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모든 건 당신 안에 있어.” 인간의 폭력성을 통제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자들과 그들을 쫓는 기억 잃은 주인공 간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작가 최석규 소설.
불의의 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을 잃은 강규호. 주치의인 박석준 정신과 의사는 역행성 기억 상실로 진단하며, 일상생활 중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기록하라고 노트 한 권을 건넨다. 노트의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같은 허공에 뜬 채 껍질이 반쯤 벗겨진 사과가 그려져 있다.
강규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노트에 일상을 모두 기록한다. 그러던 중 집 화장실에서 비밀 벽을 찾게 되고, 숨겨진 스냅 사진과 소형 금고를 발견한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가 누군지, 금고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금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기억을 잃은 채 회사로 다시 복귀하여 회사-집-편의점-책 대여점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강규호는 누군가로부터 매일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초소형 핀 카메라를 가방에 설치하여 자신을 쫓는 남자를 촬영하는데…….
출판사 리뷰
“우리 모두…… 겉을 감싼 껍질을 벗겨내면,
사실 똑같이 생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신의학, 뇌공학, 심리학, 문학, 미술 분야가 융합된
신선하고도 탄탄한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천장의 하얀 형광등이었다. 사고가 있기 전 기억은 칼로 도려내진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강규호는 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을 잃었다. 퇴원하며 소개받은 정신과에선 역행성 기억 상실이라고 하지만 기억을 찾을만한 단서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기억의 조각들을 찾으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중 그는 동네 편의점과 책 대여점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은 즉석 도시락을 자주 먹었고 콜라를 지나칠 정도로 마셨으며 엄청난 독서광이었다는 것이다.
강규호는 단편화된 기억의 퍼즐을 조금씩 맞춰 나가고, 더 많은 기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빌렸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고, 동료의 도움으로 예전 회사에 다시 복직하게 된 강규호는 회장님의 비서 차수림과 가까워진다. 단조로운 삶을 바꿔 보기 위해 강규호는 차수림을 쫓아 주말마다 봉사 활동을 다닌다. 몇 번의 만남 후 차수림은 강규호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콜라를 마시지 말 것.” 어떤 상황에서도 화내지 말 것.”. 그렇게 둘은 사내 연애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얼마 후, 차수림은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차수림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회식 중 김형석 사장은 술에 취한 채, 강규호를 향해 <마그리트의 껍질>이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횡설수설하다가 곯아떨어진다.
어느 날, 강규호는 누군가로부터 매일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가방에 초소형 핀 카메라를 설치하여 뒤를 쫓아오는 남자의 얼굴을 촬영한다. 미행자가 자신의 방 사진 속 미스터리 여자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강규호.
사진 속 여자, 비밀 금고, 잃어버린 과거, 주변인들의 수상쩍은 행동,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일들 그리고 노트에 그려진 사과 껍질……. 그리고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억들.
마그리트의 껍질은 강규호의 잃어버린 기억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연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자신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 마그리트의 껍질을 벗어나기 위한 강규호의 기록과 진실을 찾는 시간으로 함께 들어가 볼 시간이다.
《마그리트의 껍질》은 인간의 폭력성을 통제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자들과 그들을 쫓는 기억 잃은 주인공 간의 쫓고 쫓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정신의학, 뇌공학, 심리학, 문학, 미술 분야가 융합된 탄탄하면서도 신선한 작품이다.
[책 속에서]
‘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복도 벽에 걸린 전신 거울을 빤히 바라보았다. 담당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한강 하류의 갈대가 무성한 기슭에서 발견돼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땐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왼쪽 무릎 관절과 9번, 10번 갈비뼈 골절, 뒤통수의 깊은 상처, 저체 온에 의한 쇼크, 의식 불명. 최악의 상태였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것은 천장의 하얀 형광등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는 정육점에 전시된 포장육처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뼈는 붙었고 근육은 다시 탄탄하게 힘을 얻었다. 뒤통수의 수술 자국도 잘 아물었 다. 오늘은 다리 깁스를 풀었다. 다음 주면 퇴원이다. 모든 것은 산책하는 절름발이 철학자처럼 천천히, 하지만 견고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 가지만 빼고는…….
사고가 있기 전 기억은 칼로 도려내진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두개골 속 말랑말랑한 대뇌피질이 마치 해면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서른둘 인생에서 2년이 송두리째 지워져 버렸다. 사라진 기억 속에 소중한 것이 있지는 않았을까. 날 지탱하던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햇볕이 따듯하게 데워놓은 병원 벤치에 앉아 온종일 생각했다. 기억이 있었을 자리에 온갖 상상과 추측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상의 기억은 그대로 남았다. 몇 년째 계속 사는 투룸, 다니던 직장, 하던 업무, 동료들, 늘 들르는 편의점, 주말이면 산책을 하는 공원과 뒷산, 출근 때마다 마주치는 옆집 여자 얼굴, 사고가 나기 전 구매한 노트북의 가격과 판매점 사장의 얼굴까지도 또렷이 생각났다.
