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2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산문집 『조각의 유통기한』 등을 펴내며 에세이 작가로 더 유명한 이제야 시인의 첫 시집 『일종의 마음』이 시인동네 시인선 205로 출간되었다. 이제야 시인은 사랑과 이별의 시간이 지난 후 야기되는 감정과 감각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도 대상의 존재를 그녀의 언어로 해석하고 포섭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이 시집은 “어쩌면 나에게만 슬픔일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보편적인 매일의 이야기”이다.
출판사 리뷰
그러니 사랑하라, 보통의 날들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2012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산문집 『조각의 유통기한』 등을 펴내며 에세이 작가로 더 유명한 이제야 시인의 첫 시집 『일종의 마음』이 시인동네 시인선 205로 출간되었다. 이제야 시인은 사랑과 이별의 시간이 지난 후 야기되는 감정과 감각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도 대상의 존재를 그녀의 언어로 해석하고 포섭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이 시집은 “어쩌면 나에게만 슬픔일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보편적인 매일의 이야기”이다.
■ 해설 엿보기
우리는 성숙이란 개념이 과거를 없던 일처럼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온 현재까지의 타인을 있는 그대로 포옹하는 넉넉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소설가에 의하면 성숙은 어떤 면에서는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느 시기에 만나든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대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공정함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내 안에서 끝내야 할 감정과 상대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하게 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인연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만 성숙하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우리 대다수는 “지나치지 않는 위로와 멈추지 않는 안부 사이쯤”(「아주 조용한 이야기」)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나간다는 말이 지날 때
지나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말들 사이로 이야기들이 필 때,
지나가는 것들에게 어떤 제목을 주어야 할까
지나는 것을 봤다는 사람의 기차가
지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람을 태우고 간다
지나지 못해 내리는 사람이 있을 때
기차는 다시 지나갔다
지나갈 사람들이 다음 역에서 탈 때
지나가기 위해 오는 것에게 어떤 제목을 주어야 할까
우리를 우리로써 이해하기에는
지나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지나는 것을 봤다던 손가락 사이는
어쩌면 뜨거운 심장을 갖다 댄 자리
지나간다는 말이 지나는 길
지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위로가 있다
― 「커튼의 속도」 전문
「커튼의 속도」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 시를 전개하는 주체의 태도이다. 이 시에서 시적 주체는 자신의 특성과 시각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과거와 미래의 인과관계도 모두 지운다. 이 시에서 “말”과 “이야기”, “기차”, “사람”은 모두 서술자로서 상호 동등한 위치에 있다. “지나간다는 말”과 “지나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나는 것을 봤다는 사람의 기차가 지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람을 태우고 간다”와 “지나지 못해 내리는 사람이 있을 때 기차는 다시 지나갔다”라는 서술은 주체의 언어 이면에 규정되지 않은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어느 한 존재가 일방적으로 대상화되는 시선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상호교차하는 시선과 행위들이 있는데, 이는 일방적으로 타자에 의해 세계에 불려와 있음에도 없는 존재로 남겨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본질과 현상, 그리고 인간과 사물, 정신과 물질(도구)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이 시에서 그것은 동등하다. 주체가 현재 “지나가는 것”들인지, “지나지 못해 내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지나갈 사람”인지 혹은 “지나가는 기차”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제의 시간에는 뜨거운 심장을 갖다 댈 만큼 열정적인 시간을 지나오거나 지나는 중이거나 지날 예정일 수 있다는 것. 즉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우리를 우리로써 이해하기에는” “지나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겸손하고 섬세하게 모든 대상을 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그 겸손이 보일 수 있는 미덕은 “지나간다는 말이 지나는 길” 위에 “지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위로가 있다”라는 성숙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은 지나지 않는 계절들이 많아지는 것”이고 보통의 존재인 우리도 “한 번은 지나지 않는 계절”(「구름과 나그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위로는 “박자”나 “속도”를 조절하는 행위일 수 있다. 물론 이 조절은 쉽지 않다. 그것은 마음이 지닌 절대 고립의 한 특성 때문이다. 어떠한 생각도 다른 개인의 의식에 들어 있는 생각에게 직접적으로 보일 수 없다. 서로의 마음이 지닌 의식들 사이에서는 환원 불가능한 다원주의가 원칙이며 이 때문에 서로의 우주는 둘로 갈린다.
