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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
arte(아르테) | 부모님 |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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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국제 냉전사와 중국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 천젠이 25년간의 연구와 방대한 다국어 사료로 완성한 저우언라이 평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총리로서 내정과 외교의 중심에 섰던 저우언라이의 생애를 따라가며, ‘영원한 인민의 총리’와 ‘독재자의 부역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묻는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한국전쟁과 미-중 관계 정상화 등 세계사의 결정적 분기점 속에서 저우언라이의 선택과 조율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혁명과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국가와 개인,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타협되는 과정을 통해 20세기 중국 정치사의 명암을 깊이 있게 조망한다.

  출판사 리뷰

25년간의 연구와 검증, 방대한 다국어 사료로 집대성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생애와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명암

국제 냉전사 및 중국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천젠(Chen Jian)이 25년간의 연구로 완성한 본격 저우언라이 평전.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의 주역이자 초대 총리로서 내정과 외교 양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저우언라이의 생애를 다층적으로 살핀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미·중 관계 정상화, 한국전쟁 등 세계사의 주요 분기점을 따라 저우언라이의 삶을 입체적으로 추적하며, ‘영원한 인민의 총리’이자 ‘독재자(마오쩌둥)의 부역자’라는 모순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한 인물의 궤적을 중국 혁명의 명암으로 재조명한다.
한 정치가의 생애를 넘어, 권위주의 체제 속 국가와 개인,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20세기 중국 정치사에 대한 결정적 기록.

√ 중국에서 저우언라이는 인민을 사랑하고 거듭된 국난을 극복한 ‘영원한 총리’로 추앙받는다.
반면 일부는 그를 ‘마오쩌둥의 충견’이자 ‘역사적 비극의 조력자’로 비판해 왔다.
이 책은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중국 현대사나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읽자마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역작이다.
― 조영남(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30년 넘게 저우언라이 연구에 매진해 온 국제 냉전사의 거목, 천젠이 내놓은 회심작.
이용 가능한 모든 사료를 총동원한 매우 균형 잡힌 대작이다.
저우언라이와 중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뜻깊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 정종욱(전 중국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마침내 저우언라이에게 마땅한 전기가 출간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이자 외교의 거인
혁명과 냉전,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설계한 ‘태양 옆의 2인자’, 저우언라이

2026년 저우언라이 서거 50주기를 맞아 『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가 필로스 시리즈 46번째 도서로 출간된다. 국제 냉전사 및 중국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천젠(Chen Jian)이 25년간 축적한 연구와 방대한 다국어 사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본격 평전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초대 총리로, 27년간 권력의 중심에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실무형 지도자다. 국제 무대에 중국의 존재를 알리고 중국의 행정 체계와 외교 노선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핵심 인물로서, 마오쩌둥의 ‘계속혁명’이 야기한 혼란을 조율하고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중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핑퐁 외교’를 설계한 이 또한 저우언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마오쩌둥의 혁명에 대한 평가가 본격화되면서 오랫동안 14억 중국인에게 ‘현명하고 자애로운 인민의 총리’로 추앙받아 온 그는 다시 복잡한 해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마오의 극단적인 혁명 노선이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대기근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파괴를 초래했다면, 그에게 평생 충성하며 정책을 수행한 저우언라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는 저우언라이를 ‘인민의 총리’나 ‘독재자의 부역자’ 같은 하나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한국전쟁과 미·중 관계 정상화 등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속에서 저우언라이의 삶을 복원하며,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모순과 명암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를 재조명한다. 이를 통해 중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행정가이자 냉전의 얼음판 위에서 전략을 설계한 외교가, 그리고 마오쩌둥이라는 압도적 권력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이라는 다층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국제 냉전사 연구의 거장 천젠은 25년간의 연구와 영어·중국어·러시아어 등 다국어 사료를 바탕으로 저우언라이의 전기를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여기에 미국 조지 H. W.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위원인 국제정치학자 이성현 교수가 번역을, 중국 현대사·엘리트 정치 연구를 이어 온 조영남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감수를 맡아 완성도를 더했다.
『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는 한 정치가의 전기를 넘어 혁명과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국가와 개인,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율되는지를 보여 주는 20세기 중국 정치사의 결정적 기록이다. 현대 중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혁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귀중한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저우언라이의 생애는 중국공산당의 역사 그 자체다”
혁명가이자 행정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근대 중국사의 격랑 속을 건너온 한 인물의 궤적

