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에세이,시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이미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 앤솔로지
우시모북스 | 부모님 | 2021.01.05
  • 정가
  • 15,000원
  • 판매가
  • 13,500원 (10% 할인)
  • S포인트
  • 750P (5% 적립)
  • 상세정보
  • 21x14.8 | 0.395Kg | 288p
  • ISBN
  • 9791197132902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북적북적톡설')를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작가의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서 수집한 가슴을 울리는 45편의 감동 글이다.

32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R&E 신문반 방송반 활동을 지도하면서 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던 윤작가가 -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찾아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수집한 1만여 편의 산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엮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에서 만나는 45편의 산문들.

여러 가지 주제로 -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느낌은 그리움처럼 - 아무튼 산문, (여행자의 기록) 길 위의 인생,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저자가 인터넷 오디오 방송으로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 작가의 문장 44편 - 그리고 '가족 문단사'를 실었다.

  출판사 리뷰

문/장/수/집/가/ 팟캐스터 포충망에 걸린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앤솔로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우시모북스 간)이 나왔다.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북적북적톡설’)를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작가의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서 수집한 가슴을 울리는 45편의 감동 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이 그것이다.

6가지 주제로 묶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느낌 있는 아름다운 산문 44편과 ‘가족 문단사’.

32년간 중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R&E 신문반 방송반 활동을 지도하면서 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던 윤작가가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찾아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수집한 1만여 편의 산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엮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에서 만나는 45편의 산문들.
여러 가지 주제로 -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느낌은 그리움처럼 - 아무튼 산문, (여행자의 기록) 길 위의 인생,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저자가 인터넷 오디오 방송으로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 작가의 문장 44편 그리고 ‘가족 문단사’를 실었다.

강경애(소설가) 계용묵(소설가) 고유섭(미술사학자) 기형도(시인) 김교신(교육자종교인독립유공자) 김기림(시인) 김남천(소설가문학비평가) 김병모(고고학자) 김유정(소설가) 김이듬(시인소설가) 김중혁(소설가) 나도향(소설가) 노자영(시인) 도종환(시인) 백신애(소설가) 법정(수필가스님) 서명숙(언론인) 설의식(언론인) 성석제(시인소설가) 손봉호(기독교철학자) 손영목(소설가) 심훈(시인소설가영화인독립운동가) 윤광준(사진작가) 윤작가(출판기획자) 이동순(시인) 이문재(시인) 이병률(시인) 이상(시인소설가) 이어령(소설가언론인문학평론가) 이유식(문학평론가) 이육사(시인소설가독립운동가) 이윤기(소설가번역가) 이익섭(국문학자) 이재무(시인) 이정록(시인) 이태준(소설가) 전혜린(번역가수필가) 정지용(시인) 최서해(소설가) 최인석(소설가희곡작가) 최인호(소설가) 하종강(노동운동가) 함민복(시인) 홍사용(시인희곡작가) 황동규(시인영문학자)

1장 : 시처럼 산문

‘책은 빌리는 사람도 빌려 가는 사람도 모두 도적’이라는 금언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책에 관한 빼어난 글인 이태준 소설가의 <책>,
32세로 너무 빨리 떠났지만 짧은 생애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백신애 소설가의 <자수>,
평양냉면에 대하여 이토록 맛있게 쓸 수 있는 있단 말인가! 새삼 감탄하며 입맛을 다시며 읽게 만드는 소설가 김남천의 맛있는 글 <냉면>,
30년대 문단에서 필명 때문에 한때 여류작가 특집판에 이름을 올린 진기한 삽화도 갖고 있는 나도향 시인의 필명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 <별호(別號)>,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심훈이 작고 1년 전에 쓴 서정적인 산문 <7월의 바다>,
《청록파》 시인을 배출한 《문장》지 시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지용 시인의 아름다운 글 <산문>,
30년대 《구인회》 멤버이자 모더니즘 문예 이론가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문학평론가 김기림 시인의 산문 <가을의 누이>,
경춘선 청춘열차에 ‘김유정역’이라는 고유명사를 심은 단편소설의 대가 김유정 소설가의 애교 넘치는 글 <길>,
단편 〈부자>, <지하촌>, 장편 『인간문제』 등을 발표하여 30년대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고히 다진 강경애 소설가의 서정적인 산문 <내가 좋아하는 솔>,
본명은 최학송, 아호는 서해 - 제도권 교육 졸업장 학력 없이 독학으로 한국 문학사에 자기 이름을 새긴 카프파 경향문학의 대가 최서해의 애절한 가족 체험 산문 <담요>,
《백조》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고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며 창작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연극 활동에 정열을 바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 전천후 작가 홍사용 시인이 망자가 된 친구 어머님의 장례를 다녀와서 인생무상에 대하여 쓴 성찰의 글 <궂은비>,
문예지 《장미촌》, 《백조》 창간 동인 출신으로 문단에 나와 시인으로 소설가로, 30년대 출판 시장을 말 그대로 쥐고 흔들었던 서정적 서간체 수필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노자영 시인의 <계변정화>,
요즘에는 정치가로 신념을 펼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책에 대한 오랜 마음의 빚짐을 그리고 있는 <헌책방 순례>,
제2의 고향 강화도에서 글쓰기와 삶을 작품으로 잘 그리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아름다운 산문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분명 헤어진 것 같았는데 (확실히 정리되었다고 믿었는데, 단지) 그녀의 글씨체 같은 간판을 보자 가슴이 뛰어 허둥대는 영원한 청춘 이병률 시인의 가슴 서늘한 산문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라면으로 느림을 서술하는 유쾌한 필체, 라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산문 - 이문재 시인의 <누가 라면을 함부로 말하는가>,
당혹스러움을 당당히 느끼게 하는 시와 소설을 남긴 이상의 또 다른 매력은 권태로운(?) 산문 스타일인데 역시나 읽을수록 당기는 맛은 /강/추/! 이상의 <조춘점묘(早春點描),

