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계이 시인의 시의 생명성은 과장된 언어보다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시인의 시는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사물과 낮은 숨결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접근한다. 또한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일상의 미세한 장면들을 통하여 존재의 깊이를 포착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 속 풍경은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매우 평범한 사물과 계절과 몸짓이 시적 중심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시간의 흔적이 은밀하게 스며 있다.
출판사 리뷰
김계이 시인의 시의 생명성은 과장된 언어보다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시인의 시는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사물과 낮은 숨결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접근한다. 또한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일상의 미세한 장면들을 통하여 존재의 깊이를 포착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 속 풍경은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매우 평범한 사물과 계절과 몸짓이 시적 중심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시간의 흔적이 은밀하게 스며 있다.
특히 김계이 시인의 시의 핵심 구조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순환성과 기억의 변화 과정이다. 이 시집에서 시간은 매우 복잡한 곡선을 보여 준다. 과거는 현재 속으로 되돌아오고 현재는 이미 미래의 상실을 예감한다.
『아침의 문장』은 그렇게 끝없이 뜨는 아침의 시선으로 지켜낸 사람들의 언어이다. 시인은 “시는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의미를 찾기보다 머물렀던 자리의 온도를 기억하려 했다.”라고 했다. 시인은 우리를 끝내 살아가게 하는 것은 거대한 확신이나 찬란한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오래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은 문장 하나라는 사실을 말하듯 이 시집을 통해 오래 닳은 손등, 저녁 밥상의 김, 바람 스쳐 간 담장, 이름 없이 흔들리던 꽃 한 송이를 비춘다.
― 이지선 시인┃해설 중에서
■ 해설 일부
빛이 세계를 읽기 시작하다
이지선
한 편의 시가 인간에게 어떻게 전달되어 지는가? 오래된 질문이지만, 오늘의 문학 앞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되묻게 된다. 거대한 이념은 해체되었고 세계를 설명하던 언어들은 점점 효력을 잃어간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폐기되는 시대 속에서 시는 자꾸만 가장 느리고 가장 작은 자리로 밀려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시는 다시 시작된다. 김계이 시인의 『아침의 문장』은 그 작고 낮은 자리에서 천천히 세계를 복원해 나가는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즈 글릭의 문학 세계이다. 노벨위원회는 글릭의 시 세계를 두고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개별적 존재를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글릭의 시는 거대한 사건이나 화려한 수사를 통해 인간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 계절, 상실, 침묵 같은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요소들을 통하여 인간 내면의 균열과 회복을 응시한다. 김계이 시인의 『아침의 문장』 또한 이러한 계보와 깊은 친연성을 형성한다. 루이즈 글릭의 시가 상실 이후 남겨진 인간의 내면을 절제된 언어로 응시했다면, 김계이 시인의 시 또한 과장된 비극이나 감정의 폭발 대신 오래 퇴적된 체온의 흔적을 따라간다. 특히 작은 사물과 계절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두 시인의 서정은 묘한 친연성을 형성한다. 다만 김계이 시인의 시는 서구적 개인주의의 고독에 머물지 않고 기억과 생활의 결을 더욱 깊이 품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 서정을 보여준다.
김계이 시인의 시는 세계를 해석하거나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보고, 스며들고, 견디며 머문다. 시인의 시 속 사물들은 배경뿐 아니라 기억과 시간의 숨결을 저장하는 장소들이다.
무엇보다 이 시집의 중요한 시선은 설명보다 여백에 가깝고 주장보다 체온에 가깝다. 독자는 지나가 버린 시간의 그림자, 이름 없이 견뎌낸 하루들,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을 조용히 비추는 시인의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빛의 밀도 속에서 시는 다시 인간이 살아갈 이유를 밝히기 시작한다.
1.
김계이 시인의 『아침의 문장』에서 1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의 근원성에 있다. 시에서 생명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나 감상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육체, 시간과 언어가 서로 얽혀 생성되는 처음의 근원에 가깝다. 특히 제1부의 시편들은 ‘태어남’‘생명’이라는 근원적 순간을 보여주면서 인간 존재의 시작과 회귀를 서정적으로 탐색한다.
첫 작품 「나도 세례한다」는 이러한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삼신할매 품, 뽀얀 양수 속에 눕는다”라는 시어를 통해 생명의 기원을 한국적 원형 상상력 속에서 복원한다. 여기서 삼신할매는 민속 신앙을 뛰어넘어 생명의 생성 원리를 상징하는 모성적 근원을 보여준다. 또한 ‘세례’라는 종교적 의식과 ‘양수’라는 육체적 이미지를 결합함으로써 삶과 죽음, 탄생과 회귀가 하나의 흐름 안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존재를 단절이 아닌 순환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사유가 매우 깊다.
이러한 생성의 감각은 「개나리」, 「숨의 포물선」 같은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개나리」에서 “봄은 / 울타리 틈 / 노랑에서 시작된다”라는 표현은 거대한 계절의 도래를 미세한 틈의 감각으로 환원시킨다. 여기서 봄은 가장 작은 자리에서 은밀하게 시작된다.
