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보아라부대 창설기부터 해체시까지 정식 대원(순경)으로 활약한 김옥규 씨의 회고록으로, 개인사보다 보아라부대의 전투사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보아라부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지전사) 제205연대 예하에 창설된 ‘10중대’이다. 연대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지전사 신상묵 사령관의 명령만 수행한 빨치산 토벌 전담 전투경찰 부대로 단독작전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 책은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과 전성기에 이르렀다가 쇠잔한 말기까지 과정과 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그 행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또한 빨치산, 국군, 경찰, 지원청년 등으로 구성된 보아라부대가 단독으로 빨치산 핵심거점에 침투하여 뛰어난 전공을 세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보아라부대 창설기부터 해체시까지 정식 대원(순경)으로 활약한 김옥규 씨의 회고록으로, 개인사보다 보아라부대의 전투사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보아라부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지전사) 제205연대 예하에 창설된 ‘10중대’이다. 연대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지전사 신상묵 사령관의 명령만 수행한 빨치산 토벌 전담 전투경찰 부대로 단독작전을 원칙으로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6사단은 서해안을 통해 남진하여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6사단 소속이던 남해여단 대열참모 문순묵 중좌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후퇴하지 못하고 지리산으로 입산, 빨치산이 되었는데 따발총 오발사고로 7발을 다리에 맞은 상태였다. 문순묵이 1951년 여름 하산, 귀순했고, 지전사 신상묵 사령관과 협의하여 1951년 9월 1일 38명의 부대원으로 빨치산 토벌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를 지전사 205연대 10중대로 배속시켰는데, ‘자수한 나를 보아라’, ‘내가 빨치산 잡는 걸 보아라’란 의미의 '보아라부대'로 불렸다. 문순묵은 창설초기 회문산과 가마골 작전을 지휘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창설 2개월 후인 1951년 11월경 총알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후송되자, 부관이었던 국군 출신의 홍주승이 해체시기까지 부대장을 수행했다.
보아라부대는 1952년 9월 지전사가 해체되자 광양경찰서 예하 858전투부대 10중대로 전속되어 백운산 주위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했다.
1953년 4월 신설 「서남지구전투경찰대(서남전경대)법」에 따라 1953년 5월 서남전경대 10중대로 전속되어 지리산 등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이 즈음 보아라부대는 2개 중대 약 150명 이상으로 확대되어 대대 편성으로 바뀌었다.
빨치산이 거의 근절된 1955년 7월 1일 서남전경대가 해체될 때 치안국 기동대로 전속되면서 보아라부대가 해체되었다.
보아라부대 주요 작전
- 1951년 9월. 회문산 전북도당 100부대(첩보부대) 급습, 5중대장 등 20여 명 생포
- 1951년 10월. 생포된 5중대장의 정보에 따라 재차 회문산에 출동하여 100부대 1중대장과 중대원 생포
- 1951년 11월. 가마골 빨치산 본부 기습, 400여명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큰 전과를 올림
- 1951년 12월. 백아산 전남 빨치산 병기과 탄약고 폭파 및 병기과 요원 50여 명 섬멸.
이 작전에서 김옥규 대원은 폭파 임무 성공 후 심각한 부상을 입고 현재까지 후유증 있음
- 1951년 10월 ~ 1954년. 수시로 전남 백운산 주위에서 작전.
