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스투디움 총서 8권. 흔히 '알제리해방전쟁' 또는 '알제리독립전쟁'으로 지칭하나 이 책에서는 '알제리전쟁'으로 했다. 보다 폭넓은 범위에서 전쟁의 내적 함의를 탐색하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담긴 선택이다. 알제리전쟁은 20세기 중반 세계를 뒤흔들었다. 비록 북아프리카에 한정되긴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도드라지는 시대적 징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반식민주의가 확장되었고 제3세계가 부상하면서 알제리전쟁은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 되었다. 또 국가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거부는 곧 닥쳐올 프랑스 청년 학생들의 68혁명을 예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1, 2부로 나누어 알제리전쟁을 조명한다. 서장에서 알제리의 장구한 역사, 알제리전쟁의 발생 배경, 경과, 복잡한 양상 전체를 요약해 보여준다.
제1부 프랑스 편은 알제리전쟁에서 제기됐던 이슈들이 프랑스 국내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살핀다. 사르트르, 아롱, 장송, 틸리옹, 부르디외 같은 지식인들의 상이한 입장, 제2차 세계대전 후 은폐된 진실을 알린 출판사들의 저항, 전쟁에 징집된 일부 프랑스 청년들의 탈영과 징병 기피, 알제리 FLN을 직접 지원한 장송망 사건, 죽음을 무릅쓰고 알제리인을 도운 프랑스와 알제리의 변호사들이 소개된다.
제2부 알제리 편에서는 알제리인 스스로가 반란자가 아닌 정당한 민족세력임을 어떻게 주장했는지, 민중당의 지도자 메살리 하즈와 역사의 6인, 독립의 밑돌이 된 '숨맘 대회'가 어떻게 개최됐는지, 오레스-네멘차 산악지대의 마키자르와 주민들, 펠라가, 무명의 학생들이 프랑스군의 폭력과 고문, OAS의 테러에 어떻게 맞섰는지 등이 상세히 다뤄진다.
출판사 리뷰
【스투디움STUDIUM 총서】
라틴어 ‘studium'은 본래 ‘연구’ ‘공부’를 뜻하는 말로, 세계를 탐구하는 근원적 열정을 상기시키는 학문의 맹아가 담긴 말이다. 스투디움 총서는 세계를 공부하는 열정적 현장, 새로운 학문의 화두를 촉발시키는 실천적 사유의 학습장을 모색하기 위해 문학동네에서 펴내는 본격 학술 총서다.
01 정항균, 『“typEmotion”―문자학의 정립을 위하여』
02 조효원, 『부서진 이름(들) ?발터 벤야민의 글상자』
03 임춘성,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
04 김진석, 『소외되기-소내되기-소내하기』
05 이명호, 『누가 안티고네를 두려워하는가?성차의 문화정치학』
06 김호영, 『영화이미지학』
07 정항균, 『메두사의 저주―타자기 앞의 테이레시아스』
08 노서경, 『알제리전쟁 1954-1962―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
【개요】 노서경, 『알제리전쟁 1954-1962―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 (스투디움 총서 08)
제국주의를 넘어선 민족독립과 제3세계의 상징, 알제리전쟁!
흔히 ‘알제리해방전쟁’ 또는 ‘알제리독립전쟁’으로 지칭하나 이 책에서는 ‘알제리전쟁’으로 했다. 보다 폭넓은 범위에서 전쟁의 내적 함의를 탐색하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담긴 선택이다. 알제리전쟁은 20세기 중반 세계를 뒤흔들었다. 비록 북아프리카에 한정되긴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도드라지는 시대적 징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반식민주의가 확장되었고 제3세계가 부상하면서 알제리전쟁은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 되었다. 또 국가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거부는 곧 닥쳐올 프랑스 청년 학생들의 68혁명을 예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1830년대부터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식민지화된 알제리는 세계 각지의 해외영토(프랑스 식민지) 가운데 가장 각별하게 여긴 식민지였다. 인위적으로 이주시킨 옛 프랑스인들 때부터 100년 넘게 살아가고 있던 수많은 피에누아르(알제리-프랑스인)에게 이 알제리 땅은 분리 불가한 자신의 영혼과 같았다. 따라서 자신의 일부로 인식되던 땅 알제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알제리인이 프랑스인이라 했지만 알제리인은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다’라고 거부했다. 여기서 두 겹의 질문이 생긴다. 타자가 아니라는데, 왜 계속 ‘너는 나다’의 동일성을 강요하는가? 거꾸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국민국가를 이룬 적 없는 알제리가 어떻게 나를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책은 1, 2부로 나누어 알제리전쟁을 조명한다. 서장에서 알제리의 장구한 역사, 알제리전쟁의 발생 배경, 경과, 복잡한 양상 전체를 요약해 보여준다. 제1부 프랑스 편은 알제리전쟁에서 제기됐던 이슈들이 프랑스 국내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살핀다. 사르트르, 아롱, 장송, 틸리옹, 부르디외 같은 지식인들의 상이한 입장, 제2차 세계대전 후 은폐된 진실을 알린 출판사들의 저항, 전쟁에 징집된 일부 프랑스 청년들의 탈영과 징병 기피, 알제리 FLN을 직접 지원한 장송망 사건, 죽음을 무릅쓰고 알제리인을 도운 프랑스와 알제리의 변호사들이 소개된다.
