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해방 후에도 여전히 억압과 질곡에서 헤매던 여성이 근대 개화기를 맞아 해방되었다는 통설에 의문을 가지고, 근대가 여성에게 과연 발전만을 가져왔느냐하는 세계 여성역사학자들의 공통된 물음에 동참하여 그렇지 않다는 답을 이끌어 냈다.
출판사 리뷰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한국 여성사를 새롭게 쓴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그녀의 이야기!
이 책은 필자 개인의 역사이면서, 한국여성사와 한국여성 해방이론 형성의 격랑에 동승하여 때로는 맞서기도 하며 때로는 휩쓸리기도 했던 공적 부문의 이면사裏面史이기도 하다.
해방 후에도 여전히 억압과 질곡에서 헤매던 여성이 근대 개화기를 맞아 해방되었다는 통설에 의문을 가지고, 근대가 여성에게 과연 발전만을 가져왔느냐하는 세계 여성역사학자들의 공통된 물음에 동참하여 그렇지 않다는 답을 이끌어 냈다. 이는 저자의 '특별하지 않은' 삶의 경험으로 도출된 것이다. 즉 저자는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열악했던 시기는 조선조 사회가 아니라 식민지 자본주의화가 진전되는 일제강점기였음을 밝혔다. 1922년 일본 민법에 종속되면서 조선 여성들이 법적 무능력자가 되었음을 논증한 것이다. 이로써 ‘새 공동체주의 여성해방론’을 제시하고 있다.
한 여성학자의 최초 회고록 출간!!!
이 책은 한 여성학자의 개인사의 기록인 회고록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 여성사 서술에서 뿌리깊이 뻗어있는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바로잡은 새로운 한국여성사 쓰기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개인사가 모여서 한 민족사가 되고, 지방사가 모여서 한 국가의 역사를 이룬다.
제 1부 <내가 살던 고향은>은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안동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고향 안동이야기를 담았다. 안동은 고구려 후예로서 고구려 문화와 풍습이 면면히 내려온다. 추석 명절보다 단오절을 더 크게 기념하여 여성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고, 남성들은 씨름대회를 열고 그네뛰기 대회도 열었다. 고려 공민왕이 원나라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와서 친히 쓴 <安東雄府> 현판은 당시 안동군청에 걸려있었고, 공민왕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안동으로 피신 온 것으로 해석했다. 그 때 노국공주가 개울을 건너야 할 때, 동네 처녀들이 허리를 굽히고 등을 잇대어 다리를 만들어 그 등을 밟고 건넜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놋다리밟기 풍습도 소개했다. 임청각에 살았던 선배의 초대로 임청각에서 놀았던 일도 회고하였다. 1962년 영동선이 개통되어 교통의 중심이 안동에서 영주로 옮겨간 것하며, 1956년 초등학교 6학년, 안동 인근에 36사단이 주둔하러 들어올 때 환영식에서 찬가로 합창했던 기억도 되살렸다. 여고시절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36사단 장병들을 위해 단체 출장김장 담갔던 일도 추억했다. 퇴계와 이육사를 배출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글 곳곳에 숨어 있다. <할머니와 내 악동시절>은 한 편의 서정적인 동화를 읽는 듯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여중 3학년 때 대대장으로서 사복차림을 하고 친구들과 몰래 극장관람 하다가 적발되어 대대장에서 직위 해제되는 과정은 참으로 아슬아슬한 흥미를 돋우어 준다.
1961년 5.16 군사정부가 들어섬으로 철도원이었던 아버지가 타의로 퇴직하였을 때, 전공과목을 인문학부에서 간호학(자연과학계열)으로 바꾸어, 즉 제1회 국가고사를 치루고 연세대 간호학과에 지원했으나 실패하였다. 제1회 국가고사 선발은 전국대학의 정원만큼 학생수를 뽑았기에,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에서 정원미달 사태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1962년 11월에 치른 제2회 국가고사에는 대학정원 보다 30% 많게 학생들을 뽑았다. 제1회 국가고사에선 필기시험 점수에다가 50점의 체능시험 점수를 합쳐서 선발했고, 그 다음 해에는 25점 만점의 체능시험 성적을 필기시험에 합하였다. 저자는 무난히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4년의 대학과정을 밟았다. 63년 봄 학기에 입학하여 67년 2월 졸업할 때까지 캠퍼스 생활은 <학관에서 보낸 나의 청춘-영문과 재학시절>에 잘 서술되었다. 대학 2학년 때 영어 말하기에 도움을 얻으려고 친구 김길자와 함께 문산에 있는 미군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할 때의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배꼽을 움켜잡게 할 만큼 폭소를 자아낸다. 즉 양변기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때에 하이힐을 신고서 양변기에 올라갔던 일화 말이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 영학관 기숙생활에서 접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 가운데 지금도 저자의 마음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기도문을 소개(77~78쪽)한다. 대학 4년의 영문학교육 평가를 희곡선생님의 고별강연사를 빌려서 다음처럼 요약한다.
