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예중앙시선 52권. 2008년 「현대시학」에 '월식'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김연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김연아 시인이 등단 후 10년간 묵묵히 써온 50여 편의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등단한 지 10년 만에 빛을 보는 시집인 만큼, 시인이 엄선한 시들로 엮어낸 이 시집은 깊고 튼튼하다.
김연아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한 명의 연기자가 된다. 시를 쓰면서 그는 무엇으로든 변신하기를 소망한다. 백색 무용수로, 흰긴수염고래로, 늙은 사진가로, 심지어 거울로. 시인은 무엇이든지 되고자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렇게 시인은 시 쓰기의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서 벗어나 무수한 타자가 된다.
달리 말해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란 '타자 되기'이며, 이것은 곧 시가 가진 자유이자 기쁨이다. 시인이 고통 속에서 성취한 자유와 기쁨을, 독자들은 이 시집을 펼침으로써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당신을 향한 초대장,
“우리 함께 환상의 섬으로 순례를 떠납시다”
2008년 《현대시학》에 「월식」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김연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달의 기식자』가 문예중앙에서 발간됐다. 『달의 기식자』는 김연아 시인이 등단 후 10년간 묵묵히 써온 50여 편의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등단한 지 10년 만에 빛을 보는 시집인 만큼, 시인이 엄선한 시들로 엮어낸 이 시집은 깊고 튼튼하다.
김연아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한 명의 연기자가 된다. 시를 쓰면서 그는 무엇으로든 변신하기를 소망한다. 백색 무용수로, 흰긴수염고래로, 늙은 사진가로, 심지어 거울로. 시인은 무엇이든지 되고자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렇게 시인은 시 쓰기의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서 벗어나 무수한 타자가 된다. 달리 말해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란 ‘타자 되기’이며, 이것은 곧 시가 가진 자유이자 기쁨이다. 시인이 고통 속에서 성취한 자유와 기쁨을, 독자들은 이 시집을 펼침으로써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밤, 쓰기의 시간
2008년 《현대시학》에 「월식」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김연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달의 기식자』가 문예중앙에서 발간됐다. 『달의 기식자』는 김연아 시인이 등단 후 10년간 묵묵히 써온 50여 편의 시들을 묶은 시집이다. 등단한 지 10년 만에 빛을 보는 시집인 만큼, 시인이 엄선한 시들로 엮어낸 이 시집은 깊고 튼튼하다.
김연아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밤이여 오라, 너를 들이쉬어 나를 낳으리라”라고 말한다. 밤은 나와 타자의 구분을 혼란케하는 시간임을 감안하면 이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밤은 나와 나 아닌 온갖 것들이 뒤섞이는 시간이다. 이러한 혼란과 혼몽 속에서 오래전부터 빛을 밝히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달이다.
오랜 옛날부터, 신화와 역사 속에서 시인이라 불리운 자들은 으레 달을 노래하곤 했다. 나와 타자의 구분을 어렵게 만드는 밤의 시간 속에서 달은 존재를 밝히는 빛이자 나아갈 길을 알리는 길잡이, 혹은 시인을 몽상에 젖게 하는 영감이 되곤 했다. 그리하여 김연아 시인은 밤의 시간에, 달에 기식(寄食)한다. 달의 식객이 된다. 달의 시간 속에서 “밤을 먹어치우고” 시인이 얻어내는 것은 “유랑의 낱말”이다. 시인의 내면으로 들어와 그를 음미하고 창궐하는 이 낱말들의 힘으로 시인은 “흰 종이에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달의 기식자
하루에 밤을 먹어치우고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
그것은 유랑의 낱말
길 밖으로 벗어나
우연에 맡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끼의 목소리, 새의 모음 같은 것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음미하고
창궐하는 것
―「달의 기식자」 중에서.
