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영어 공포증 탈출, 정답은 없지만 방법은 있었다
영어 낙제생 출신이 영어로 강의하는 강사가 되기까지!
1. 저자 소개저자는 현재 행정안전부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은 주로 지자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공무원, 중앙부처 공무원 중 재난, 민방위, 비상대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받은 후 돌아가 본인의 업무를 잘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공직생활의 시작1993년 2월, 서른 살의 나이에 비교적 늦게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에 들어오기 전 보험회사에 다니다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기 때문이다. 총무처에서 공무원을 시작했고 인사업무를 많이 했다. 2018년에 파리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 돌아온 이후 재난업무를 맡아 재난수습지원과장, 안전개선과장, 재난복구정책관, 재난협력정책관을 거치며 재난부서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부서들을 짧게 다 거쳤다. 특히 저자의 공직 경력 중 특이한 점은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두 번 근무한 것이다. 해외에도 두 번 근무하는 행운도 있었다. 2010년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고, 3년 뒤 파리에 있는 OECD 한국대표부에 또다시 근무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3. 영어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반평생 동안 영어 콤플렉스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저자는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우연히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싱가포르에 간 지 1주일 만에 저자는 영어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6개월 동안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영어가 현지 외국인의 코칭과 자신의 집념 덕분에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생활영어의 달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후 OECD 한국대표부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는 전 세계의 다양한 영어와 수준 높은 고급영어까지 섭렵하게 되고, 이제는 외국인들 앞에 서서 유창한 영어로 재난 영어 강의를 하기에 이른다. 처우와 조직의 경직성으로 인해 많은 MZ 세대들이 중도 퇴직하고 공직 진출을 꺼리는 요즘, 이 책의 저자인 김재흠 원장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조직을 위해 성과를 낸다면 공직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고 있다.
4. 영어 꼴찌였단 말이 사실인가?그렇다. 고등학교 3년간의 영어점수가 '가, 가, 가, 가, 미, 수'로 낙제 수준이었고, 1983년 학력고사 때 영어가 50점 만점에 12점에 불과했다. 공무원 시험을 봤을 때도 영어점수가 65점으로, 다른 과목 평균 85점에 미치지 못했다. 그처럼 영어가 반평생 동안 그에게 콤플렉스였다. 영어만 보면 속이 메스껍고 울렁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실력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5. 그런데 어떤 계기로 영어를 시작하게 되었는가?2010년 7월, 그가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오준 대사를 모시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대사를 모시고 어딘가를 다녀오던 중에 기초적인 영어조차 못 알아들어서 굉장히 창피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그를 계기로 그는 단단히 각오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그때 나이 47세였는데, 그전까지는 영어를 한 마디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갖가지 방법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한 그는 외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국 재난관리 체계’를 영어로 소개하며 강의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때 필리핀에서 온 아리안느라는 친구를 만나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면서 영어 실력이 점차 늘게 되는데, 뒤늦게 영어에 흥미를 느낀 그는 2022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지 32년 만에 대학원에도 진학하였다. 세종에 있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인데, 모든 수업이 영어로 이뤄져서 그곳에 지원하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은 외국 학생과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그룹토의도 갖곤 하는데, 젊은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몸과 마음도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6.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싱가포르에서 2년간 근무할 때 그에게는 생활영어를 수준급으로 끌어올려 준 토마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싱가포르 대사관에 근무하던 리서처였다. 그와 함께 업무를 보면서 영어 소통이 안 되자 참으로 힘들고 답답했다. 그는 그에게 영어공부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을 그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다녔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물론 비용은 김원장이 모두 부담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약 1년 정도 붙어 다니며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말도 제법 잘하게 되었다.
“저 자신이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예전에는 싱가포르 정부 기관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무서워서 회피하고 메일로만 대화했는데,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니까 이젠 일부러 접근하여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사람이 변하게 되더라고요.”
이 말을 하는 김원장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과 함께 행복감이 가득하다.
7. 영어를 공직에 어떻게 접목했는가? 싱가포르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다시 한국에서 보직을 맡은 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원단이다. 이후 청와대에서 2년 6개월 동안 근무했는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싱가포르에서 봤던 ‘스트레이트타임즈’라는 영자신문을 읽으며 영어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로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마침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한국대표부에 자리가 하나 났다.
