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78년 범우사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나올 당시, 원제목인 '죄인들의 숙제' 대신 '나비와 엉겅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후 출간된 1989년 지식산업사, 2004년 이룸 등의 도서에도 범우사와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
제목을 수정한 구체적인 사연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박경리 작가가 처음 작품을 발표할 당시 붙였던 제목으로 재출간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또한 '나비와 엉겅퀴'가 소수의 인물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인다면, '죄인들의 숙제'는 등장인물 대부분과 관련이 있어 작품 전체를 아우르기에 더욱 그러하다.
<죄인들의 숙제>는 <토지> 연재 중에 발표된 작품이다. <토지>를 집필하면서 그 이외의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다가, 약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었기에 주목을 받았다.
박경리 소설의 공통된 핵심주제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부조리한 고통에 대한 탐색에 있다. <죄인들의 숙제> 역시 불륜과 이혼 등 대중적 소재와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서사는 크게 윤희정과 희련 이복자매의 갈등, 정신병력 유전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강은식과 윤희련의 사랑, 희련을 둘러싼 송인숙과 최일석, 장기수 등의 음모, 남미와 불륜 관계를 맺은 정양구와 그의 아내 강은애의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판사 리뷰
약 40년 만에 본래의 제목을 되찾다!
1978년 범우사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나올 당시, 원제목인 ‘죄인들의 숙제’ 대신 ‘나비와 엉겅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후 출간된 1989년 지식산업사, 2004년 이룸 등의 도서에도 범우사와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
제목을 수정한 구체적인 사연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박경리 작가가 처음 작품을 발표할 당시 붙였던 제목으로 재출간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또한 ‘나비와 엉겅퀴’가 소수의 인물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인다면, ‘죄인들의 숙제’는 등장인물 대부분과 관련이 있어 작품 전체를 아우르기에 더욱 그러하다.
대중적 소재로 풀어낸 현대인의 불안한 삶과 비극적 운명
『죄인들의 숙제』는 『토지』 연재 중에 발표된 작품이다. 『토지』를 집필하면서 그 이외의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다가, 약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었기에 주목을 받았다.
박경리 소설의 공통된 핵심주제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 부조리한 고통에 대한 탐색에 있다. 『죄인들의 숙제』 역시 불륜과 이혼 등 대중적 소재와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서사는 크게 윤희정과 희련 이복자매의 갈등, 정신병력 유전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강은식과 윤희련의 사랑, 희련을 둘러싼 송인숙과 최일석, 장기수 등의 음모, 남미와 불륜 관계를 맺은 정양구와 그의 아내 강은애의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서사에서 『김약국의 딸들』, 『성녀와 마녀』 등 박경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혈통의 불안과 부조리한 낙인, 운명에 대한 저항, 폐쇄성과 결벽증의 문제 등의 성격적 결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 그리고 개인주의자
『죄인들의 숙제』의 두 주인공 윤희련과 강은애, 그리고 송인숙의 대화 속에는 이상주의며 현실주의, 개인주의와 같은 개념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희련이 이상주의자라면 은애는 현실주의자이고 인숙은 개인주의자이다. 서로를 혹은 스스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서른이 되기까지 이들은 각자 뚜렷한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른 즈음 그 가치관은 뿌리째 흔들린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인물은 현실주의자 강은애이다. 은애는 결혼 전에 ‘불행한 연애’를 하였으나 애정과 생활은 별개라고 생각하였기에 그 ‘불행한 연애’를 끝내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남편과 결혼했다. 자신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서 본인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왔지만, 아이를 낳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은애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윤희련 역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언니의 희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디자이너가 된 희련은 ‘중매쟁이’와 언니 희정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결혼을 하였으나 이혼한 상태다. 이혼의 원인에는 불구의 육체로 한 집에 살고 있는 언니 희정에 대한 ‘죄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기도 하지만, 이상주의자인 희련에게는 사랑이 없는 결혼이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희련은 은애의 오빠인 강은식과 사랑하면서 그 문제를 극복한다. 희련에게 남녀 관계는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다. 희련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을 사는 생활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2년 후배 송인숙은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자처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라고 말한다. “성가시게 구는 사람도 없고, 또 성가시게 하는 것을 받아줄 사람도 없고 이만하면 개인주의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거로 보아야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개인주의를 잘못 이해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인숙의 시점에서 심도 있는 의식이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인주의를 잘못 이해한 듯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을 거침없이 내세우는 것이 그의 특성이다.
‘배은망덕이라고요? 어쩌면 배은망덕이 안 되지요? 내 인생을 송두리째 전부 바쳐야만, 언니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은공 타령만 하고 살란 말이지요? 그럴 순 없어요! 돈으로 환산합시다. 돈으로 환산하란 말예요. 뼛골이 빠지게 벌어서 바칠게요.’
