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00년의 기록, 100년의 교훈20세기 100년을 10년 단위로 끊어 총 10권으로 집대성한 20세기의 비망록이자 전기록이다. 국내·외 주요 사건의 전개 과정과 인물의 삶을 꼼꼼히 기술해 시대 순으로 엮었다. 정치.경제.사회 등에 치우친 다른 근현대사 책들과 달리 문화.예술.과학.스포츠.학문.언론 등도 빠짐없이 수록했다. 의미와 교훈은 있는지, 후세에 영향을 미쳤는지, 선구적 업적인지, 새로운 시대 사조인지 등을 수록의 기준으로 삼았다.
☞방대한 분량과 장기간의 집필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료를 조사·취합·정리해 2012년 12월 첫 두 권(1960년대, 1970년대)을 발간하고 그로부터 4년 6개월만인 2017년 5월 마지막 2권(1900년대, 1910년대)을 발간함으로써 전 10권을 완간했다. 200자 원고지로는 2만 4887장, 책 본문 페이지로는 6220쪽이다.
☞빛과 그림자 꼼꼼하게 조명한 ‘백년 다큐멘터리’빛과 그림자가 늘 함께 하듯 각종 인물·사건·사실들의 양면성과 명암을 사실대로 기술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사실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을 변명이든 해명이든 함께 소개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그렇다고 양시·양비론과 기계론적 균형에 빠지지는 않았다.
☞이념 편향 탈피한 객관적 서술진보든 보수든 가급적 양쪽의 주의·주장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보수와 진보라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두 입장 모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두 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일부 보수의 ‘부패’와 ‘탐욕’, 일부 진보의 ‘경박’과 ‘독선’은 배제했다.
☞국제 관계의 틀 속에서 우리 실상 조망국내와 국외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실·인물들을 동일한 연도마다 나열·비교함으로써 서구 열강이 무섭게 질주하고 도약할 때 우리는 그들에 비해 얼마나 뒤쳐져 있었는지, 어떻게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해방을 맞았는지, 또 6·25라는 대참사는 왜 겪었는지 등을 국제 관계의 틀 속에서 비교하고 조망했다.
☞대한민국의 뚝심 추적 무엇보다 해방 후 그 혼란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6·25 후에는 어떻게 가난과 폐허에서 벗어나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혀나가고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켰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전 세계에서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표적인 모범 국가로 발돋움한 동인이 무엇인지도 추적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남북 대치와 개발 독재로 인한 인권 유린, 자본의 논리로 인한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잇따랐다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았다.
☞청소년에게는 평생 도움될 나침반 역할현행 고교 국사교과서 8종에 수록된 내용을 모두 담았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한번 읽어두면 20세기는 물론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흐름까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대입 시험과 논술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이상적인 롤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조선조 말 시대 상황도 자세하게 소개이 시리즈의 수록 범위는 20세기 100년간의 이야기이나 19세기 후반 시작된 개방·개화·개혁의 노력과 실패.좌절의 과정과 원인을 빼놓고서는 조선(대한제국)이 어떻게 해서 망하고 어떻게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므로 첫 권(1900년대)에 조선조 말의 시대 상황도 자세하게 수록(157페이지)했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통감과 함께 ‘병합을 알리는 조칙’에 조인함으로써 522년 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이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백성 역시 일제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오욕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제는 곧 조선인의 모든 생사 여탈권을 자의로 결정하는 조선총독부를 출범시켜 직접 통치에 들어갔다. 먼저 조선의 토지 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기 위한 토지조사사업(1910~1918)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1911년 이른바 ‘안악 사건’과 ‘105인 사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민족 지도자들을 옮아맸다.
이처럼 일제가 조선 병탄을 노골화하자 신민회 등 민족 지도자들은 애국 계몽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해외 독립군 기지 창설 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만주 동삼성 국경 인접 지대에 적당한 후보지를 골라 토지를 구입하고 조선인들의 신한민촌을 만들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무관학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주민 모집 사업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서울의 명문가 출신인 이석영·회영·시영 등 6형제 가족과 이동녕·주진수 가족 등이 1910년 12월 하순부터 1911년 1월까지 개별적으로 이주했다. 경상도 안동의 명문가 집안 출신의 이상룡도 수십 명의 식솔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합류했다.