저우언라이의 생애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분노했던 소년 시절부터 암으로 생을 마치기까지 근현대 중국사의 굴곡과 정확히 포개진다. 천젠은 그의 유년부터 말년까지를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해, 한 인물의 궤적을 통해 시대 전체를 비추는 평전을 완성했다.
쇠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생계 전선에 뛰어든 저우언라이는 불교적 신심과 유교적 윤리를 내면화하며 성장했다. 이 경험은 공산주의자로 변모한 뒤에도 조용한 헌신, 절대적 충성, 최고 권력에 대한 무욕이라는 성향으로 이어졌다. 청년기에는 항일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일본과 유럽 유학을 거치며 조국을 구할 사상과 새로운 ‘주의’를 탐색했다. 그리고 유학 시절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유럽 지부 활동에 참여하며, 그는 철저히 ‘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혁명의 현장은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장제스의 탄압을 피해 혹독한 대장정을 견디고 국공내전 승리 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참여했지만, 곧 마오쩌둥의 급진적 노선과 충돌하게 된다. 사회주의 조기 이행 요구에 본능적 반감을 품으면서도 저우언라이는 정풍과 자기비판을 반복하며 충성을 택했다. 그러나 그 충성이 곧 동의를 뜻하지는 않았다. 그는 체제 내부에 남아 극단을 완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율을 시도했다.
혁명의 고비마다 저우언라이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홍군이 궤멸 위기에 몰렸을 때 말라리아로 병상에 있으면서도 조직을 지켜냈고, 국공내전 승리 뒤에는 권력투쟁의 균열을 봉합하며 국가 수립의 기반을 닦았다. 이 승리의 배경에는 저우언라이 특유의 현실 감각과 조정 능력이 있었다.
소련의 노선과 중국 내부 현실이 충돌하던 순간, 장제스의 압박과 코민테른의 지시 사이에서 당의 존망을 결정짓는 선택을 감당한 것도 그였다. 국공내전의 혼란기뿐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그는 스스로 권력 내부의 완충지대 역할을 맡아 극단을 누그러뜨리고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중국공산당의 역사가 추상적 이념의 승리나 단선적인 성공 신화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러야 했던 선택들의 연속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혁명가와 관료,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한 인물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내적 긴장은 혁명의 필연적 그림자이자 20세기 중국사의 본질이며, 이 평전은 그 지점에서 개인의 전기를 넘어 시대를 해석하는 역사 분석으로 확장된다.

중국을 넘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외교의 거인”
제네바에서 반둥까지, 외교의 최전선에서 세계 질서를 다루다

저우언라이는 국공내전 전후 장제스와의 협상과 중국공산당 정보기관 운영을 통해 특유의 균형 감각과 조정 능력을 인정받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의 얼굴로 자리 잡는다. 타이완의 장제스와 경쟁 속에서 유엔 대표권을 확보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것도 그의 성과다.
특히 1954년 한국전쟁 휴전 직후 열린 제네바 회의는 저우언라이 외교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그는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승리를 눈앞에 둔 베트남을 설득해 국토의 일시적 분단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동맹국의 신뢰를 확인시키는 한편, 강대국 간 충돌을 방지하며 중국의 외교적 위상을 널리 알렸다.
이후 저우언라이는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나선다. 그는 이 회의를 “중국이 비서구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이자, “중국공산당의 국내 동원 노력에 큰 영향을 미칠”(514쪽) 사건으로 보았다. 이에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와 버마 총리 우 누와 사전 접촉해 지지를 확보했고, 회의장에서 중국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세계적 지배에 반대하여 서 있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 중 하나임”(520쪽)을 천명했다. 이는 중국을 고립된 혁명국가에서 비서구 연대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린 저우언라이 외교의 대표적 성취로 평가된다.
특히 이 자리에서 저우언라이는 중국이 다른 국가에 공산주의 이념을 수출하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확약했다. 원칙은 지키되 표현 방식에서는 과감한 유연성을 발휘하는, 저우언라이 특유의 외교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난 장면이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인도와의 영토 분쟁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저우언라이는 언제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외교관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종종 강력한 대중 동원을 중시했던 마오쩌둥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이 국익을 지키고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외교의 거인”이라는 칭호는 결코 과장이 아니며, 저우가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의 위치와 세계사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 혁명 시대의 모순적 초상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광풍 속에서

