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백석 시전집. 백석이 사용했던 평안도 사투리 및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낯선 우리의 고유어에 대한 주석 뿐만 아니라 한자로 표기된 제목에 대해서도 각주에 덧붙였다. 낯선 지명에 관한 경우에는 독자들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팔원'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나오는 영변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도 표기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시들도 별도의 장을 구성했으며, 백석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나오는 동화시 전편을 수록했다. 특히 백석이 처음으로 창작했던 동화시지만 <집게네 헤 형제> 출간 당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까치와 물까치'는 단행본 시집에서는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분단에 의해 묻혀진 시인’에서 ‘분단을 극복한 시인’으로
20년 전만 해도 백석 시인을 소개할 때는 ‘분단에 의해 묻혀진 시인’으로 소개했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월북시인 및 월북작가들이 해금되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백석은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시문학사에서 가장 훌륭한 시를 창작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백석은 분단에 의해 묻혀진 시인을 넘어 분단 자체를 극복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백석 시에 대한 많은 연구와 자료를 통하여 그동안 애매모호했던 백석이 사용한 시어들의 정확한 뜻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시집은 그동안 출판된 백석 시집 중에서 가장 정확한 주석을 달고 있다. 백석이 사용했던 평안도 사투리 및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낯선 우리의 고유어에 대한 주석 뿐만 아니라 한자로 표기된 제목에 대해서도 각주에 덧붙였다. 낯선 지명에 관한 경우에는 독자들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팔원>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나오는 영변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도 표기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시들도 별도의 장을 구성했으며, 백석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나오는 동화시 전편을 수록했다. 특히 백석이 처음으로 창작했던 동화시지만 『집게네 헤 형제』 출간 당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까치와 물까치>는 단행본 시집에서는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시집이 백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조선에서 가장 모던했지만 가장 조선적이었던 시인 백석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서시(序詩)>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이 가장 존경했던 시인이 백석이다. 윤동주는 동경 유학 시절 내내 백석의 첫시집 『사슴』의 필사본을 지니고 다녔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과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모닥불>을 읽으면 윤동주가 백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것이다.
백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당시 최고의 모던니스트였다. 백석의 머리 스타일이며, 화려한 외모는 늘 화제가 되었다. 가장 모던했다는 것은 가장 개방적이었다는 것인데 백석의 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조선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일본 유학 시절 백석은 ‘가장 모던한 것’과 ‘가장 조선적’인 것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백석은 누구보다 먼저 모더니즘을 받아들였지만. 민족의 언어를 잃지 않았다. 가장 모던한 것과 가장 조선적인 것이라는 극과 극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는 가난했던 민중들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의 특징은 조선 사회에서 상류사회를 형성했던 사대부(양반계급)들이 대부분 친일부역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나라가 망하면 지배계급들이 제일 타격이 크지만, 조선의 사대부들 대부분은 일본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상위계급을 여전히 형성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선의 멸망은 사대부들의 약속된 지위를 바탕으로 한 투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망했지만 사대부들의 부와 권력이 망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일제에 협력했던 사대부들은 해방이 되고나서도 친일 부역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대로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이 되었다. 그래서 백석의 시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이 약하다는 말은 억지스럽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장 가난했던 민중들이다. 백석은 그들 민중들의 아픈 삶을 그리면서 일제 강점기 지배계급들의 횡포를 보여주고 있다. 민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횡포만이 아니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대부들에 의한 가혹한 착취도 문제였다. 몇 백 년 전에 일본이 왜란을 일으켰을 때 왕이며 사대부들은 궁궐을 버리고 도망갔다. 도망간 궁궐을 불태운 것도 조선의 민중이었지만, 의병을 일으켜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찾은 자들 역시 가난한 민중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일본제국주의가 들어왔지만 그들을 몰아내려고 싸운 자들은 그들에게 핍박받고 수탈당하던 민중들이었다. 물론 사대부 출신의 독립 운동가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익현, 안중근처럼 그들이 꿈꾸던 나라는 자유대한이 아니라, 여전히 엄격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사대부가 이끌어가는 대한제국의 부활이었다.
<팔원>이라는 작품에서 시인은 평안북도 영변군의 팔원면을 지나가다 보게 된 승합차 안과 바깥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팔원은 김소월 시 <진달래꽃>에 나오는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북한의 핵 실험 기지가 있는 곳이다.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터질 만큼 몹시 힘들게 살아왔을 어린 소녀는 내지인 주재소장(일본 경찰)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소녀는 자성이란 곳으로 팔려 가고 있다. 묘향산에 삼촌이 산다고 했으니 묘향산에 도착 하면 아마 자성까지 이 소녀를 데리고 갈 삼촌을 만날 것이다. 아마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삼촌에 의지해 살아야 하지만, 삼촌 역시 가난해서 어린 조카를 남의 집에 식모살이로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차 안에서 같이 우는 사람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이를 지켜보는 사연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백석은 구체적인 관찰, 절제된 표현을 통해서 어린 소녀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슬프게 표현했다. 백석은 이렇게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상황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시선을 가지고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중의 처연한 모습을 표현했다.
이 시집 후반부에 실린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시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회주의 건설에 동원되어야 했던 뛰어난 시인의 재주는 사라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시만 보인다. 작가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문학성을 떨어뜨리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백석 시집을 많은 곳에서 출판하지만 그런 이유에서인지 북한에서 발표한 시들은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아마 나처럼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전혀 백석답지 않은 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분단으로 인한 상실이기에 이 시집에 담았다.