이들은 1911년 중국 길림성에 신한민촌을 건설하고, 한인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한인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했으며 군사교육을 병행한 교육기관인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창설했다. 이상설은 1914년 연해주를 비롯해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규합,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으며 일본군 장교로 활동하던 김광서는 1919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서 조선 청년들에게 훈련을 시키다가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해 조선인 독립군 부대를 이끌었다.
1919년의 3·1 운동은 조선인의 항쟁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대규모 독립운동이었다. 1차대전 후 세계 피압박민족의 독립운동 가운데 첫 봉화였고 정의·인도·인류평화의 새로운 세계상을 그리며 용감하게 나아간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3·1 운동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만주와 러시아령 등에서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본격화했다.
김원봉은 1919년 11월 중국 길림성에서 의열단을 결성, 암살과 파괴와 폭파를 수단으로 삼아 일제에 저항했다. 김상옥·나석주 등 많은 젊은이들이 의열투쟁에 투신,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혔다. 강우규는 1919년 9월, 60대의 나이에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중국 역시 대변혁을 겪었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1912년에는 부의 황제를 퇴위시켜 청조의 문을 닫게 함으로써 진시황 이래 2,100년 동안 유지해 온 중국의 황제 체제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14년 발발한 1차대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6,000만 명의 젊은이가 전장에 동원되어 900만 명이 전사했다. 전쟁으로 인한 혁명과 기근, 전염병 등으로 900만 명의 민간인이 죽고 500만 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2,000만 명이 부상했다.
1919년 1월 개막한 파리평화회의 결과는 유럽의 지형도를 대대적으로 바꿔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큰 곳은 패전국으로 전락한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튀르크(터키)였다. 독일은 13%의 영토와 600만 명의 인구를 빼앗기고, 오스트리아는 전 영토의 73%와 인구의 75%를 잃어 약소국으로 추락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중동 지역 대부분을 상실하고 이스탄불과 소아시아 반도로 축소되었다. 그 덕에 오랫동안 강대국의 식민지였던 많은 중소 국가들이 독립하거나 영토를 넓혔으며 중동 대부분은 영국·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17년 11월 혁명이 일어나 세계 최초로 ‘노동자·농민 정부’를 탄생시켰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새롭고 다양한 미술 양식이 유럽에서 꿈틀거린 것도 1910년대였다. 20세기 초 야수파와 입체파가 등장하더니 1910년대 들어 급기야 바실리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점, 선, 면, 색채 등 순수 조형만으로 구성된 이른바 추상회화가 등장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순수한 단색의 배경 위에 원, 사각형, 십자형 등의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만을 남겨두고, 이를 제외한 인식 가능한 형상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는 이른바 절대주의 회화를 선보였다.
1917년에는 유럽의 젊은 화가들과 시인들이 인간의 광기가 초래한 1차대전의 비극을 목격하면서 기존의 문명을 근본부터 회의하고 부정하고 배척하는 다다이즘에 참여했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4월 미술 전시회에 출품한 ‘소변기’는 작가의 ‘제작’으로만이 아니라 ‘선택’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했다. 뒤샹의 이 시도는 이전 사고를 향한 도발이었고 회화의 관습에 대한 조롱이었다.
음악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서양음악을 지배해온 조성(調性) 체계를 부정하고 ‘12음 기법’이라는 새로운 작곡 기법을 창시했다. 이후 쇤베르크는 장조와 단조의 조성을 송두리째 제거한 불협화음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무조(無調)음악’을 추구했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발레 뤼스’ 발레단이 1913년 5월 무대에 올린 ‘봄의 제전’에는 ‘봄의 학살’이라는 비아냥과,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기”라는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으나 머지않아 관객은 독자적인 리듬 체계를 창안하고자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의도를 이해했다.
영화에서는 1913년 할리우드 시대 개막과 함께 미국의 영화가 전성기를 시작했다. 영국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이 할리우드에 입성, ‘채플린의 전설’을 시작한 것도 1913년이었다.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1910년)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황현의 자결과 ‘매천야록’(1910년) …‘매천야록’은 비극의 현장 기록서였다. 대원군의 집정이 시작된 1864년부터 나라를 잃은 1910년까지 47년 동안, 정치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당대의 살아 있는 사회·문화·생활상을 모두 6권 7책의 매천야록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매천야록에서 돋보인 것은 유려한 문체,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비판 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