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인 최초 〈네이처Nature〉 지 논문 게재, 미국국립보건원 Merit Award 수상, 국제온열학회 스가하라상 수상, 북미온열학회 유진 로빈슨상 수상을 비롯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 고문(11년간)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호국영웅기장을 수여받은 송창원 박사. 60여 년간 암의 방사선 치료 효과 증진을 위한 방사선생물학 연구에 매진했고, 최근에 주목받는 방사선 수술 치료 효과의 과학적 기전을 규명하는 등, 이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방사선생물학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8세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했고, 과학자의 꿈을 키워 국비 원자력 유학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이후 세계적인 학자로 자리하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본다. 이 책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수호했고 일생을 과학 연구에 바친 과학자 송창원이 90 평생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이다.
출판사 리뷰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또다시 과학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방사선생물학자 송창원
암 치료 정복에 매진해온 90년 평생의 회고록
◎ 5년간 5개의 정부 아래서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소년 이야기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어떠한 누군가가 되겠노라고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꿈은 변하는 경우가 많고, 설사 꿈이 여전하더라도 온갖 사정으로 포기하고 꿈과 상관없는 직업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 송창원은 중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 꿈을 이루고 과학자로서의 일생을 살았다. 그는 현재 90세 나이에도 여전히 연구실에서 좋아하는 연구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 18세 육군 소위
중학교 6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했다.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작렬하는 최전선에 뛰어들어 큰 부상을 당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언제 완쾌될지도 모르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실의에 빠져 넋 놓고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지탱해준 것은 과학자를 향한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그는 대학 입시를 독학으로 준비한다. 상이병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원주 교외의 치악산 기슭, 작은 촌마을 피난민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적과 생사를 다투던 전우들 생각이 간절했지만 고지에서 총을 들고 적과 싸우는 대신, 산마을에서 책을 들고 대학 입시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밤마다 학교 교무실 겸 숙직실에서 밤을 밝히며 입시 준비에 매달렸다. 중학교 6년 중 앞의 1년을 태평양 전쟁에, 또 마지막 1년을 6·25 전쟁에 빼앗겼고 또 전쟁터에서 2년의 세월을 지냈음에도,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렇게 촌마을 교사로 일하면서 5개월간 촌음을 아껴가며 공부에 전념한 끝에, 기적처럼 서울대학교 문리대 화학과에 합격한다.
◎ 과학도의 꿈, 그리고 시작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중고등학교 6년간을 제대로 공부하고 들어온, 2살 어린 동급생들을 따라가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피나는 노력으로 학업을 마친 그는, 학문의 길을 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낮에는 서울대와 고려대 두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며 학부생들과 의예과 학생들의 실험을 지도했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의 시간 강사로 근무했다. 밤이 돼서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실험실에 돌아와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6·25 전쟁의 여파로 당시 대학들의 연구실은 황무지 상태였다. 연구에 필요한 시약이나 실험기구 거의 전부를 주머닛돈으로 사야 했다. 화학 약품이나 실험기구를 판매하는 상점들은 구멍가게 수준이었고, 방문 상인에게 필요한 약품을 부탁하면 그것을 받기까지 며칠에서 몇 달이 걸렸다. 유리 실험기구는 직접 만들거나 유리 가공공장을 찾아가 주문해야 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석사학위를 위한 연구는 가슴을 뛰게 하였다. 세포생물학은 세포 안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연구한다. 세포는 한없이 작지만 그 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생물학자들은 분자 크기의 탐사선을 세포 속으로 들여보내고 그것이 보내오는 시그널을 받아서 분석하는, 그 속을 항해하고 그 안의 것들을 만져보는 사람들이다.
송창원은 성공적으로 석사학위 연구과제를 수행해내고, 비로소 과학자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더 큰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에게 길이 열린다. 전후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그에 걸맞은 연구 인력을 양성하려는 목표로 시행된 제1차 국비 원자력 유학장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한 것. 그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으로 유학하여 방사선생물학을 공부한다. 그런데 1년으로 예정된 학업은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귀국이 무산돼 미국에 남게 되었다. 그것이 이후의 삶을 암 치료를 위한 방사선생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보내게 된 시작이다.
◎ 과학자 송창원
미국에서의 첫 번째 직장 아인슈타인 메디컬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는 백인들을 따라가려면 아니 그들보다 우수한 연구자가 되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뜻이 있고,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는 성경 말씀을 믿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목적지를 향해 남들이 걸어갈 때 자신은 뛰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 60년간, 매일 12시간 이상 연구에 몰두했고 하루 24시간은 늘 모자랐다. 그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1968년 그는 한국인 최초로 〈네이처〉에 연구논문이 게재되는 쾌거를 이룬다.
송창원 박사는 암 치료법 연구에 일생을 걸고 몰두해왔다. 어떻게 하면 암의 방사선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방사선생물학에 전념했다.
한국 정부의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온 원자력 유학생 1호로서, 그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20명이 넘는 한국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와 대학원생들에게 유학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의 실험실에 와서 배우고 함께 연구했던 인재들은 이제 곳곳에서 한국의 방사선 치료학계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조국 대한민국에 방사선 치료가 정착하는 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된 것을, 그는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 많은 조력자들, 그리고 약간의 행운 덕분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300여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학계는 그 결과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학회 회장으로 선출했고, 수많은 상장과 감사장을 주었고, 많은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초대했고, 미국과 해외 학회 및 연구소와 학교 등에서 연사로 초청했다. 과학도로서의 그의 업적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방사선 종양 학회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것이다.
