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울에서 정착할 당시 일했던 쌀집 주인아주머니 차소둑 할머니의 장손이다. 또한 중앙일보에서 30년 가까이 체육기자로 활동했다. 정주영 회장은 경제계의 큰 별이었을 뿐 아니라 체육계에도 대단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또한 정치인이기도 했으며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에 앞장서기도 했다. 한 마디로 팔색조 같은 위인이었다.
그러나 정주영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 쌀집 할머니에게 들었던 내용과 체육기자 시절 기사로 쓰지 않았던 내용 등 저자만이 알고 있는 비사는 물론 97년 대선에도 출마하려고 했다는 내용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모아 정주영 회장의 참모습을 알리고자 했다. 정계, 재계, 스포츠계에서 정주영 회장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현대그룹 비서, 현대 계열사 사장,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농구단 실무자도 직접 인터뷰했다.
이 책에는 쌀집 점원 정주영, 죽을 때까지 할머니와 가족을 챙긴 의리의 정주영,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대한체육회장 정주영, 반값 아파트 공급을 내세운 대선 주자 정주영, 소 떼를 몰고 방북한 통일 일꾼 정주영, 비상한 아이디어와 혜안이 가득했던 사업가 정주영, 박정희와 함께 경제발전에 앞장선 속도전의 대가 정주영, 검소한 정주영, 기자와 친했던 대기업 회장 정주영 등 정 회장의 팔색조 같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수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1. 제가 이 집 사위를 노렸어요 할머니의 큰딸, 즉 나의 고모는 1917년생으로 정주영 회장보다 두 살 아래였다. 경성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 전신)를 나와 치과의사와 결혼한 고모의 인생은 6.25 전쟁 때 고모부가 납북되면서 다 망가졌다. 미국 이민 간 고모가 1970년대 후반에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정 회장은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울산에 있는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로 초대했다. 정 회장은 할머니에게 뜻밖의 고백을 했다. “아주머니, 사실은 쌀집에서 일할 때 따님에게 눈독을 들였었어요. 이 집 사위가 돼서 쌀집을 물려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주인집 따님에다가 워낙 공부를 잘하니까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말이나 해볼 걸 그랬나요. 허허허.” 그때 나는 초한지(楚漢志)를 떠올렸다. 흙수저에 한량이던 유방(劉邦)의 비범함을 알아채고 자기 딸을 아내로 준 여공(呂公)이 생각난 것이다. 만일 할머니가 여공처럼 관상에 뛰어나서 쌀집 점원 정주영을 사위로 삼았더라면 현대 회장이 나의 고모부가 됐을 텐데. 역사에 ‘만약에’는 없는 법이다.
2.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했어 쌀집 할머니 차소둑 할머니는 1989년 9월 30일, 만 94세에 돌아가셨다. 정주영 회장은 할머니의 부음을 듣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現代 그룹 회장 鄭周永’ 명의의 조화를 빈소에 보냈다. 이틀째, 정 회장이 불쑥 빈소로 찾아왔다. 비서 등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정 회장은 할머니 영정 앞에서 정중히 절을 하더니 한참 동안 영정을 바라보았다. 상주들은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할머니를 챙겼던 정 회장이 직접 조문까지 와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참 동안 앉아있던 정 회장이 일어서자 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모시고 가서 배웅해드렸다. 그런데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정 회장이 급히 돌아왔다. 깜짝 놀란 상주들이 “혹시 놓고 가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하고 나왔어.” 그러곤 다시 영정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수행 비서 없이 혼자 조문하러 온 재벌 총수,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돌아온 정 회장의 배려심에 저절로 존경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3.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1983년 3월 16일, 씨름의 프로화를 내걸고 민속씨름이 발족했다. 그리고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정 회장은 현장에서 대회를 지켜봤다. 당시 무명이던 이만기가 혜성처럼 나타나 초대 천하장사를 차지했다. 그런데 전국체전이 문제가 됐다. 체육회는 ‘씨름 선수 중에 장사 씨름대회에 참가한 프로선수들은 아마추어들의 잔치인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없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씨름인들은 정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씨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인데 전국체전에서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곧바로 체육회 대의원 회의 안건으로 이 문제를 상정했다. 대의원 대부분은 반대했다. 프로선수들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잔치인 전국체전에서 빠지는 게 옳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정 회장이 기가 막힌 비유를 했다. “나도 예전에 씨름해봐서 알아요. 씨름은 옛날부터 이기면 황소도 주고, 쌀가마니도 주고 그랬어. 이봐. 무더기 똥만 똥인 줄 알아?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이 한 마디에 대의원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 회장은 이어서 “우리 민속스포츠인 씨름의 발전을 위해서 체전 종목에 넣어야 한다”라고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민우
1944년생. 경기중·고, 고려대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과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40여 년을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을 지냈다.
목차
1부 정주영과 쌀집 할머니
- 운명적인 만남
- 쌀집 연극단
- 변중석 여사
- 의리의 정주영
- “제가 이 집 사위를 노렸어요”
- 정주영의 종교는 부모
-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했어”
- 아주머니 가족은 나의 가족
2부 체육인 정주영
- 서울올림픽 유치 민간 추진위원장
- 대한체육회장
- 체육회 체질을 바꾸다
- 뉴델리 아시안게임
- 궁도협회에서 양궁 분리
-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 “한 푼도 낼 수 없습니다”
- 대한체육회장 해임
- 현대 남자농구단 창단
- “농구는 키야”
- “24번 데려와”
- 현대축구단 해체 소동
3부 정치인 정주영
- “반값 아파트가 왜 안돼?”
- “1억만 줘도 돼”
- “그 돈 있으면 내가 대통령 하지”
- 깨진 대통령의 꿈
- “나를 선택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실패”
- 무산된 대선 재수
4부 정주영과 대북 사업
-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어”
- 1,000은 끝나는 수지만 1,001은 이어지는 수
- “5개월 안에 공사 끝내”
- 정주영과 김정일
5부 아이디어맨 정주영
- “비∼영신, 파일 눕혀서 깔아”
- 고정관념 깨기 전문가
- “이런 빈대만도 못한 놈”
- 잔디가 없으면 보리싹으로
- “사면이 바다인데 소금을 왜 뿌려?”
- “그럼 사이즈 키워”
- “깡통이라도 두드려”
6부 정주영의 혜안
- 정주영 앞에서는 KS도 개뿔
- “보험 들었으면 못했지”
- “중국 애라고 날리지 말라는 법 있어?”
- “어느 나라에서 수출하는 거야?”
- 반도체는 미래의 쌀
- 자동차 엔진 개발
- 부동산 전문가 정주영
-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
- 도둑을 채용하다
- 상황에 맞춰, 사람에 따라
7부 박정희와 정주영
- 경부고속도로 건설
- 조선소 건립
- “사채를 동결해 주십시오”
8부 검소한 정주영
- 사훈이 ‘검소’
- “난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어”
9부 정주영과 언론
- “언론은 약자 편에 서야”
- 문화일보 창간
- 기자와 친했던 대기업 회장
10부 정주영과 가족
- 사랑과 엄격의 두 얼굴
- “진작 큰 회사를 맡길걸”
- “장자에게 자동차 넘기는 게 잘못됐어?”
-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
- 인격적으로 대한 첫째 동생
- 가장 각별했던 동생 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