스스로를 ‘나’라고 말하는 이 등장인물들
김연아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한 명의 연기자가 된다. 밤의 시간, 달의 시간은 나와 타자가 뒤섞이는 경험을 하는 시간이다. 시인은 달빛에 의지하며 밤을 먹어치우고, 달은 시인의의 심장을 먹고 춤을 추는 시간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자면 밤은 밝을 동안의 사물들이 드러내고 있던 제 옷을 벗고, 그 속에 가려져 있던 내면을 드러내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연아 시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바로 “다성적으로 소용돌이 치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외피를 벗은 존재들은 서로 닮은 존재들이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신과 닮은 것들에 눈길이 가는 것이 사람이며, 그것을 노래하는 자가 시인이다.
그는 시를 쓰면서 무엇으로든 변신하기를 소망한다. 백색 무용수로, 흰긴수염고래로, 늙은 사진가로, 심지어 거울로. 시인은 무엇이든지 되고자 한다.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밖의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렇게 시인은 시 쓰기의 시간을 통해 ‘나’라는 외피에서 벗어나 무수한 타자가 된다. 달리 말해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란 곧 ‘타자 되기’이며, 이것은 곧 시가 가진 자유이자 기쁨이기도 하다.
이 밤에 당신은 아프고 하늘의 깊이로 숨쉬며
참회의 말을 탕진합니다
어떤 언어로 당신을 되돌릴 것인가요?
당신은 거울의 망막
사물이 보는 눈에 자신을 바친 몽상가입니다
그러니 어떤 시제를 가져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시인을 찾는 등장인물들」 중에서.
흔히 시 쓰기란 고통이라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그 고통을 기어코 감내하려 한다. 누군가는 시가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 쓰기라는 고통을 기도에 빗댈 수도 있을 것이다. 닿지 못하는 그 기도의 언어들은 아프고 헛되고 무용해 보이지만, 때때로 기도 그 자체만으로 빛나기도 한다.
여기, 김연아 시인이 겪었을 고통과 그에 대한 성취들이 놓여 있다. 시인의 눈길이 닿는 존재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도하는 손처럼 지느러미를/하늘로 들어 올”리는 흰긴수염고래와 만나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과의 마주침이야 말로 결국 시인이 고통 속에서 성취한 자유와 기쁨을 독자가 발견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백마의 울음소리를 먹고 살았다
백마는 백조를 보면 울었다
어느 날 백조가 죄다 사라져버리자
백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왕은 갑자기 늙어버렸다
“달이여 영원한 시간을 아는 달이여”
누가 백조를 불러와 말을 울게 할 것인가?
우리는 달의 기식자
하루에 밤을 먹어치우고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
그것은 유랑의 낱말
길 밖으로 벗어나
우연에 맡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끼의 목소리, 새의 모음 같은 것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음미하고
창궐하는 것
어둠의 빈 웅덩이, 달에서 오는 파동이
나에게 도달한다
백조처럼 길게 휘어진 목을 가지고
흰 종이에 씨를 뿌리기 위해
나는 행을 배열한다
내가 달에 기식하는 동안
달은 내 심장을 먹고 춤을 추었다
평생 마신 숨을 다 센 것처럼
나는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내 이름을 갖지 못한 울음은
내려앉을 둥지가 없는 백조와 같다
그것은 나와 허공 사이에서 무한하게 펼쳐진 채
바람을 삼키고 있다
―「달의 기식자」
내 눈은 암실에 길들여졌다
한 눈은 빛에 의해 눈멀었고, 한 눈은 빛의 물결에 떨었다
검고 흰 유령들이 출몰하는 흑백사진 속에는