외교 무대에서 빛났던 저우언라이도 내부의 격랑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56년, 마오쩌둥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다”(528쪽)는 신념 아래 무리하고 “재앙적인 대약진운동”(529쪽)을 밀어붙였다. 저우는 사회주의적 재건과 변혁의 급속한 추진이 경제에 미칠 위험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폈쳤지만, 무모한 전진에 반대한 이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그는 가혹한 비난에 직면하고 “위대한 설계”를 위반한 잘못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사죄하며 철저한 복종을 맹세해야 했다.
그러나 저우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무리한 철강 생산 목표는 국가 경제에 파국을 불러왔고, 결국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끔찍한 대기근에 이르렀다. 이어진 문화대혁명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인민을 직접 동원해 당과 국가 기구에 도전했고,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다. 그는 혁명과 정권의 정당성 서사를 독점했고, 지도부 누구도 그에 맞설 새로운 서사를 제시할 수 없었다.
저우언라이는 혁명의 조속한 종결을 바랐지만, 마오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마오 자신도 혁명을 언제, 어떻게 끝낼지 알지 못했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와 저우 모두 ‘마르크스를 만나러’ 간 후로부터도 칠 년이 더 지나서야(794쪽)” 끝나게 되었다는 이 책의 서술로부터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 속에서 저우언라이는 외교부와 국무원 조직 등을 보호하고 국가 생산을 유지하도록 하는 등 중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용한 모든 행정 권력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마오쩌둥에게 부역했고, 그 과정에서 초래된 재앙적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책은 지적한다.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승객 수억 명을 태운 중국이라는 큰 배는 침몰했을지도 모른다”(791쪽). 이 모순적이지만 필연적인 양상 속에서 저우언라이의 삶은 다시 한번 평가를 요구받는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평생 서로의 그림자 속에 살아야 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두 최고 권력

살을 에는 듯 추웠던 1976년 베이징의 겨울,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저우언라이의 추도식에 마오쩌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서술로 책은 시작한다. 추모 인파는 이내 흩어지지 않았다. 군중은 “저우언라이를 보위하자”(21쪽)라는 현수막을 들고 다시 광장에 모였고, 인근 담벼락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내걸렸다. “진시황 독재의 시대는 영원히 갔으니 / 인민은 더 이상 그리 쉽게 속지 않으리!(24쪽)”.
마오쩌둥은 이 시위를 “본질적으로 반동적(24쪽)”이라 규정했고, 무력으로 진압할 것을 명했다. 그로써 자신의 혁명이 실패하였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혁명 시대의 장례식이었다. 바로 그때에 탈혁명 시대의 막이 올랐다(24쪽).” 저우언라이의 사망과 함께 마오쩌둥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는 진술은 섬뜩할 만큼 상징적이다.
1925년 광저우에서의 첫 만남 이후 저우언라이는 줄곧 마오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였다. 마오의 과도한 권력욕을 경계하면서도, 그는 결국 마오에게 자신의 신념을 맡길 수 있다고 믿었다. 1934년 대장정을 떠날 때도 저우는 마오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오는 장시 홍구에 남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수도 있다. 세계사의 흐름 역시 달라졌을 것이다. 이후 마오가 홍군을 지휘하게 되었을 때도, 정보활동의 귀재였던 저우언라이는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오직 마오에게만 공유했다. 그렇게 부상한 ‘군사 천재 마오쩌둥’ 신화 뒤에는 늘 저우언라이의 조율과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강렬한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마오는 스스가 단일한 정당성 서사가 되었으며, 그 서사에는 어떤 흠집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혁명 노선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 이라면 누구든 가차 없이 숙청했다. 그의 2인자였던 류사오치(劉少奇)와 지명 후계자였던 린뱌오(林彪)도 그렇게 몰락했다. 그런 마오가 평생 의심하고 여러 차례 혹독하게 비난하였던 저우언라이만은 끝내 숙청하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하여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이유를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찾는다. 기존의 당과 국가 구조와 단절하려 했던 마오는 바로 그 혼란 속에서 역설적으로 “기존 구조가 지닌 권력의 화신”(751쪽)이던 저우언라이를 그 어느 때보다 필요로 했다. 저우언라이 없이 마오는 혁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 무한한 권력을 쥔 듯 보였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저우언라이의 조력에 기대야 했다. 결국 마오쩌둥에게 저우언라이는 자신의 ‘불능’을 자각케 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우의 행정 능력이 마오의 권력을 결국 포획했다(915쪽)”라는 이 책의 분석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주종관계, 협력관계 내지는 1인자와 2인자로 바라보는 기존의 단편적인 시각을 넘어 새롭고 입체적인 관점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마오는 권력의 주인이었으나, 저우가 만든 현실적 기반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 긴장과 상호 의존 속에, 두 사람의 관계는 중국 현대사를 지탱한 기묘한 동력으로 자리한다.