‘돈으론 안 된다! 돈만으론 절대로 안 된다. 너를 위해 흘린 숱한 나의 눈물, 견디기 어려웠던 고통, 그 많은 희생, 그것을 지금 와서 돈으로 환산하자고? 이 배은망덕한 년아!’
희정이는 아령을 들고 눈을 부릅뜬 채 여전히 다가오며 소릴 질렀다. 희련은 물러서면서,
‘숱하게 흘린 눈물이라고요? 견디기 어려웠던 고통이라고요? 많은 희생이라고요?’
‘안 그랬었다고 하겠느냐?’
‘천만에요, 천만에요! 그것은 모두 언니 자신을 위한 눈물, 언니 자신을 위한 고통이었어요. 나는 언니 불행의 제물이었던 거예요. 이런 값비싼 보상을, 그래요! 내 의지로 내가 살 수 없는 이런 처지를! 난 언니의 부속물도 꼭두각시도 아니란 말예요! 난, 나 혼자 걷고 싶은 거예요. 나도 이젠 삼십이 됐어요. 제발 언니, 언니 불행으로 날 묶으려 하지 말아요. 언니가 불행한 건 내 탓이 아니에요. 정말 내 탓은 아니란 말예요!’
은애는 바로 조금 전에 남편과 그 여자와의 다정스런 풍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예기치 못했던 일은 남편의 실태가 아니었고 충격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은애는 남편이 적당하게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야.’
의식 속에 얼음덩이의 지렛대같이 가로눕던 말은 실상,
‘왜 충격을 받았을까?’
했어야 옳았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반문했어야 옳았던 것이다. 그러나 은애는 왜 충격을 받았는지 그 의문을 규명해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충격 자체에 대하여 몹시 당황했던 것이다.
‘내가 질투를 했었던가? 그이의 배신을 노여워했던가?’
한 여자로서, 그보다 아내로서 질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노여워하는 것도 의당한 권리다. 그러나 은애는 주제넘고 파렴치하고 몹시 부도덕하게까지 느낀다. 질투의 감정을 죄악시하여 그랬던 것이 아니다. 교양 있는 여자로서 자존심을 옹호하여 그랬던 것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낡은 부덕婦德 같은 것에 얽매여 그랬을 리도 없다.
인숙은 알뜰하고 악랄하고 인색하게 모아들인 재산의 절반가량이 지금 유실되려는 어려운 고비에 서 있었다. 그 속에는 갖은 수난으로 빨아올린 희정의 행복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코 떳떳할 수 없는 모조 상품의 밀조자密造者에게 돈줄을 댄 일이 잘못된 것이다.
“내 돈만은 내놔요! 안 된단 말야! 안 돼! 절대로 안 돼! 누가 사나 죽나 봐야겠어!”
악을 악을 썼으나 인숙은 그 밀조의 공범자이며 또한 그 밀조자의 정부情婦이기도 했으니 유실될 절반의 재산은 고사하고 상대가 수배手配당한 인물인 만큼 어떤 사태가 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은 단 한 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날뛰었던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경리
본명은 금이(今伊).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 등이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이후 1959년 <표류도>, 1962년 <김약국의 딸들>, 1964년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의 장편을 발표했다.<토지>는 1969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여 1972년 9월까지 1부를 집필했다. <토지> 2부는 같은 해 10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문학사상>에 3부는 1978년부터 <주부생활>에 4부는 1983년부터 <정경문화>와 <월간경향>에 각각 연재했다.마지막 5부는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하소설 <토지>의 전작이 완결되었다. 25년에 걸쳐 원고지 4만 장 분량으로 탈고된 것이다.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고 있는 대하소설 <토지>는 탈고 전에 이미 한국문학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박경리는 한국문학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봉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79년과 1984년에 각각 한국방송공사에서, 2004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녀가 1980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이 조성되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집필생활을 하였다.2007년 7월말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뇌졸중 증세까지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경 숨을 거뒀다. 정부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제3회 신인문학상1965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월탄문학상1992 보관문화훈장1994 올해의 여성상1994 유네스코 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1996 제6회 호암상1996 칠레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1997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1955 평화신문 서울신문 기자1995 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1996. 02 한국일보 칼럼 '생명의 아픔' 연재1996. 05 토지문화재단 창립 이사장1996. 11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위원회 위원1997. 04 호암재단 이사1999. 04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목차
1. 엉겅퀴꽃
2. 동행자
3. 눈
4. 성공과 실패
5. 모습
6. 붕괴
7. 최초의 남녀
8. 소용돌이
9. 이율배반
10. 수지계산
11. 빙하
12. 귀가
13. 두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