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역학 구조를 바탕으로 한국사에서 청일전쟁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은 당사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 전쟁의 직접적인 전장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국운도 바뀌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 전쟁들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다. 두 전쟁을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
결국 청일전쟁은 침략주의의 발로였다. 1871년 타이완 출병에서 시작되어, 1894년 청일전쟁을 통해 본격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종결된 것, 그것이 일본의 침략주의다. 그런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타자들의 전쟁’이라는 시선에서 보는 게 옳은 것일까?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 중의 하나다. 하나하나 쌓여온 이 흐름이 지금, 가까운 나라에도 먼 나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청일전쟁은 청국(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분리되던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일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의미 역시도 묻는다.
출판사 리뷰
청일전쟁은 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전쟁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침투하게 된 계기,
청일전쟁은 한국사에서 어떤 의미인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은 당사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 전쟁의 직접적인 전장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국운도 바뀌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 전쟁들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다. 두 전쟁을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 청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즉, ‘타자들의 전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시선은 어떠할까. 당시의 외무대신(외상) 무쓰 무네미쓰는 일본은 당시 청일전쟁이 “조선 정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을 위해 청군을 국경 밖으로 구축”하여 일어났으며, “청일 양국 간에 문제로 되어 있던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속(종주권) 논쟁이 그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시모노세키조약과 조일수호조규에서 조선이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국제 체제가 도입된 이 시기에는, 형식적으로 모든 국가가 자주국으로 취급된다. 즉 ‘정상적인’ 국가 간 조약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조선이 자주국이 아닌 면이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자주국으로 취급하려는 목적에 따라 붙은 내용이다. 일본은 이를 조선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에 독립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또 일본에 조선을 독립시켜야 할 권리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까닭이 조선의 독립에 있었다면, 조선이 청과의 관계를 끝내고 청국군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한 시점에서 전쟁을 끝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베이징을 위협하고, 강화조약에서 랴오둥반도와 타이완을 할양받았다. 청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베트남을 독립국으로 승인한 프랑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을 식민지화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조선의 독립’은 곧 식민지화를 의미했다.
결국 청일전쟁은 침략주의의 발로였다. 1871년 타이완 출병에서 시작되어, 1894년 청일전쟁을 통해 본격화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종결된 것, 그것이 일본의 침략주의다. 그런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타자들의 전쟁’이라는 시선에서 보는 게 옳은 것일까?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전통적으로 맹주 역할을 했던 중국에 승리한 일본은 강자로 부상했고, 일본 중심의 제국주의 지배 질서를 보편화해갔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압박을 가하는 이른바 삼국간섭이 일어나고, 일본 주도의 내정 개혁은 중단되는 등 일본 중심의 신질서는 그 한계가 뚜렷했다. 또한 동학 농민군, 즉 조선의 민중들은 반일본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청일전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 왜 조선과 일본은 왜 10년 후 꼭 같은 전쟁(러일전쟁)을 되풀이했는가.
현대 각 나라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 중의 하나다. 하나하나 쌓여온 이 흐름이 지금, 가까운 나라에도 먼 나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청일전쟁은 청국(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분리되던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일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의미 역시도 묻는다.
청일전쟁은 러일전쟁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다. 두 전쟁은 원인, 전개 과정, 결과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한국은 이 두 전쟁의 당사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 전쟁의 직접적인 전장이었으며, 그 결과 한국의 국가 운명도 바뀌었다. 우리가 이 전쟁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다음 해 4월, 사다 하쿠보 일행은 정부에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내탐서는 조선이 과거 통신사를 파견하고 예를 갖춘 이유, 조선과 쓰시마 사신의 왕래 예법, 조선 입국 때 허가를 받은 이유 등 외교 관례와 조선 육·해군의 시설과 장비 실태, 서울 근해의 항구,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 등 13개 항목을 정리하고, “조선과 관계 수립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별도로 “조선은 황국을 멸시하고 불손한 문자로 치욕을 주고 있다. …… 반드시 조선을 정벌하지 않으면 천황의 위엄이 서지 않는다”는 내용의 건백서를 제출한다. 조선의 실정을 살펴보니 정벌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정한론의 시작이다.
후쿠자와의 위와 같은 관점은 메이지유신 이전에 친서구적이며 아시아에 대한 침략주의 사상을 전파한 요시다 쇼인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요시다의 아시아 침략주의가 정한론과 타이완 정벌로 현실화했다면,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조선 침략과 청일전쟁으로 연결된다. 그가 청일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한 개화=서구화는, 그가 청일전쟁 때에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로, ‘문명국’ 일본이 문명화하지 못한 조선과 청국을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근대 일본의 문명개화와 아시아 침략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이 근대화로 나아가면서 아시아 침략 전쟁의 길을 걷는 이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성환
계명대학교 인문국제학대학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일본 쓰쿠바대학교(筑波大學)에서 일본정치외교를 공부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일본학회 회장, 대한정치학학회 회장,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 등을 지냈다.저서로 『근대 동아시아의 정치역학(近代東アジアの政治力?)』 『근대 일본과 전쟁(近代日本と戰爭)』 『전쟁국가 일본』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등, 공저로는 『일본 태정관과 독도』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독도 영토주권과 국제법적 권원』 『독도 영토주권과 국제법적 권원 Ⅱ』 『태평양전쟁(太平洋??)』 『제2차세계대전-종전(第二次世界大?-終?)』 『러일전쟁 연구의 신 시점(日露???究の新視点)』 『Rethinking the Russo-Japanese War 1904-5』 『근대 조선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近代朝鮮の境界を越えた人びと)』 등, 역서로는 『일본의 외교』 『이토 히로부미』 『일본 정치의 이해』 등이 있다.shl@kmu.ac.kr
목차
프롤로그 - 일본의 전쟁 DNA와 ‘승리 중독’
1. 서구에 굴복하고 조선을 정복하라
2. 청국과 일본은 대등하다
3. 청국과 일본 틈새의 조선
4. 청일 양국군, 조선에서 물러나다
5. 조선과 청국은 나쁜 친구: 일본의 전쟁 논리
6. 조선에 출병하라: 청일전쟁의 도정
7.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8. 일본은 진보주의의 전사다: 청일전쟁
9. 이제는 조선의 개혁이다
10. 베이징이 위험하다
11. 이 정도는 각오했다: 시모노세키조약
12. 일본의 진정한 적은 러시아다
에필로그 - 왜 역사를 반복할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