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지혜사랑 시선 227권. 김병수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일상에 뿌리를 둔 시집이며, 더러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똥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해인海印의 길―사랑의 길'을 펼쳐나간다.
출판사 리뷰
살면서/ 똥 밟는 서러움은/ 구린내가 아니다/ 똥 밟는 순간 누구나/ 세상의 똥이 되기 때문이다// 살면서/ 똥 밟지 않는 자 없다/ 한 번도 똥 밟지 않은 자는/ 산 자가 아니다/ 그야말로 세상의 진짜 똥이다// 살면서/ 똥 밟는 것 두려워마라/ 두려움은 세상 가장 구린 똥/ 꽃 붉게 피우려는 자/ 똥밭길 먼 새벽을 걷는다/
- 똥 전문
똥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은 따라서 똥을 더러운 것으로 부정하는 이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떨쳐낼 수 있다. 시인은 “똥밭길 먼 새벽을” 걸으면서 “꽃 붉게 피우려는 자”에 주목한다. ‘똥밭길’은 우리가 사는 일상 세계를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똥 한 번 밟지 않고 어떻게 똥 천지의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시인은 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려면 똥밭길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똥밭길을 마다않고 걷는 사람만이 한 송이 붉은 꽃을 제대로 피울 수 있다. 더러운 세상을 더러움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시인은 더러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똥에 새로운 맥락을 집어넣음으로써 분명히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깃대 높고 높으나/ 한 조각 깃발 하나 없다/ 그저 어서 오라/ 세상 펄럭이고 싶은 것들이여/ 몸짓 없이 말하고 있다// 호수 넓고 넓으나/ 한 바람 물결 하나 없다/ 그저 어서 오라/ 세상 흐르고 싶은 것들이여/ 소리 없이 노래하고 있다// 피어나는 것/ 꽃봉오리 아니라도/ 하나 눈동자/ 마주하는 숨결 있어/ 세상은 오늘도 하루 숨을 쉰다
- 깃대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은 보이는 대상에만 집착하면 볼 수 없는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진실은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서 뻗어 나오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에 매여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1연에서 시인은 한 조각 깃발도 없는 높디높은 깃대를 묘사한다. 말 그대로 이해하면, 깃대에는 깃발 하나 달려 있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깃발이 없는 깃대를 보며 시인은 “세상 펄럭이고 싶은 것들”을 상상한다. 깃대는 그 존재만으로 바람에 펄럭이고 싶은 것들을 불러들인다. 아무런 몸짓도 없이 깃대는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깃발들을 향해 “그저 어서 오라”고 소리 없이 외친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라고 하겠다.
2연에는 넓고 넓은 호수가 나온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물결은 참으로 고요하다. 시인은 겉으로 보면 잔잔해 보이는 호수가 “세상 흐르고 싶은 것들”을 향해 “그저 어서 오라”고 소리 없이 노래하는 걸 온몸으로 듣는다. 깃발이 없는 깃대는 바람을 따라 펄럭이고 싶은 것들과 이어져 있고, 잔잔한 호수는 끊임없이 흐르고 싶은 것들과 이어져 있다. 보이는 대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그 이면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존재들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건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사물들이 내뿜는 숨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숨을 쉬는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생명은 보이지 않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겠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과 이어져 ‘온생명’이 되는 자연 이치는 똥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대비되는 자리에 놓여 있다. 자연 이치로 보면 똥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밥과 똥을 다른 것으로 구분하려고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밥과 똥은 자연이 순환하는 과정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밥만 보고 똥을 보지 않으면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깃대는 펄럭이고 싶은 깃발이 있음으로써 깃대가 되고, 넓고 넓은 호수는 흐르고 싶은 것들이 있어 호수가 된다. 깃대가 어떻게 깃대만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호수가 어떻게 호수만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울음은 신의 은총/ 그 은총에 사랑모험 있나니/ 잃어버린 울음/ 다시 울어 젖힐 때/ 애기울음도 다시 피어나리라
- 저출산 단상 4연
저기 들꽃을 보는 이여/ 그저 흔한 꽃이라 마시오라/ 흔한 꽃이야말로/ 더 짙은 향기로 피노라니/ 그 향기에/ 그대 가슴 속 눈꽃이 필 때/ 그 꽃을 보리오라
- 사연 1연
그때는/ 보지도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고/ 보려하니 더욱 아니 보인다
- 그림자 전문
저출산 단상에서 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골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지는 오래되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이 든다. 많은 이들이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야 하는 젊은 세대는 사는 일만으로도 등허리가 휠 정도다. 아예 비혼(非婚)을 선언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상황을 보면, 아기를 낳는 일이 곧 애국이라는 추상적인 말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시인은 이 시의 3연에서 저출산의 진짜 이유를 “울음 잃은 때문 아닐까”라고 쓰고 있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릴 힘조차 잃어버렸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사는 청춘들이 어떻게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겠는가?
“울음은 신의 은총”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건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저출산 문제는 물질적인 성공을 최고로 치는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풀 수 없는 난제라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 일에 치인 청년들은 자신이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이 살아갈 날을 상상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다음 날을 살기 위해 일해야 할 시간에 불과하다. 오늘에 붙잡힌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내일을 꿈꿀 수가 없다. 먹고사는 자연 이치가 해결되지 않는데 어떻게 그 다음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까? 총칼을 들고 싸우는 곳만 전쟁터인 게 아니다.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사는 지금 이곳의 청년들은 전쟁터보다 더한 곳으로 이 사회를 느끼고 있다.