사물의 빛나는 웅얼거림이 있다
하늘이 왜곡되지 않고 불안조차 투명해지는
대륙의 끝 우수아이아에는
비바람으로 유선형이 되어버린 나무 하나가
지평선을 따라 서 있었다
구름아, 내 어린 고양이에게 노을이 물든 눈사람을 배달해줘
나무 밑을 걸어온 빛이 방으로 들어온다
목초지의 겨울 소들
창백한 뺨을 지닌 어린 창녀
아이리스 냄새를 품고 있는 검은 숲의 사진들
하나의 코트 속으로 밀어 넣은 두 몸처럼
우리의 포옹은 오래되었고
나는 저 장소들의 노래였다
긴꼬리하루살이의 날갯짓으로 가득한 하늘
그들의 시선을 마중하고
그들과 만나는 순간의 여백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순간 속의 기다림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꽃은 아름다운 눈들에게 시선을 던진다
우리의 눈이 어떤 슬픔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고
금빛 거미줄이 서풍 속으로 사라진다
그 바람 속에서 새로운 떨림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구름에 씻긴 삼나무 그림자는 산으로 달려 올라가고
길은 울색으로 물들었다
고양이는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목 렌즈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늙은 사진가」
나는 죽은 여자가 남긴 한 마리 앵무새
괜찮아, 괜찮아, 라고 외치며
어두운 방 안에서 울고 있는
나는 다성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시간,
나열된 고리를 가진
당신의 꿈에서 막 빠져나오는 낱말입니다
망상의 목록들을 가지고 당신이 말을 할 때
나의 이름으로 말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장소가 아닌 곳에 도착한 이름,
언제나 불확실한 피부를 가지고
당신의 모든 언어와 기후들을 지난다
나의 주소는 이방인의 것
당신은 나를 노바디, 라 부른다
나는 달과의 혼혈로 태어난, 마라의 젊은 미망인이다
내 몸에 기숙하는 조상들, 감각들
나의 조국은 침묵이니, 보이지 않는 잉크로 말을 하고
나는 밤과 못과 모퉁이와 관계 있다
나는 당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만 낫는 병
젖꼭지를 찾는 아기의 입처럼 당신의 입술을 찾는다
어떻게 이 잠에서 깨어날까?
달의 체념은 새롭고, 꽃들의 망상은 반복되었다
내가 아무도 아니라면, 나를 더 많이 만나야 합니까?
오래된 골목이 내쉬는 한숨 같은 이름들
억양이 다른 어린애의 변덕으로
나는 계속 나를 지나간다
진열장 뒤의 텔레비전 화면은 망자의 새소리를 흉내 낸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당신을 잃는다
―「모자를 쓴 이름이 지나간다」
작가 소개
저자 : 김연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2008년 《현대시학》에 「흰긴수염고래」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목차
1부
흰긴수염고래
북두
달의 기식자
늙은 사진가
모자를 쓴 이름이 지나간다
먼지색 입술에 입맞추네
신원미상의 새
마임의 시간
흰 당나귀의 침대로 돌아오라
염소좌 아래서
거울 너머
2부
천사가 지나간다
익사한 수병의 방문
윌리엄 블레이크가 가네
달의 아들
노래에 갇힌 사람
굿 나잇, 노바디?잠 못 드는 사람 제레미에게
너는 여전히 노란방
솔리터리맨
모래와 안개의 집
월식
침묵에의 초대
아마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그것은 내 이름처럼 지나갔다
Come away with me in the night
3부
시인을 찾는 등장인물들
검은 고독, 흰 고독
백색 무용가
월요일 다음에 화요일이 오고
사막의 정원사
한밤에 난 북역으로 나갔다
재의 만다라
어느 떠돌이 개에게 바치는 송가
깊은 숨
내 말은 월식처럼 어두워졌다
두 개의 귀를 가진 거울
4부
태양의 도서관
겨울은 말한다
피아노의 고독 속으로
구름이 내 방을 끌고 간다
달에 대한 강박관념
흙과 구름의 詩
deep blue day
애먼지벌레의 잠
일곱 번째 작별 인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눈먼 음유시인
입술에 대한 향수
귀머거리의 말들을 위한 시간
땅거미를 끌고 가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