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몸, 공동체,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대해 독창적인 연구를 전개해온 프랑스의 철학자 장-뤽 낭시가 예수의 부활이라는 상징적 장면을 분석한 에세이를 출간되었다. 부활 첫날,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가 그를 알아보고 몸을 잡으려 하자 이렇게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낭시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장면, 특히 마리아의 접촉을 금지시킨 예수의 말에 각별히 주목한다. 그는 이 말이 발성되는 방식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모습과 동작, 그리고 이 장면을 그린 숱한 성상화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대조해가면서 그 한마디 말의 문화사회적 의미를 탐색한다. 예수는 왜 마리아의 접촉을 금지시킨 것일까? 본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몸 자체가 먹고 마실 것으로 주어진 이래 만질 수 없는 것이란 없다. 예수는 어떤 순간에도 사람들이 그를 만지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빵을 들고 제자들에게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했고, 부활을 의심한 도마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허락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나를 만지지 마라’ 장면은 일종의 예외, 신학적 유일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부활과 함께 “주님의 오른편에 앉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된 예수를 만진다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암시, 혹은 신성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인간의 오만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에 대한 경고인가?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이 말의 문화사회적 의미를 민주주의로부터 신정사회로의 퇴행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믿음la foi과 신앙la croyance을 화해가 불가능하게끔 갈라놓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신앙은 타인에게서도 신앙이 증명되고 강화될 수 있는(그는 선한 존재이다. 그는 나를 구원한다) 일종의 동일성을 제기 혹은 가정하는 데 비해, 믿음은 어떤 예기치 않은 부름이 타인으로부터 들려오는 걸 허용하는 것,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청취의 상황 속에 스스로가 놓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과 믿음을 갈라놓는 것은 똑같이 종교와 문학·예술을 갈라놓는 것이기도 하다.
만지면 안 되는 것, 그것은 부활한 몸이다. 우리는 또한 그것이 만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져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몸은 만질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그의 몸이 공기화된 육체, 혹은 비물질적인 몸, 유령의 몸, 환영으로서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텍스트는 이 몸이 만져질 수 있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혹은 차라리, 이 몸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접촉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그를 만졌다고 착각함으로써, 그를 떠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접촉과 현존은 그 떠남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인데 말이다. “부활이 일어날 때, 그는 떠난다. 다시 말해, 부활은 현존에 무엇인가를 보태 그 한결같은 동일성을 영구화시키고 무한히 적용되게 하고 무한히 의미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활r?surrection”은 융기surrection이다. 즉,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 타자인 것, 사라지는 도중에 있는 것이 몸 자체 안에서, 몸으로서 돌출surgissement하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장 뤽 낭시
1940년 프랑스 보르도 인근 코데랑에서 태어나 1962년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1968년부터 2004년까지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철학 교수를 지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버클리 대학과 베를린 대학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자크 데리다,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오랜 친분을 이어가며 현대 철학의 전통, 비평의 문제에 대한 공동 관심사를 연구했다. 특히 라쿠-라바르트와는 『문자라는 증서』(1973), 『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문학이론』(1978) 이외에도 다수의 공저를 발표하고, 1970~80년대 함께 강의를 기획하였다. 철학 분야 이외에도 작가, 영화감독, 안무가, 화가 등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현대 공동체 사회, 인간의 육체, ‘기독교의 파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저술 활동과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주요 저서로 『에고 숨』(1979), 『철학의 망각』(1986), 『무위의 공동체』(1986), 『자유의 경험』(1988), 『코르푸스』(1992), 『독자적 다수의 존재』(1996), 『시의 저항』(1997), 『초상화의 시선』(2000),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론』(2001), 『나를 만지지 마라』(2003), 『민주주의의 진실』(2008),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2011), 『모리스 블랑쇼, 정치적 열정』(2011), 『하이데거의 진부』(2015), 『무엇을 하는가』(2016) 등이 있다.옮긴이 이선희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몽테뉴의 초기 에세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6년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몽테뉴 『에세』의 예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번역과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내며 프랑스 소설 작품의 한국어 번역에 대한 연구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프랑스 근대 주체 형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고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논문으로 「몽테뉴의 『에세』에 나타난 진실과 거짓의 수사학」, 「몽테뉴의 『에세』와 일화의 차용」, 「몽테뉴의 책읽기」, 「몽테뉴의 『에세』와 다양성의 문제」, 「문학번역 평가사례(빅토르 위고)」, 「모파상의 환상소설과 번역」, 「서술방식과 번역에 관한 고찰」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가 앙드레 모루아의 창작소설 『뚱뚱왕국과 빼빼공화국』(에디터, 2012), 로맹 가리의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마음산책, 2013)와 『별을 먹는 사람들』(마음산책, 201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