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을 쓴 박시윤 작가가 2년 만에 새로운 역사기행문을 펴냈다. 울릉도살이를 정리하고 뭍으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숨은 옛 절터. 신간 『잇대고 잇대어 일어서는 바람아』는 동해안 7번 국도 바람길을 이어달리기하듯 떠돈 지은이가 흔적만 남은 폐사지에서의 시간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땅을 휘저을 때 지은이는 사람과의 부대낌에서 벗어나 무작정 길을 나섰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바람을 만끽한 그가 멈춰선 곳은 낡고 허물어진 땅, 쇠락한 땅, 오래된 절터였다. 지은이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절터에서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위로를 받고 그 위로를 독자와 나눈다.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차분하고 평온하게 절터의 고요를 느끼게도 하고, 때로는 절터를 찾아 숨가쁘게 내달리게도 하며, 때로는 아무렇게나 훼손된 절터를 바라보며 공허함을 느끼게도 한다. 속도를 조절하는 지은이의 글이 독자를 고성으로, 속초로, 동해로, 삼척으로, 울진으로, 경주로 무한히 이끈다.
출판사 리뷰
‘속계 밖의 세상은 낙원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곳이 내 삶의 안식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일 들고 나는 바람이 가벼웠으므로 질리지 않았다. 있었으되 사라진 곳, 오래되고 낡은 것, 거칠고 둔탁한 것, 찌들고 병든 것, 허물어지고 쇠락한 것…. 유별스럽게 찾아다닌 곳은 죄다 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조금씩 아름다운 소멸에 물들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을 쓴 박시윤 작가가 2년 만에 새로운 역사기행문을 펴냈다. 울릉도살이를 정리하고 뭍으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숨은 옛 절터. 신간 『잇대고 잇대어 일어서는 바람아』는 동해안 7번 국도 바람길을 이어달리기하듯 떠돈 지은이가 흔적만 남은 폐사지에서의 시간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내가 바람에 잇대고 잇대어 일어선 곳은
아릿한 소멸의 땅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땅을 휘저을 때 지은이는 사람과의 부대낌에서 벗어나 무작정 길을 나섰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바람을 만끽한 그가 멈춰선 곳은 낡고 허물어진 땅, 쇠락한 땅, 오래된 절터였다. 지은이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절터에서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위로를 받고 그 위로를 독자와 나눈다.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차분하고 평온하게 절터의 고요를 느끼게도 하고, 때로는 절터를 찾아 숨가쁘게 내달리게도 하며, 때로는 아무렇게나 훼손된 절터를 바라보며 공허함을 느끼게도 한다. 속도를 조절하는 지은이의 글이 독자를 고성으로, 속초로, 동해로, 삼척으로, 울진으로, 경주로 무한히 이끈다.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끈 것은 한계령 어디 즈음에
잊힌 절터가 있다는 오래전의 이야기
지은이의 옛 절터 기행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무심하게도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잡지에서 우연히 보았던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동했다.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눈보라 속에 서 있던 탑 하나, 그게 전부였다. 어떤 쓸쓸함과 충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매혹적인 풍경이었다. 결국 한계령 어디쯤에서 빈터를 지키고 선 탑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동해안 7번 국도 바람을 따라, 소멸해가는 옛 절터로 이어졌다. 어떤 절터는 이곳이 절이 있던 자리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법한 전혀 다른 땅이 되어버렸고, 어떤 절터는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의 촌로들만 기억하는 그야말로 석조물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어떤 절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속에 제법 많은 옛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절터의 특성상 험준한 산세를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기에 지은이는 여러 해, 여러 계절에 걸쳐 확인하며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세세히 담아냈다.
‘잘 짜인 구도 위에 교리를 바탕으로 빈틈없이 세워진 가람도 훌륭하겠지만, 역사에 기록도 없이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만났을 때의 전율은 쓸쓸함과 신비함이 뒤섞여 작용했다. 눈 감고 스스로 세우는 가람과 그 속에 나를 위해 거룩하게 세운 교리는 무기한으로 심취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더 늦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옛 절터의 아름다운 소멸
지은이가 여행을 여행에서 멈추지 않고 굳이 책으로 펴낸 것은 절터의 현재를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약 1천700년 동안 이 땅에서 불교는 종교적 신앙뿐만 아니라 문화의 큰 축을 그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절터만 해도 4천여 곳. 상당수의 폐사지는 사유화되거나,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 등으로 사라졌고 훼손되었다. 더 늦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라도 기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사진을 찍고, 문헌을 찾아보며, 정돈된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은이는 우리 땅 북쪽 끝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남쪽 끝단 부산에 이르기까지, 동해안을 따라 지난 2년 동안 둘러본 절터 가운데 23곳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추려 엮었다. 여기에다 갈 수 없는 절터 2곳에 대한 이야기를 부록으로 따로 뽑아 실었다.