2장 :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

서슬 퍼런 1942년 일제 강점기 《성서조선》 잡지 권두언에 실어 잡지 폐간 파동을 겪은 김교신의 <조와(弔蛙)>,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 기사를 실어 무기 정간을 당한 《D일보》, 쫓겨난 기자들 당시 편집국장이던 언론인 설의식이 1926년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된 광화문을 위한 애절한 세레나데. 현대사 100년 100대 명문장으로 뽑혔던 <헐려 짓는 광화문>,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되어 전설이 된 ‘선죽교’는 그 사건 5년 전에 이미 ‘선죽교’로 불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고증을 살핀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선죽교 변>,
중국 상해에서 공부할 때나 독립운동을 할 때도 한시도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애장품 비취 인장을 독립운동 거사로 떠나는 독립운동사관학교인 조선혁명군 군사정치 간부학교 제1기 동창 윤세주(1901~1942)에게 이별의 정표로 건네고 건넨 후 친구와 분신 같은 도장을 못 잊어하는 이육사 시인의 <연인기(戀印記)>,
제주 올레길을 만든 이야기 - 언론인 서명숙의 <행복한 걷기>,
세상에서 활자로 된 책 2권만을 꼽으라면 불경 『화엄경』과 『어린 왕자』를 꼽으리라는 법정 스님의 <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 1971년에 발표한 이 아름다운 글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 ‘어린 왕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어린 왕자’ 감상문의 전설(傳說) - 신호탄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아는지 …….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석좌교수의 혜안 깊은 직관적인 안목으로 성찰한 글은 보는(?) 순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산문 <괜찮다 : 관계의 문화>,
번역가로 대한민국 독서계에 두꺼운 팬층을 갖고 있던 이윤기 소설가의 번역하는 자세의 글 <잘 익은말을 찾아서>,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언어 6,000여 개 가운데 대한민국 한글이 당당하게 12위이고 우리나라는 언어 강국이라는 확실한 자부심을 불러주는 국문학자 이익섭 교수의 <한국어의 멸종위기설>
대중소설로 쌓은 인기를 한민족의 진취성과 능동적인 삶을 그린 역사소설 작가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최인호 소설가의 매력적인 산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3장 :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

29년의 짧은 시절을 시인으로 살다가 떠난 기형도(1960~1989)시인이 남긴 매력적인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 묘원에서 만난 사람>은, 1988년 8월 2일 홀로 여행을 떠나 대구에서 부산으로 광주로 해서 5.18 민주화 묘지로 발길을 돌려 만난 - 뜨겁게 살다 민주 열사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 박관현(1953~1982) 열사의 묘지를 순례하다가 우연히 만난 이한열 (1966~1987) 열사의 어머니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 체험은 애틋한 마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1960~80년대 문자 해독한 수준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통과의례 같았던 뮌헨 슈바빙 거리를 살았던 수필가 전혜린과 독일어로 발표한 명작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추억담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1965년 네덜란드로 유학 중에 다닌 유럽 배낭여행에서 동방의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설움 받았던 체험을 그린 여행기 손봉호 교수의 <약소국민의 여권>,
1974년 영국 유학 중 음악의 고장 비엔나로 친구와 떠난 김병모 고고학자의 유쾌한 여행기 <비엔나로 가는 밤기차>.
요리사 2명과 이탈리아로 떠난 김중혁 소설가의 맛이(?) 부러운 여행기 <여행의 무게>.

4장 :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안목과 명성을 가진 영문학자 황동규 시인의 음악사랑 <음악이 있는 삶>,
자신만의 귀에 맞는 음악을 찾아 방랑하는 오디오 기기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 글 쓰는 사진작가 윤광준의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 파일>,
중학생 록밴드 기타리스트 아들과 의기투합하여 떠난 송도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발 체험과 노이즈 풍성한 ‘백 판’ 세대 회고담 하종강 교수의 <딥 퍼플을 만나다>.
1979년 여름 대구의 다운타운가 음악다방 풍경과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닮은 친구 DJ의 서울 구로공단 음악 박스 접수기, 성석제 소설가의 <그 음악을 제발 부탁해요, DJ>.

5장 : 문단 이면사

한국 문단 이면사의 다양한 기록을 풍부하게 창고에 적재했다가 흥미 있는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유식 문학평론가의 <일찍 데뷔한 조숙한 문인들>,
제자 사랑 이야기 많기로 소문난 스승 김동리 소설가에게 추운 정초 날 세배드리러 가려다가 꾀가 나 벌어진 에피소드를 한 폭의 그림처럼 훈훈하고 정감 있게 그리고 있는 손영목 소설가의 <세배객 인명록>,
꼭 그 소설처럼 … 잔잔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 온몸에 덮여오는 소름과 함께 둔중하게 머리를 압박하여 오는 깨달음, 그런 것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3 여름방학에 강원도 봉평을 찾아 떠난 최인석 소설가의 <메밀꽃과 A.T.T.>
현대문학사 100년 동안 문인 가운데 ‘모든 장르(?) 노래 부르기’ 최고의 가객(歌客)(?) 겨루기 노래 부르기 내기 중앙(?)에서 가왕 J(?)를 물리친 여세로 1980년대 청주로 쳐들어가 대격돌을 벌이는 1박 2일 대회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는 이동순 시인의 <김지하 시인과의 노래 시합>.
한국 문학사의 저력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언덕’ 덕분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계로 보여주는 부부 문인 63팀, 부자(父子) 문인 17팀, 부녀 문인 16팀, 모자 문인 2팀, 모녀 문인 6팀, 형제자매 문인 32팀, 남매 문인 6팀, 장인 장모 사위 6팀, 시아버지 며느리 3팀, 조손(祖孫) 문인 3팀, 동서지간 2팀, 사돈 관계 3팀 이들의 명단과 활동 장르 연관성을 찾아 기록한 윤작가의 <가족 문단사>.