제2부 알제리 편에서는 알제리인 스스로가 반란자가 아닌 정당한 민족세력임을 어떻게 주장했는지, 민중당의 지도자 메살리 하즈와 역사의 6인, 독립의 밑돌이 된 ‘숨맘 대회’가 어떻게 개최됐는지, 오레스-네멘차 산악지대의 마키자르와 주민들, 펠라가, 무명의 학생들이 프랑스군의 폭력과 고문, OAS의 테러에 어떻게 맞섰는지, 벤 미디히가 어떻게 총파업을 어떻게 이끌고 봉기했는지, 무장투쟁단체에 지나지 않던 FLN(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어떻게 정치체로 거듭나 독립된 국가를 수립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정치활동이 독립 승인을 얻는 데 어떤 지렛대 역할을 했는지, 끝으로 알제리의 희망이었던 대학의 학생조직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가 상세히 다뤄진다.
【내용 소개】
알제리의 민중과 그에 동조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투쟁
부정의不正義에 항거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알제리전쟁사!
전쟁이 아닌 치안교란?
1954년 10월 31일 심야에 알제리 각지에서 FLN이라는 낯선 단체의 동시다발 테러로 시작된 전쟁, 법적으로 1840년부터 식민지였기에 많은 이가 당연시했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알제리는 프랑스다’라는 등식을 과감히 거부한 전쟁, 영국에 버금가는 광대한 해외영토를 경영해온 제국 프랑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반식민주의 투쟁, 점점 격렬한 전투로 비화되고 7년여를 끌면서 수많은 청년들을 전쟁터에 투입하고 숱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끝내 이길 수 없었던 전쟁, 그렇기 때문에 알제리 독립 이후로는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않았던 전쟁, 심지어 20세기가 다 저물 때(1999년)까지 정당하게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적떼의 반란’ ‘치안교란 사태’로 치부했던 전쟁, 이것이 알제리전쟁이다.
무엇이 이적행위인가?
군사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었고 승리는 당연히 프랑스의 차지여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국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던 프랑스에 저항한 것은 알제리인들만이 아니었다. 양심 있고 양식 있는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 언론인들이 이미 제국주의의 폭압과 부정의, 그로부터 신음하는 식민지인의 고통을 고발했고, 여기에 사르트르와 아롱 같은 참여적인 지식인들이 가세해 알제리 독립을 공개 지지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깊어지면서 특히 프랑스 군인과 경찰에 의한 알제리 전투원과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학살과 고문이 출판사들에 의해 여론화되자 많은 이가 이 전쟁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기에 이른다. 식민지 보존에 위해 전쟁에 강제 징집된 수많은 청년들의 희생은 프랑스 본국을 뒤흔들었고, 이것이 알제리가 독립을 이루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한다. 알제리의 투쟁을 도운 사람들 중에는 철학자이자 편집자였던 장송처럼 FLN을 직접 지원한 지하조직 사람들도 있었고, 마르티니크 섬 출신의 파농처럼 아예 그 일원으로 활약한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크다 해도 어떻게 국가를 배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이 날선 질문 앞에 이들은 자신의 행동은 ‘배신’이 아니며 ‘정의’를 위한 것이라 했다. 부정의에 맞서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입장