김지회부대, 남태준부대 등과 조우
- 1952년말. 지리산 천왕봉 경남도당 연락과 공격, 60여명 생포
- 1953년 봄. 지리산 노고단 공격, 정상 토치카 파괴
- 1953년 봄. 회문산 내안골 항미연대 기습
- 1953.12~1955.3. 박(한)전투사령부 및 남부지구경비사령부의 토벌작전에 참여
- 1954년초. 전남도당위원장 구철회 등 체포
이 외에도 보아라부대가 존재한 3년 10개월 동안, 수십 차례 빨치산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 책은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과 전성기에 이르렀다가 쇠잔한 말기까지 과정과 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그 행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또한 빨치산, 국군, 경찰, 지원청년 등으로 구성된 보아라부대가 단독으로 빨치산 핵심거점에 침투하여 뛰어난 전공을 세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보아라부대가 소속된 지전사와 서남전경대는 임시로 존재했다가 해체된 관계로 기록을 챙겨줄 기관이 없던 데다가 전투경찰의 전과를 간과하여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빨치산 출신이 초기에는 절반 정도, 말기에는 10% 미만이었는데도 전원 빨치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어, 부대원조차도 보아라부대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다.
보아라부대는 도당, 도당사령부 등 빨치산 수뇌부를 격파하여 빨치산 세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적대세력을 조기에 소멸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 평화 분위기 조기정착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 보아라부대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은데, 그나마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옥규(89세) 씨는 회문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한국전쟁을 맞았다. 북한군이 순창을 점령했을 때 구림면 베틀마을에서 살았으며,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대거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했을 때 짐꾼으로 몇 번 끌려가기도 했다.
창설기에 회문산으로 출동했던 보아라부대의 길 안내를 맡은 일을 계기로 1951.11.1.일부로 정식 부대원이 된 39번째 ‘막내 부대원’ 이다. 이후 정찰, 수색, 탄약고 폭파, 토치카 폭파, 보초 체포 등 최일선에서 활약하여 사령관으로부터 '지리산 백과사전' 이란 평을 들었다.
김옥규 씨는 보아라부대가 해체될 때까지 복무했다가 경찰을 퇴직한 후 육군에 복무했다. 제대후 귀향하여 농사를 짓다가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했으며 현재 수원에 거주하고 있다.
* 김삼차라는 이름으로 바뀐 사연
1951년 가을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 보아라부대의 길 안내를 맡았을 때 김옥규 씨의 나이가 17세였다. 당시 전투경찰은 20세부터 가능했기에 부대장이 이름은 김삼차, 나이 20세로 바꾸어 모든 경찰 기록이 김삼차라고 되었다.
2000년경 부대원 동료 2명의 인우보증으로 김삼차가 김옥규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인정받았고 국가유공자에도 김옥규로 등록되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석
1958년 5월 9일 서울 출생1971년 응암초등학교 졸업1974년 충암중학교 졸업1977년 경기고등학교 졸업1984년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2011년 소설 '휴먼카오스' 발표네이버카페: http://cafe.naver.com/humanchaos
지은이 : 김옥규
목차
추천사 경찰대학 한국경찰사연구원장 이윤정
머리글 살아있는 기억 공동저자 김옥규
역사는 기록돼야 공동저자 김석
제1부 회문산
1. “넌 나 떨어지면 죽어!”
2. 징용에서 돌아오신 아버지
3. 무섭기만 한 경찰
4. 인민군이 들어오다
5. 회문산과 구림면
6. 피 묻은 군복 입고 ‘김삼차’로 살다
제2부 보아라부대
1. 보아라부대
2. 전북도당 첩보중대장 체포 작전
3. 빨치산 모스크바, 가마골 작전
4. 백아산 전투, 부상을 입다
5. 백운산의 덫
6. 천왕봉 경남도당 연락과 체포 작전
7. 노고단을 점령하라
8. 내안골 항미연대 기습
9. 도당위원장의 최후
10. ‘지리산 백과사전’으로 불리다
11. 보아라부대 변천사와 문순묵의 행적
12. 618부대와 사찰유격대
13. 내가 겪은 빨치산
14. 복원돼야 할 보아라부대의 역사
제3부 회한에 잠겨
1. 보아라부대를 떠나서
2. 옛 전우와 전상군경 신청
후기
1. 집필 소감
2. 전적지 답사여행
3. 아버지 회고록 발간을 축하드리오며
4. 아버지의 끝나지 않은 전투
5. 자랑스런 아버지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