문인 5인 대가족은 소설가 박화성,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김동리, 시인 송동균 집안이 첫 손에 꼽혔고, 문인 4인 가족은 시인 김동환, 소설가 주요섭, 시인 서정주, 시인 박주일, 소설가 한승원, 시인 김종해, 시인 장지홍, 시인 김성수, 시인 윤석산 집안이다.
문인 3인 가족은 시인 조종현 시인 이설주, 소설가 장덕조, 소설가 황순원, 시인 윤동주, 소설가 박경리, 시인 신동엽, 시인 김대규, 소설가 홍성원 가족이다.
가족 안에 ‘한국 문단사’에 기록될 문인이 1인이라도 기쁨인데 그 이상 ‘문인 대가족’ 통계는 작가 본인이나 바라보는 독자에게 모두 영광이고 감탄이다.
- 윤작가 <가족 문단사> 중 -

6장 : 예술가의 첫사랑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하던 소설가의 사랑과 시인의 사랑 이야기 - 사랑도 역시 우리 일반(?) 사람 사는 세상처럼 가슴 저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가의 첫사랑’ 코너의 절실한 사랑 노래, 시인 이재무의 <혼자서만 꺼내 보는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지나간 인연을 슬프지만 발랄한 언어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읽고 난 뒤 (추억 같은 사랑이 마음에 밟혀) 며칠 동안 내내 김광석의 동명 노래를 무한 반복 듣게 만들고야 마는 김이듬 시인의 느낌 서늘한 발라드 <잊어야 한다는 이름으로>.
그래도 이 책의 대미는 성공한 사랑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어 이정록 시인의 이쁜 사랑 이야기를 골랐는데,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은 외로운 이 시대에 따뜻한 느낌과 가슴 서늘한 감동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밑줄치기 문장수집가의 산문 읽기

문/장/수/집/가/ 윤PD 포충망에 걸린 / 걷다가 멈추게 하는 문장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13쪽)
- 이태준 <책> 중 -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의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끊는 향수 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위선 냉면이다. (19~20쪽)
- 김남천 <냉면> 중 -

남들이 나를 부르기를 순수 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스스로 순수시인이라고 의식하고 표명한 적이 없다. …… 그런 것이 지금 와서 순수시인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이다. (35쪽)
- 정지용 <산문> 중 -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 내 입속이 환해진다. (56쪽)
-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세상에 죽음을 제도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을 인도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65쪽)
- 홍사용 <궂은비> 중 -

먹을 것이 없어 수제비 한 그릇에 눈물겹던 시절을 생각하면 냉장고 안에서 묵을 대로 묵었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음식에 대해 죄스럽기 그지없듯,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책들에게도 어딘지 모르게 죄스럽다. (74쪽)
- 도종환 <헌책방 순례> 중 -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105쪽)
- 이상 <조춘점묘> 중 -

나는 얼마나 그것이 사랑스럽던지 밤에 잘 때도 그것을 손에 들고 자기도 했고, 그 뒤 어느 지방을 여행할 때도 꼭 그것만은 몸에 지니고 다녔다. (129쪽)
- 이육사 <연인기> 중 -모든 욕망 버리고 눈 쌓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 싶다. (165쪽)
- 최인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중 -

그곳에 배치된 관리관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 한참 후에야 겨우 한국인은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관리관이 “네가 북한(Core du Nord)에서 왔는지 남한(Core du Sud)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183쪽)
- 손봉호 <약소국민의 여권> 중 -

여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온 우리에서 처음 출발할 때의 우리를 빼면 되는 것일까? 여행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난 여행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 (200쪽)
- 김중혁 <여행의 무게> 중 -

프랑스 시인 하나가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예컨대 미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시(詩)가 국민한테서 사랑받고 있는가, 소위‘베스트셀러’ 시인이 아니고도 어째서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는가. (202~203쪽)
- 황동규 <음악이 있는 삶> 중-

“희귀병으로 전염성이 있으며, 드물게 2세에 유전되는 수도 있음으로 죽어도 낫지 않을 병이다. 자각 증상은 발병 후 장시간 경과해야 나타나는데 마이다스마저도 치료비를 감당키 어려운 난치의 고급병이다.” (209쪽)
- 윤광준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파일> 중 -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수건으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216쪽)
- 하종강 <딥 퍼플을 만나다> 중 -

다방 전면에 유리로 만들어진 음악 박스가 있고 수천 장의 음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은 음반을 플레이어에 얹는 DJ가 내 친구였다. 흰 피부에 곱슬머리, 훤칠한 키에 잘생긴 그는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빼닮았다. (219쪽)
- 성석제 <제발 부탁해요 DJ> 중 -

그건 그렇다 치고, 공책은 또 뭔가. 설날 저녁에 그날 하루 종일 찾아온 세배객을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에서 떠올려 이름을 적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권해 올리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다 드시고서. (234쪽)
- 손영목 <세배객 인명록> 중 -

교문 앞을 통과하는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 교문에서 막 한 발을 빼고 있었다. …… 나의 가슴은 금강 상류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 내가 그토록 흠모해 마지않던 소녀이었기 때문이었다. (265쪽)
- 이재무 <혼자서만 꺼내 보던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중 -

다시 누군가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무치어 뼈가 비칠 것 같은 그 마음의 물결이 일렁일 수 있을는지, 그와 헤어져 미술관 계단에 앉아 쓴 시를 덧붙인다. (270쪽)
- 김이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 -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273쪽)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그냥 내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괜히 강제로 일으켜 세우면 옥수수통 끝 알이 잘 여물지 않고 쭉정이가 돼, 주접이 든다구.”
- 함민복 <그냥 내버려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중 -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방 창문을 열었을 때 흐릿하면서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B가 오래전 만났던, 그러니까 한때 연인이었던 여자의 손글씨였다.
- 이병률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중 -