그 중 하나는 고성 유점사 터. 행적구역으로는 고성이지만, 분단으로 인해 닿을 수 없는 북녘 땅에 있다. 게다가 유점사는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며 왕실의 원당 노릇을 할 정도로 융성했었으나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린 비운의 사찰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아쉬움이 컸던 유점사 터와 더불어, 아직 절터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고성 적곡사 터 이야기를 통해 상상 속에서나마 절터를 만나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누구에게는 가벼운 기행문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종교적 포행이나 만행, 누구에게는 문학적 에세이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쓰임을 받든, 이 책으로 하여 잊히고 묻힌 곳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을 달랠 원천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은이의 말이다.
내가 건봉사를 처음 찾은 건 이태 전이었다. 얽히고설켜 세상의 굴레와 번잡함이 싫어졌다. 가장 절실했던 건 세상 밖으로의 도피였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했다. 만상이 깃든 세상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틈만 나면 인적 드문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발길 닿은 곳이 황량한 공터였고, 종일 머물다 그곳이 옛 절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한 절터를 찾아 떠돌다 건봉사에 발길이 닿은 건 우연이었다. 찾고자 했던 ‘절터’였다기보다 복원이 이미 진행된 사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냥저냥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선잠에서 떠돌다 보면 어느새 건봉사였다. 혹독한 겨울이면 더욱 그랬다. 웅웅거리며 창을 흔들어대던 바람 소리 끝에 건봉사가 어른거렸다. 그리하여 인연도 없는 사찰을, 잊을만하면 문득 찾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흰둥이와 함께 능파교를 건너며 내게 미소로 말 걸어 주던 앳된 스님은 잘 계시는지, 흰둥이는 또 얼마나 많이 컸는지…. 지척인 듯 선한 풍경이 나를 흔들었다.
그리하여 실로 건봉사만 들르기 위해 다시 고성에 온 것이다. 건봉사는 군사보호 구역에 포함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이었지만, 근래 건봉사를 출입하는 길만 해제됐다. 거대한 산이 남쪽과 북쪽으로 끝없이 누웠고, 그 산등선 어딘가에 휴전선이 놓였다. 금강산은 휴전선 어디쯤에서 시작하는데, 건봉사는 영산으로 손꼽히는 금강산의 초입에 있어 ‘금강산 건봉사’로 불린다. 백두대간 산세가 지극히 아름답다. 신神은 필시, 금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자리를 비워 건봉사를 세웠을 것이다.
(고성 건봉사 터)
“휴전선 이남, 고성 땅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탑이라우. 6·25 때, 내가 피난 갔다 와도 거뜬히 남아 있었으니…. 어찌나 반가웠던지 몰라. 근데 난리 통에 많이 상했다우. 총 맞은 자국이 아직도 선명해. 6·25를 겪느라 좀 깨져서 그렇지, 내 보기엔 우리 탑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해. 가장 잘생긴 탑이라우. 잊을 만하면 이 골짜기까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반갑고 말고지요.”
평생 탑을 보며 살아왔다는 영감님의 모습이 무명의 절터에 서 있는 고졸한 모습의 탑과 닮았다. 묻고 물어 어렵게 찾아온 탑은, 고성산 북동쪽 무명의 계곡 인근에 비록 돌덩이 몇 개로 겨우 쌓아 올린 듯 허술했으나, 그간 만났던 어떤 탑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금수리 석탑을 만난 후 무엇을 대할 때면 잘나고 못난 것에, 번성과 쇠락에 차이를 두지 않기로 했다.
(고성 건봉사 터)
오래전 누군가 한계령 그 어디 즈음에 오랫동안 잊힌 절터가 있다고 했다. 무심히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근래 불쑥 떠오른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골 깊은 산을 배경으로 흰 눈을 흠뻑 덮어쓴 석탑 하나가 전부인 사진이었다. 볼 것도 없는 사진에서, 눈발 날리는 한겨울임에도 고즈넉한 적요가 풍겼다. 탑과 적요는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떠돌았다. 꼭 만나야 할 인연처럼 매일 잠자리에서 한계령을 넘고 넘었다.