반식민주의 논자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이 사상적 흐름을 살찌웠으며 그로써 다음 세대의 지적 성장을 보장해주었다. 이 책은 그런 반식민주의의 역사적 사건으로 1956년 1월 27일 파리에서 열렸던 ‘바그람 대회’를 꼽는다. 알제리와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이 대회에는 파리의 프랑스 지식인은 물론 식민지의 지식인들까지 다양한 인사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식민주의는 체계다’라는 간명한 명제가 나왔다. 이와 같이 식민주의와 식민지전쟁에 반대한 것은 좌파만이 아니었다. 소르본느의 사회학 교수 레몽 아롱도 결국 이 싸움에서 알제리는 독립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알제리 출신의 카뮈는 이들과 입장과 달랐다. 그는 식민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알제리의 독립은 프랑스와 알제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립이 아닌 공존으로 문제를 풀려 했던 그의 주장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결국 침묵으로 일관한 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알제리전쟁 기간에 알제리 현지에는 많은 프랑스인이 머물고 있었다. 그중 정부의 지원을 많아 알제리 현지를 조사한 인류학자 제르멘 틸리옹의 입장은 카뮈의 것과 다소 유사하다. 그녀는 프랑스-알제리의 동맹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면 알제리가 북아프리카의 중요 국가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견해를 지닌 인류학자(사회학자)도 있었다. 그가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이다. 현대 사회학에 큰 영향을 준 부르디외 사회학은 알제리 연구가 그 시작이었음을 이 책은 강조한다. 알제리전쟁 초기였던 1955년 알제리 땅을 밟고 종전 무렵은 1961년까지 부르디외에게 알제리는 가장 큰 학문적 연구대상이었다. 『알제리 사회학』이나 압델말렉 사야드와의 공저 『뿌리 뽑힘』은 알제리의 식민지 현실, 그리고 프랑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살아가는 하층프롤레타리아의 처지를 누구보다 깊이 있게 탐구한 명저로 꼽힌다. 이렇게 식민지의 현실과 알제리 독립의 정당성을 지지한 학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선구적 입장들은 출판을 통해 대중으로 퍼져나갔다.
출판사들의 저항, 장송망 사건, 그리고 법적 투쟁
피식민지인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투쟁에 나선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가?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저항정신에서 유래한다고 밝힌다. 이 책 역시 그런 입장에 동조한다. 특히 출판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알리고 제국주의의 사멸을 주장했던 일군의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가톨릭 계열의 출판사 쇠유, 레지스탕스 지하출판사의 전통을 갖고 있던 미뉘, 판매 금지된 미뉘의 책들을 펴냈던 스위스의 시테 출판사, 세3세계라는 거시적 주제 안에서 알제리 문제에 집중했던 마스페로 출판사 등이다. 이들은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고발했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렇듯 반대의 여론을 형성해가던 알제리전쟁에서 특히 충격적인 사건은 ‘장송망 검거사건’이었다. 프랑스인이 알제리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었다. 심정적인 동조에서 언론이나 출판을 통한 참여까지. 그러나 프랑스의 적에 해당하는 알제리 무장단체를 직접 돕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이 지하조직의 구성원들은 배우에서 일반 시민까지 출신도 매우 다양했다. 국가에 대한 저항권은 그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를 질문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 지하조직의 중심적 인물은 사르트르의 제자이자 철학도로, 유명한 시사지 『레탕모데른』과 쇠유 출판사의 편집자이기도 한 프랑시스 장송이었다. 장송망 조직원들의 행동이 저항의 극한을 보여준다면, 프랑스 변호사들의 식민지인 변호는 프랑스 법적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알제리전쟁 전부터 식민지인들에 대한 공동변호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7년 알제 도심에서 폭탄테러를 가한 혐의로 법정에 선 자밀라 부히레드를 변호한 자크 베르제스의 경우이다.