- 1장. 기억의 흔적
말을 잠시 멈춘 그가 ‘기억 노트’라고 적힌 노트 한 권을 내앞으로 내밀었다.
“일상 중에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여기에 메모하세요.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날의 날씨, 출근할 때의 기분, 읽은 책, 본 것, 우연히 만난 사람에 대한 느낌,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 갑자기 기억나는 것. 뭐든 자유롭게 쓰세요. 매일 쓰면 좋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툭툭 떠오르는 단편적 기억들을 편하게 적으세요. 그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온전한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술 화법 중 포인티지라는 것이 있어요. 프랑스 화가 쇠라 (Georges Seurat) 가 창시한 것이에요. 화가가 팔레트에 색을 혼합해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색깔 점을 직접 캔버스에 찍어 대상을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알록달록한 의미 없는 점들의 집합이지만 멀리서 보면 완성된 하나의 그림이 되죠.”
“…….”
“정신의학에서도 이런 방법을 이용합니다. 전문용어로 항시적 관찰 기록 기법이라고 해요.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계속 적다 보면 거기서 사라진 기억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거든요.
의미 없어 보이는 무수한 점들이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기억 노트는 주머니에 넣기 좋은 크기였다. 표지에는 푸른 사과가 그려져 있다. 배경이 파란 하늘과 구름이라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는 반쯤 벗겨진 상태로, 껍질이 공중 에서 지상으로 흘러내렸다. 드러난 사과 속살은 노란 과육이 아니었다. 안은 텅 빈 상태였다. 노트를 펼쳤다. 흰 바탕에 줄만 그려져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 1장. 기억의 흔적
“기억이라는 것, 참 재밌어요. 왜곡된 기억은 사람을 슬픔에 젖은 개그맨처럼 만들거든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요양원에 온 지 6개월 정도 된 70대 할아버지 환자가 있었어요.
신체 건강은 비교적 좋았지만 독특한 이상 증상을 보였죠. 아침에는 어린아이, 점심에는 청년, 저녁에는 중년으로 지내다가 자기 직전에는 노인이라고 믿는 증상. 그걸 스핑크스 증후군이 라고 하더군요.”
스핑크스 증후군이라. 누가 처음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명칭은 없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전직 대기업 부장이었는데 사고로 일가족을 한꺼번에 잃었어요.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와 잠든 가족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불까지 질러버렸대요. 남겨진 할아버지는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다 결국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고 요양원까지 오게 된 거죠.”
“참 기구한 삶이군요.”
“그분을 돌보게 되면서 난 하루를 70년처럼 지냈어요. 어린 아이로 사는 아침에는 함께 그림도 그리고 장난도 치면서 놀아 드리고, 낮에는 젊은이로 변한 할아버지와 청춘의 고민을 나눴 어요. 취업 상담이나 첫사랑의 열병에 관한 것들을요. 그러다 저녁 무렵에는 자식들의 사춘기 고민과 새파란 직장 후배가 어떻게 자기한테 이럴 수 있느냐 같은 하소연을 들어야만 했죠.”
“희로애락이 하루면 끝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지만 다음 날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문제지요. 잠들기 전,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 내 삶은늘 고통뿐이야. 자고 일어나면 아픈 기억이 깨끗이 지워졌으면 좋겠어. ’ 소원대로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다시 태어났어요.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민이 기다리는 시작점에서.”
“…….”
“우리 모두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종종 그런 공상을 해요.”
- 1장. 타인과 그의 뱀 그림자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석규
LG와 HP를 거쳐 KT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특허 관련 일을 한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오가며 글을 쓴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 허무는 작업을 좋아한다. 선과 악에 관한 연작 중 첫 번째 장편으로 《마그리트의 껍질》을 썼다. 2020년 국가예술지원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소설집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출간했다. 2021, 2019, 2015년 과학 소재 장르문학 공모전에 당선,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2018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2017년 모래톱문학상, 2014년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제1장
기억의 흔적
타인과 그의 뱀 그림자
제2장
CCTV
분노할 일은 생각보다 많다.
제3장
둘러싼 모든 것들
미술관 작업실
제4장
불에 탄 숲
일상의 행복
제5장
우리는 모두 죽는다
마그리트의 껍질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