삶에 지쳐 울고만 싶은 청년들은 그러나 울음을 터뜨릴 수조차 없다.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오늘’이라는 시계(視界) 밖으로 곧바로 퇴출당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증식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인재로서 대접한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이 사회에서는 울음을 터뜨릴 시간마저도 돈으로 계산된다. 시인은 사연에서 지천에 핀 들꽃을 그저 “흔한 꽃”으로 보지 말라고 강조한다. 흔한 꽃일수록 더 짙은 향기를 풍긴다는 게 그 까닭이다. 시인의 이런 생각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근거 없는 낭설로 치부될 뿐이다. 자본은 흔한 꽃이 피우는 짙은 향기보다 보기에 화려한 꽃만을 선호한다.
흔한 꽃이 내뿜는 짙은 향기를 맡으려면 흔한 꽃에 스민 진실을 알아챌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그대 가슴 속 눈꽃이 필 때/ 그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슴 속 눈꽃”과 “더 짙은 향기”는 같은 맥락에 놓인 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비를 구분하는 근대인은 무엇보다 사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과 사물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를 잃어버렸다. 감각의 부재라는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하면 어떨까? 사물에 대한 감각이 없는 존재가 어떻게 사물이 내보이는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가슴 속 눈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흔한 꽃이 풍기는 짙은 향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향해 있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지배하는 근대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림자에서 시인은 “그때는 보지도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았”던 진실이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고/ 보려하니 더욱 아니 보”이는 현실을 침통한 마음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때 그는 어떤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일까? 그리고 지금 그는 어떤 진실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흔한 꽃은 늘 우리 곁에서 짙은 향기를 내뿜었다. 여기저기서 풍기는 그 향기에 젖은 사람들은 바로 그 때문에 흔한 꽃에 주목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짙은 향기는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 향기가 사라진 것을 느꼈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깨달음은 늘 늦게 온다고 하던가.
그래서일까, 김병수의 시에는 하찮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의 시선이 두루두루 나타난다. ‘하찮은’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이 말에도 사물을 시비로 나누는 근대의 인식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흔한 꽃은 하찮은가, 하찮지 않은가? 자연 이치로 보면 흔한 꽃은 그저 흔한 꽃일 따름이다. 자연이 피워낸 생명이라는 얘기다. 담배꽁초에 나타나는 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은 “육신은 삭아도/ 끝내 마르지 않을/ 인연 보듬은 인생의 화석들”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담배꽁초에 귀를 대어본다. “속 쓰린 연기처럼/ 구부정 피어나는 검붉은 사연들”이 들려온다. 사물들 저마다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연을 품은 사물이든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병수
196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성균관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등에서 공부했다. 행정고시 30회 출신으로 정통부, 지경부, 국무총리실,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2020년 계간 『계간문예』로 등단하였고 현재 Passion, Openness, Strategy, Try를 모토로 하는 《살아있는 삶, 경영, 국정에 관한 라이브 POST 경영연구소》를 운영 중이다.김병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똥밭길 먼 새벽을 걷는다』는 일상에 뿌리를 둔 시집이며, 더러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똥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해인海印의 길―사랑의 길’을 펼쳐나간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요즘세상 12
똥 13
깃대 14
신전 15
지하철 16
2019 광화문광장 17
내비 18
실직 19
정치 20
장례식 21
아이폰 유감 22
식목일 25
오늘의 기도 26
저출산 단상 27
내 나이가 어때서 28
4차 산업혁명론 유감 29
등록금 고지서 30
서울풍경 31
사직서 32
카톡 33
재개발 34
붕어빵 35
소주 36
이름표 37
북극성 38
이쑤시개 39
백수 40
하루 41
게 42
사연 43
정답 44
2부
새 46
꽃 47
길 48
세렝게티 49
스님 50
새벽기도 51
출가 52
그림자 53
길은 오아시스에 머물지 않는다 54
기찻길 단상 55
장마길 56
담배꽁초 57
막차 58
이중섭미술관 59
채석강 60
지중해 61
봄 62
그대여 64
사이 65
목련 66
인연 67
대나무 68
산 1 69
가시 70
환복 71
상사화 72
빙산 73
유서 74
미스터리 75
지리산 편지 76
산 2 77
섬진강 78
왕갈비 79
3부
편지 1 82
편지 2 83
편지 3 84
친구여 85
우체국 애사 86
아버지의 새벽 87
딸과 아빠 88
우체국사람들 뮤지컬을 마치며 89
객지 90
여행 91
아들은 몰랐다 92
엄니 94
어린 시절 95
우체국의 추석 97
마이산 98
아들의 군 입대 날 100
고드름 102
배꽃 103
송광사 104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105
별 106
방산方山우체국 107
해미읍성 108
알라스카에 부치는 편지 109
백령도 110
월출산 111
코스모스 1 112
코스모스 2 113
공중전화 114
꿈을 깨오 115
4부
네가 그립니 118
밥을 주오 119
운명 120
블랙홀 121
사랑하오 122
완두꽃 비가 123
매미 124
또 하나의 그대 125
크레바스 126
알 수 없습니다 127
비키니 128
무주茂朱 129
이별 1 130
주례사 131
가을비 사연 132
늦가을 풍경 133
눈 134
눈꽃 135
낙엽 136
어느 카페의 풍경 137
목이 멥니다 138
시월의 마지막 밤에 139
이별 2 140
눈 2 141
홍시 1 142
홍시 2 143
사계 144
갈대 145
건배사 146
해설 해인海印의 길, 사랑의 길오홍진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