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대표서정산문선8』이 발간되었다. 산문선7은 수필선에 김봉천 김종호 김지성 배동칠 안영호 안옥희 유임순 윤규수 하성수 홍만희, 소설선에 김관식 이병렬 임부택 작가의 작품이 게재되었다. 한해동안 열정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한 대표 작가들의 자선 대표작을 묶어서 펴낸 『한국대표서정산문선8』은 2019년부터 매해 발간하고 있다.목포의 눈물 김봉천한국 대중가요 1세대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을 아시는지? 목포의 눈물은 이난영 특유의 마치 비염을 앓는 듯한 유성음에다 마음속 몰래 감춘 슬픔을 이기지 못해 구곡간장 올올이 끊어 내듯, 서러움에 멍든 가슴 토막토막 저미어 내듯, 한산 모시실 한 올 한 올 자아내듯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옛 가요(트로트)이다.1935년 한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곡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목포의 눈물>이 발표되었다. 목포 출신 이난영(본명 이옥례)의 나이 19세 되던 해였다. 이 음반은 무려 5만 장이나 팔린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지금 현대적 상황에 비교하면 500만 장에 견줄 만한 판매량이었다. 이 한 곡의 노래는 일제 압박에서 절규하던 우리 민족을 온통 눈물로 위안받게 하였고, 남도 목포항을 애틋한 낭만과 추억의 항구로 되살아나게 했다. 목포의 눈물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가못 오는 임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목포의 눈물은 당시 오케레코드사와 조선일보 공동 주최로 제1회 향토 노래 현상 모집 기획으로 가사를 공모했는데, 목포 청년 시인 문일석(본명 윤재희)이 응모하여 무려 3000여 명이 지원한 가사 중에서 1위로 당선된 작품이다. 작곡자 손목인(본명 손득렬 1913~1999)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일본 고등음악학교 작곡과를 졸업했다. 평소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아코디언 연주를 즐겼다. 그의 대표곡은 목포의 눈물을 비롯하여 <타향살이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1934>, <사막의 한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1935>, <짝사랑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1937>, <아내의 노래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 심연옥 노래 1951>, <슈샨보이이서구 작사 손목인 작곡 박단마 노래 1952> 등이다.가요 연구가 이동순은 그의 저서 ‘한국 근대 가수 열전’에서 이렇게 절찬絶讚하고 있다.
참된 섬김과 나눔 김종호어느 해 여름, 독일 하노버의 저녁 공기는 유난히 맑고 서늘했다. 지인의 초대로 방문한 한 가톨릭 신자 가정. 낡았지만 온기가 감도는 거실에는 마흔 후반의 공장 노동자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일곱 명의 아이가 나를 맞이했다. 평범한 다둥이 가족인 줄로만 알았던 그 현관문 안쪽에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시린 성찰과 마주하게 되었다. 일곱 아이 중 막내,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한국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당시 나는 한국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평생을 ‘봉사’에 헌신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해맑은 미소 앞에 서자 묘한 당혹감이 엄습했다. 통역을 통해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미 여섯 명의 자녀가 있는데, 어째서 이 장애가 있는 아이까지 입양하셨나요?”아내의 대답은 담백해서, 더 시리게 다가왔다.“여섯 아이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기쁨으로 얻은 선물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정작 사회에 봉사할 시간이 늘 부족했지요. 그래서 장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봉사라고 믿었어요.”그 곁에서 남편은 고개를 떨구며 덧붙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난민 센터에 봉사해야 하는데, 아이들 때문에 고작 하루밖에 시간을 내지 못해 부끄럽다.”‘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섬김과 나눔의 봉사인 줄 알았던 내게,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떼어내 ‘빈자리’를 만드는 그들의 모습은 거룩한 경외감 그 자체였다. 그들의 고백은 내 삶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우리 기관 설립 이념, 첫 번째가 ‘참 나눔과 참 섬김’이었고, 나 또한 지체장애인으로서 장애 아동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주변으로부터 ‘좋은 일 한다’라는 칭찬을 듣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 내 안의 위선을 보았다. 과연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진정으로 섬기고 있었던가. 사회복지를 외치면서도 결국 ‘대가’를 바라는 업무를 하고 있었을 뿐, 이들처럼 순수한 나눔을 실천한 적이 있었던가. 심장이 뜨끔거리는 아픈 충격이었다.