순간, 다시 한번 영어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서 근무하다 보니 그동안 공부해 온 생활영어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유럽국가 사람들이 하는 영어는 악센트가 달라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도 너무나 빨리 이야기해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새 지나가 버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영어를 공부하면서 다른 부처 동료들과 영어토론도 하고 동아리방도 만들었다. 동료의 남편이 영국사람이었는데, 그에게서 1대1 과외수업을 받으면서 영어실력을 쌓았다. 업무는 이메일로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직접 만나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대화하고 의사소통하는 데 자신감이 생겨났다.
8.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로 강의까지 한다고 하던데...이후에 저자는 한국에 돌아와 재난 관련 부서의 과장을 거쳐 재난복구국장으로 승진한 후 재난 영어 강의를 하게 된다. 인사 부서에 근무하다 보니 강의할 기회가 전혀 없어서 처음으로 강의를 하게 된 것인데, 그게 바로 재난 영어 강의다. 처음에는 영어로 대본을 써서 읽듯이 진행했고, 그 준비를 위해 한 달 정도 야근을 해야만 했다. 두 번째 강의는 재난협력국장 시절 코로나 19 업무를 담당했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 중 드라이브 스루 같은 것은 여러 해외 나라의 호평을 받은 것인데도 그에 대해 홍보가 잘 안 되어서 그는 ‘한국의 코로나 19 대응 체계 및 전략’이라는 주제로 홍보자료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말레이시아 과장급 공무원들이 교육받는 과정에서 영어로 강의하게 된다.
9. MZ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MZ 세대들이 공무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초임 보수가 상당히 낮고 아주 중요한 연금 혜택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직은 여러 다른 좋은 혜택이 있다. 신분보장이나 육아휴직 같은 복지제도가 민간기업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 자신의 일에 열심히 하다 보면 대학원 진학이나 자기계발 기회도 많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조직에 기여를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 조직에 기여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공직은 가장 중요한 게 국민에 대한 봉사다.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정책을 만들고 보람을 찾는 것이다. 저자 역시도 공무원 초기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초창기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조직에 잘 적응하면 더 큰 보람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된다.
10. 영어와 관련된 에피소드OECD 대표부 근무 시절 학부모 모임에 갔을 때의 일이다. 김원장은 동양인 부부에게, “내 아내는 도마뱀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란 말을 영어로 말한 적이 있는데, 상대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는 ‘도마뱀’이란 단어의 강세를 잘못 붙인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생물학 지식을 총동원해 도마뱀 단어를 설명하니 그제야 상대가 알아들었다. 정확한 영어 단어 스펠링도 중요하지만 강세를 정확히 발음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그때 느꼈다고 김원장은 말한다.
11. 앞으로의 비전한국의 K재난 관리체계 같은 것을 퇴직하고서도 외국에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기본 재난 이론이나 현장의 경험을 국내 교육생들에게도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유튜브도 해보고 싶다. 또 통번역대학원에 가서 공공행정분야 전문 통역사나 번역사로도 도전해 보고자 한다.
12. 공무원이 가져야 할 원칙 같은 것이 있다면?일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조직에 도움이 되는 공무원이 되고, 모든 일이 결국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일한 것이니만큼 공직자로서의 방향성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간과하지 말고 항상 열심히 들으려고 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팀 단위로 하기도 하고 결국 상사나 동료, 부하들과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저자는 영어를 처음 배우던 중학생 때 이후로 나이 50이 다 될 때까지 영어는 자신에게 아킬레스건이었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철옹성과도 같았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에 공개된 그의 성적증명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교 3년 동안의 영어 성적이 그야말로 최하위 낙제점수였다. 그런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해외에 근무하면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영어로 업무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그러다 보니 저자는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래서 50이 다 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영어책을 펼치게 되었고,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정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보통사람으로선 정말 하기 힘든 것을 실천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CNN 뉴스를 듣고, 영어신문을 읽고, 계속해서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함으로써 영어 회화가 자신이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발전했다. 그런 생활에 젖다 보니 영어에 재미를 느꼈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어 실력은 급속도로 향상되기 시작했다.
오늘에 이르러 저자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영어의 달인’이라고 한다. 그런 호칭을 듣기까지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뒤늦게 영어공부를 시작한 학습 초기 상황을 그는 일종의 고문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동안 저자가 영어공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가는 말이다. 그는 50이 다 된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한 이후 아직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고, 외국인 교육생들 앞에 나서서 영어로 우리나라 재난관리 체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2022년 2월엔 영어로만 수업이 이루어지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에도 입학했다. 또 정년 후에는 TED 강의와 통번역사를 꿈꾼다고 한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열정에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의 길목을 지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의 삶엔 행복만 존재하지 않는다. 억울하지만 고통의 한계를 시험하듯 버겁고 어려운 일들은 늘 발생한다. 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희망의 구멍을 찾든, 행운의 기회가 오든, 마음을 다잡든, 절망 같은 시간을 버티며 지내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저자의 남다른 열정과 인내력, 그리고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룬 이러한 성과들은 쉽게 뛰어들었다가 조금만 힘들고 벅차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야말로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훌륭한 책이다.

