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현심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안현심의 시 정신은 무엇보다 거짓되지 않은 가치, 곧 올바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안현심이 추구하는 응축과 압축의 시적 방법은 과장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은 그의 진솔한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안현심의 시를 보면 안현심이라는 사람이 보인다.
출판사 리뷰
지극하고, 무구하고, 순수한 가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현심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그래서 정말 다행이에요』가 시인동네 시인선 216으로 출간되었다. 안현심의 시 정신은 무엇보다 거짓되지 않은 가치, 곧 올바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안현심이 추구하는 응축과 압축의 시적 방법은 과장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은 그의 진솔한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안현심의 시를 보면 안현심이라는 사람이 보인다.
■ 해설 엿보기
아프지 않고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 서럽지 않고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는 힘들다. 안현심 시인도 아프고 서러운 가운데 저 자신을 키워온 사람이다. “홀로 저녁밥을 먹으며” 자주 “소주를 마”시고는 해온 사람이 그라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누구에게도 내색하고 싶지 않은 가시”(「보여줄 수 없다」)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가시는 늘 수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때의 수많은 생각은 항용 심미적 상상력으로 승화되고는 한다. 안현심 시인은 바로 이때의 심미적 상상력을 응축하고 압축해 시로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의 시에 부연과 나열보다는 응축과 압축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생략과 배제의 언어에 기대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방법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응축과 압축의 정신은 무엇보다 거짓되지 않은 가치, 곧 올바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비롯되는 듯싶다. 그렇다. 지극하고, 무구하고, 순수한 가치를 심미적 언어로 실천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그가 시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바윗덩이가 가로막아도 돌아서지 않았다/에둘러가지 않았고/폭약을 터뜨리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로부터 기인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지치지 않고 “오롯이 곧게 파고”(「동굴」)든 것이 그의 삶이라는 것이다.
바람의 소리를 빌려
게송을 외웠어요
가는 손가락으로 물을 길어 올려
묵은 때를 벗겼어요
허랑한 말
송곳 같은 말 버리고
가난한 눈을 연민했더니
멀리서도 빛났어요,
희디흰 어깨
― 「배롱나무」 전문
이 시의 화자는 ‘배롱나무’이다. 그러니만큼 이 시에는 배롱나무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이 시가 배역의 화자를 택하고 있는 까닭, 곧 ‘배역시’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시에서의 화자인 배롱나무는 ‘객관상관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허랑한 말/송곳 같은 말 버리고/가난한 눈을 연민”해 온 것이 실제로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줄곧 허랑하지 않은 삶, 지극한 삶, 정성스러운 삶을 추구해 온 사람이다. 이러한 삶이 최선을 다하는 삶, 곧 혼신을 기울이는 삶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시를 통해 그가 “일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호박꽃과 일벌」)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음의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반성과 성찰의 감정에 집중하기 쉽다. 반성과 성찰의 감정은 뒤를 돌아다보며 미래를 전망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의 시에 “돌탑이 무너졌다/훼손당한 뼛조각이 산비탈을 뒹굴었다//누군가의 소망이/너에겐 우상(偶像)이 되었구나”(「돌탑에 대한 이분법」)와 같은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 있는 것도 얼마간은 이에서 비롯된다.
반성과 성찰의 마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저 자신의 마음을 절차탁마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가리킨다. 저 자신의 마음을 절차탁마하며 살아가는 삶은 저 자신의 마음을 수행하고 수도하며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그가 추구하는 수행하고 수도하며 살아가는 삶은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삶, 지극하고, 무구하고 순수한 삶을 견지하려는 의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학원 공부할 때
바윗덩이가 가로막아도 돌아서지 않았다
에둘러가지 않고
폭약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견고한 저 너머
맑은 숨이 반짝이고 있어,
망치질 한 번에 숨을 고르고
망치질 한 번에 땀방울 찍어내며
오롯이 곧게 파고들었다
빛을 구걸하지 않으면서
뚜벅뚜벅 길을 열어가는 동안
정(釘)을 쪼는 소리,
밤하늘에 부딪혀 쨍그랑거렸다
― 「동굴」 전문
구석기 시대 인류가
그림 일기장에서 말했어요
오늘은 바위산에서 염소를 잡았어요
다섯 명이 사냥을 나갔는데
내가 쏜 화살촉이 심장을 뚫은 것 같아요
뿔이 멋지게 휘어진 대장 수컷이었죠
닷새 후엔 세 마리쯤 더 잡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부족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까요
풍요를 빌던 오래된 기억은
집단무의식이 되어 내리흘렀죠
저길 보세요,
암각화에서 기어 나와
고비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염소와 양 떼
― 「암각화」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안현심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불교문예》로 시인이 되고, 2010년 《유심》으로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시집 『아직 그 소년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녀를 다비하다』 『프리마돈나, 조수미』 『상강 아침』 『연꽃무덤』 『하늘사다리』 등과 시선집 『남편이 집을 나갔다』, 에세이집 『현심이』, 문학평론집 『바이칼호수, 샤먼바위를 그리워하다』 『물푸레나무 주술을 듣다』, 현장강의록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를 출간했다. 풀꽃문학상 젊은시인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남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강의 전담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한밭문화예술교육원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목차
제1부
동굴13/돌탑에 대한 이분법14/배롱나무15/고라니의 봄16/호박꽃과 일벌17/암각화18/숨비소리19/서커스 소녀20/열흘 후21/비밀을 말해주세요22/최초의 시23/소24/이구아수 폭포25/떡갈나무 하느님26/늙은 맛27/전염28
제2부
탑골공원31/전태일32/들풀거미33/그 사내와 살래요34/당산나무35/탁란(托卵)36/금강초롱꽃37/우리처럼38/외동서39/꽃가루에게40/상수리나무41/미역할매42/지렁이43/땅벌44/슬픈 희망46/아기 멸치에게47/신춘문예48
제3부
가족의 변천사51/새처럼52/하지(夏至)53/찔레순54/거미와 바람55/야생 피에로56/바얀 작58/치자색59/호저(豪猪)60/남근상61/열락(悅樂)의 길62/막고굴의 은유64/지귀섬65/모과나무 스님66/푸레독67/참선하는 바위68/다람쥐의 건망증70
제4부
산사람73/황구렁이74/산솜다리꽃75/운주사 고랑76/아무르호랑이78/태고사 가는 길79/조선소나무80/천지(天池)81/뾰족하다82/죽을 만큼83/푸른 시간84/할(喝)85/증상86/그곳에 가면87/파랑도88/안테키누스89/보여줄 수 없다90
해설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