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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무덤
청어 | 부모님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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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무덤

새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까운 쌀가루 같은 것이 바람에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하늘에서 흰 것만 내려오면 뭐가 그리 좋은지 뭉치로 만들어 던지고 이리저리 뛰고 하면서 난리들을 해댔다.
‘공치게 생겼네. 오늘은.’
소리 없는 한숨과 함께 내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말이었다. 방문을 열고 선 채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간 재빨리 몸을 굽혀 신발을 집어 들었다. 하마터면 눈에 완전히 파묻힐 뻔했던 그것을 방 안에 들여놓으며 문을 닫았다.
부엌으로 나가는 샛문을 열었다. 비어 있는 물동이를 채워놓아야 했다. 높은 지대 탓인지 가는 물줄기로 치사하게 찔끔거리던 우리 집 수도는 일찌감치 물을 닫아버렸다. 발 내릴 곳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개의 물동이를 양손으로 집어 들며 손바닥보다 비좁은 부엌으로 나갔다.
‘뭐야 또 눈이야?’
심선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크게 돋아났다. 일주일째 집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그녀는 번번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잘도 집어먹곤 했다. 이전에는 하루걸러 집에 들어오지 않고는 했다.
이곳 B동 산동네는 먹고 살기에만 급급한 우리들의 보금자리였다. 밝히지 않아도 S시의 대표 빈촌으로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나버린 곳이었다. 무허가로 시작된 동네였는지는 모르지만 집들을 점고해보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눈비를 피할 수 있거니와 시멘트 벽돌로 벽체를 쌓고는 해서 바람이 어지간히 지랄을 해대도 쓰러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토록 튼튼한 집들은 리어카 한 대 너비로 내리뻗은 언덕길의 양 옆으로 미로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을 끼고는 옹기종기 잘도 얽혀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표시되는 주소는 엄연히 있었다. 발음하기에 정겨운 달동네로 잘 통하는 건 아무래도 좀 높은 곳에 있어서일 터였다. 덕택이라고 표현하면 콧방귀 세례를 받게 되겠지만 목만 들면 하늘이 바로 눈에 들어오곤 했다. 정작 우리들은 눈길을 위쪽으로 긋고는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 집은 맨 위 꼭대기에 떨어져 있었다. 윗집과 옆집이 없어서 외톨이인 셈이었다. 아래로 이어지는 비탈길 첫발에 면하여 있어서 구석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방문만 열면 좀 사는 찻길 맞은편의 아랫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이제 곧 발아래의 그쪽이나 이쪽이나 하얀색에 파묻히고 말 것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해선
1992년 월간문학 신인상 「실험일지」 당선으로 등단.중앙대학교대학원 졸업.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겸임교수 역임.한국문인협회 의왕시지부 부지부장 역임.작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심리상담지도사.소설집 『몸값 800원』, 『롯의 딸(전3권)』, 『돌을 연주하는 사람』, 『어머니의 죽음』, 『마을의 나무들은 상처가 많다』, 『오늘의 저편』(2012.1.2.~12.27. 경남일보 연재), 『남녀칠세부동석』에세이집 『바다 해海 신선 선仙』현재, 경남 진주시 아이랜드어린이집 원장, 한국문인협회 독서진흥위원회 위원.

  목차

작가의 말

하얀 무덤
하품
어머니의 죽음
공범
가벼운 일탈
가출
어떤 도피
갈 데가 없어
오늘의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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