송창원 박사는 이미 10년 전에 미네소타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했지만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일을 놓지 않은 현역이다. 코로나 시국인 요즘에는 대면 강연 대신 온라인상으로 학회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를 강연자로 초청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 것이고, 학회에서 나를 볼 수 없게 될 것이고, 또 내 이름 Chang W Song이 들어간 새 논문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잊혀갈 것이다. 과학자로 살아오는 동안, 여러 가지 시련과 좌절도 많았다. 그러나 만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때도 또다시 과학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본문 347쪽, 〈회고록을 마치며〉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송창원
193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참전, 18세에 국군 소위로 임관돼 보병부대 소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최전선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공산군과 싸우다 전상을 당해 의병 제대한 뒤, 부상의 후유증을 극복하며 과학자를 향한 꿈을 키운다. 남다른 학구열로 독학한 끝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입학‧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제1호 대한민국 국비원자력유학생으로 선발된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 유학, 방사선생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아인슈타인 메디컬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암의 방사선 치료 효과 증진을 위한 방사선생물학 연구에 매진했고, 최근 주목받는 방사선 수술 치료 효과의 과학적 기전을 규명했다. 1968년 〈네이처Nature〉 지에 한국인 최초로 논문이 게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세계적 의학 전문지에 30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하는 등, 이 분야에서 지대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방사선생물학자다. 또한 그동안 20여 명의 한국의 방사선 전문의들에게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여 국내 방사선 치료의 정립에도 크게 기여했다. 미국국립보건원 최고의 영예인 Merit Award, 북미온열학회 로빈슨상, 국제온열학회 스기하라상 등을 수상했고,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일본 간사이의과대학, 대만 양명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낸 송창원은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송창원 박사 주요 약력1950년 학도지원병으로 6·25 참전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 졸업195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졸업(석사)1959년 국비 원자력유학장학생으로 도미 유학1964년 아이오와대학 이학박사(방사선생물학)1969년 버지니아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1970년 미네소타의과대학 방사선치료과 조교수1973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초빙교수198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고문(11년간)1988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초빙교수1988년 미국국립보건원(NIH) Merit Award 1991년 중국 시안암센터 방사선치료과 명예교수1994년 북미온열학회 회장1995년 일본 간사이의과대학 초빙교수2000년 북미온열학회 유진 로빈슨상 수상2001년 미네소타대학교 의료원장 우수교수상2005년 대만 양명대학교 초빙교수2006년 미네소타대학교 은퇴, 명예교수 임명2008년 국제온열학회 스가하라상 수상2014년 한국원자력의학원 고문2016년 대한민국 호국영웅 기장 수여받음2019년 미주 서울대학교총장 학술상 수상
목차
추천사_유병팔, 김귀언, 김재호, 송진원, 김태환
제1부 춘천의 아이
1장 출생과 성장: 출생/가족 이야기/유년기
2장 초등학교 시절: 춘천소학교 입학/태평양 전쟁과 전시 총동원령/창씨개명/일본인 교사들/그리운 추억
3장 중학교 시절: 입학과 근로봉사/그날의 수제비 맛/8·15 광복/미군의 진주, 일본의 퇴거/샘밭의 추억/해방 후의 혼란
춘천중학교 생활/독서의 즐거움/과학과의 만남/파란만장했던 과학전람회 관람 여행
제2부 나는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입니다
4장 6·25 전쟁 발발: 전쟁의 파고/6·25 전쟁 발발, 그리고 피난/학도병으로 38선을 넘다/탈출/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가족과의 재회, 다시 이별
5장 육군종합학교: 육군종합학교를 향하여/대기훈련소/육군종합학교 25기생/18세 육군소위
6장 전선의 포화 속에서: 또다시 전선으로/대전차 부대 소대장/현리전투/보병부대 소대장/우리 소대장은 예수쟁이/포화에 쓰러지다
7장 부산으로 후송: 제15육군병원/육군 원호대/대학 진학의 꿈/제대/국민학교 교사, 그리고 대학 입시 준비
제3부 과학도의 꿈, 그리고 시작
8장 대학과 대학원 시절: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대학원 석사 논문/원자력과의 인연/국비 원자력 유학장학생 선발시험 합격/결혼
9장 미국으로 떠나다: 아이오와를 향해/우물 안 개구리/방사선생물학연구소/갑상선 연구/아내와의 재회/아내의 석사 논문
10장 아이오와 시티의 추억: 유학생 생활/도둑맞은 음반/첫딸 페기가 태어나다/감격의 졸업식/아이오와를 떠나며
제4부 과학자 송창원
11장 필라델피아의 아인슈타인 메디컬센터: 방사선이 피부혈관에 미치는 영향 연구/피부 줄기세포의 DNA 합성연구/필라델피아에서의 추억
12장 리치먼드의 MCV: 버지니아 의과대학으로 옮기다/암의 발현과 치료/방사선 치료 및 방사선생물학/암의 혈관 연구/리치먼드의 추억
13장 미네소타 대학교: 미네소타 대학으로/암 속의 환경 연구/백혈병의 전신 방사선 치료 연구/온열 치료 연구/송창원, 머리가 돌았나/메트포르민 연구/새로운 방사선 치료법의 기전 연구
제5부 송창원의 사람들
14장 송창원 연구실: 인종의 균형을 맞추어라/한국의 방사선 치료를 세계 무대로/스가하라 교수와 일본인 친구들/나의 연구비
15장 미네소타와 나: 미네소타의 한인사회/미네소타의 벗들/우리 아이들 이야기
회고록을 마치며_후배 과학자들에게/나의 꿈, 나의 연구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