하지만 어린이는 조국의 미래라고 하지 않았던가. 백석의 동시집 『집게네 네 형제』의 감동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시와사회’ 출판사를 하던 때는 『집게네 네 형제』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집을 낸 이후 발견된 시집이라 따로 단행본 시집으로 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에서 발표한 시를 함께 묶기로 결심했기에 모두 모아서 백석 시전집으로 만들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 없이.
※이 시는 백석이 함흥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쓴 것이라고 한다. 나탸샤는 전 대원 각 주인 자야로 알려져 있다. 자야는 훗날 백석이 북한에 남아 있을 때 서울에서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해서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 옆.
갈매나무 : 키가 2m쯤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 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 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 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목차
제1부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14
바다 ………… 16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18
수라(修羅) ………… 19
흰 바람벽이 있어 ………… 21
여승(女僧) ………… 24
남신의주(南新義州)유동(柳洞)박시봉방(朴時逢方) ………… 26
모닥불 ………… 29
여우난골 ………… 30
여우난골족(族) ………… 32
가즈랑집 ………… 35
외갓집 ………… 38
고야(古夜) ………… 39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42
통영(統營) 1 ………… 46
통영(統營) 2 ………… 47
내가 생각하는 것은 ………… 50
흰밤 ………… 52
‘호박꽃 초롱’ 서시(序詩) ………… 53
북방(北方)에서 ………… 55
‘나 취했노라’ ………… 58
이주하 이곳에 눕다 ………… 59
제2부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고향(故鄕) ………… 62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 64
절망(絶望) ………… 67
귀농(歸農) ………… 68
조당(塘)에서 ………… 72
허준(許俊) ………… 75
창원도(昌原道) ………… 78
통영(統營) ………… 79
고성가도(固城街道) ………… 80
삼천포(三千浦) ………… 81
북관(北關) ………… 82
노루 ………… 83
고사(古寺) ………… 85
선우사(膳友辭) ………… 87
산곡(山谷) ………… 89
구장로(球場路) ………… 91
북신(北新) ………… 93
팔원(八院) ………… 94
월림(月林)장 ………… 96
제3부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 ………… 100
산(山) ………… 102
비 ………… 104
산지(山地) ………… 105
정주성(定州城) ………… 107
추일산조(秋日山朝) ………… 108
청시(靑) ………… 109
산비 ………… 110
쓸쓸한 길 ………… 111
석류(榴) ………… 112
머루밤 ………… 113
단풍(丹楓) ………… 114
추야일경(秋夜一景) ………… 115
석양(夕陽) ………… 116
안동(安東) ………… 118
함남도안(咸南道安) ………… 120
제4부
자작나무
삼호(三湖) ………… 124
물계리(物界里) ………… 125
대산동(大山洞) ………… 126
남향(南鄕) ………… 128
야우소회(夜雨小懷) ………… 129
꼴두기 ………… 130
머리카락 ………… 132
가무래기의 락(樂) ………… 134
멧새 소리 ………… 135
박각시 오는 저녁 ………… 136
가키사키(崎)의 바다 ………… 137
산숙(山宿) ………… 138
향악(饗樂) ………… 139
야반(夜半) ………… 140
백화(白樺) ………… 141
제5부
절간의 소 이야기
동뇨부(童尿賦) ………… 144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 146
나와 지렝이 ………… 148
하답(夏畓) ………… 149
연자간 ………… 150
절간의 소 이야기 ………… 152
오리 ………… 153
노루 ………… 156
개 ………… 157
오리 망아지 토끼 ………… 158
오금덩이라는 곳 ………… 160
수박씨, 호박씨 ………… 162
황일(黃日) ………… 164
제6부
촌에서 온 아이
창의문외(彰義門外) ………… 168
삼방(三防) ………… 169
정문촌(旌門村) ………… 170
탕약(湯藥) ………… 172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 174
국수 ………… 175
주막(酒幕) ………… 178
촌에서 온 아이 ………… 179
목구(木具) ………… 182
고 방 ………… 184
초동일(初冬日) ………… 186
적경(寂境) ………… 187
미명계(未明界) ………… 188
성외(城外) ………… 189
광원(曠原) ………… 190
칠월(七月) 백중 ………… 191
늙은 갈대의 독백(獨白) ………… 194
제7부
전 별
이른 봄 ………… 198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200
눈 ………… 203
전별 ………… 206
공무려인숙 ………… 208
갓나물 ………… 210
동식당 ………… 212
축복 ………… 214
돈사의 불 ………… 216
손뼉을 침은 ………… 219
탑이 서는 거리 ………… 222
돌아온 사람 ………… 225
제3 인공위성 ………… 228
『집게네 네 형제』
집게네 네 형제 ………… 232
기달래 ………… 237
오징어와 검복 ………… 241
개구리네 한솥밥 ………… 248
귀머거리 너구리 ………… 258
산골 총각 ………… 265
어리석은 메기 ………… 274
가재미와 넙치 ………… 279
나무 동무 일곱 동무 ………… 283
말똥굴이 ………… 298
배꾼과 새 세 마리 ………… 301
준치가시 ………… 305
까치와 물까치 ………… 308
부록
사진으로 보는 백석 ………… 318
편집후기 「분단을 극복한 천재시인 백석 」…… 327
파() - 노리다께 가스오 ………… 348
백석 연보 ………… 350
백석 작품 연보 ………… 358
수록작품(가나다순) …………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