버스는 달렸고 나는 금남로 입구에서 내렸다. … “1년 전이지요. 7월 5일이에요. 3남매 중 큰아들이지요.” 한열이 어머니는 한숨을 토하듯, 그러나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멋모르고 캔만 빨아먹는 어린 손녀딸의 손을 힘들여 쥐고 있었다.
- 기형도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 묘원에서 만난 사람> 중 -

  작가 소개

지은이 : 계용묵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지은이 : 고유섭
1905년 인천 출생,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하여 국내의 중요한 고대 미술품의 조사와 연구에 힘썼고 방대한 양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1944년 병으로 사망했다.그가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글들은 죽은 뒤 제자들에 의하여 『조선탑파(韓國塔婆)의 연구』 『한국미술사급미학논고(韓國美術史及美學論攷)』, 『조선화론집성(朝鮮畵論集成)』, 『한국미술문화사논총(韓國美術文化史論叢)』, 『송도의 고적』 등으로 간행되었다. 한국 미술사에서의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우현상(又玄賞)’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은이 : 기형도
1979년 연세대에 입학한 후,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시작하였다. 1980년 대학문학상 박영준 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했다. 그후 1982년 대학문학상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식목제'로 당선되었으며,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1981년 안양의 문학동인 '수리'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시작에 몰두하였다. 1989년 3월 7일 새벽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짧은 여행의 기록>,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등이 있다.

지은이 : 김기림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경북도 학성군(후에 성진으로 편입됨) 학중면 임명동 275번지에서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등단 초기 간간이 G. W.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바도 있다.어린 시절 고향의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한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적이 있다. 13세에 성진의 농학교(중등과정)에 진학하였으나 1년 수학 직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게 된다. 보성 3학년 재학 도중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고향에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유학을 떠나 당시 도쿄 소재의 메이쿄(名敎)중학[현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 현 우라야스(浦安) 시 소재의 도카이(東海)대학 부속 우라야스고교]에 편입, 졸업한다. 졸업 이후 1926년 봄,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로 진학하고 1930년 봄에 동 대학을 수료한다.대학 재학 기간 중 서구 모더니즘의 여러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과 더불어 ≪조선일보≫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과 비평 발표 등의 문필 활동에도 힘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최초의 글은 니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직후인 1930년 4월 27일에서 5월 3일까지 발표한 <오후와 무명작가들?일기첩에서>로 기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평론으로 분류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한다면 문학적 감상을 섞은 단상 형태의 수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론은 같은 해인 1930년 7월 24일에서 30일까지 ≪조선일보≫ 지상에 편석촌이라는 필명(호)으로 총 6회에 걸쳐서 연재한 <시와 시인의 개념-근본적 의혹에 대하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이후 그는 활발하게 서구 모더니즘에 영향을 입은 시작 활동과 비평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당대 문단의 중심을 향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 그런 와중에 1933년 이태준,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인들의 친목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문학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1935년은 그의 문단 활동이 정점에 이른 시기다. 대표작이기도 한 장시 <기상도>를 잡지 ≪중앙≫과 ≪삼천리≫에 연재하는 한편, 그의 초기 모더니즘시론의 핵심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오전의 시론> 시리즈를 ≪조선일보≫ 지면에 장기간에 걸쳐 의욕적으로 연달아 발표한다.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재도일하여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에 입학한 것이다. 도호쿠제대 재학 기간 동안 조선 내 그의 문단 활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하나, 이 기간 그는 영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원리와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학관을 심화하는 한편, 보다 폭넓은 사회 역사적·철학적 토대 위에 종래 자신이 추구했던 모더니즘문학 운동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조선 문단 전면에 재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문단 활동에 주력하지만, 1940년대로 넘어서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절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 내에서 그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시론집으로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50)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지은이 : 김남천
1911년 평남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고,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제적되었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출옥 후에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에도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8.15 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1953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로동당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지은이 : 김유정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지은이 : 나도향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稻香)은 호이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을 계획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나도향은 1922년 1월에 낭만주의 동인지 『백조』의 창간 동인으로서 한국 낭만주의의 문을 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낭만주의는 시 장르가 강세였기 때문에 낭만주의 소설가로서 나도향은 더욱 희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도향의 낭만주의 소설은 감상적이지 않다. 비애나 한이 넘치는 작품일지라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면 그 감정이 개인적 감상으로 퇴행하지 않는다. 그 눈물과 아픔 속에는 모순된 외부세계를 향한 화살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짧은 문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이」 「뽕」 「의사의 고백」 「계집 하인」 「물레방아」 「꿈」 「한강변의 일엽편주」 「피묻은 몇 장의 편지」 등 수준 높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는데, 아쉽게도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하였다.

지은이 : 도종환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그동안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사월 바다』 등의 시집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등의 산문집을 냈다. 신동엽 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문학부문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이 : 법정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후 인간의 선의지를 고뇌하다가 대학 3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당대 고승인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같은 해 7월 사미계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에서 승려 자운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5년 10월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5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며,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했다.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 소리》, 《산방한담》, 《텅 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홀로 사는 즐거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 《숫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했다.

지은이 : 성석제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전2권), 산문집 『소풍』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이 있다.

지은이 : 손봉호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나눔국민운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세계밀알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협동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자이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다.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지냈다. 저서로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오늘을 위한 철학》, 《기독교적 관점에서》, 《꼬집어 본 세상》, 《윗물은 더러워도》, 《별수 없는 인간》, 《고통받는 인간》 등이 있다.

