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미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청색종이 / 권민경, 김민식, 김상혁, 박지웅, 박진이, 윤선, 이병철, 이재훈, 정민식, 정현우, 주민현, 황은주 (지은이) /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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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종이소설,일반권민경, 김민식, 김상혁, 박지웅, 박진이, 윤선, 이병철, 이재훈, 정민식, 정현우, 주민현, 황은주 (지은이)
경기문학 48권. 시인 12인의 신작시를 묶은 앤솔러지 『누군가 이미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당대 시인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단일한 주제를 향해 모여 있지 않고, 각기 전혀 다른 지점에서 어떤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
우리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는 12인의 시편이 수록된 이 시선집은 각각의 시인이 포착한 시선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산개함으로써 우리 현대시의 자장이 어디까지 펼쳐지고 있는지를 조망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이로써 이 시선집은 우리 시대의 시인들이 하나의 세계를 두고 이를 해석하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09
권민경
번개 | 볼록한 병 | 번아웃 | 아이돌
19
김민식
내가 사슬을 그릴 때 | 계열과 채굴 | 물에 젖은 유리공을 던지고 받는 일에 관하여 | 노천카페에서 천혜향을 까는 사람의 시점에서
35
김상혁
아이의 빛 | 심하게 봄 | 오세요 미야기 | 무스
43
박지웅
검은 귀 | 다시, 사흘 | 시월여관 | 팔월
51
박진이
거기서 슬프고 여기서 울어요 | 미국 | 빗소리 | 여행
61
윤선
프로펠러 | 나는 일요일마다 굿모닝랜드로 간다 | 말을 가두어요, 조세핀 | 바벨론
73
이병철
설리(雪裏) | 사랑의 찬가 | 꽃잎이라는 장마 | 홍차가 아직 따뜻할 때
83
이재훈
탐닉의 개인사 | 블루 | 폐허연구실 | 전염병
91
정민식
1월 1일이 모든 사람의 생일인 나라 | 양형 참작 사유서 | 방수 잘되는 집 | 완벽한 번역
103
정현우
종 | 유리의 집 | 슬픔에게 말을 빌려 | 계수
111
주민현
그린란드에 내리는 편지 | 청소의 이해 | 사이와 사이 | 공중부양의 자세
121
황은주
해변의 만화경 | 완벽한 타인 | 지하생활자 | 분명
129
평론 시선(詩選), 혹은 시선(視線) | 김대현(문학평론가)시인 12인의 신작시를 묶은 앤솔러지 『누군가 이미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당대 시인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단일한 주제를 향해 모여 있지 않고, 각기 전혀 다른 지점에서 어떤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 우리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는 12인의 시편이 수록된 이 시선집은 각각의 시인이 포착한 시선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산개함으로써 우리 현대시의 자장이 어디까지 펼쳐지고 있는지를 조망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이로써 이 시선집은 우리 시대의 시인들이 하나의 세계를 두고 이를 해석하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권민경 시의 내장(內臟)에는 깊은 슬픔이 내장(內藏)되어 있다. 이 슬픔의 종류는 “센티멘털”과 같은 처연함이 아닌 “태반을 찢고 나오는 홀딱 젖은 털짐승처럼” 또는 자신의 생계를 걸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얼굴로 랩을 뚫으려 용쓰는 개그맨”(「아이돌」)과 유사한 종류의 처절함이다.
김민식의 시들은 「내가 사슬을 그릴 때」의 서두에 나타나는 시구처럼 “금팔찌에 회칠을 하고 다시 금박을 입히는”시들이다. 그의 시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전언을 이런저런 “회칠”을 통해 은폐하고, 이후 다시 원래의 전언을 떠오르게 하는, 하지만 그와는 분명히 다른 “금박”의 외피를 입힘으로써 원본이 아닌 복제를 통해 그의 전언을 인지했다고 생각하는 읽는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작업이다.
김상혁의 시는 생활(生活)의 피로를 사유하는 시들이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생활은 단순히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가리키는 생(生), 즉 삶이 아니라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박지웅의 시에 나타난 사랑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것이 전하는 정동은 사랑을 논하는 여타의 서정시와 달리 읽는 이를 무겁게 짓누른다. 「다시, 사흘」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 편의 시와 조금은 다르게 강한 정동이 나타나 있는 이 시에서 당신이 전해주는 화자는 죽음에 직면한다.
박진이의 시에 나타난 슬픔은 혼자 슬프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 마주하는 다른 슬픔과 공명하지 않고 그래서 더 깊이 가라앉는 슬픔이 그럴 것이다. 슬픔의 정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윤선의 시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이 말속의 말들을 거침없이 들려준다. 「프로펠러」는 시스템 내부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하여 자신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마음에도 없는 날개”를 달고 “진실”과 “양심”은 물론 “간”과 “쓸개”도 버려야 하는 현대인의 삶을 야유한다.
이병철의 「설리(雪裏)」는 이처럼 세계와 자신을 단절하는 사람을 노래한다. 하지만 모든 피억압자들이 이처럼 무력한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찬가」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억압으로부터 탈주하는 자를 다룬다.
이재훈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두드러진 장소적 특징은 폐허다. 폐허는 한때 생의 활력으로 가득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효용을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웅크린 채 버려져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폐허는 어떤 강대하고 폭력적인 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생된 무력한 주체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전면에 하나의 풍경이 있을 때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가장자리가 아닌 소실점을 향한다. 당연히 이는 우리의 탓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미래지향적이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하여 예측을 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착시다. 소실점이 예비하는 미래의 환영과 달리 실재하는 것은 오히려 소실점 바깥에 자리한 가장자리의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정민식의 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현우의 시는 은밀한 기의를 담은 이미지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저기 너울거리며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환영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선연한 이미지들은 그 장대함으로 인해 시의 전언을 압도한다.
주민현의 시는 유려한 서정의 언어로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쟁점들에 접근한다. 언뜻 평이해 보이는 이 시도는 사실 생각보다 많은 이전 세대의 선배들이 수사(修辭)와 구호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수없이 좌초한 지점이기도 하다.
황은주의 시편들에서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기법은 특정한 구문들의 반복이다. 반복되는 구문들은 개개의 시편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한편, 구문에 속한 일부의 기표들을 변형하여 미묘하게 그 의미를 흐트러트린다. 이를 통해 읽는 이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문의 의미 속으로 더욱 깊이 진입하며 변형된 기표들의 차이를 통해 각 구문들의 고유성을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