‘혁명은 언제, 어떻게 길을 잃는가’
한 사람의 생애에 새겨진 혁명의 모순과 잔인성
서거 50주기, 다시 읽는 저우언라이

“모든 혁명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파괴적이고, 잔인하며, 피비린내를 동원한다. 특히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혁명은 더욱 그렇다.”(29쪽) 중화인민공화국의 혁명가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혁명을 만들었고, 혁명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그들은 혁명의 주역이자 포로였다.”(30쪽).
저우언라이의 생애는 중국 혁명 시대의 딜레마와 비극을 압축하여 보여 준다.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사랑하는 양딸과 친동생의 체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이 숙청당할 때 애원해 오는 그들을 외면해야만 했던 고통은 중국의 총리이자 최고 권력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조금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다음 숙청 대상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외교 정점이라 여겨지는 제네바 회의를 마친 직후에도 저우는 마오로부터 타이완 문제를 충분히 피력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저우언라이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주위에서 보기에도 가혹한 처사였음에도 아무도 저우언라이를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마오쩌둥 치하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침묵이 반복되면서 동료들은 하나둘 숙청되었고, 결국 침묵 속에서 자신 역시 숙청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혁명은 비판받지 않는 권력의 등장과 함께 본래 노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변혁기에 개인에게 비범한 권위를 부여하고 그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탁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단순히 한 정치가의 전기를 넘어서는 이 책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권력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결국 저우언라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혁명을 이해한다는 뜻과 같다.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고, 나아가 권력과 국가를 사유하는 데 저우언라이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우언라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왜 동시대 많은 사람과 함께 혁명의 길에 들어섰을까? 그의 삶과 경력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왜 십억 인구를 가진 나라가 그가 죽은 이후 그토록 열렬히 그를 애도했을까? 저우가 세상을 떠난 지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 20세기 중국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인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그토록 극명한 평가의 분기와 논란의 원천이 되었을까?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전기에서 공산주의 혁명가,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자 국정 운영가, 외교의 거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 인간으로서의 저우의 삶을 추적하며 탐구하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_「프롤로그」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볼 때, 대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저우에게 이것은 피로 얼룩진 학습 경험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통일전선’ 전략을 추구하는 것과 무장투쟁에 의존하는 것 사이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우는 장이 일으킨 반공 쿠데타의 여파 속에서 ‘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개념을 실천에 옮긴 최초의 중국공산당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따라서 대혁명에서의 실패는 저우에게 앞으로 몇 년 동안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더 성숙한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드물고 고통스럽지만 귀중한 교훈을 제공했다.
_「제6장 대혁명의 폭풍 속으로 1924~1927」