절터로 오르는 길은 아늑했다. 발에 감기는 촉감이 신선했다. 적당히 자란 나무 그늘에 그만그만한 풀들이 조붓했다. 폐가 한 채를 끼고 도니 우거진 나무 아래 돌계단이 나타났다. 그늘진 곳에 이끼가 잔뜩 끼어 오래 묵은 티가 났다. 과거로 향하는 통로인 듯 신비스러움마저 감돌았다.
옛날 사람들이 수없이 밟았을 돌계단을 오르니 ‘한계사지寒溪寺址’라는 안내판과 함께 너른 풀밭이 나타났다. 풀밭은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이 험한 골짜기에 양지바른 평지라니….’
절터는 한계령 서쪽, 설악산 서북릉과 내설악 가리봉 능선의 골짜기에 깊게 은둔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웅혼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진 숲속에 숨어, 마치 깊은 산중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한 채의 대궐처럼 묘했다.
시공을 초월하는 통로를 건너온 듯, 북적이던 인적은 저 건너의 세상으로 밀려났다. 절터는 폐허의 시간을 넘어 원초의 것으로 돌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풀과 나무는 적당한 간격으로 섰고 바람의 흐름도 달랐다. 눈앞에 존재하는 신선의 땅이었다. 햇살이 산등성을 올라타고 바위를 올라타고, 나무들을 올라타고 와 풀밭에서 스러졌다. 산그늘도 내리지 않는 아침이었다. 바라보는 동안 무엇에도 걸림 없는 무한의 침묵이 밀려왔다.
(인제 한계사 터)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시윤
별이 많은 벽촌에서 태어났다. 뜻하게 않게 도회지로 나와 평범하게 자랐다. 학창시절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0대를 온전히 글과 함께 보냈다. 한때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절어 문학과 멀어졌으나, 병을 앓으며 원고지 위로 돌아왔다.2011년 목포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피하듯 떠난 울릉도에서 숨어 지내다 2년 만에 뭍으로 다시 나왔다. 이곳저곳 세상 흘깃거리기도 하고 밤새워 글줄 엮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2013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 지원금을 받았고, 2019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작가로 선정됐다.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이 있다.
목차
책을 내며
1부 강원 영동 굽이굽이 비운의 바람이 깃들어
고성 건봉사 터 이와 같이 잇대고 잇대어 일어서는 바람아
고성 금수리 절터 망국의 슬픔도 어느새, 봄이더이다
고성 탑동리 절터 볼 것 하나 없으면 어떠리
속초 향성사 터 그리하여, 오래오래 눈이 내렸다
인제 한계사 터 차가운 고개 그 어디 즈음에 발길 머물러
양양 진전사 터 열두 고개가 모두 어두웠다
강릉 굴산사 터 대관령 아래 선한 바람의 진언을 듣다
강릉 신복사 터 천년 근심도 잠시 쉬어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동해 삼화사 터 바람 부니 흔들리고, 비 오니 흠뻑 젖고
동해 거제사 터 만고풍상 깎이고 헐려도 천고토록 흩어지지 아니하고
동해 지상사 터 산산이 흩어져도 한 줌 흔적만은 남아
삼척 흥전리 절터 먼 산언저리 어이하여 쇠락을 말하는가
2부 경북 동해안 무언의 공空한 바람아
울진 구산리 절터 바람이 흔들면 못 이긴 척 따라 나섰다
영덕 쟁암리 절터 세월 가면 사라지고 묻히고 잊히고
포항 법광사 터 바람이 흔들면 못 이긴 척 따라 나섰다
경주 고선사 터 그리움은 한 곳에, 그리하여 다시
경주 늠비봉 절터 법등은 꺼지고 탑만 제 자리를 지키니
경주 용장사 터 주인 없는 허공에 발 딛고 서니
경주 감은사 터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3부 경남 울산 부산 벌판에 훨훨 바람 되어
합천 영암사 터 눈 감고 들었네, 바람이 전하는 말
울산 울주 운흥사 터 구름에 들었는가, 안개에 휩싸였는가
울산 망해사 터 주인 모를 승탑엔 봄꽃만 환하여라
부산 만덕동 절터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어찌 그릇된 것이랴
부록 강원 북한 바람을 따라 아릿한 소멸의 땅
강원 고성 유점사 터 눈감으면 보일까, 꿈엔들 닿을까
강원 고성 적곡사 터 어디에도 없었다
닫으며
절터 길라잡이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