지금도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회만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영어공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면 더욱 신이 나서 얘기한다. 어떤 때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커피숍으로 이동해 계속 무용담을 이어간다. 그동안 게을러서 30년 넘게 미뤄뒀던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게다가 일부러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골랐다. 사이버대학에서 통역과 번역공부도 하고 있다. 사실, 기관장이다 보니 점심 약속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한 번은 영어 동아리를 위해 꼭 시간을 비워둔다.
재난영어 강의를 하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똑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한국어 강의에 비해 몇 배는 더 힘들다. 솔직히 1주일에 세 번씩 걸려오는 전화영어가 귀찮을 때도 있다. 저녁 약속이나 수업이 있는 날에는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전화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한다. 매일 아침 CNN이나 BBC를 꼭 시청한다. 아무리 바빠도 10분 정도는 시간을 낸다. 생각해 보면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변하게 만들었을까? 거의 반평생 동안 영어 콤플렉스를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두고 살았다. 물론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변화의 시작은 일 때문이었다.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에서의 경험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아마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땐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할 동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이후 청와대에서만 3년 가까이 근무했다. 공무원 세계에서는 제일 바쁘고 힘들다는 곳에서 말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3년의 세월이면 영어에 대한 갈구를 놓아 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투리 시간이라도 짜내 신문을 읽거나 뉴스방송을 들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업무를 하는 데 영어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재난업무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힘에 벅찼다. 재난현장 출동, 집중호우 피해 복구, 코로나19 대응 등 맡은 업무들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속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수십 번을 생각해 봐도 답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재미였다. 물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넘어야 할 고비는 분명히 있다. 최소한 몇 번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영어를 대하라는 것이다. 당장 수능을 보는 것도 아닌데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하루에 10분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들리지 않은 단어나 문장이 내일 바로 들릴 수 있다. 물론,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안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들리게 된다. 그리고 희망적인 것은 점점 학습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단어가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면 나중에는 기사 한 편을 읽을 때 사전을 뒤적여 찾아야 하는 단어는 한두 개로 줄어든다. 뉴스방송도 마찬가지다. 오늘 10%밖에 못 들었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쑥 올라간다. 처음에는 뜻을 파악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앵커의 발음과 악센트까지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요즘은 BBC나 CNN을 들으면 90% 이상은 들린다. 발음 때문에 이해를 못 하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사람 이름이나 지명 같은 것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영국 발음에 취약하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BBC 방송을 자주 들으면 영국 발음에 익숙해질 수 있다. 대체로 BBC 앵커들은 CNN 앵커들에 비해 말을 천천히 한다. 그래서 초보자라면 CNN보다는 BBC를 적극 추천한다. 나도 최근에는 BBC를 더 자주 본다. CNN은 국내정치 문제와 관련된 콘텐츠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어떤 때는 방송 내내 트럼프 얘기만 한다. 그에 반해 BBC 프로그램은 훨씬 더 다양하고 중립적이다.
요즘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KDI 대학원에 있는 한국 교수들도 모두 영어를 잘한다. 첫 학기에 박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경쟁심이 생겼다. 나도 영어강의를 하는데 저 정도 수준은 돼야겠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목표가 더욱 높아진 것이다. 아마 평생을 계속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공자가 하신 옛 말씀이 생각난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라(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흥미를 느끼는 것이 최고의 공부방법이다.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알려준 비법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인이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승진이나 해외유학 때문인 경우도 있고, 해외여행을 가서 현지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영어공부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목적이 다르듯이 각자 공부하는 방법도 다르다. 학원에 가는 사람, 유튜브를 활용하는 사람,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간에 자기가 좋아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최고이다.
그리고 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원어민처럼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전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로 소통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세계인구가 46억이 넘는다. BTS, 손흥민 선수,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인터뷰에서 영어로 자신 있게 수상소감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우리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 저절로 엔도르핀이 솟구친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라. 대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라. 이 글을 읽고 오늘 TV 채널을 돌려 BBC나 CNN을 시청하는 독자가 한 분이라도 있다면 나로선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