― 장예원(문학평론가)
시든 꽃을 말리는 것이
떠난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라 했다
시든 꽃에 매일 물을 주었다
다시 피어나지 않을 약속을 알지만
떠나보지 않았다면
꽃은 밤이 슬픔임을 알지 못했을 거야
더는 자라나지 않는 감정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보듬는 오늘은 무얼까
아끼는 날들에 내일이 없는데
묵묵한 날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말린 꽃은 어제보다 오늘 더 꽃이 아닌 꽃이 되어간다
우리처럼
나는 너를 사랑했으므로
오늘도 물을 준다 자라나는 만큼 자라지 않는 것들에게
― 「나의 정원」 전문
창밖을 보다가 우리는
다른 나무 위를 걸었다
꼭 잠들기 전까지만
달이 서로 다른 아침을
해가 서로 다른 밤을
따로 또 같이 만나듯
그렇게 걸었다
같은 창으로 다른 오후를 만나는 것은
다른 창에서 같은 목도리를 두르는 것은
사랑하면서 할 수 있는 일
서로를 향해 뒤로 걷다가
서로의 꿈을 꾸다가
서로를 위해 꿈이 되는 일
각자의 세계로 가는 시간,
하품 앞에서
잠시 사랑도 꿈을 꾸게 하자
꼭 잠들 때까지
― 「하품까지만 사랑해」 전문
책갈피를 꽂아둔 문장이 사라지는 꿈을 꿨다
어느 날이 모든 날이 되는 것
그것을 겹이라고
가만한 모든 것에도 때가 있어서 곳곳이 다정하고
어떤 날도 보통보다 평범하지 않았다
가장 보통의 우리는
시간을 돌아가 본 사람
조각은 맞추지 않을 때 더 빛난다는데
조각의 겹은 희미하고
희미해진 녘들 사이로 잊지 않기로 한 순간들이 있다
여행의 끝에 서 보면 잠잠한 모든 것에는
우리가 있었다
사랑한 모든 것들이 가진 그림자의 이름으로 녘이 되고
낮잠에서 깼다
며칠이 지났다
한때 모든 것이었던 가을 방학처럼
― 「녘의 시간」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제야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2012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산문집 『조각의 유통기한』 『그런 사람』 『그곳과 사귀다』 『안녕, 오늘』을 펴냈다.
목차
제1부
나의 정원•13/하품까지만 사랑해•14/빛의 날씨•16/당연한 잊음•18/가든한 바다•20/낭만의 역할 2•22/보편적인 슬픔•24/유자차를 타는 시간•26/첫 줄•27/환절기의 밤•28/고요한 외로움•30/녘의 시간•32/무늬의 색•34
제2부
벽에 기댄 화분•37/우리의 바다•38/빈 소녀에게•40/커튼의 속도•42/접은 말들•44/아주 조용한 이야기•46/오롯한 밤•48/설익은 밤•49/끝의 마음•50/위로의 자리•52/그만큼의 이야기•54/모든 요일은 환절기•56/잊을 자리•58
제3부
노인과 숲•61/우주의 기억•62/블랙홀•64/잊힘에게•66/외출•68/깊이에게•70/벙긋한 밤•72/완전해지는 밤•74/구름과 그네•76/일종의 마음•78/보색에게•80/Dear•82/언제의 시간•84
제4부
가장 작은 위로•87/배웅•88/어쿠스틱 방•90/넉넉한 일•92/홍차•94/낭독회•96/시간의 겹•98/다정한 여름•100
해설 장예원(문학평론가)•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