..... “비록 영문학을 수박 겉핥기로 섭렵하였지만, 여러 유형의 주인공들과 작중인물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면서, 남과 함께 울 줄 알고 남과 함께 웃을 줄 아는 인간미(humaneness)있는 인격체로 설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라는.
162학점을 따고 졸업한 뒤 얻은 첫 직장은 당시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은 인력수출회사였다. 저자가 보아도 ‘멋쟁이’인 여성들이 미국 가정의 가정부로 취업하기 위해 미국인 초청장과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다음 남영나일론을 거쳐 대한가족계획협회에 근무했다. 27세에 일본에서 열린 ‘서태평양지역 가족계획 세미나’에 참석하러 동경에 가서 아사쿠사 야시장에서 만났던 일본 여점원의 미담은 누가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사연이었다. 저자가 물건 값을 치르고 거스름 돈을 받아오지 못해서 노심초사 끝에 나흘 만에 다시 찾았더니, 그 가게 여점원은 흰 봉투에 거스름 돈을 넣어서 며칠이나 기다리다가 저자가 나타나자 말없이 봉투를 꺼내주었다(95~96쪽). 1973년 보건사회부가 인구문제 연구를 위해 젊은 인재들을 뽑아서 미국 유학보내는 사업이 있었다. 저자가 시험(영어)성적에서 1등을 했으나, 최종 선발과정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가정에 들어앉는다. 그러면 국가적인 손실이다’면서 저자를 떨어뜨리고 대신 남성을 합격시킨 사건이 있었다. 이는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받은 첫 사례였고, 저자의 아메리칸 드림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1973년 영국 웨일즈 카디프대학 인구문제연구소에서 1년의 디플로마 과정을 밟았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인구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여성지위 향상과 직결된다는 결론을 얻었고, 돌아와서 여성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가정과 직업을 양립하기에는 사회제도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따라서 결혼하고 첫째 아이 출산, 백일 지나고, 둘째 아이 임신사실을 알고서 그렇게도 굳게 결심했던 가정과 직업의 양립을 저자 스스로 깨고 말았다. 6년 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입학했다. 얼마 뒤 남편의 사업 부도가 났으나, 공부를 마치겠다는 일념으로 B급 조교를 하며, 공부를 계속한 내용은 ‘남편 사업부도와 주부 대학원생의 삶’에 잘 서술되어 있다.
석사 논문: <한국전통사회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는 첫 번째 논문심사에서 떨어졌으나, 때마침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주관한 제1회 여성문제 현상논문 공모에서 <한국여성운동 이념 정립을 위한 비판적 고찰>이 당선작 없는 가작 1석으로 당선되어 석사학위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한국전통사회 여성들은 비록 공적분야인 정치와 학문에서 배제되었으나 생산자였기 때문에 가족사회에서 상당한 실권(power)을 지녔고, 여성도 재산권을 행사하였다고 결론 지었다. 정치와 학문에서 배제는 조선조 여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사적인 여성 보편의 문제였다. 석사학위는 받았으나 여성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제1세대 여성연구자들은, 조선조사회 여성들을 실권을 행사했다고 평가하는 저자를 경원시 했고, 외국 학위를 가진 중견 여성연구자들은 서양급진주의 이론을 비판하는 점 때문에 또한 저자를 고깝게 여겼다. 때문에 이들 두 그룹은 저자를 여성학계에서 배제하는 일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다섯 차례 도전에도 실패했다. 그 즈음 한국여성개발원은 개원 5주년 기념 제2회 현상논문공모를 했다. 이번에는 당선작으로 뽑힐 욕심으로 응모를 했고, 최우수상 없는 우수상 2편 가운데 1편으로 당선되었다. 한창 가족법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때 <한국가족법 개정운동의 쟁점 분석과 개선 방향>이 제목이었다. 한국여성의 지위가 가장 낮았던 시기가 바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민법에 따라 조선여성이 법적 무능력자가 되었음을 밝혔다. 박사과정 입학 여섯 번 째 도전은 주변의 권고에 따라 정외과를 지원했고, 동양정치사상 전공의 박충석선생님 제자로 입학하였다. 정외과 학위논문을 앞두고 여러 곳에서 ‘송시열의 여성관’을 쓰라는 등 압박이 있었으나, 끝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한국여성해방이론-유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로》를 박사 논문으로 통과시켰다.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한 이화여자대학교에 감사한고 저자는 덧붙인다.
한국여성사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열악했던 때를 흔히들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조사회로 꼽았다. 주로 일제강점기에 여학교를 다녔던 제1세대 여성연구자들과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들의 주장 때문이다. 1세대 여성연구자들은 조선어와 조선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고 대신 일본어와 일본사를 배웠고 식민사관에 학습된 세대였다. 이 책은 이런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 한국여성의 삶이 가장 피폐했던 때가 바로 일본민법이 지배했던 일제강점기였음을 밝혔다. 서양이론에 밝은 자들은 한국역사 꿰뚫기에 약하고 한국사에 밝은 자들은 서양여성이론 이해에 약하다. 저자는 서양과 한국 사료를 두루 섭렵하여 하나의 한국여성해방이론을 구축한 최초의 여성학자이다.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으로 지목하는 레즈비언주의자들에게도 “남성은 여성의 적(敵)이 아니라 여성운동의 상대역(target audience)이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과정에서 맞부딪힌 무형의 탄압에 저항하며 정면 돌파한 이야기들도 쏠쏠한 재미를 더해 준다.
