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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저녁의 말들
반걸음 | 부모님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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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반걸음 시인선 6권. 임성용의 세 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서도 임성용 시인의 시적 감각은 '노동 현장'에 대해 예민한데 그것은 '노동 현장'의 '여전한' 비극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비극에 대해서 다른 눈을 추가한 것처럼 보인다.

(임금)노동 그 자체에 더해 자본주의 노동이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치고, 목숨을 해치는 무기를 만드는 등 지구와 지구에 깃들어 사는 목숨들을 앗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인식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목숨들, 존재들을 부단히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고 했던 고향에 대한 기억들이 여전히 시인에게 강력하기도 하다. 4부에 실린 작품들은 거개가 고향의 산천과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진술은 그 이면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이 웅크리고 있다고 읽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노동"이 가로막고 있다.

  출판사 리뷰

나의 노동으로

임성용의 세 번째 시집인 『흐린 저녁의 말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이 아닐까 싶다.

나의 노동은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노동과 생산은 너무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노동의 권리는 발전의 가치와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노동을 소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윤에 지배당한 생산은 파괴적 종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_「나의 노동으로」 부분

이번 시집에서도 임성용 시인의 시적 감각은 ‘노동 현장’에 대해 예민한데 그것은 ‘노동 현장’의 ‘여전한’ 비극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비극에 대해서 다른 눈을 추가한 것처럼 보인다. (임금)노동 그 자체에 더해 자본주의 노동이 나무를 베고, 땅을 파헤치고, 목숨을 해치는 무기를 만드는 등 지구와 지구에 깃들어 사는 목숨들을 앗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인식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목숨들, 존재들을 부단히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고 했던 고향에 대한 기억들이 여전히 시인에게 강력하기도 하다. 4부에 실린 작품들은 거개가 고향의 산천과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진술은 그 이면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이 웅크리고 있다고 읽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노동”이 가로막고 있다.
이 말은 “나의 노동”에 밴 어쩔 수 없는 비극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비극’은 두 가지 모습을 지닌 것 같다. 하나는 「나의 노동」에서 나타나듯 화자가 행하고 있는 자본주의 노동이 고향을 파괴, 삭제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노동이 구체적인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실존적, 역사적 조건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지금도 ‘여전히’ 말할 수 없이 비극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죽고 싶어도 사는 사람들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다
살고 싶어도 죽는 사람들
_「잘 가라, 세상」 부분

피 묻은 손이 피 묻은 기계를 붙잡는다
목숨은 멈출 수 있어도 공장은 멈출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비극은 증거를 지우지 않는다

살아 있는 눈에 마지막 노동의 흔적이 그어진다
나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으리라
_「비극을 위하여」 부분

인용한 구절만으로도 임성용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노동이 어떤 상황인지 여실하다. 무엇보다도 임성용 시인의 시는 시인 자신의 노동으로 지어진 것이기에 실감이 작품마다 꿈틀댄다. 그것이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슴에 물리적인 흔적을 남긴다.

존재의 겹침

그렇다고 해서 임성용 시인이 ‘비창’만 부를 줄 아는 것은 아니다. 4부에 실린 고향에 대한 서정적 시선과 해학 외에도 1부에 실린 다른 존재에 대한 섬세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고요히 잠든다는 것, 꿈같이 평화로운
내 얼굴은 한없이 투명하고 맑아졌어
내 눈에는 또 다른 눈들이 빛나고 있어
감지 못한 수많은 눈들이 깨어지고 있어
물방울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어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가슴, 한 방울 목마름
_「물방울 속에서」 부분

정적 이후
꽃의 맥박이 나를 깨운다
꽃의 숨결이 가슴을 누른다
꽃이 흔들리는 몸부림을 느끼고
나는 겨우 꽃과 함께 안심한다
_「꽃이 흔들리는 시간」 부분