이후 수십 년 동안, 중국 공산주의 혁명과 저우 자신은 고난의 길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저우는 당과 그 후 당-국가(party-state)의 행정 권력과 정보망을 계속 통제하게 될 것이었다. 이로부터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났다. 비록 저우는 결코 당의 최고 지도자가 되지 않았지만, 일관되게 당의 운영 네트워크 중심에 서 있었고, 1949년 이후에는 공산주의국가의 중심에도 서 있었다. 저우는 확실히 한 개인이었지만, 또한 하나의 현상이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당과 당-국가의 운영이 마비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온갖 도전과 어려움, 시련에도 불구하고 저우가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기 역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_「제7장 상하이 지하 활동 1927~1931」

  작가 소개

지은이 : 천젠
냉전 국제사, 미중(美中) 관계사, 현대 중국사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석학.중국 상하이에 있는 푸단대학(复旦大学)과 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미국 서던일리노이대학교(Sou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대학교(NYU)와 뉴욕대학교 상하이(NYU Shanghai)의 글로벌 네트워크 역사학 석좌교수,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 후시 역사학 명예교수, 화동사범대학 지장 석좌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2007년 코넬대학교에서 중국과의 학술 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프리 숀 리먼(Jeffrey Sean Lehman) 연구기금’을 수여받았다. 또한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르웨이 노벨연구소 펠로십(Norwegian Nobel Institute Fellowship), 1996~1997년 미국평화연구소(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의 제닝스 랜돌프 시니어 펠로십(Jennings Randolph Senior Fellowship) 등 여러 연구 펠로십을 받았다.2005년에는 다큐멘터리 〈기밀 해제: 닉슨의 방중(Declassified: Nixon in China)〉으로 뉴스·다큐멘터리 연구 부문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에미상을 공동 수상했다.대표 저서로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을 ‘냉전 초기 미중 대결의 시작점’으로 분석한 『중국의 한국전쟁으로 가는 길(China’s Road to the Korean War)』(1994), 마오쩌둥 시대 중국의 대외 정책과 냉전 체제 전략을 재구성한 『마오 치하 중국과 냉전(Mao’s China and the Cold War)』(2001)이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논문과 편저를 남겼다.기존에 서구 중심으로 구성되어 온 냉전사 서술에 중국과 아시아의 관점을 반영하여 균형을 더하고 냉전 국제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차

영어 원문에 쓰인 본문 약어
프롤로그

제1부 유년기
제1장 유년 시절 1898~1910
제2장 만주에서 난카이까지 1910~1917
제3장 일본 1917~1919
제4장 5·4 운동가 1919~1920
제5장 유럽에서 공산주의자가 되다 1920~1924

제2부 혁명을 만들다
제6장 대혁명의 폭풍 속으로 1924~1927
제7장 상하이 지하 활동 1927~1931
제8장 장시 농촌 1931~1934
제9장 대장정 1934~1935
제10장 “중국인으로서,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 싸워야 한다” 1935~1937
제11장 충칭의 안개 1938~1943
제12장 옌안의 일출 1941~1945
제13장 강대국 정치의 소용돌이 1944~1946
제14장 내전 1946~1949

제3부 ‘신중국’을 건설하다
제15장 “우리 중국인은 일어섰다!” 1949~1950
제16장 한국전쟁 1950~1953
제17장 사회주의 이행 1952~1955
제18장 제네바에서 반둥까지 1954~1955
제19장 돌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 1956~1958
제20장 대약진운동 1958~1960
제21장 마오, ‘2선’으로 후퇴하다 1959~1962
제22장 주석이 돌아오다 1962~1963
제23장 중간지대의 혁명들 1962~1965
제24장 거센 바람 속의 먹구름 1965~1966

제4부 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남기
제25장 문화대혁명의 서막 1966~1967
제26장 천하대란 1967~1968
제27장 린뱌오의 죽음 1969~1971
제28장 닉슨과 키신저, 중국에 오다 1969~1972
제29장 영광이 눈물을 거두다 1972~1974
제30장 마지막 날들 1974~1976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석 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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