지은이 : 손영목
1974.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1977.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1982. 경향신문 공모 장편소설 당선1989. 현대문학상 수상1999. 한국소설문학상 수상2004. 한국문학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2007. 채만식문학상 수상2008.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2010.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직무대행2011. 한국문인협회 60년사편찬위원장장편소설 <풍화> <거제도-제1포로수용소> 외중단편소설집 <산타클로스의 선물> <장항선에서> 외

지은이 : 심훈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노량진리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그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본명은 ‘대섭(大燮)’이다. 어렸을 때 ‘삼준(三俊)’, ‘삼보(三保)’로도 불렸으며, 필명으로 ‘금강샘’, ‘백랑생(白浪生)’, ‘해풍(海風)’ 등을 썼고, 1926년 이후부터 아호로 ‘훈(熏)’을 썼다.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며, 2년 뒤인 1917년 3월에는 왕족의 누이동생 이해영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해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재학 중 조선인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한 일본인 수학 선생에게 항의하며, 그 항의의 표시로 백지 답안을 제출해 수학 과목이 낙제되어 유급을 당한다.1919년 3월 기미년 만세 사건 때 심훈은 남대문 앞에서 가담하며, 3월 5일 경성 헌병대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7월 형 집행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퇴학을 당한다. 심훈은 당시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2005년 7월 경기고등학교는 심훈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1920년 심훈은 흑석동 본가와 가회동 큰형 집에 머물면서 문학 독서에 매진하며, 이희승에게 한글 맞춤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듬해 1921년 그는 중국 항저우의 즈장대학(之江大學) 문학원에 입학해 극문학 관련 공부를 하다가 1923년 국내에 들어와 최승일, 이경손, 안석주, 이승만, 김영팔 등과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도 하게 된다. 이 무렵 그는 송영, 이적효, 이호, 박세영, 김홍파 등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문화 단체인 ‘염군사’ 멤버로 동참하며, 1925년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도 가담하여 활동하게 되는데 무산 계급의 해방 문학보다는 전방위적인 해방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1926년 2월 심훈은 동아일보 학예부에서 사회부로 옮긴 후 ‘철필구락부’에 가입하며, ‘철필구락부 사건(급료 인상 투쟁 사건)’으로 해직된다. 그해 11월 그는 동아일보에 연재한 영화 소설 <탈춤>부터 “심훈(沈熏)”이란 새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1927년 2월에는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도일(渡日)하며 일본의 닛카스(日活) 회사에 입사하지만 얼마 있지 않고 5월 귀국해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입사한다. 그러나 일본 황태자를 전하로 호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개월도 안 되어 퇴사를 당한다. 그리고 7월에는 나운규를 감독으로 <탈춤>을 영화화하며, 10월에는 원작·각색·감독한 영화 <먼동이 틀 때>(원제 <어둠에서 어둠까지>)를 완성해 상영하기도 한다.1928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입사해 신문 기자직을 이어 가나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 생계를 외상으로 허덕인다. 이 해 11월 ≪새벗≫에 소년 영화 소설 <기남(奇男)의 모험(冒險)>을 게재한다.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 소설 <오월비상(五月飛霜)>을 게재하며, <원단잡음(元旦雜吟)>, <거리의 봄>, <어린이날>, <야구(野球)> 등의 시도 여러 편 게재한다. 1930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동방의 애인>을 연재하나 10월 29일 조선총독부 검열로 중단된다. 그리고 그 해 11월 근화여학교(槿花女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한 안정옥(安貞玉)과 약혼하며, 12월 24일에는 결혼을 한다.1931년 8월 16일부터는 ≪조선일보≫에 <불사조>를 연재하나 12월에 또다시 검열로 중단된다. 1932년에는 조선일보 기자직을 그만두고 양친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살게 되며, 그해 4월 아들 ‘재건’이 태어난다. 이해 9월 경성세광사에서 ≪심훈 시가집≫을 출판하려 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출간이 미뤄진다.1933년 7월 심훈은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영원한 미소≫를 연재하며, 8월에는 기자 생활을 못 잊어 서울로 상경해 조선중앙일보사에 들어가 학예부장을 맡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당진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는 1934년 3월 이혼한 부인 이(李)씨를 모델로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며, 여기서 생긴 원고료로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그 집에서 ≪상록수≫를 완성한다.1935년 2월 심훈의 장편소설 ≪영원한 미소≫가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며, 8월에는 ≪동아일보≫ 창간 15돌 기념 현상공모에 ≪상록수≫가 당선된다. 심훈은 그때 받은 상금 500원 중 일부를 야학당에 후원하며, 이 후원으로 상록학원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해 9월부터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상록수≫를 연재하기 시작한다.1936년 8월 10일 심훈은 서울로 상경했다가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하고는 신문 호외의 뒷면에 시 <절필-오오 조선의 남아(男兒)여!>를 써서 ≪중앙≫ 문예지 편집실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해 9월 16일 ≪상록수≫ 출판 문제를 의논하고 ≪심훈 시가집≫ 교정을 보던 중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경성대학병원에서 치료하다가 36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17일에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사후 1949년 7월 생전에 출간하지 못한 그의 시가집이 중형(仲兄) 심설송(沈雪松)의 도움으로 한성도서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으로 발간된다.

