요하 동쪽을 무대로 활동한,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조선이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문헌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조선의 설화는 언제부턴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중국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인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 조선왕조의 창업자들은 그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었으며, 그러한 환상으로 그들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하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영훈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1977~1982). 한신대학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 이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을 하였다.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이승만학당의 교장을 맡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사회경제사朝鮮後期社會經濟史』(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한민국역사』(기파랑, 2013), 『한국경제사』Ⅰ·Ⅱ(일조각, 2016), 『반일 종족주의』(공저, 미래사, 2019)가 있다. 청람상靑藍賞(한국경제학회, 1990), 봉래상蓬萊賞(봉래학술문화재단, 2008), 경암학술상耕岩學術賞(경암교육문화재단, 2013), 월봉저작상月峰著作賞(월봉한기악선생기념사업회, 2017) 등을 받았다.
목차
머리말
1. 시작하는 말
2. 벽골제의 정체
호남과 호서의 출현/요령부득의 설명/12개 군현에 걸친 호수/김제 일원의 지형/
한반도에서 가장 낮은 지대/김제평야는 원래 바다/하천을 막다니/
소양호보다 13배나 큰 호수/공중을 나는 물/전통 시대의 저수지/장생거는 수통이 아니다/
깨어난 방조제
3. 벽골제의 역사
마한 시대/삼국·고려 시대/용의 호수로 승화하다/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괴롭힌 공사/
벽골제 시상/소주와 항주로 변하리라
4. 소중화의 국제질서
동굴의 우화/조선왕조의 개창/연개소문을 지우다/기자의 나라/세종의 큰 공적/번국 나름의 뻣뻣함/ 중종의 시대/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혈통으로서 소중화 /큰 은혜에 보답코자/
눈물은 옷깃을 적시고/귀신과 제사/성시전도/정지된 시간/소중화 비교사
5. 소상팔경: 조선의 이상향
소상팔경/성공적 착지/동정호의 가을 달/구운몽과 춘매전/춘향전/심청전/곤륜산의 적장자
6. 20세기에 드리운 중화사관
소중화론의 해체/은둔의 일사들/개처럼 기어올라/신규식의 국궁/순망치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얼빠진 서울대학교/후조선 시대
7. 끝내는 말
요약/전투적 자유인을 위하여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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