또한 김계이 시인의 시의 여성성이 작품 전체에 포괄적으로 보이는데, 1부에서도 시인의 여성적 시선을 볼 수 있다. 그 시선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단순한 감성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을 품고 돌보며 시간을 이어가는 생성의 세계로 확장된다. 「딸에게」와 「母子」에서 나타나는 모성은 희생의 철학보다 존재의 순환 구조에 가깝다. 늙은 어머니와 백발의 아들이 서로를 돌보는 장면은 인간 존재가 결국 돌봄과 의존의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김계이 시인의 시의 생명성은 과장된 언어보다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시인의 시는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사물과 낮은 숨결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접근한다. 또한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일상의 미세한 장면들을 통하여 존재의 깊이를 포착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 속 풍경은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매우 평범한 사물과 계절과 몸짓이 시적 중심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시간의 흔적이 은밀하게 스며 있다.
특히 김계이 시인의 시의 핵심 구조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순환성과 기억의 변화 과정이다. 이 시집에서 시간은 매우 복잡한 곡선을 보여준다. 과거는 현재 속으로 되돌아오고 현재는 이미 미래의 상실을 예감한다.
이 시집에서 1부에 수록된 「아침의 문장」은 특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파란 고요를 골라
강은 하늘을 옮기고
안팎의 경계가
입술을 닫는다
구름이 눈 뜨기 전 생명은
터널처럼 좁아져
호흡 하나에
끊어질 듯 매달린다
바람이 건넨 말이
혀끝에 매운 이슬이 되고
홍매화는
막 배운 말처럼
더듬으며 피어난다
실안개 번지는 뜰에
빛은
낮은 자리부터
읽히기 시작한다
― 아침의 문장
여기에서 강은 하늘을 운반하는 존재로 시인의 특별한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특히 “빛은 / 낮은 자리부터 / 읽히기 시작한다”라는 시어는 김계이 시인의 시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힘을 보여준다. 시인의 시선은 작은 것들, 오래 침묵해 온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낸다. 시의 언어는 화려한 수사보다 투명한 감각을 중시한다. 그 투명성은 단순함과 다르다. 오히려 오래 숙성된 감정과 침묵이 쌓인 결과에 가깝다. 따라서 읽을수록 깊이가 드러나는 서정을 형성한다.
김계이 시인의 『아침의 문장』 제1부 「시인의 마을」은 존재와 생명 그리고 근원을 탐색하는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시인의 시는 자연과 인간, 시간과 기억, 모성과 침묵을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존재를 유기적 흐름 속에서 바라보며, 낮고 작은 것들 속에서 생명의 본질을 발견한다.
특히 존재론적 서정, 여성적 정서가 현실과 밀접하게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현대적 변용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아침의 문장』 제1부는 현대 한국 서정시의 중요한 흐름 속에서 충분히 주목받아야 할 작품군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세례한다
삼신할매 품, 뽀얀 양수 속에 눕는다
둑이 터지고 어린 숨이 밀려올 때
기억은 젖은 채 가라앉는다
생사의 물길은 느리게 오간다
다 살지 못하고 건나가는 길목에도
강이 흐른다고 하던가
가득 찬 욕조 속 맨몸의 여자들은
묵은 것을 벗기고 서늘한 물비늘을 부른다
출생 신고를 하듯, 처음의 기록을 향해
봄 바다로 향하는 연분홍 물고기처럼
하나 둘 밖으로 흩어진다
오래 박혀 있던 것이 스스로 풀려난다
나도 세례한다
다시 돌아간다
개나리
봄은
울타리 틈
노랑에서 시작된다
그 꽃의 다른 이름
첫 불
겨울이 비켜난 자리
가지마다
노랑이 켜지고
외딴 집보다 먼저
봄이 켜진다
서로 다른 무게
첫 울음에는
어디에 소나기가 숨어 있는지
바람이 왜 역류하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무게의 신발로
같은 바다에 띄워진다
누구의 발밑엔 징검돌이 이어져
먼 수평선까지 닿고
어떤 발끝에는 찬 물살이 차올라
제자리걸음으로 날이 샌다
같은 물결 위에서도
저마다 다른 깊이로 흔들리지만
멀리 간 파도보다
오래 머문
물빛이 깊다
울음을 훑고 간 그림자마다
속부터 빛이 여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계이
전북 김제 출생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 졸업문학고을 신인 문학상 수상문학고을 등단시, 동시, 수필 부문문학고을 최우수 작가상 수상공저종합문예지 청목 및 문학고을시선집 다수 참여
목차
시인의 말 | 첫 시집을 내며
제1부 시인의 마을
나도 세례한다
개나리
서로 다른 무게
시인의 마을
산사의 초록
시간의 이음매
앵두등
숨의 포물선
여름 일기
붉은 원피스
바람을 달고
실개울의 새해
후리지아
지나가게 둔다
기억의 털갈이
이름이 오는 중이다
딸에게
母子
금줄
아침의 문장
제2부 해지되지 않는 삶
좁은 물길
돈과 관계
동창생, 춘재
왱열이 각시
장지미 아지매
머위꽃이 피어도
해지되지 않는 삶
같은 열
은적사에서
삼신의 손 - 유나 엄마에게
갈림길은 묻지 않는다
번역된 사주
논어의 그늘
의자왕
적벽대전
산중별곡
폭포
그 집
잘 못 들어온 고지서
첫서리
제3부 어떤 귀향
입추의 메일
대설
운동장을 연다
‘국화 옆에서’를 읽으며
겨울 서문
달 주머니
강을 건너지 못한 말
낙장불입
뒤꿈치로 걷는다
등기부등본
정류장
돌의 맥박
담장 너머
할미꽃
어떤 귀향
호랑이의 오후
백삼 보
동지
12월 27일
강마을로 가는 길
해설
빛이 세계를 읽기 시작하다 |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