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살림지식총서 531권. 한반도는 전장이었고, ‘동맹’은 식민 지배로 돌변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러일전쟁과 그 사이의 한국. 삼국의 역학 구조 속에서 역사의 전모를 살펴본다.
출판사 리뷰
한반도는 전장이었고, ‘동맹’은 식민 지배로 돌변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러일전쟁과 그 사이의 한국―
삼국의 역학 구조 속에서 역사의 전모를 살펴본다
남하 정책을 위해 한국을 이용한 러시아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대륙국가가 된 일본
역사에 기록된 전쟁은 결국 모두 침략전쟁이다
청일전쟁에 비하면 러일전쟁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을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대립, 황화론 등으로 규정했고, 일본은 이에 대항해 전제 국가와 입헌 국가 간의 대립, 문명?정의?인도의 전쟁 등을 강조했다. 일본은 러일전쟁이 인종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에 사람을 파견해 여론 조성에도 힘을 썼다. 그러나 황인종 국가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은 세계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전 세계에는 사회진화론이 횡행했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이 제국주의 및 인종주의와 결합한 것으로, 적자생존?우승열패의 개념을 인간 사회와 국가 관계에도 적용한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은 진화가 덜된 뒤떨어진 곳이며, 구미 국가들은 진화가 된 우수한 사회(국가)라는 이념이 만들어졌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백인종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깨뜨렸다. 일본은 극동의 변방국에서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일본의 승리가 오랫동안 백인종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약소국가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해방의 희망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만 강조한 일본 예찬론은 일본의 침략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지역 또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거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나온 이야기다. 일본은 편중된 평가만을 받아들였고, 사회진화론의 ‘인종’을 ‘문명’으로 치환해 일본을 문명국가, 그 외 아시아 국가들을 야만 국가로 규정해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했다. 러일전쟁 후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확보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종주권과 보호권을 승인받는다.
한편 러일전쟁은 황화론을 현실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일본이 황인종의 맹주로서 백인종을 공격할 것이라는 막연한 인종주의적 불안감이 현실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일 감정이 고조됐고, 불안이 커졌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미일동맹이 미영동맹 이상으로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국가 간의 관계(외교)는 인종주의 같은 관념적인 편견을 넘어 구체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가 관계(외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좇았던 것일까. 한국은 청일전쟁 이후 중국과 일본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관심을 가졌다. 러시아를 향한 기대가 꺾이자 동질성을 가진 일본, 청일전쟁 후 군대를 철수하고 독립을 유지하게 한 일본에 조금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러일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본의 ‘보호국’이 되어 오랜 시간 나라를 잃은 설움을 겪어야 했다.
당사국을 제외하고 제삼국끼리의 전쟁과 외교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결정됐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모든 면에서 매우 닮은 두 전쟁을 겪으며 한국은 무엇을 배우지 못했고,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는 물론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세계 각국과의 관계를 돌아보기 위해서도 역사의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의 관점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보다 면밀한 탐구와 이해가 요구되는 이유다.
러일전쟁 발발 10년 전에 청일전쟁이 있었다.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은, 전쟁 상대국이 청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을 뿐 모든 면에서 매우 닮았다. 이 두 전쟁에서 한국(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동맹을 강요받았고, 이 두 전쟁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제삼국들끼리의 전쟁과 외교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제국주의 시대 약소국 운명의 전형적인 사례다.
메이지유신은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압력으로부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생존 전략이었다. 분권적인 막부 체제의 해체와 통일 국가 형성이 요구되었으며, 근대적인 서양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문물의 발전(근대화)이 필요했던 것이다.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령을 통해 신정부 수립을 선언함으로써(메이지유신) 천황 중심의 통일 국가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그 직후 메이지 정부는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개혁 정책을 모방해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다. 러시아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를 모방한 것이다. 상대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상대로부터 배운다는 논리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일정한 패턴이다.
중국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일본은 서양 국가들로부터는 그들의 이익을 지켜줄 ‘동양의 헌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것은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음을 뜻한다. 가쓰라 다로 육군대신은 “일본은 장래 문명의 동료로서의 시험에 합격했다”고 술회했다(山室信一, 2005). 일본은 백인들에 의한 삼국간섭의 ‘공포’를 벗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열강도 청일전쟁에 이어 다시 일본의 군사력에 주목한다. 열강이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유지하는 데 일본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성환
계명대학교 인문국제학대학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일본 쓰쿠바대학교(筑波大學)에서 일본정치외교를 공부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일본학회 회장, 대한정치학학회 회장,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 등을 지냈다.저서로 『근대 동아시아의 정치역학(近代東アジアの政治力?)』 『근대 일본과 전쟁(近代日本と戰爭)』 『전쟁국가 일본』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등, 공저로는 『일본 태정관과 독도』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독도 영토주권과 국제법적 권원』 『독도 영토주권과 국제법적 권원 Ⅱ』 『태평양전쟁(太平洋??)』 『제2차세계대전-종전(第二次世界大?-終?)』 『러일전쟁 연구의 신 시점(日露???究の新視点)』 『Rethinking the Russo-Japanese War 1904-5』 『근대 조선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近代朝鮮の境界を越えた人びと)』 등, 역서로는 『일본의 외교』 『이토 히로부미』 『일본 정치의 이해』 등이 있다.shl@kmu.ac.kr
목차
프롤로그 - 언덕 위 구름을 향한 꿈, 아시아 침략
1. 일본은 항상 러시아가 두려웠다: 근대 일본과 러시아
2. 러시아는 조선의 적인가 우방인가
3. 일본과 러시아 틈새의 한국
4. 시베리아철도가 위험하다: 러시아의 만주 점령
5. 전쟁으로 가는 길
6. 전쟁이냐 평화냐: 러일의 마지막 협상
7. 드디어 전쟁이다
8. 일본의 흥망이 달렸다: 쓰시마 해전
9. 한국에게는 제2의 청일전쟁이었나
10. 만주와 조선을 얻다: 포츠머스조약
11. 왜 일본이 이기고 러시아가 졌는가
12. 마지막 ‘제국’을 향하여: 한국 식민지화
에필로그 - 인종과 전쟁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