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 학생이 사라졌다. 시신은 1년 뒤 뒷산 등산로에서 발견되었다. 실종과 발견 사이에는 엇갈린 증언들이 있고, 증언 사이에는 뒤틀린 기억들이 있다. 『낭만 선생이 말하길, 그녀가 잃은 것』은 한 여고생의 실종과 죽음을 둘러싼 심리 추리 소설이다. 냉소적인 목격자의 진술, 공포에 잠식된 가해자, 진실을 감춘 어른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주술적 방법으로 사건을 해부하는 '낭만 선생'. 소설은 범인을 추적하는 대신 각자가 잃어버린 것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서혜명이라는 이름은 사람마다 다른 무게로 남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닿을 수 없었던 이상(理想)이었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품격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그녀가 사라진 순간, 그들도 무언가를 잃었다. 잃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출판사 리뷰
“기억은 증거가 되지 못하고,
침묵은 결백이 되지 않는다”
완벽했던 그 학생은 왜 사라졌는가
서혜명은 누가 봐도 좋은 아이였다. 성적이 우수했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친구들을 돕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 애의 부모는 전교생 앞에서 자랑스러운 딸을 공개적으로 찬양했다. 그리고 그 애가 사라지자, 같은 부모는 아직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딸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낭만 선생이 말하길, 그녀가 잃은 것』은 이 모순으로부터 시작된다. 완벽해 보이는 인간의 삶과, 그 삶 이면에서 조용히 소진되어가던 한 사람의 실제. 1인칭 목격자 이재서의 냉정하고 예리한 진술은 이 간극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서혜명은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활용되었다. 그리고 활용되는 사람은 결국 소진된다. 시험지를 대신 풀고, 과제를 혼자 떠안고, 집에서는 수십 시간 분량의 타인의 숙제를 처리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애의 얼굴. 소설은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는지를 조각조각 복원해낸다.
다섯 개의 챕터, 하나의 유실
소설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의 제목은 공통적으로 '~에 대해'라는 형식을 취하며, 추상의 감정, 망자의 부활, 낭만 선생, 모순의 논리, 그리고 그녀가 잃은 것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는 단순히 사건의 시간순을 따르지 않는다. 각 챕터는 서로 다른 시점과 서로 다른 화자를 통해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동일한 사실이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격자는 침묵했고, 가해자는 공포에 갇혔으며, 어머니는 위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재수사를 의뢰받은 '낭만 선생'은 이 모든 진술의 균열을 읽어낸다. 낭만 선생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 최대의 발명이다. 그녀는 형사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다. 스스로를 '술사(術士)'라 칭하며, 프로이트 시대의 정신분석적 암시 기법을 변형한 일종의 충격요법을 구사한다. 그녀의 방법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균열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추리가 심리치료의 언어로 작동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침묵한 자들이 잃어버린 것들
소설이 결국 질문하는 것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다. '그녀가 사라지는 동안 각자는 무엇을 잃었는가'다. 사건에 얽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혜명의 실종에 관여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잃었다. 어떤 사람은 이성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1년이라는 시간을 잃었으며, 어떤 사람은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끝까지 자각하지 못했다.
낭만 선생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녀의 방법은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혜명을 통해 무엇을 기대고 있었는지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빈자리가 함께 남아 있었다.
그런 너희가 정말로 밉구나. 어째서 내 딸이 죽어야 하고 너희가 살아남아야 했는지 모르겠어. 혜명이가 살아 있었더라면 너희보다 훨씬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 거야. 너희가 대신 죽었더라면 내 딸은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너희를 전부 희생해야 한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할 거야.
그 어리버리한 점원이 말하길, 편의점에 들어온 혜명이는 대뜸 카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고 해요. 한참을 아무런 주문도 없이 그러고 있어서 당황한 점원이 몇 차례 말을 걸었는데도 그 애는 한숨만 몇 번 내쉬었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대요. 그러다 이번에는 돌연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비장한 표정을 하더니, 담배 한 갑을 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교복은 정신없이 챙겨 입은 것처럼 셔츠의 단추가 한 개씩 밀려있었고 단정하게 걸치고 다니던 넥타이는 좌우 균형 틀어진 채로 대충 걸쳐만 뒀었죠. 마이와 치마에는 여기저기에 신발 자국 같은 게 남아 있었는데 아마 벗겨둔 걸 밟아댔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몸을 감싼 섬유의 안쪽에는 털어내도 지워지지 않을 시퍼런 흔적들이 남아 있었겠죠.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찬샘
1996년생. 호원대학교 법경찰학과 졸업.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 주로 추리소설을 읽는다. 더불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괴로워하면서도 희망을 찾는, 조금 삐뚤어진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목차
1 추상의 감정에 대해
2 망자의 무활에 대해
3 낭만 선생에 대해
4 모순의 논리에 대해
5 그녀가 잃은 것에 대해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