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무한히 꿈꾸며 살아온 인생이 뿜어내는 문학적 향기를 만나다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에 비유되곤 한다. 실제로 한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곳곳에서 그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을 느낄 수가 있다. 이것은 마치 꽃봉오리가 벌어지면 향기가 퍼져 나오듯이, 한 사람의 생이 가진 향취가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것엔 이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 인생이 만들어낸 생각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글을 쓰고, 또 글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글에서 묻어나는 인생에 공감하기도 한다.
이 책 『언젠가 떠나고 없을 이 자리에』는 전후 사상 대립이 극심하던 불안한 시절, 지리산 자락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좇는 인생을 살아 온 저자의 삶이 담긴 회고록이자 솔직담백한 문학적 감성이 담긴 수필집이다.
볼거리라고는 공회당에 모여서 보던 흑백TV와 가끔 읍내에서 찾아오는 서커스밖에 없었지만 행복했던 고향에서의 추억,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풍경에 대한 복잡한 감정, 자연과 예술,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5가지 주제로 나누어져 있는 각 장에는 노래와 미술, 시를 사랑하는 여학생에서 고희(古稀)에 이른 지금까지 평생 꿈을 꾸고, 그 꿈을 따라온 저자의 완숙한 인생의 향기가 느껴진다.
특히 모두가 힘들었던 전후의 시대 각자의 다양한 사연을 안고 꿋꿋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변해 버린 세상사에 대한 성찰과 소회,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내는 순수한 글 속에서 번뜩이는 철학적 사유와 독특한 발상들은 저자가 직접 쓰고 그려 낸 시·그림과 함께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때로는 가슴 먹먹해지는 공감을 선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빛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글로 남기고, 또 그것을 엮지 않는다면 무형의 기억으로만 남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언젠가 떠나고 없을 이 자리에』가 많은 분들의 가슴속 문학적 감성을 풍성하게 채워 주는 것과 동시에, 살면서 한 번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발문]
어머니의 책 뒤에엄마는 제가 학창시절 쓰다 남은 공책이나 연습장을 보시면 늘 버리지 말고 당신께 달라고 하셨습니다. 오래되고 쓰다 남은 노트들이라 버려도 될 만한 상태인데도 엄마께선 사용한 종이들만 뜯어 버리고 빛이 바랜 노트들에 추억과 생각들을 써내려 가셨습니다.
그 노트들에는 동글동글한 정겨운 글씨, 각기 다른 크기의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때론 노트를 묶는 실의 힘이 다해 낱장이 되기도 해서 그 모습이 마치 흩어져 있는 낙엽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예전부터 책을 내고 싶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단지 엄마의 지나가는 꿈으로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글들이 조금씩 쌓여 갔지만 이 글들이 과연 세상에 나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북이 쌓여 가는 글들을 보면서 엄마의 꿈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끔 단편적인 글들을 저에게 읽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참 꿈이 많으셨고 그 꿈들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셔서 하나씩 이루어 내셨어요. 저를 키우시면서 오랫동안 하시고 싶었던 바이올린을 저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셨고 그림공부도 꾸준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작가의 길을 가시고자 첫발을 내딛게 되셨어요.
몇 해 전부터 눈이 많이 나빠지셔서 그림을 그만두시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십니다. 엄마는 눈 외에도 몸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마가 건강이 회복되시면 그때 글 쓰시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틈만 나면 글쓰기를 계속 하셨어요. 엄마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고 시간도 금방 가서 좋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글쓰기를 즐겨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빛바랜 노트를 무릎에 두고 돋보기를 쓰시고 작은 손으로 글을 적어 내려가는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엄마는 작은 체구에 열정적이신 분이시고 소녀 같은 분이셔서 꿈을 이루게 되신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쓰기를 하셔서 이렇게 한 묶음의 책이 되어 출판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혼신을 다해 쓴 글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감동스럽습니다.
출판사 계신 분이 따님께서 발문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을 때 글쓰기가 자신도 없을 뿐더러 엄마의 맑은 글들 뒤에 제 글을 첨가하는 것이 맞나 싶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항상 엄마께 투덜대는 못난 딸이라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늦은 나이에 딸이 결혼해서 심한 입덧부터 지친 육아에 언제나 도움을 주시는 무한 사랑의 엄마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문득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흐르는 때도 있어 엄마의 고마운 마음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엄마는 어릴 적부터 외조부께서 항상 남에게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어려운 사람들을 늘 돕고 싶어 하셨어요. 외할아버지가 봉사하셨던 것처럼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고 미용기술도 배우셨고, 한동안 머리만 있는 마네킹을 집에 가지고 오셔서 커트 연습도 하셨습니다.
엄마는 김장을 하실 때면 요즘도 많은 분께 김치를 나누어 주십니다. 김치에 관한 첫 기억은 7살 때쯤으로 집 근처 산동네에 사시는 번데기 파는 할머니께 김치를 갖다 주겠다고 밤에 저를 데리고 가셨던 기억입니다. 그때 갑자기 여러 마리의 개가 저에게 달려들어 저를 물었고 엄마는 두고두고 제게 미안해하셨습니다.
제가 입덧이 너무 심해 막달까지 거의 누워만 있었을 때 엄마가 저희 집에 오셔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때 저희 집에서 넘어지셔서 쇄골이 부러지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몸도 약하신 분이 저로 인해 수술까지 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출산 후에도 여전히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니 딸 집까지 오랜 시간 전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오십니다. 오실 땐 늘 저와 외손자 사위 먹이려고 두 손 무겁게 가득 가지고 오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게 받기보단 왜 가져오셨냐고 잔소리하는 못난 딸이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왜 돈 많이 드는 음악을 시켜서 부모님도 힘드시고 저 또한 힘들게 하였냐며 원망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제가 부모님께 속상하고 힘들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시면서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그 심정을 부모가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에게 애착을 많이 가지고 계셨기에 저에게 요구했던 것들이 많으셨고 그게 저에겐 부담으로 느껴졌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식을 낳아 보니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며 우리를 키우고자 고군분투하셨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살 때 엄마는 저와 늘 바이올린 레슨을 같이 가서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기다리시고 저를 데리고 집에 오셨습니다. 귀국 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식당을 하시면서 레슨을 보내주셨습니다. 물질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엄마도 저 이상으로 고생하신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는 참 희생적인 분이십니다. 지금도 당신보단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나이 드신 가냘픈 엄마를 보면 슬프지만 저희 집에 오셔서 손주와 너무도 해맑게 웃으며 놀아주시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행복해보여 기분이 좋습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엄마가 오시면 아이는 “할미” 하면서 쏜살같이 달려가서 할머니께 안기고 두 볼을 감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께 정말 감사합니다. 저보다 더 아들을 사랑해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아이가 할머니와 있을 땐 어느 때보다 사랑 가득한 아이로 크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맑은 엄마의 동심이 아이를 밝게 해주는 듯합니다. 아이는 자주 할머니를 뵈니 할머니가 안 보이면 할머니를 찾기도 합니다.
사랑이 담긴 따뜻함이 그리움으로 바뀌듯 엄마의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엄마의 아름다운 글만큼이나 마음 따뜻한 엄마가 작가로 더 큰 성취를 하시기 바라면서 엄마의 첫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2018. 11. 3.
딸 손인실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