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학고을 충청지부 글모음.말 없는 위로 강선희이름을 붙일 수 없는 슬픔의 역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그대 옆 좌석에 앉아줄게요어떤 위로도 찾지 못한 날엔 어깨 위에 올린 손, 그 따스한 온기로 그대를 데우렵니다눈물을 삼키며 떨고 있을 때 그대와 가만히 눈빛만 나누어도작은 바람조차 조용해지고물결은 갯바위를 스쳐가겠지요그대의 숨소리가 사막에 선인장꽃을 피워낼 테니까요.
나의 어른 강송희 올해 여름은 꽤나 무겁고 질척하다. 가장 가벼운 옷을 고르고 골라 걸치고 집을 나서지만 작은 양산은 금세 작열하는 태양 앞에 무기력해지고 뜨거운 열기는 나의 정수리를 따끈하게 데운다. 버스 정류장의 철판 지붕은 데워질 만큼 데워진 지 오래. 그 아래 오 분쯤 서 있다 보면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지고 특히나 얼굴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핸드폰 액정에 비친 내 얼굴엔 활짝 열린 모공이 인사를 한다. 덥다. 우습다. 몇 년 전만 해도 더위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철이 없었던 나는 장엄한 여름의 태양을 상대로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하늘의 뜻을 안다고들 하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엔 웬만한 어려움은 참아낸다. 아니 ‘참아야 어른이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타이른다. 어른, 얼마나 하늘의 뜻을 알아야, 얼마나 세상을 알아야, 얼마나 나를 참아내야 어른인 걸까? 망중한 어른이 된다는 것,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철이 든다는 것은 인내와 희생이 기꺼이 행해지는 마음이며 이런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태가 아닐까. 각자가 느끼는 철든 어른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이리 생각한다. 철듦은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랜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항상 자신을 반추하며 내려놓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다 보면 어느덧 어른이 되고 그 어려운 ‘철’이라는 것이 들지 않을까.이런 나의 철든 어른, 나의 어머니. 그녀의 삶은 드라마 각본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고 대하소설 한 편을 쓰기에도 충분히 넘쳐나는 고달픈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도 그녀의 삶을 떠올리면 낡고 빛바랜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그녀. 그 철듦은 그녀를 평생 인내하며 희생하게 하였고 그런 그녀는 한 번도 남을 탓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지 않았다. 그저 지독한 고통의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오직 침묵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 그녀가 살았던 삶을 ‘나는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지만 결코 버틸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지난한 삶을 완생할 수 있었던 그녀만의 무기는 바로 철듦이었을 것이다.
추워서 좋았다는 덕유산 산행 김영봉최근 덕유산을 춥게 다녀왔다. 전국에 한파 경보가 내리고 모두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던 때였다. 오래전부터 자주 같이 산을 다니던 형이 지인을 통해 숙소까지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한파 때문에 취소할 수도 없어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 돼야 했다.새해가 시작되고 1월 중순이 넘은 토요일이었다. 전날부터 무주 지역의 기온이 영하 두 자리 숫자를 알리고 있었다. 새해 들어 처음 가는 산행이라 살짝 들떠 있기도 했지만 눈 쌓인 산이 더 구미가 당겼다. 매년 한 번씩은 눈 쌓인 산을 밟아 보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밀어붙였다.출발 당일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전날에 챙긴 산행 장비를 다시 점검하면서 날씨 걱정이 겹쳤다. 호되게 추운 날은 틀림없어 겨울 산행의 기본을 충실히 따랐다. 아이젠과 등산 스틱을 챙긴 후 옷을 입었다. 겨울 산행에는 무조건 두꺼운 외투가 아니라 바람을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외투가 좋다. 안쪽으로는 차례로 땀을 잘 흡수하는 반팔 옷부터 얇은 긴팔 옷을 여러 겹 입었다.같이 가는 형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안 보였다. 촉박한 시간이 내 눈을 멀게 해서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집안을 빙빙 돌다가 발견된 핸드폰을 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다음에는 등산화가 애를 먹일 차례인 것 같았다. 원래 신으려던 등산화가 어디에 숨어 있어서 숨바꼭질하자는 거였다. 그럴 시간이 없어 눈에 보이는 녀석에게 성급히 발을 넣었다. 마음이 먼저 달리고 신발은 뒤따라오기 바빴던 순간이었다.간신히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예매한 시간에 버스를 타고 나니 출발하기까지 부지런 떤 피곤이 몰려왔다. 꿈도 꾸지 않는 잠에 취했다가 눈을 떴다. 무주까지 와 있는 버스에서 조금 더 버티자 목적지인 구천동 탐방센터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추운 날씨였지만 너무 단단히 각오했던 탓인지 체감되는 기온은 견딜 만했다.편의점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말을 할 때마다 나오는 허연 입김은 마치 끓는 주전자가 내는 수증기와 닮았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오늘의 산행이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년사까지는 잘 다듬어진 길로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선택할 일이 남았다. 향적봉까지 직접 갈 것인지, 돌아가는 길로 갈 것인지. 우린 마지막 지점인 설천봉에서 4시 30분이 마지막인 곤돌라를 탈 생각이다. 그 시간에 맞춰 계산해 보니 돌아가더라도 괜찮을 듯싶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거친 산행이 시작되었다. 전날에도 내린 눈이 산행길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 쌓인 눈 풍경과 작은 나뭇가지에 피어 있는 눈꽃을 보느라 발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찬바람도 이 풍경을 방해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을 접어두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처음 예정지인 오수자굴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굴인데 거대한 바위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이 안쪽은 깜깜했다. 올라오느라 지친 몸 때문에 안내 글과 사진 한 장을 끝으로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왠지 굴 안으로부터 나를 부르는 듯한 끌림이 있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굴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걸 안 보고 갔으면 큰일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쪽 곳곳에서 투명하게 솟아오른 얼음 기둥들이 즐비했다. 하늘을 향해 자라는 고드름들. 그곳은 종교가 없어도 경건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문학고을 충청지부 글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