홍시 김지성영광읍에서 해풍 내음을 맡으며 30리쯤 더 들어가면, 막힌 숨이 탁 트이듯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설경이 매화의 자태처럼 아름답다 하여 이름 붙은 ‘설매산’ 자락 아래, 70년대 후반에는 초가 마을들이 끊어질 듯 이어져 있었다. 새마을 운동과 함께 닦아 놓은 신작로가 황토와 자갈이 뒤섞여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던 시절이었다.유년의 그 고장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순수했고, 보랏빛 동화 같은 동경이 깃든 곳이었다. 학교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걸어야 했던, 가난하지만 정겨웠던 시절이었다.고무신을 신고 신작로를 걷다 보면, 툭 튀어나온 자갈돌에 발을 헛디뎌 꾸지뽕 가시에 찔린 듯 아파 화들짝 놀라던 때가 많았다. 어쩌다 트럭 한 대가 흙먼지를 몰고 지나가면 온몸이 황토 먼지에 덮이고, 숨이 막혀 고구마를 급히 먹다 체한 듯했다. 하지만 신작로는 드넓은 우주 속 미지의 전파처럼, 우리 유년의 마음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동경의 길이었다.바람이 세차게 불면, 추수를 마친 들판은 황량했고, 단추 풀린 허수아비의 겉옷이 하얀 억새꽃처럼 나부꼈다. 배고픈 참새들은 창공을 무리 지어 어지럽게 날다가 전신주 위에 나그네처럼 앉아 쉬곤 했다. 해풍이 불어오면, 전신주 위를 지나는 가느다란 전선은 하모니카의 낮은 ‘도’ 음처럼 미묘하고 슬프게 울었다.그 소리는 마치 전근 가는 여선생님의 마지막 인사 같기도 하고, 농촌 풍경을 사랑한 반 고흐조차 그리지 못한 덜 마른 수채화 같은 장면 같기도 했다.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했다. 왜냐하면 그날은 국어 시간에 ‘발전’의 반대말을 묻는 쪽지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답은 ‘퇴보’였지만, 반 전체가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화가 잔뜩 난 담임 선생은 반 전체 학생들의 손바닥을 사정을 두지 않고 버드나무 매로 세 대씩 때린 후, 숙제를 잔뜩 내주고 수업을 마쳤다.친구들과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마른 잔디와 솔방울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며 놀았다. 봉덕산 아래의 그 산은 야트막한 민둥산으로, 신작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서쪽 들판 끝에는 칠산 바다가 붉은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고, 동쪽으로는 조그맣게 학교가 보이며, 황톳빛 신작로가 들판 한가운데 오솔길처럼 펼쳐져 있었다.생기를 잃은 코스모스 줄기는 갈색으로 말라, 하늬바람에 힘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때,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 한 대가 신작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을 어귀에 멈춰 섰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내렸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사람이 대여섯, 초립을 쓴 사람이 두 명, 등짐을 멘 사람이 다섯 정도 되어 보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부택
『서정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목차
| 한국대표서정수필선 |
김봉천 10 목포의 눈물
17 통영, 한산도, 그리고 번지
없는 주막
김종호 28 총각 주례자의 회상
30 참된 섬김과 나눔
김지성 36 홍시
41 통도사의 향기
배동칠 46 시간을 걷는 길(경주, 포항 여행)
52 나를 그려 본다
안영호 60 강진 오일장 추억 여행
65 행복한 삶
안옥희 74 은비녀
75 부적합
유임순 82 일본은 일본이었다
88 한여름날의 국문학 기행
윤규수 102 삶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107 자연별곡自然別曲
하성수 114 일상의 일화- 건망증(1)
118 기억력(2)
홍만희 122 노래가 내게로 와 시간이 흐른다
126 어떤 인연
| 한국대표서정소설선 |
김관식 134 고종명
이병렬 154 는개가 내리던 날
임부택 180 도로徒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