지은이 :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음의 오지』(1999),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2004), 『산책시편』(2007), 『지금 여기가 맨 앞』(2014)이 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이 : 이상
이상(李箱, 1910-1937)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은 19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구인회의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우하며 문단과 교우를 맺었으며 이태준의 주선으로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를 연재하였으나 난해함에 항의하는 독자들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이상의 문학에는 억압되고 좌절된 욕구를 가진 무력한 자아의 불안과 공포 및 탈출 시도, 그리고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한 자기 분열과 비합리적인 내면세계가 그려져 있어 흔히 난해한 초현실주의적인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기존 문학의 형태를 해체하여 이전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로 구축한 작품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은이 : 이어령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문학평론가, 언론인,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전 문화부 장관 등 그를 규정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24세에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또한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는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등 탁월한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20대에 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7개 국어로 번역되는 등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각광받았으며 50대에 출간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도 인정한 탁월한 일본 문명 분석서로 평가받는다. 사회의 변화를 읽고 새 시대를 예고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창조력, 상상력, 호기심에 있음을 역설하는 그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누구보다 젊은 감각으로 시대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창조적 사유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대표 저서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지성에서 영성으로』 『저항의 문학』 『젊음의 탄생』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디지로그』 『생명이 자본이다』 등이 있으며 2021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이 : 이유식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현대문학』 추천(1961년)을 받아 평론가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 등, 평론집으로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 『변화하는 시대 우리 문학 엿보기』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배화여대와 덕성여대 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문학비평가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고문을 맡고 있다.[저서]수필집 : 《내 마지막 노을빛 사랑》, 《노래》,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남자 뺨을 때리는 여자들》, 《이유식의 문단수첩 엿보기》 등 10여 권평론집 :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 《한국소설의 위상》, 《흘겨보기와 예쁘게 보기》, 《한국문학의 전망과 새로운 세기》, 《변화하는 시대 우리문학 엿보기》, 《새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 등 10여 권기타 저서 등 도합 30여 권[수상]현대문학상/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예총예술문화대상/한국문학상예술평론공헌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등 다수

지은이 : 이육사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했다.

지은이 : 이윤기
1947년 경상북도 군위에서 태어났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로 입선해 등단, 이후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인간과 상징』 등 25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대한민국 최고의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으로 문단에 돌아온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장편소설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소설집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출간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윤기체'라 칭할 만큼 개성 있고 맛깔나는 문체를 구사하는, 탁월한 문장가로서도 시대를 풍미했다.청년 시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성결교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91~2000년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종교학·문화인류학 초빙연구원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번역과 문학에 헌신해온 이력을 인정받아 2005년 순천향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그의 흡인하는 입담과 통섭하는 지성은 대한민국에 신화 열풍을 일으켰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되고 2010년 5권으로 완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30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윤기만의 독특한 해석과 상상력은 오래된 이야기에 의미와 생명을 불어넣고, 나아가 신화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과 저자가 직접 촬영한 유적지와 박물관 사진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한다.이 밖에도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등 다양한 인문 교양서를 펴냈다.동인문학상(1998, 「숨은 그림 찾기1-직선과 곡선」), 한국번역가상(2000), 대산문학상(2000, 『두물머리』)을 수상했다.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지은이 : 이익섭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원장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2020년 현재:서울대학교 명예교수논저: 『영동 영서의 언어 분화』, 『국어문법론』, 『방언학』, 『국어학개설』, 『국어 표기법 연구』, 『사회언어학』, 『한국의 언어』(공저), 『국어문법론 강의』(공저), 『국어 부사절의 성립』, 『한국어 문법』 외

지은이 : 이재무
충남 부여 출생.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시집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외, 시선집 『얼굴』 외,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 등 출간.소월시문학상, 유심작품상 외 수상.

지은이 : 이태준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지은이 : 전혜린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31세로 요절한 독문학자이자 독일문학 번역가.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여중고에서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 후 귀국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를 맡는 한편, 번역 작업을 했다.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등의 탁월한 독일문학 작품들이 전혜린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는 소녀 시절부터의 집념,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 관념, 지식에 대한 숭배, 그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은 이후 ‘전혜린 신화’로 남게 된다. 저서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있다. 역서로는 프랑소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에른스트 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온 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W. 막시모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 하인리히 노바크의 『태양병病』등이 있다. 1965년 1월, 항상 인습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너무 일찍 이 세상과 작별했다.

지은이 : 정지용
본관은 연일(延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으로 아명(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시단 활동은 김영랑과 박용철을 만나 시문학 동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화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에 요람동인(搖籃同人)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유학 시절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등과 교토의 도시샤대학 내 동인지 『가(街)』와 일본시지 『근대풍경(近代風景)』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이런 작품 활동이 박용철과 김영랑의 관심을 끌게 되어 그들과 함께 시문학동인을 결성하게 되었다. 첫 시집이 간행되자 문단의 반향은 대단했고, 정지용을 모방하는 신인들이 많아 ‘지용의 에피고넨(아류자)’이 형성되어 그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의 이런 시적 재능과 활발한 시작 활동을 기반으로 상허 이태준과 함께 『문장(文章)』 지의 시부문의 고선위원이 되어 많은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했다.유작으로는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白鹿潭)』(1941) 등 두 권의 시집과 『문학독본(文學讀本)』(1948), 『산문(散文)』(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지은이 : 최서해
함북 성진 출생. 본명은 최학송(崔鶴松).1918년 어머니와 간도로 들어가 유랑생활 및 농노생활을 함.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으로 등단. 신경향파 문학의 기수. ‘빈궁의 문학’이라는 1920년대 ‘단자적’ 영역을 만듦.작품으로 〈탈출기〉 〈홍염〉 〈서막〉 〈갈등〉 〈무명초〉 〈큰물 진 뒤〉 〈박돌의 죽음〉 외 다수가 있다.

지은이 : 최인석
1953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79년 〈연극평론〉에 희곡 〈내가 읽어버린 당나귀〉를 발표하면서 희곡 작가로 등단하여 대한민국문학상, 백상예술상,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구렁이들의 집》, 《목숨의 기억》 등이 있고, 장편소설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그대를 잃은 날부터》, 《연애, 하는 날》, 《투기꾼들을 위한 멤버십 트레이닝》 등이 있다.