알제리인들의 투쟁과 분열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반식민주의 투쟁, 식민지 독립, 냉전과 제3세계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빨려드는 두 나라의 정치사회적, 역사적 측면을 조망하면서도 그 안에서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인물 군상 하나하나의 존재를 세밀하게 부각시켜 질문하고 성찰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이 제2부로,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알제리인 자신의 투쟁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포괄적인 북아프리카 지역사 연구가 아닌 심화된 알제리 역사, 그중에서도 현대의 분기점이 된 알제리전쟁사에 대한 본격 연구로는 국내 최초의 연구서일 것이다. 독립투쟁에 헌신한 알제리 여러 정파 간의 이견과 충돌, 내적 분열은 독립 이후 세계의 모든 신생국가가 처해야 했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 알제리 내전의 재연, 최근의 파리 테러 등은 알제리전쟁을 모르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
민중당 - 민족해방전선 - 학생운동 - 임시정부
FLN은 단순한 테러 무장조직이 아니었다. 이들의 정체 파악이 어려웠던 것은 이들이 민중당에서 파생된 비밀 지하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민중당은 메살리 하즈라는 민족지도자가 주축이 된 정통성 있는 정치조직이었다.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수형의 상징인 메살리 하즈는 알제리인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또 ‘북아프리카의별’이라는 정치조직의 역할도 대단히 컸다. 이런 단체들과 또다른 지도자 페르하트 압바스에 공명해, 알제리 민중은 세계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이미 알제리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세티프 진압사건 같은 무자비한 프랑스의 탄압은 민중을 산악으로 내몰았다. 마키로 불리는 산악무장대의 출현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1954년 11월의 공식적인 전쟁선언이 있기 전까지 투쟁정신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곧 FLN의 출현으로 대프랑스 투쟁은 더 조직적이고 치열해졌다. 그러나 이 알제리인들은 무장투쟁만으로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지 않았다. 숨맘 계곡에서 개최된 범민족 대회, 이른바 숨맘 대회에서 몇몇 중요한 강령들을 채택한다. 강령의 핵심 중 핵심은 “정치가 군사에 앞선다”라는 선언이었다. 이 숨맘의 강령에 따라 알제리의 독립은 이제 국제 여론전의 양상을 띤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 모두 익명으로 기사를 썼던 『엘무자히드』가 한몫을 하며, 프랑스와 알제리의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나서고, 페르하트 압바스를 수반으로 추대한 임시정부가 서방을 상대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분투한 끝에, 유엔총회에서 알제리 문제가 공식 의제로 상정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많은 고난을 겪고 마침내 1962년 프랑스 에비앙에서 휴전협정이 이뤄진다.
참다운 지성이란 무엇인가?
메살리 하즈의 민중당, 무장투쟁의 FLN, 이들을 계승하여 군사활동이 아닌 정치활동, 즉 외교로써 유엔의 승인을 얻으려 분투했던 국제 감각의 임시정부 수반 페르하트 압바스 외에도 또 이 책은 총파업으로 민중저항을 주도하다 감옥에서 생을 마친 매력적인 정치범 라르비 벤 미히디, 도심의 여성 전투원들, 카빌리의 산악무장대, 대학생 단체에 집중하여, 많이 아는 것이 지성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의 성장이 지성이라는 성찰을 주며 무엇이 참된 지성(지식인)인가를 되묻게 한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어렵게 독립했던 우리에게 알제리전쟁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강자에 맞선 약자의 싸움, 그 저항과 분열의 역사는 우리의 과거를 냉정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1954년 11월 1일, 전쟁선언은 뜻밖의 국면이었다. 전망도 어지간히 불투명했다. 그 불확실성이 언제 가셨는지 짚긴 어렵지만 1955년 8월 동북부 필리프빌 유럽인 살해사건으로 프랑스군을 유인할 때까지 사태는 모호했다. 그 아슬아슬한 시간을 끌고 간 것은 오레스, 콘스탄티노이스 같은 산악지대에서 구식 총을 들고 있던 무장대원들이었다. 이름 없는 이들은 요처를 공격하고 불을 지르고 어설픈 무기로 프랑스 정예부대에 맞서 교전과 투쟁을 지속해갔다. 지금은 공공연히 이들을 전사라고 하지만 그때 그들은 소리도 내지 않았고 형체도 흐릿했다. 1955년 봄과 여름이 지나고, 1956년 4월 마침내 프랑스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까지 프랑스는 이 상황이 본격 전쟁으로 뒤바뀌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알제 주요 일간지 『레코 달제』는 이들을 ‘무장반도武裝叛徒’로, 이들의 행위를 ‘테러terror’로 칭하면서 일반 사건사고인 양 다루었다. 오히려 파리의 일간지들이 사태의 추이에 더욱 예민한 촉각을 세웠지만 그들 역시 대서특필하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이 사태를 ‘치안교란’이라고 불렀으며, 이 법적 표현은 이후 40년이 지난 1999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의회의 의결을 거쳐 ‘전쟁’으로 공식 수정된다.