저자의 마지막 소망목록(bucket list)은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쓰기이다. 이 소망목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누군들 예측할 수 있으랴!
한국여성사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열악했던 때를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조사회로 꼽는다. 주로 일제강점기에 여학교를 다녔던 제1세대 여성연구자들과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들의 주장 때문이다. 1세대 여성연구자들은 조선어와 조선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고 대신 일본어와 일본사를 배웠고 식민사관에 학습된 세대였다. 이 책은 이런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 한국여성의 삶이 가장 피폐했던 때가 바로 일본민법이 지배했던 일제강점기였음을 밝혔다. 서양이론에 밝은 자들은 한국 역사에 약하고 한국사에 밝은 자들은 서양여성이론에 약하다. 저자는 서양과 한국 자료를 두루 섭렵하여 하나의 한국여성해방이론을 구축한 최초의 여성학자이다.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으로 지목하는 레즈비언주의자들에게도 “남성은 여성의 적敵이 아니라 여성운동의 상대역(target audience)이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과정에서 맞부딪힌 무형의 탄압에 저항하며 돌파한 이야기들도 쏠쏠한 재미를 보태어 준다.
-머리말 중
당시 한국일보사는 해마다 <미쓰 코리아 선발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 개최 실황을 TV에서 방영할 때 상당한 시청률을 올렸다. 15명의 결선진출자들이 뽑히고 난 뒤, 당시 유명한, 김동건, 변웅전 등 아나운서가 즉석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심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품과 교양 테스트에 해당하였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라고 아나운서가 물으면 이들 예비 후보들은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속했다.
언젠가 나영균 선생님은 학생들이 듣는 앞에서 “수재 학생들을 뽑아서 바보를 만들어서 졸업시킨다”고 한탄하셨다. 나는 의아해하면서 ‘이처럼 똑똑한 영문과 학생들을 왜 바보라고 표현하실까’라며 그때는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가정에 안주하는 고급인력의 낭비를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한국 가족계획사업은 여성의 지위향상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여성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는 여성의 평균 교육연한, 경제활동 참가율, 평균 수입과 더불어 여성의 법적 지위를 살펴야 한다. 협회는 여러 학자들 – 인구분야, 경제분야, 사회분야?을 초빙하여 크리스천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한국사회의 가까운 미래 전망을 묻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때 사회학자 이효재 교수는 “딸도 친정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당시로는 파격에 가까운 선언을 하여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던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숙자
1944년생.안동여중·안동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다.동 대학원에서 여성학석사·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다.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연구원을 역임하다.저서로는 《한국여성해방이론-유토피아에서 해태로토피아로》, 《한국여성학연구서설》, 《세종의 국가경영》(공저)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Ⅰ부 내가 살던 고향은
1 할머니와 내 악동惡童 시절
2 안동여중·안동여고 시절
Ⅱ부 청운靑雲의 꿈을 펼칠 서울로
1 촌뜨기, 서울내기로 살다
2 학관에서 보낸 나의 청춘–영문과 재학 시절
3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근무하다
Ⅲ부 아메리칸 드림 vs 브리티시 드림
1 아메리칸 드림, 산산이 부서지다
2 브리티시 드림(British Dream)을 이루다
3 넓은 세상을 구경하다
Ⅳ부 결혼과 직업은 양립할 수 없는가
1 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맞다
2 어머니의 소천所天
3 결혼은 이상과 현실의 타협이다
4 육아育兒는 하찮은 일인가?
Ⅴ부 애플컴퓨터 별자리 점괘와 역마살
1 여성학과에 입학하다
2 남편 사업 부도와 주부 대학원생의 삶
3 애플컴퓨터 별자리 점괘와 역마살
Ⅵ부 여성사·여성학이론과 씨름하다
1 여성학은 학문인가 도그마(dogma)인가
2 한국여성개발원 현상논문 공모에 연이어 당선되다
3 여성학 강사로 발품을 팔다
4 국제 여성학대회에 참석하다
가. 88년 미네소타대학 제10회 미국여성학대회
나. 89년 방글라데시 여성대회-여성의 몸
다. 90년 뉴욕 헌터대학 세계여성학대회
라. 뉴저지 럿거스대학 셰계여성역사학자 대회
Ⅶ부 정치학과 여성학을 잇다
1 ’67 영학회(영문과 동창회) 활동
2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다
3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연구원 생활
4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의 어머니
Ⅷ부 노년기-삶을 관조觀照하다
1 하나님은 진실을 아신다(God Sees the Truth)
2 청산도 여행–이인자 김숙현 정령자를 회고한다
3 70년 친구 김정자를 추모한다
4 제주도 여행을 추억한다
5 탭댄스 배우기 소망목록(bucket list)을 포기하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