지은이 : 최인호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술꾼』, 『개미의 탑』, 『견습환자』 등이 있으며, 『길 없는 길』,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상도』, 『내 마음의 풍차』, 『불새』, 『제4의 제국』,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지은이 : 함민복
자본주의와 물질로부터 소외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소박한 문체와 감성적인 시어로 고발하고 환기시켜왔다. 현대인의 삶에 침잠한 욕망과 부조리에 날선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낡은 것들을 가까이하는 투박한 일상과 자연의 내밀한 가르침을 보여줌으로써 응수한다. 느리고 가난하게 살며 시로 세상을 그려낸다.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우울 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 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등의 시집과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지은이 : 황동규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 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 었다』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 『사는 기쁨』 『연옥의 봄』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 상·미당문학상·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지은이 : 강경애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 출생.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아 경성부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해 약 1년간 수학했다.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가담했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한때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했으나, 건강 악화로 1942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해 요양하던 중 사망했다. 『인간 문제』와 「지하촌」을 비롯해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지은이 : 홍사용
1900년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본관은 남양. 아호로는 노작, 소아, 백우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는 생후 100일만에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서울 재동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8세까지 살다가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그가 태어난 용인군 농서리에서 멀지 않은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 492번지로 이사하여 휘문의숙에 입학할 때까지 그곳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홍사용은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그 해 6월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수필「청산백운」과 시「푸른 언덕가으로」를 썼다. 수필「청산백운」은 휘문 교우 정백과 함께 쓴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홍사용의 최초의 작품이 되고 있다.박종화, 정백 등 휘문 교우들과 함께 유인물 <피는 꽃>과 서광사에 <문우>를 발행한 것을 비롯하여, 재종형 홍사중을 설득하여 문화사를 설립,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를 기획했으나, <백조>만 3호까지 간행되었다. 그의 문단활동은 <백조> 창간과 함께 본격화되어 <개벽> <동명> <여시> <불교> <삼천리문학> 등과 같은 월간지와 일간신문에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1930년을 전후하여 홍사용은 전국을 방랑하다 돌아와 자하문 밖에서 한방의학을 공부하여 만년의 생계를 삼았다고 한다. 8.15 해방이 되자 그는 곧바로 <근국청년단>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지병인 폐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짧은 생애를 마쳤다.

지은이 : 윤광준
사진에서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활동하는 아트 워커. 우리나라 최초로 예술대학이라 이름 붙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색깔 있는 내용으로 일세를 풍미한 《마당》과 한국의 독보적인 예술잡지 《객석》의 사진을 담당하며, 한글 디자이너로 유명한 안상수 아트 디렉터 등과 작업했다. 이후 웅진출판에서 초대형 프로젝트 ‘한국의 자연탐험’을 진행하며, 한국의 미를 기록하는 도큐먼트 사진의 시대를 여는 주요 사진가로 활동했다. 기자보다 글 잘 쓰는 사진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96년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에 나선다. 본격적인 예술 탐구가로서의 인생을 살기 위한 반전이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편견 없이 수용하며,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추적하는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함께한다. 스스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보다 일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즐기는 ‘딜레탕트(예술 애호가)’이기를 바란다.오디오 평론가로도 유명하며, 10여 년 넘게 일상의 탁월한 사물들인 ‘생활명품’을 발굴하고 소개해왔다. 파버카스텔, 메르세데스-벤츠 등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비롯 노바티스, 네이버, 신세계 스타필드 등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사진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국악에도 조예가 깊어 사야국악상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 디자인의 원류인 바우하우스 연구를 위해 독일 전역을 돌고 있다. 현재 이함캠퍼스의 콘텐츠 에디터로 공간과 전시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에 예술 분야의 유례없는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 사물에 대한 체험과 취향에 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선보인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비롯 다수가 있다.

지은이 : 김교신
1901년 함남 함흥에서 아버지 김염희와 어머니 양신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1903년 21세로 요절해 모친의 슬하에서 자랐다. 18세에 함흥농업학교를 마치고, 19세에 도일해 도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당시 일본의 저명한 영문학자 사이토 히사부로 밑에서 영어를 수학했다. 22세에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과에 입학했고, 중도에 박물 지리과로 전과해 27세에 졸업하고 귀국 후 함흥 영생여고와 서울 양정, 제일(경기), 개성, 송도 등에서 1942년 ‘성서조선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15년을 청년 교육에 종사했다. 그중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10년간이 가장 길었고, 1940년 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재직 중에 불온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6개월 만에 추방되기도 했다.1920년 4월에 길거리 전도를 받아 홀리니스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교회 내의 심한 부패와 알력에 회의를 품고 같은 해 11월에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에 들어가 7년간 성서 강연에 참석했다. 1927년에는 김교신을 포함한 함석헌, 송두용, 양인성, 류석동, 정상훈 등 우치무라 문하의 신앙 동지 6명이 모여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1930년부터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의 주필이 되어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원고 작성, 잡지 편집, 배송, 총독부 검열 등 잡지의 제작과 발간, 우편 배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 그래서 김교신과 ≪성서조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수필이나 산문이 모두 ≪성서조선≫에 실려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언 <조와(弔蛙)>가 발단이 되어 김교신을 비롯한 구독자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로 인해 김교신은 1년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1943년 불기소 처분으로 출옥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김교신은 한동안 신앙을 전수한 형제들을 방문하며 신앙생활을 독려했다. 1944년 함흥 질소 비료 공장에 입사해 3000여 조선인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 의료, 주택 등의 개선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45년 공장 노동자의 병을 간호하던 중에 발진티푸스에 전염되어 갑자기 사망했다.