1956년 1월 27일 목요일 늦은 오후, 파리 개선문 오른쪽 대로변 바그람 회관Salle Wagram에 ‘북아프리카 전쟁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린다. 하지만 대회 반대자들의 항의로 대회장 진입이 막혀 이 일류 공연장 안은 썰렁했다. 어떻든 대회는 막을 올렸다. 의장은 장자크 마유, 연사로는 다니엘 마스콜로, 로베르 바라, 다니엘 게랭, 장 암루슈, 장 드레슈, 피에르 스티브같이 잘 알려진 반식민주의자들이었다. 미셸 두킨구, 에메 세제르, 장 루 같은 식민지의 연사들도 등장한다. 맨 마지막 마무리 강연은 장폴 사르트르에게 맡겨졌다. 인류학자 미셸 레리스, 마다가스카르의 조제프 라세타, 세네갈의 알리운 안타 디옵, 알제리의 앙드레 망두즈는 대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 전문傳文으로 강연을 대신하였다. 이 반식민주의자들은 국적과 직업이 무엇이건 지식인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이날 마지막으로 바그람 회관 연단에 오른 사람은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였다. 연설 제목은 ‘식민주의는 체계다’라는 간결한 명제였다. 이 연설문은 두 달 후 1956년 『레탕모데른』 3-4월호에 실리고 이후 1964년에 나온 저작 『상황Ⅴ?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에도 재수록되어 반식민주의 기본문헌으로 널리 읽히게 된다.
작가 소개
저자 : 노서경
서울대학교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일보 외신부 기자로 6년간 근무했다. 그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를 주제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프랑스 사회주의사와 정치사, 알제리 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지식인이란 누구인가』가 있고, 옮긴 책으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비롯하여 『역사를 보는 이슬람의 눈―이븐 할둔과 역사의 탄생, 그리고 제3세계의 과거』 『지식인의 배반』 『장 조레스, 그의 삶』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공역)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감사의 말
서장
제1부 프랑스 지식인과 식민지 민중
제1장 프랑스 가톨릭
1. 『에스프리』
2. 가톨릭 기자 로베르 바라
3. 알제 주교구
4. 수크아라스의 프랑스 소명단
5. 고문을 고발하는 가톨릭
제2장 반식민주의
1. 파리 중심가의 북아프리카전쟁 반대
2. 아프리카 지식인들
3. 사르트르와 아롱
4. 알베르 카뮈
5. 제르멘 틸리옹
6. 피에르 부르디외의 『알제리 사회학』
제3장 출판 전선
1. 레지스탕스의 다리, 미뉘 출판사
2. 문제작 『라 케스치옹』
3. 스위스 로잔의 시테 출판사
4. 식민지의 진실을 찾는 독자들
5. 프랑수아 마스페로와 제3세계
제4장 장송망 사건
1. 프랑시스 장송
2. 장송망 가담자들
3. 배반인가?
4. 탈영병들
5. 우익 진영의 반론
6. 장송망 재판
제5장 식민지인의 변호사들
1. 1947년 마다가스카르
2. 프랑스의 공산주의와 반식민주의
3. 알제리전쟁기의 공산주의
4. FLN 공동변호인단
5. 수감자와 변호인
6. OAS의 폭력과 변호사
제2부 식민지 알제리의 민중 지식인들
제1장 세티프에서 숨맘까지
1. 1945년 세티프 봉기
2. 카빌리-콘스탄티노이스-알제-틀렘센
3. 파리의 이민노동자
4. 민중당과 울라마
5. 새로운 지식인으로서의 ‘민중’
6. 숨맘 대회
제2장 『엘무자히드』
1. 전쟁 전 정치신문 『레퓌블리크 알제리엔』
2. 번성하는 식민지 언론
3. 『엘무자히드』 창간과 제작정신
4. 프란츠 파농
5. 전쟁과 혁명의 제약?
6. 『엘무자히드』에서 그린 혁명의 청사진
제3장 알제리공화국임시정부
1. 임시정부 수립
2. 카이로
3. 페르하트 압바스의 초대 내각
4. 냉전시대의 장벽 없는 전방위 외교
5. 비동맹국가 중국과 유고
6. 미완의 마그레브 통합
7. 법과 평화―그러나 군대 앞에서
제4장 식민지 정치범
1. 수형의 증인 메살리 하즈
2. 식민지의 감옥과 수용소
3. 노동조합운동가
4. 여성 정치범들의 경험
5. 살해되는 변호사들
6. 정치범 라르비 벤 미히디
제5장 식민지 대학생
1. 알제 대학교
2. 알제리무슬림학생총동맹
3. 학생총동맹의 주권·자유·행동
4. 민족군을 찾아서 산으로
5. 식민지 대학생의 드넓은 지평
맺음말
부록
알제리 고유어
약어
주요 신문잡지 및 출판사
알제리전쟁 관련 영화 목록
인물
알제리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