물방울이나 꽃들에게 존재 이전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고금을 통한 시인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임성용 시인에게 특이한 것은 물방울이나 꽃 같은 다른 존재를 통해 신생의 순간을 경험한다는 점일 것이다. 「물방울 속에서」에서 “물방울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거나, 「꽃이 흔들리는 시간」에서 “꽃이 꽃 속에서 태어난다”는 진술이 바로 그 증거이다. 물론, 꽃의 경우,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이 운다”고는 하지만 ‘울다’라는 사건 자체가 신생의 전조이다. 임성용 시인의 이런 서정적 자아는 그의 노동시마저 존재로 향하게 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비참하게 사망한 김용균을 위한 「청년 김용균」에서도 임성용 시인은 존재의 겹침을 통해 김용균의 비극을 자신의 비극으로 전화시킨다. 사실 시는 이런 존재의 이전, 겹침을 통해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수련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역사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시는 이렇게 시의 일을 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임성용 시인의 『흐린 저녁의 말들』은 한동안 회자될 것이고, 또 널리/깊이 읽힐 가능성이 크다.

우아하게 하늘을 날아가는 두루미는
모든 힘을 저 가파른 허공에 쏟아붓는다

한 철 집을 떠나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두루미 울음이 목에 걸린다
―「두루미」 전문

붉나무는
봄에도 붉나무다
푸른 잎 무성한
여름에도 붉나무다

찬 바람 쓸고 가니
붉나무 붉어진다
얼어붙은 붉나무 잎
서릿발도 붉다

붉나무 가지가지
고요히 잠든 벌레들이
죽은지도 모르게 죽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태어나고

붉나무 붉은 그늘
멧새가 죽어 있다
홀로 사는 새는
가슴이 붉어져 운다
―「붉나무」 전문

내 영정을 들고
내가 걸어가네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부르르, 주먹을 쥐었다 펴면
핏빛 햇살 한 줌
저기 떨어진 내 머리
저기 끊어진 내 몸통을
내가 끌고 가네
맑게 빛나는 내 눈이
차갑게 감긴 내 눈을 보네
내 영정에 양복을 입히고
파란 넥타이 꿈을 동여매고
울먹울먹 절하네
스물다섯이 되지 못한
내가 먼저 가네
차마 돌아서지 못한 나를 안고
내가 울며 붙잡고 있네
―「청년 김용균」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성용
전남 보성 출생. 노동자문예 『삶글』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하늘공장』, 『풀타임』이 있고 산문집 『뜨거운 휴식』이 있다.

  목차

시인의 말_5

1부
두루미·12
푸른 구름 붉은 구름·14
사강의 새·16
붉나무·18
살다 보니·20
흰빛·22
해바라기·24
물방울 속에서·26
소나무가 있는 풍경·28
꽃이 흔들리는 시간·30
고래의 섬·32
토끼·34
사각형 하늘·36
한낮·38
컵·40
밤 11시 10분의 피자·42

2부
저곳·46
적암·48
굿당집·50
나는 광렬이가 좋다·52
달을 따라온 여자·54
달밥·56
우리 동네·58
늙은 남자·60
목·62
지느러미·64
천 개의 머리·66
유수지를 지나며·68
죄송한 슬픔·70
또 다른 방·72
사과나무·74
평야를 떠돌던 독수리가 사라진 후·76

3부
저녁이 있는 삶·80
청년 김용균·82
잘 가라, 세상·84
비극을 위하여·86
오리 모양의 변기·88
할리데이비슨·90
벤자민·92
나의 노동으로·94
봄밤·96
경비실 앞·98
풀밭 위의 식사·100
30년·102
돼지 등뼈·104
추억의 내부·106
아름다운 독재·108
백종원 김밥·110
피의 스크린 도어·112
비누 경찰·114
흐린 저녁의 말들·116

4부
동지팥죽·120
메주네떡·122
귀산리 옛집·126
서창득 씨·128
꽃순이 할매·130
장사·132
예당선생유허비·134
오막살이 집 한 채·136
쑥골·138
유동나무를 기억함·140
어머니의 도살·142
신라의 달밤·144
열애·146
호랭이를 만나면·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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