지은이 : 백신애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집과 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영천공립보통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다.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필명 박계화(朴啓華)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신춘문예 첫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결혼 후 경산군 반야월의 과수원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 체험한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이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악부자(顎富者)」(1935), 「식인(食因)」(1936) 등의 바탕이 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와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를 포함해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소설 20여 편과 수필 및 기행문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 : 이병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있고 산문집으로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혼자가 혼자에게』가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이 : 김중혁
2000년 『문학과사회』에 중편소설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엇박자 D」로 김유정문학상을, 「1F/B1」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요요」로 이효석문학상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휴가 중인 시체」로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김중혁의 책들]소설집『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장편소설『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산문집『뭐라도 되겠지』,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 『모든 게 노래』, 『메이드 인 공장』, 『바디무빙』, 『무엇이든 쓰게 된다』그 외『우리가 사랑한 소설들』(공저), 『탐방서점』(공저), 『질문하는 책들』(공저)

지은이 : 서명숙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다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편집장 등을 역임하며 23년간 언론계에 있다가, 2007년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었다. (사)제주올레 이사장, 아시아트레일즈네트워크(ATN) 의장, 월드트레일즈네트워크(WTN) 국제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흡연 여성 잔혹사》 《식탐》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영초언니》 등이 있다.

지은이 : 김이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가 있으며 연구 서적으로 『한국 현대 페미니즘시 연구』가 있다. 두 권의 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 『Hysteria』와 한 권의 영역 장편소설 『Blood Sisters』가 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22세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등을 수상했다.2020년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여러 장르의 글을 씁니다. 장사도 하고 강의도 해요. 다 별로 재미없어요."

지은이 : 설의식
일제시대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였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 당시 '동아일보'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었으나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를 떠나게 되었다.

지은이 : 노자영
1900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고향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장미촌》 《백조》 동인의 일원이 되었다. 시집 《처녀의 화환》 《내 혼이 불탈 때》 《백공작》, 소설집 《무한애의 금상》 《처녀의 화환》 《영원의 몽상》, 수필집 《인생안내》 등이 있다. 잡지 《조광》 《신인문학》을 편집하는 등 편집자로, 그리고 호머의 시를 비롯한 작품의 번역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은이 : 이동순
195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했다.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었다. 시집으로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봄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 『묵호』, 『멍게 먹는 법』, 『마을 올레』, 『좀비에 관한 연구』, 『강제이주열차』, 평론집으로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 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달고 맛있는 비평』, 한국가요사를 다룬 『번지 없는 주막』 등 각종 저서 56권 발간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인의 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백석 시전집』(1987)을 발간하고 민족문학사에 복원시켰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이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 1982년 노동 상담을 시작한 뒤 같은 분야에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활동하고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3 2년 동안 일했고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제8대 학장을 거쳐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 교수로 있다. 1994년 제6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철들지 않는다는 것』, 『울지 말고 당당하게』 등의 책을 썼다.

지은이 : 김병모
고고학자.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함. 한국고고학회회장,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1993~1995년 한국고고학회 회장으로 재임시 고속전철 경주시 통과계획 반대운동을 이끌었음.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음.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발자취』(1985), 『몽골: 바람의 고향, 초원의 말발굽』(공저)(1993), 『김수로왕비 허황옥: 쌍어의 비밀』(1994), 『금관의 비밀: 한국 고대사와 김씨의 원류를 찾아서』(1998), 『Megalithic Cultures in Asia』(1998), 『김수로왕비의 혼인길』(1999),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1-2』(2006) 등과 에세이집 『옥스포드에서 온 편지』(1990) 등이 있음. 백남 학술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함.

지은이 :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고,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박재삼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책 『나무 고아원』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똥방패』, 동시집 『지구의 맛』 『저 많이 컸죠』 『콧구멍만 바쁘다』, 청소년시집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까짓것』과 시집 『동심언어사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정말』 『의자』,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인의 서랍』 등을 썼다.

  목차

윤작가 _ 밑줄치기 문장수집가의 산문 읽기

1장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이태준 _ 책
백신애 _ 자수(刺繡)
김남천 _ 냉면
나도향 _ 별호(別號)
심 훈 _ 7월의 바다
정지용 _ 산문(散文)
김기림 _ 가을의 누이
계용묵 _ 효조(曉鳥)
김유정 _ 길
강경애 _ 내가 좋아하는 솔
최서해 _ 담요
홍사용 _ 궂은비
노자영 _ 계변정화(溪邊靜話)
도종환 _ 헌책방 순례
함민복 _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이병률 _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이문재 _ 누가 라면을 함부로 말하는가
이 상 _ 조춘점묘(早春點描)

2장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

김교신 _ 조와(弔蛙)
설의식 _ 헐려 짓는 광화문(光化門)
고유섭 _ 선죽교 변(善竹橋辯)
이육사 _ 연인기(戀印記)
서명숙 _ 행복한 걷기
법 정 _ 영혼의 모음: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이어령 _ 괜찮다: 관계의 문화
이윤기 _ 잘 익은 말을 찾아서
이익섭 _ 한국어의 멸종위기설
최인호 _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3장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

기형도 _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묘원에서 만난 사람
전혜린 _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손봉호 _ 약소국민의 여권
김병모 _ 비엔나로 가는 밤기차
김중혁 _ 여행의 무게

4장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황동규 _ 음악이 있는 삶
윤광준 _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파일
하종강 _ 딥 퍼플을 만나다
성석제 _ 그 음악을 제발 부탁해요 DJ

5장 문단 이면사

이유식 _ 일찍 데뷔한 조숙한 문인들
손영목 _ 세배객 인명록
최인석 _ 메밀꽃과 A.T.T.
이동순 _ 김지하 시인과의 노래 시합
윤작가 _ 가족 문단사(文壇史)

6장 예술가의 첫사랑

이재무 _ 혼자서만 꺼내보는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김이듬 _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정록 _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부 록

작품 출전
작가 연보
느낌 산문 더 듣기 - 북적북적톡설 팟캐스트 방송 목록
우리시사랑 나눔시(詩) 방송 듣기 목록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